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 45.83㎢,인구4,329명(1999)이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원래의 이름은 곡도인데,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으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옹진반도와 이어져 있었으나 후빙기에 해면이 상승하면서
평원에 돌출되어 있던 부분이 수면 위에 남아 형성되었다.
한국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나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1월 평균기온-4.5℃,8월 평균기온 25℃,연강우량은 755.8mm이다.
백령도에는 선사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다.
진촌 지구에 있는 말동패총과,용기포 지구에 있는 용기패총 등에서 빗살무늬 토기와
무문토기,타제 및 마제 석부,연석봉,기타 골편(骨片)이 발견 되었다.
이 유물의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전,신석기 시대 말기의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부터 백령도에 사람이 거주하여 역사가 이루어졌다.
당시의 주민은 어로에 종사하는 한편 초기 원시 농경 생활을 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백령도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치려 할 때에는 고구려의 군사가
이곳에서 신라의 군사와 싸워 물리친 일도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신라 영토가 되어 한주(漢洲) 장구진(長口鎭)에 딸려 있었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고려 영토가 되어 해주(海州)에 속하게 되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 강령현(綱領縣) 조에 의하면
백령도는 고구려 때에는 곡도(鵠島)라고 하였고,고려 때에는 백령진(白翎鎭)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세종10년에 영강(永康)과 백령을 통합하여 강령진(綱領鎭)이 되고,
뒤에 강령현이 되었다고 한다.
백령도는 조선 세종때에는 해주목사(海州牧師)가 관할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해우도(黃海右道)에 소속되어 옹진에 설치된 병마절도사령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옹진에서 백령도에 행수군첨절제사(行水軍僉節制使)를 파견하였다.
조선 말엽 전국이 23부로 구성될 때 해주부에 속해 있다가,
13도가 설치되고 나서 일제 말까지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으로 내려왔다.
백령도는 조선 시대에도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조선 광해군 8(1616)년에 정인서가 백령도에 유배되었다.
광해군 12(1620)년에는 문신 이대기(李大期)가 정인홍 사건에 연루되어 백령도에 유배되었는데
그는 유배되어 있는 동안 당시의 백령도 풍물을 기록한 『백령도지(白翎島誌)』를 남겼다.
이 문집에는 백령도의 지리적 특징과 지형,산업국방,풍속등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는 백령도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갑오경장 직후에는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상소하던 사람들이 백령도로 귀양왔다.
그 중 공주 사람 김성진은 중화동에 사는 허득(許得)에게 성서를 전하고
함께 힘을 합하여 중화동 교회를 세웠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며,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과
세계에서 두 곳뿐인 사곶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용기포구 옆에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는 규조토 해변(일명 사곶해안)은
길이는 자그마치 3km,썰 때에는 3백m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차도로 사용되고
군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으며 1999년 10월에는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이 준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심청이의 효심을 배워가기도 한다.
백령도에는 예로부터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 용궁에 갔다가 연꽃을 타고 다시 인당수로 떠올랐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그 연꽃이 조수에 떠밀려 연화리 앞바다에 연밥을 떨어뜨리고 연봉바위에 걸려 살아났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백령도가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전부터 있었다.
옹진군에서는 한국민속학회에 이의 고증을 의뢰하였다.
한국민속학회에서는 한국교원대학교 최운식교수,고려대학교 유영대 교수,
백령중·종합고등학교 백원배 교감을 중심으로 학술 조사단을 구성하여
1년간 걸쳐 고증작업을 한 뒤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내렸다.
고전소설 심청전과 '심청전설'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심층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 황해도 황주라고 한다면
심층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곳은 백령도가 된다.
그런데 남북이 사상과 체제가 다른 둘로 갈라져 있는 현 상황에서는 황주에
심층과 관련된 전설이나 어떤 증거물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현재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지역내에서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을 찾는다면,
심청전에서 파생한 '심층'이 전해 오고,인당수,연봉바위,연화리와 연꽃등 전설의 증거물이 존재하는 백령도를 꼽을 수밖에 없다.
위 고증 결과를 바탕으로 옹진군에서는 진촌리 북쪽 산마루에 심청기념각을 세운다.
해발 100m의 고지대인 이 곳에 오르면,북쪽으로 심청이 빠져 죽었다는 인당수와
장산곶이 보이는 남쪽으로는 심청이 살아났다는 연봉바위와 대청도가 보인다.
옹진군에서는 이곳에 1층54평,2층54평의 심청기념각을 완공 했다.
심청기념각이 완성후 지금에 와서는 그 아래에 심청문화 행사장을 지을 예정이고
연화리에 연꽃 단지를 조성하고 정자를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이 완성되면,심청전의 내용을 소개하는 그림과 사진을 전시하는 한편
판소리 심청가와 심청전을 영상화한 자료를 감상하게 하고, 심청과 관련된행사를
정기적으로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곳은 인당수,연화리,연봉바위와 함께 효도교육의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백령도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바로 해금강 총석정을 빼닮은 "두무진(頭武津)"이다.
백령도의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두무진은 서해를 향해 두팔을 벌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몇천년 동안의 파도와 매서운 서풍에 의해서 깍여진 바위들이 마치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듯 한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장군바위등의 해층기암이 60~70m까지
치솟아 있어 빼어난 자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백령도는 그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경기 편마암 복합체의 규암으로 인하여
단애로 구성된 암석해안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백령도의 해안 가운데 다수의 "sea stack"이 형성 되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해식 동굴이 발달되어 있다.
두무진 포구에서 배를 빌려 해상을 직접 나가보는 선상관광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코스중의 하나이다.
두무진함 왼편 해안을 따라 통일전망대가 나오고,
이곳에서 12km떨어진 장산곳이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두무진 옆으로는 선대암,장군바위,형제바위,코끼리바위 등이 늘어서 있으며,
두무진에서 1km앞바다는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라 전해지고 있다.
연봉바위는 심청을 태운 연꽃이 흘러가다 걸린 바위라고 이곳에서는 말한다.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곳 중의 하나로
해변에 둥근 자갈들로 구성된 퇴적물이 단구상 미지형으로 발달한 해안이다.
둥근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母岩>인 규암이 파쇄되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잔자갈들로 콩과 같이 작은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하고,색상이 백색,회색,갈색,적갈색,청회색등으로 형형색색을 이루고 있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콩돌자갈은 간조시 육지로부터 조립질 자갈대(corse-gained pebble zone)
세립질 자갈대(fine-gained pebble zone) 및 중립질 자갈대(medium-gained pebble zone)의
순으로 해안선에 평행하게 발달하여 있다.
하부층에는 모래층이 있다.
조립질 자갈대는 약 6m 내외의 폭을 가지고 있고,
자갈들은 직경16∼64mm가 약 65%, 8∼12mm가 약 35%로 구성되어 있다.
세립질 자갈대는 그 폭이 8m 정도이고,자갈들은 직경 4∼9mm가 95%,10∼19mm가 5%로 구성되어 있다.
자갈 모양은 둥글고 표면이 잘 연마되어 있다.
중립질 자갈대는 그 폭이 약 10m 내외이고 바로 바닷물과 접해있다.
중립질 자갈대의 자갈들은 직경7∼13mm가 90%, 18∼40mm가 10%로 구성되어 있다.
사곶천연비행장.
사곶비행장은 이탈리아나폴리 해안과더불어 세계에 두곳밖에 없다는
천연비행장으로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때 사용된 곳이다.
사곶천연비행장의 해변은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형성되었기 때문에 비행기가 이착륙 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해변의 길이는 4Km정도로 썰물 때는 폭이 300m에 달한다.
또한 경사가 완만해 어린아이들도 안전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병풍처럼 송림이 둘러 쌓여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로 교회 중 세번째로 지어져 106년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회이며
중화동교회 기념관은 옹진군에서 3억원을 투입,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와 인천노회 및
백령시찰회의 기도 후원 등으로 추진됐다.
이 기념관은 769㎡의 부지에 연면적 118㎡ 규모로 초대교회 선교사와
한국인 목사들의 얼굴 사진 등을 전시하고 그들이 당시 전도하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놓았다.
중화동교회는 구한말 외국 선교사들이 서해안 지역에 최초로 복음을 전파한 성지로
1898년 현 위치에 초가 6칸의 예배당이 세워졌으며 초대 당회장은 언더우드선교사였다.
[자연산 굴]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우는 자연산 굴.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채취하며 고단백
식품으로 환자 및 노약자의 건강과 피로회복에 그만이다
[까나리 액젓]
백령도에는 까나리가 유명하다. 까나리는 멸치와 비슷한데 낚시미끼로 쓰거나 말려서
졸여 먹기도 하지만 주로 액젓을 담근다.
맛이 담백학 숙성됨에 따라 비린내가 없어져 독특한 맛을 느낄수 있다
[해삼]
관내 청정 해역에서 생산되며 강장에 좋을 뿐 아니라 기호도가 높은 연체동물로 이뇨
작용을 촉진시키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백령약쑥]
해풍을 맞고 자라 향과 약효가 뛰어나며,
특히 신경통, 근육통환자들에게 약품을 이용한 치료는 많은효과가 있다
[꽃게]
백령도는 그야말로 꽃게로 유명하다.
매년 2월 초순부터 6월 하순, 9월 중순부터 11월하순까지
꽃게잡이를 하며 최고의 상품으로 친다
[쑥염소]
옹진군 자연 초지에서 방목으로 자란 흑염소는 상양과 같은 약효가 있으며,
대표적인 옹진 특산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