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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마다 니르바나 주니어로 하나가 되는 천진불들. 눈물나는 연습, 쏟아지는 폭우에도 이들의 연습실은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뜨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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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사는 중학교 3학년 혜진이(가명)는 지난 10월 17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를 잊을 수 없다. 3년 전 스님의 제안으로 입단한 니르바나 주니어 챔버 오케스트라가 길상사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선 날, 긴장한 마음으로 한 곡 한 곡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갈 때 바로 옆에 서 있던 가장 어린 동생이 긴장한 탓인지 무대에서 토하고 말았다.
당황했지만 더욱 정신을 차려 동생의 몫까지 힘차게 연주했고 준비한 5곡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인사를 마치고 무대 밖으로 달려가 동생을 꼭 안아 준 혜진이.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됐지만 마음속 다짐은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우리가 함께 해낸 거야.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함께하자. 지금처럼.’
비단 혜진이만의 발원이 아니었다. 2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니르바나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꿈을 꾸는 이 합주단은 지난 2006년 창단한 불교계 첫 어린이 실내 관현악단이다. 바이올린, 첼로, 클래식 기타, 플루트, 클라리넷 등 6개 악기의 하모니를 선사하는 악동(樂童)들의 모임이 11월 28일 오후 2시 양평청소년수련관에서 용문사 은행나무어린이집(원장 진엽) 주최로 두 번째 연주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11월 14일 연습 현장을 찾았다.
천진불이 하고픈 음악, 그들이 화음으로 빚어내는 부처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참새 같은 어린이들의 웃음과 백조 같은 현악기의 선율, 햄버거와 녹차가 더불어 있는 이곳은 서울 마포동 불교방송 지하 1층 니르바나 오케스트라의 연습실. 니르바나 주니어가 매주 토요일마다 매회 3시간 동안 합주에 매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악기를 든 10여 명은 니르바나 주니어 단원들.
음악하고 싶은 아이들 모여 06년 창단
한참 연주가 진행됐는지 단원들 앞에 선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강형진 단장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가 현악 파트를 향해 말했다. “진짜 내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듯 해봐. ‘솔’에서 ‘라’로 넘어갈 때 마음도 함께 올라가는 거야. 알았지?” 찬불가 ‘사박걸음으로 가오리다’ 악보를 펼치고 어린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일제히 활을 들었다. 이윽고 풍부한 화음이 연습실을 넘실거렸다.
니르바나 주니어 단원 중에는 절에서 사는 어린이들이 제법 많다. 다시 말해 악기를 다루는 학생은 으레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운 집안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처음부터 접어두자는 얘기다.
대신 부모를 일찍 여의었거나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천진불들에게 음악은 유일한 벗이나 다름없다. 경제 상황을 떠나 음악을 하고 싶은 어린이들을 위해 강 단장은 레슨비를 대폭 낮추는 대신 전문 불자 연주가를 강사로 초빙, 레슨 수준을 사설학원보다 높게 했다.
2년 전부터 첼로를 연주한 초등학교 3학년의 은진이(가명)는 “니르바나 주니어와 함께해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며 “합주를 하면서 혼자서는 느끼지 못했던 소리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이 시간이 참 좋다”고 미소 짓는다. 니르바나 주니어의 맏언니 예림이는 부모님과 함께 화계사에 참배하러 갔다가 입단한 장수 멤버로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있다.
“니르바나 주니어와 함께 한 시간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제가 없으면 누가 선생님을 웃겨 드리죠? 요즘 매일 부처님께 기도해요. 니르바나 주니어가 지금보다 훨씬 크게 해달라구요.”
그러나 예림이는 내년이면 입시 준비로 활동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풀이 죽었다. 강 단장은 이런 천진불들에게 음악으로 희망과 기회를 전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어요. 음악은 최고의 명상 도구이자 마음을 치유하는 수행이라는 걸요. 힘들 때면 법당을 찾아 절과 경전 독송을 할 때의 청량함이 언제부터인가 음악을 하면서도 느껴졌습니다. 이 행복을 음악 하고 싶은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마음 치유하며 미래 희망 키워
타종교에 비해 클래식에 대한 교계의 관심은 미약할 정도로 부족한 것이 현실. 2004년 은평법당 금화사에서 결성한 어린이 바이올린 협주단이 1년 만에 해체됐고 3년 전 결성한 니르바나 주니어 역시 많은 절을 찾아다니며 지원과 참여를 호소했지만 4~5명의 단원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해왔었다. 이제는 정말 포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강 단장의 마음을 붙든 것은 억수같이 폭우가 쏟아져도, 스님의 만류에도 연습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천진불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길상사에서 니르바나 주니어에 보태는 마음도 큰 도움이 됐다. 10명의 예비 단원을 선발해 절에서의 개인 레슨을 통해 합주단원으로 양성하고 있다. 강 단장은 이 같은 예비 단원을 키우는 사찰이 더욱 늘어나는 것이 교계 음악 인재 양성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음악뿐만 아니라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후원자 출신의 영어 강사, 심리 상담 봉사자의 지도를 더해 공부와 음악, 인성 등 세 분야에서 단원들의 고른 성장을 도울 예정이다.
물론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긴 연습은 때론 지겹다. 게다가 강 단장의 혹독한 트레이닝은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기도 하지만 주니어들은 음악이 재미있단다.
“연습이 힘들고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무대에서 서면 정말 행복해져요.” (최재우, 삼육초 5, 클라리넷)
“찬불가를 배우는 게 무엇보다 신이 나요. 우리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시니 온 몸에서 전율이 느껴졌어요.” (남유진, 숭덕초 3, 바이올린)
바이올린을 매만지던 혜진이에게 불쑥 장래희망을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지난번 스님께서 리처드 용재 오닐 아저씨의 책을 주셔서 읽었어요. 어려움을 이겨 낸 정말 멋진 분이던걸요. 저도 연주자가 되서 외로움을 겪는 어린이들에게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삐삐~, 삐~, 두두~ 두~’ 제각각의 악기들이 조율을 하는 소리가 새벽 종성처럼 청량하게 들렸다. 그리고 일순간 고요함이 찾아왔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고요 속에서 어린이들이 하나가 되어 힘차게 합주를 시작했다.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024호 [2009년 11월 23일 12:46]
첫댓글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