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0일 대학동기모임에서 월미도를 다녀왔는데 11월 15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지키던 군사기지였고
개항기에는 조선에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였고
625전쟁 시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으로 그 후 50년간 군사기지로 사용되었고
2001년도에서야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월미도는 섬의 생김새가 반달의 꼬리처럼 휘어져 있는 모양에서 月尾島라 부르게 되고
둘레길이가 4km에 불과한 작은 섬이었으나 1922년 철도국이 석축의 둑을 축조하여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가 되었다.
그 후 소형 해수풀과 해수를 데운 공동목욕탕을 만들어 임해유원지로 개발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당시 원산의 송도원, 부산의 해운대가 유원지로 인기가 좋았는데 그 중에서도 월미도가 단연 최고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가 시작된 인천역에서 서쪽으로 1km 거리에 있어 역에서부터 걸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인천역과 나란히 월미바다열차역이 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운행이 되지 않고 있다.
정문을 지나면 왼쪽이 한국전통정원이고 정원입구는 전통복장의 인형과 국화꽃으로 장식되어있다.
전통정원은 조선시대 궁궐정원, 별서정원, 민가정원을 재현해서 만들어져있다.
궁궐정원으로는 부용지, 애련지, 화계 및 아미산 굴뚝을
별서정원으로는 소쇄원, 국단원, 서식지를
민가정원으로는 양진당과 초가 민가를 재현하였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꽃이 피는 연못을 재현한 애련지이다.
월휴정을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둘레길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365계단의 숲길로 들어선다.
중간쯤에서 수령 100년이 된 소나무 장군나무를 만난다.
정상으로 가는 길가에 좋은 문구들이 붙어있다.
높이 108m이지만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고 전망이 좋다.
정상에서 조금내려오면 무궁화동산 가운데 예포가 놓여있는데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각국 대사를 맞이하는 포대를 이곳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망대도 코로나로 인해 문이 잠겨있다.
정상을 내려와 둘레길을 지나는 중 평화의 어머니 나무라는 월미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만난다.
망루와 포루의 기능을 하는 돈대가 있는 삼거리다.
이곳은 이민사박물관으로 가는 무장애길과 월미문화의거리로 가는 돈대길이 둘레길과 만나는 곳이다.
월미문화의거리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인천역으로 향한다.
그 후 한 달 반이 지난 11월 15일
한국이민사박물관앞 월미공원2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일정이 시작된다.
월미테마파크를 지나 월미문화의거리로 이동하여 식사를 해결하고 돈대길을 올라 간다.
둘레길가 이름없는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만남의 광장에 왔다.
만남의 광장이 이 시간 가장 화려한 가을색을 보여준다.
그날을 기억하는 은행나무 아래서 창덕궁 후원에 있는 같은 모습의 부용지를 내려다 본다.
전통정원 안으로 들어간다.
경복궁 교태전 뒤뜰에 있는 아미산굴뚝을 만난다.
월휴정 언덕을 감싸고 있는 억새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월휴정에서 건너다 본 7부두 곡물창고(SILO)의 모습
세계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있다.
높이 48m 길이 168m 폭 31.5m로 축구장 4개의 크기로
전문인력 22명이 12개월에 걸쳐 제작하였고 86만 5400리터의 페인트와 5억5천만원의 에산이 소요되았다.
민가정원앞의 호박밭과 쟁기질하는 모습
양진당은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씨 종갓집을 재현한 것으로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 선생이 거주했던 집이다.
전통정원을 나와 다시 둘레길을 걷는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올라오는 박물관길 끝에 있는 석양정이다.
둘레길 시작점 돈대삼거리에서 2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무장애길을 내려가면 오늘 일정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