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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한성희
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 아버지는 서울에 가시고 엄마와 할머니는 동생을 업고 장을 보러 가셨습니다. 집에는 할아버지와 나 둘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듯이 장지문을 열어놓고 책을 보고 계십니다. 할머니가 내 투정을 받아 주실 때마다 버릇 나빠진다며 야단만 치시는 할아버지가 무서워 집 주위만 빙빙 돕니다.
마당 멍석 위에 빨간 고추가 잔뜩 널려 있습니다. 전날 할머니가 하루 종일 따 널어놓은 고추입니다. 하룻밤 새 제법 말라서 삐들삐들합니다.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가지고 놉니다. 꼭지도 따보고 배를 갈라 안에 들어 있는 노란 씨도 발라냅니다. 매운 고추를 만져서인지 금세 손이 화끈거리고 아려 옵니다. 얼른 뒤란으로 달려가 샘에서 물을 한 자배기 퍼 올려 손을 담급니다. 차가운 물에 화끈거리던 손의 감각이 점점 무디어 갑니다. 한참을 담그다 내 눈은 할머니가 반질거리게 닦아놓은 항아리 옆 꽈리 나무로 옮겨 갑니다.
며칠 전까지 파랗던 꽈리가 어느새 빨간 빛을 띠며 익었습니다. 제일 잘 익은 걸로 따서 바늘로 구멍을 내고 씨를 빼냅니다. 꽈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주무르고 빙빙 돌려가며 씨를 빼내야 합니다. 다 빼낸 껍질에 바람을 넣어 입안에 넣고 꽉꽉 눌러 봅니다. 다른 언니들이 할 때처럼 고운 소리는 나지 않고 피식피식 바람만 새어 나옵니다. 몇 번을 다시해도 언니들처럼 멋있는 소리가 나지 않자 그만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한나절이 훨씬 지났는데도 장보러 간 할머니와 엄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툇마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작로만 바라봅니다. 저 멀리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시내버스가 지나갑니다.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목을 빼고 바라봅니다. 한 대가 지나가고 또 한 대가 지나가고 몇 대가 지나갔는데 우리 동네 앞에서 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가 고픈데 할아버지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책만 보고 계십니다. 내 옆에서 길게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누렁이 꼬리를 잡아 비틀며 낑낑대게 만듭니다. 읍내가 얼마나 멀기에, 무엇을 그리 많이 사 오시길래 이렇게 오래 걸릴까? 기다림에 지쳐 누렁이 옆에서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후두둑 빗소리에 잠이 깹니다. 비가 오니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거두어들입니다. 멍석까지 말아 헛간에 넣은 할아버지가 툇마루 밑에 웅크리고 앉은 나를 보십니다. 비를 피해 댓돌 위에서 신발을 벗으시다 말고 내게 등을 내밀며 업히라십니다. 처음 듣는 할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그만 어리벙벙해져 시키는 대로 할아버지 등에 업혔습니다. 할아버지 등은 할머니처럼 착 붙지도 않고 엄마 등처럼 나긋나긋하지도 않습니다. 장작개비처럼 마른 할아버지 등은 배겨서 아픕니다. 거기다 모시 적삼의 까슬함 때문에 등에 댄 얼굴이 따끔거립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업고 툇마루를 왔다 갔다 하며 낮은 음성으로 시조가락을 흥얼거리십니다. 할아버지 등이 점점 따뜻해지더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살포시 선잠이 들었나봅니다. 깊이 잠이 든 줄 안 할아버지가 나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잠이 깨면 실망하실까봐 그냥 잠든 척 누워 빗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다 정말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꿈결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립니다. 장보러 갔던 할머니와 엄마가 돌아오신 것입니다. 착하게 잘 놀았다며 머리맡에는 사탕과 셈베이 과자가 한 아름 놓여 있습니다. 집에서 기른 닭과 계란, 채소를 가지고 장에 가셨던 엄마는 그것들을 팔아서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 몇 마리, 밀가루, 김 등을 사오셨습니다. 다음 장까지 먹을 찬거리들입니다.
그 후 두 번의 장날이 더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온 식구가 장을 보러 갑니다. 평소에 장에 잘 안 가시던 할아버지까지 경운기를 운전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경운기 뒤에는 그동안 말린 고추가 대여섯 자루 실려 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옆 작은 보조의자에 앉고 할머니와 엄마는 경운기 뒤 고추 자루 옆에 앉아 갑니다. 큰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하얗게 날리고 경운기가 터덜거릴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이며 아파오지만 장 보러 가는 길은 마냥 신이 납니다. 널찍한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도로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하얀 망초와 토끼풀은 버스에서 날린 흙가루를 뿌옇게 뒤집어쓰고도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잘 다녀오라고 손짓합니다.
색색으로 흔들어 주는 코스모스의 배웅을 받으며 읍내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고추 골목에서 그동안 말려 놓은 고추를 내려놓습니다. 할아버지는 뒷짐 지고 서 계시고 할머니가 장꾼들과 흥정을 합니다. 몇 번의 옥신각신 끝에 싣고 온 고추는 모두 장꾼에게 넘어가고 할머니는 돈을 받아 고쟁이 안에 챙겨 넣습니다.
그 다음은 채소전입니다. 할머니와 엄마는 시골에서 농사지은 곡식과 야채들을 가지고 나온 많은 아낙들 틈에 얼른 자리를 잡고 텃밭에서 실하게 묶은 열무와 배추들을 펼쳐 놓습니다. 할머니 채소는 단이 묵직해서인지 금방금방 팔립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계란꾸러미도 모두 팔려나가고 이제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시작합니다.
옷감 가게도 들르고, 고기도 사고, 그릇가게에서 예쁜 그릇도 삽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문구점으로 들어가 종이와 붓, 먹 등을 샀습니다. 오늘도 장에 나와 보았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하실 것입니다. 장보기가 끝나면 장날마다 문을 여는 커다란 포장마차에 들어갑니다. 포장마차엔 음식 백화점마냥 없는 게 없습니다. 허름한 나무 탁자에 긴 의자를 놓고 할아버지는 국밥을, 할머니와 엄마는 돼지머리에 국수를, 나는 국화빵을 먹습니다. 잊을 수 없는 꿀맛입니다. 찐빵까지 한 봉지 사서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족 모두 소풍을 다녀온 것처럼 느긋하고 한가롭습니다. 그렇게 아침부터 부산했던 장날 하루가 지나가고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산에 걸려 뉘엿뉘엿합니다. 노릇노릇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 위로 할아버지의 경운기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작법 해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비평자는 다음 몇 가지 문제들에 관한 생각을 하였다.
1. 수필문학의 형식
문예창작법에는 수학공식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 공식적인 구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에는 형식, 혹은 양식이라고 하는 공식도 있고, 각기 다른 장르라는 공식도 있고, 구성법이라는 공식, 혹은 작품의 구조라는 공식도 있다. 시문학의 구조와 소설문학의 구조는 다르다.
기존의 수필론에서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라는 말을 앞 뒤 아무 설명도 붙이지 않은 체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이는 지난 1세 동안 수필문학론을 혼란에 빠트려온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무형식의 문학’이라는 말에는 그 앞이나 뒤에 ‘어떤 일정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형식을 취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말이다.
문학의 독자들이 소설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소설로서의 모양, 시로서의 모양, 동화로서의 모양이 문학의 공식과 같은 형식이다. 이 모든 각기 다른 형식은 그것이 깨어지면 시가 아닌 것이 되고 소설이 아닌 것이 되고 동화가 아닌 것이 된다. 이 같은 형식들을 문학에 있어서의 공식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여러 가지 문학의 형식 가운데서 동화양식의 형식을 수필작법에 응용한 작품이다.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라는 말은 이와 같이 수필은 어떤 일정한 형식에 매이지 않고 소설 형식을 취하여 올 수도 있고, 동화 형식을 취해 올 수도 있는, 형식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문학이라는 뜻이다.
2. 문예창작법의 종류
문예창작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작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시문학으로 대표되는 서정문학(시문학 ・ 운문문학) 작법이고, 두 번째는 소설문학으로 대표되는 서사문학(산문문학) 작법이다.
이 작품은 서사문학 작법에 의한 작품이다. 서사문학이란 이야기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문학이란 문학적 이야기를 만드는 문학이라는 뜻이다. 예술은 그것이 시나 소설 혹은 음악이나 미술이라도 이야기가 없는 예술이란 없다. 다만 그 이야기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이야기를 가장 이야기 형식을 갖추어 만드는 예술이 문학예술이다. 그 중에서도 소설이 가장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문학이다. 그러나 수필이라고 해서 문학적 이야기 만들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소설이 문학적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적 서사를 창작하는 데에 있다. 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문학적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된다는 어려움이 있다. 문학적 이야기란 사실이 아닌, 상상적 ・ 허구적 이야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상상적 ・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창작문예수필의 작법상의 숙제다.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문학적 이야기’ 즉 상상적 ・ 허구적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다.
3. 시제(時制) 창작
이 작품의 작법에서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시제(時制) 창작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어린 시절 장날 이야기’이다. 그러나 작품의 시제는 현재시제로 되어 있다. 서두문장 “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백년 후 독자들이 읽어도 오늘 현재 시간 속의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읽히게 될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현실의 시간은 적어도 나이가 50 안팎이 된 때일 것이다. 수필의 제재는 사실의 소재 자체다. 그런데 “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 기존의 수필이 빠져 있는 신변잡기라는 수렁이 바로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대답을 내어 놓지 못한 것이다. 그 대답을 내놓지 못한 까닭은 저들에게는 문학이란 본질상 <창작 ・ 창작적>인 작품을 의미한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 현대수필문학 1백년사의 문학적 넌센스이다.
창작이란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비사실적 세계, 즉 상상적 ・ 허구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상상적 ・ 허구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은 장르마다 다 다르다. 수필의 경우 중심적인 창작법이 구성작업에 있다. 구성 작업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 시제(時制)법이다.
수많은 수필작품들의 문장법이 ‘문을 밀고 들어온다.’와 같은 현재진행 형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직접 작품의 제재로 삼는 문학이라은 개념에 대한 창작론적 이해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을 밀고 들어온다.’는 현재진행형의 문장은 새빨간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문을 밀고 들어 온 것은 작가의 과거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수필론은 그런 문장법에 대한 창작론적 답변을 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상상적 ・ 허구적 문학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의 하나가 시제창작에 있다. 이 작품의 작법의 경우 첫 째로는 위에서 지적한 동화 양식, 즉 어린이 시점(視點)법의 경어체 문장법과 두 번째로는 40여년 전 어린 시절 겪었던 사실의 소재에, 즉 과거의 사건을 “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라는 현재시제 형의 사건으로 바꿔 놓은 작법이다. 이 시제의 변경이 단번에 이 작품의 사실의 소재를 문학적 상상적 ・ 허구적 이야기로 탈바꿈 시키는 물꼬를 트고 있다. 뛰어난 작법이다.
4. 서사문학 작법의 본령은 구성법에 있다
서사문학 작법의 본령이 구성법에 있다고 할 때의 구성법이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지금까지도 사건들의 배열을 의미한다.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양식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수필창작의 경우 다른 어느 장르 문학보다 구성법에 목을 매달다시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와 소설은 아무리 졸작이라도 여전히 창작문학이지만 수필의 경우는 창작 ・ 창작적이지 못하면 즉시 신변잡기가 되고 말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이 졸작이라도 여전히 창작문학인 까닭은 시와 소설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지 않고 작품 밖에서 허구화 작업 즉 창작 작업을 시작하는 문학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사실의 소재자체를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와서 거기서부터 창작을 시작하는 양식의 문학이다. 그런데 구성작업마저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가지고 창작이라고 할 것인가? 수필문학이 문학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있는 그 본령은 창작적인 구성작업을 하는 데에 있다.
이 작품은 서두에서 “아버지는 서울에 가시고 엄마와 할머니는 동생을 업고 장을 보러 가셨습니다. 집에는 할아버지와 나 둘 뿐입니다.”라는 상황 설정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서두에서 설정한 “집에는 할아버지와 나 둘 뿐입니다.”라는 상황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문학적 이야기 만들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조금 더 작품을 읽어 내려가면 아이는 지금 장에 간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구성법이다. 아이가 지금 장에 가신 할머니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상황을 작품 서두에 내어 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구성법의 목적이 무엇일까? 할아버지 밖에 안 계신 상황에 지루해 진 아이가 “빨간 고추”를 가지고 놀 수밖에 없는 장면과 후반부의 가족이 함께 간 신나는 장날 이야기가 대비됨으로 어린 시절 그날의 「장날」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들어 날 수 있도록 형상화하기 위한 데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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