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산
군위 조림산 (637.8m)
팔공산 조망 아름다운 처녀 산행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가 싶더니 삼월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고, 사월에는 때 아닌 봄눈이 내렸다. 이러다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들꿩이 푸덕이고, 댕기머리 후투티의 노래 소리를 따라 어느덧 녹음이 짙어지는 오월이 찾아왔다.
고향을 노래하는 가사 중에는 봄을 떠올리게 하는 '꽃피는 산골'이 자주 등장하는데, 막연히 봄을 동경하는 것처럼, 봄이면 고향의 봄 풍경을 그리워하게 되고, 봄꽃이 만발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보곤 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다보면 유년 시절을 보내던 고향소식에 귀가 쫑긋해지기 마련인데 그런 고향의 뒷동산에 등산로가 개척되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온 이들이 있다. 어릴 적에 가족 전체가 이사를 가서 지금은 울산에서 살고 있는 윤영숙(44세), 윤현숙(40세)씨 자매와 대구에서 왕성한 산악활동을 하고 있는 장병권(49세)씨가 이번 산행에 동행했다.
조림산(638m)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군위군 산성면, 의흥면,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콧날이 오뚝한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주변에서 산줄기를 보면 독립된 봉우리로 보이지만, 백두대간에서부터 시작되어 한 번도 물길을 만나지 않고 낙동정맥, 팔공지맥으로 이어져, 군위군과 영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갑령재에서 북쪽으로 힘차게 한 줄기가 뻗어 나와 낙동강 지류인 위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분맥으로 볼 수 있는 산이다.
등산로가 개척되었다고는 하지만 세상에 내놓지 않은 산으로 아직 안내도며, 이정표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처녀산이다.
들머리는 덕림사 입구 내곡지에서 시작된다. 실바람에 실려 사방으로 흩어지는 조팝나무 꽃향기 그윽한 포장길을 따라 오른다. 길섶에 피어난 꽃이며 풀포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애기똥풀, 미나리아재비, 할미꽃, 양지꽃. 일일이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눈다. 두 자매는 영락없는 시골출신 소녀였고, 소녀출신 아줌마였다.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봄볕에 몸을 말리던 뱀을 만나면서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700여 미터를 쉬엄쉬엄 오르자 고려시대 때 작품으로 추정되는 5층 석탑이 있는 덕림사다. 주지인 덕현스님이 아침 일찍 산나물을 뜯으려고 산에 들었다고 말하는 보살님은 어디에서 왔느냐? 골짜기가 많은데 어디로 오를 것이냐? 물은 챙겨왔느냐며 살갑게 반긴다.
아직 등산을 목적으로 찾아드는 이가 없어서 그런지 곳곳의 볼거리며 주의해야할 구간을 설명해주신다. 등산로는 그 오른쪽 비탈을 따라 이어진다.
비좁은 졸참나무 숲과 청미래덩굴 사이를 비집고 15분정도 오르자 왼쪽으로 휘어져 약간은 내리막인 듯한 넓은 길을 따르더니 작은 웅덩이 직전에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화전리 피밭골 오른쪽은 노란 리본을 촘촘히 달아두었는데 이 길을 따르면 이후는 길 잃을 염려 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빼곡한 소나무 숲 그늘 아래에 수줍게 고개를 내민 고사리가 자라고 있다. "고사리 많다. 전부 고사리네." 고사리 때문인지 아까 만난 뱀 때문인지 아무도 앞서 가려하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오롯한 길을 20분 올라 바위 전망대를 만난다. 이곳 바위는 등산로를 개척한 산성산악회 회원들이 아래에서 보면 코끼리를 닮은 바위라고 '코끼리바위' 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위 위에 서면 구미의 금오산, 의성의 금성산과 비봉산이 조망되고 산성면소재지를 이루는 화본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아래에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는 빨간 지붕의 교회당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화진개' 우리 집이 있던 곳이에요" 라는 윤현숙씨의 말에 이어 장병권씨는 "저가 꺼뜩골이네. 중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에 왕복으로 많이 뛰었는데..." 라며 추억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조림산은 이들의 추억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격전지이기도 하다. 아직도 깊이파인 참호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코끼리바위를 지나니 경사가 완만한 오르내림의 능선길이 20분쯤 이어진다. 그 끝 534봉에는 주변의 돌을 모아 작은 탑을 세워두었다. 딱히 이정표가 없어 편의상 돌탑봉우리로 부른다. 이후에도 크게 힘든 구간이 없이 한 구간의 너덜 길을 지나 화산이 조망되는 전망대로 이어진다. 전망대에 서니 왼쪽 인각사 뒤로 최근 담수를 시작한 군위댐이 잘 보인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30분 거리다. '306'으로 표기한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는 봉분이 허물어진 무덤 1기가 있다. 사방 참나무 숲으로 조망이 어려운 것이 흠이지만 여러 명이 둘러 않을 만한 그늘이 있어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다. 하산은 오르던 길에서 직진방향으로 곧장 나아가면 병풍바위를 지나 다시 덕림사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10여 미터를 되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난 참나무 숲길로 접어든다.
올해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는다. 당시 풀뿌리 하나 온전하게 남은 것이 없었을 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나무며 참나무는 수령 60년이 넘을 법한 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간벌한 굴참나무의 나이테를 헤아려 봐도 20년 정도가 고작이다.
너덜과 바위사이를 지나 15분 만에 583봉에 닿는다. 바위들이 흩어진 정면의 능선은 갑령재로 향하고, 하산 길은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져 나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희미한 길이지만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다.
간간이 하얗게 꽃을 피운 가침박달나무와 연분홍색 산벚나무가 소나무 숲 사이에 자라고 있다. 작은 안부를 지나 지형도상의 540봉쯤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만나는데 지나온 정상부와 남쪽으로 팔공산이 실금을 그리듯 한눈에 들어찬다. 인근 초등학교 교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팔공산, 조림산. 그 산들을 실컷 느낄 수 있는 봉우리가 바로 이곳이다.
간벌한 잡목 사이로 난 길이 가파른 내리막이어서 20분 만에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출발 지점인 곡내지까지는 또 20분 걸린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안아준 고향 산에서의 하루,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먼 훗날 이번 산행을 떠올린다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흐드러진 산딸기 꽃길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산행길잡이
곡내지-(10분)-덕림사-(15분)-피밭골 갈림길-(20분)-코끼리바위-(20분)-돌탑봉우리-(30분)-정상-(15분)-583봉우리-(15분)-팔공산 정망봉우리-(20분)-임도-(20분)-곡내지
조림산은 지역의 산성산악회와 면장, 이장, 우체국장 등 기관단체장들이 앞장서 개척한 처녀 산행지로 부드러운 육산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때 묻지 않은 산이다. 산성면사무소 직전 회나무상회에서 '덕림사 4km' 이정표를 따라 들어선 후 덕림사 주차장에 주차 후 산행을 시작하거나 덕림사 입구 곡내지에서 포장도로 끝 지점(현재까지는 끝 지점. 향후 의흥면 금양리까지 연결 계획)에서 시작하면 된다. 덕림사에서 올라 피밭골 갈림길까지만 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코끼리바위에서는 왼쪽부터 칠곡군의 유학산(839m), 구미시의 금오산(977m), 정면 오른쪽으로 의성의 금성산, 비봉산이 한눈에 들어와 쉬어가기에 그만인 곳이다. 정상에서 583봉으로 향하는 길은 정상에서 10여m 되돌아 나오면 오른쪽으로 능선 길을 찾을 수 있다.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는 6.5km로 3시간이면 충분하고, 주능선에는 식수가 없으므로 들머리인 덕림사에서 준비해야 한다.
*교통
영천에서 접근하면 28번 국도를 따라 신령을 지나고, 우보 방향으로 갑령재 못미처 봉림 방향으로 908번 지방도로를 따라 산성면 소재지에 이르면 화본1리 마을회관 맞은편으로 회나무상회가 보인다. '덕림사 4km' 이정표를 따라 화본리 중동을 지나 곡내지 앞에 차를 세우면 된다.
대구쪽에서는 중앙고속국도를 따라 가산나들목에서 내려 효령까지 간 다음, 부계 방향의 79번 지방도를 따르다가 백학삼거리에서 우보, 산성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3km쯤 가면 908지방도 합류하는 철길 아래 삼거리(현대주유소)가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산성면 소재지까지 가면 된다.
또 대구-포항간고속국도를 따라 와촌, 청통나들목을 빠져나와 은해사 방향으로 신령까지 간 다음 영천에서 접근하는 방법과 같이 28번 국도를 따르면 된다.
*내비게이션 목적지: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산18번지(덕림사)
*잘 데와 먹을 데
산성면소재지 내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 화본역 앞에 자리잡은 식당이 두 곳 있다. 가정식 백반정식, 볼고기전골 전문점인 정다운밥집(054-382-3666). 군위군 등록상표인 e-로운 삼겹살, 제육볶음, 닭도리탕 전문점인 나리식당(382-3070).
*볼거리
화본역 박물관 예정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년 폐철로 및 간이역 관광자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화본역이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되었다. 화본역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간이역 자체로도 하나의 볼거리가 되겠고, 향후 증기기관차 재현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장이 들어설 계획이다. 특히 수탑을 휘감은 담쟁이는 봄철과 단풍이 든 가을이면 환상적인 모습이다.
덕림사 5층석탑 들머리가 되는 걍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화본이 산 18 덕림사 마당에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5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 제186호)이 있다. 단층 기단 하부가 매몰되었는데 도출된 기단 상면에 3단 괴임을 각출하고 그 위에 탑신부를 놓았다. 각 옥신은 좌우추가 각출되었으며 2층 옥개와 3층 옥신을 붙여서 한 돌로 되었고, 기타 탑신과 옥개도 각기 한 돌로 되었다. 5층 개석 위에 노반파편이 있으며 높이는 2.95m다.
글쓴이:최원식 대구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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