서기 2002년은 참 좋은 해인가보다. 숫자의 생김새부터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균형을 갖고 있더니.. 봄이 되어 만물이 소생하듯 여기저기서 동문 자제분의 화혼소식이 들려온다. 우리가 태어나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자라나서 결혼을 한다는 자연의 숭고한 법칙이 봄을 맞아 더욱 더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동급생과 결혼한 가련한(?) 운명의 남자로서 일찌기 과년한 미혼 자녀를 두고 보니, 오래 전부터 남의 자녀결혼 청첩만 받으면 참을 수 없이 강렬한 부와(?)가 치미는 것을 꾹꾹 누르며 살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웃는 얼굴로 결혼식장을 찾아가며 가슴속에 아픈 '참을 인 짜'를 새긴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정말 올해는 좋은 해인가보다. 내 아이들이 아직도 바늘 끝만큼의 결혼가능성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는 오늘이지만. 지난번, 내가 35년전인 1967년도의 사회학과 친구들 사진을 여기 문예란에 실으면서, 또 안광윤 동문의 기와집에서 기가막힌 조껍데기술에 첫잔부터 취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취중정담을 나누면서, 특히 오랜만에 조금 마음이 편해진 장석준차관과 우리 사회학과 동문들의 모임을 다시 활성화시키자고 다짐하면서...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도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었다. 정말 올해는 좋은 해일 꺼라고.. 정말이었다. 오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봉투의 이름을 알 수 없어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릴까 했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마구 청첩을 날려? 야단을 치려고 봉투를 뜯었는데, 야단은커녕!!! 우리 사회학과의 20명중에 늦게까지 결혼 안한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왜 결혼을 안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공부하느라고?(얼마나 둔재였으면!) 아니면 결혼전에 확실하게 자립하려고?(꽤 씀씀이가 헤펐나보지?) 그도 아니면 혹시 일찌기 연애에 실패한 상처때문에?(여기 대해선 내가 말을 안하는 게 나으리라.)... 바로 그 하나뿐인 국보(과보)적 존재이며 희귀동물(애정의 표현이 실례로 발전한 것임)인 우리의 양종회군이 별안간 느닷없이 장가를 간다는 것이다.
오는 20일(토) 오후 5시에, 장충동(?) (유명한 수정약국 건너편) 경동교회에서. 신부는 성악가 조상현교수의 차녀이며 바이올린으로 널리 알려진 조영미 양.
참으로 기가 막히고 말도 안되게, 그 영원히 혼자 살 것 같던 양종회군이 결국 뜻을 꺾고 장가를 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무려 15-6년전 이후로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양종회의 결혼. 그런 역사적 사건을 보려면 말이다. 그가 어떤 인생관과 결혼관을 갖고 오늘까지 버텨왔던 것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모든 것이 경이롭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긴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양종회의 새로 찾은 인생의 봄이 이제 막 시작되는 것을 보며, 그를 축하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인생에도 조금 더 많은 축복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2002년 새 봄이다. 양종회교수(마음 속으로는 야, 종회야)! 부디 이제껏 참아온 모든 행복을 한꺼번에 길이길이 누리소서. 그리고 직접은 모르지만 음악회에서는 종종 뵙는 신부께 축하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