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 버터 쓰는 빵집-일산 AKI 공방 [32]
발상의 전환이 ‘발슐랭’을 발행한다면 별 세 개 주고 싶은 집이에요.
발슐랭, 어감은 별로 좋지 않지만 자부심만큼은 미슐랭을 능가한다고 혼자 자뻑중...
꽁꽁 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런 집이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천기를 누설합니다.
헌데 이미 잘 되고 있는 집이에요.
언론이나 듣보잡 빠워 블로거들에게는 노출되지 않아서 검색을 해봐도 별다른 정보가
없지만,
굽는 족족 바닥을 보이며 팔리는 걸 보면 동네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해요.
해서 저처럼 멀리 사는 타지 사람은 경쟁에 밀려 남은 빵을 쓸어가거나 미리 주문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해두는 수 밖에......ㅠ.ㅠ
요즘 개인 빵집들이 프랜차이즈에 밀리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로컬푸드처럼 개개인의 특색이 살아있는 빵집들이 정말정말 잘되면 좋겠어요.
그럼 시작합니다~
AKI 빵공방은 큰 아이 백일 때 알게 된 곳인데 2008년도니까 벌써 만 3년 전이네요.
왜 장사 잘 되는 집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잖아요. 맛처럼 본질적인 부분 말고요.
잘 되면서 가격을 올린다든가 양이 준다던가 하는...
부자재나 물가가 오르는 이런 거 말고 장사가 잘되면서 뭐랄까 어딘지 고압적인 자세로 변하는,
성공하면서 안면을 바꾸는 고향 친구를 보는 듯한... 뭐 그런 느낌?
암튼 본질적인 부분 외에 이런 부수적인 부분이 변하면 상인정신이 장인정신을 이긴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하죠.
그런데 이곳은 방문할 때마다 늘 한결 같아서 좋아요.
포스팅을 올리려고 사진을 들춰보니까 아이 생일과 크리스마스처럼 즐겁고 소중한 시간들을 이곳과 함께 했더군요.
그래서 얘기가 깁니다...^^;;;
하나씩 썰을 풀어볼게요.
노파심에 말씀 드리면 저는 이곳을 좋아하는 단순 고객일 뿐... 하등의 이해관계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언니가 아이 백일 때 뭘 해줄까 묻기에 “케이크나 하나 사와.”라고 말했어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부탁처럼 들리겠지만, 언니에게는 좀 까다롭고 성가신 숙제처럼 받아들여졌을꺼에요.
조카 백일이니 일반 프렌차이즈 빵집은 안 될 것 같지,
걔네 엄마(라고 쓰고 동생 ㄴㅕㄴ 이라고 읽는다)는 어지간한 빵집은 다 꿰고 있어서 어설프게 사갔다가 본전도 못 찾을게 분명하지... '차라리 돈으로 달라고 해!!!!!!' 라고 속으로 엄청 욕했을 듯.
어쨌거나 언니가 열심히 검색하고 탐문해서 알아낸 빵집이 바로 AKI 빵공방.
이거슨 이모가 사온 조카 백일 케이크.
그런데 별 대접을 못 받았어요.
일산에 있는 빵집인데 여기가 언니네 집에서 좀 멀다나... 암튼 찾느라 헤맸다면서 그날 늦었더라구요.
언니가 도착했을 땐 친정 엄마가 맞춘 떡 케이크에 다른 식구들이 사온 큰 케이크까지 더해져 대략 난감, 처치 곤란이었거든요.
그래서 집에 가는 사람들에게 가져들 가시라고 인심 팍팍 썼어요.
근데 언니가 가져온 것은 부피도 작고 해서 제가 챙겼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응, 이거 뭐지?’
별로 달지도 않고, 촉촉하면서 쫌 괜찮데요.
그래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언니, 여기 뭐야?”
하여 전해들은 말.
“○○이가(언니 친구로 일산 토박이) 베이킹 한다고 만날 재료상 다니잖아. 거기서 들은 얘긴데 거기 도매상에서 뭐 새로운 첨가제가 나왔다고 빵집들에게 권해주는데, 여기 아키공방에서 ‘사장님, 저희 그런 거 안 쓰시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도매상에서 ‘여긴 어떻게 겁도 없이 가정집보다 더 좋은 걸 쓰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는 거야.”
언니의 얘기를 듣고 겁도 없는 요 깜찍한 집을 꼭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결국 다음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문하게 되었죠.
제가 관악구 사니까 일산까지 걸음하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ㅠ . ㅠ
그나마 언니가 일산 사니까 놀러가면서 이래저래 들리는 거죠.
저녁에 찾아가서 사진이 좀 컴컴하죠?
다시 들릴 일 없을 줄 알고, 그날 그냥 막 찍었어요.
간판이 딱 저래요.
빵이라는 말도 없고...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겠더군요.
뭔가 그럴싸한 집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겸손(?)해서 고개를 갸웃~
가격도 참 착한 편.
들어가니까 내부에 빵공방이라는 간판이 있더군요.
공방이라는 호칭을 보니까 주인장이 뭔가 생각이 있으신 분 같죠?
이 간판 아래 일본어로 된 졸업장이 있던데, 간판도 그렇고... 아마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 같아요.
만쥬와 팥빵.
포장도 심플하고 빵 종류가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하나 같이 정말 실해요.
뭐랄까 똘똘한 놈들만 모여 있는 심화반 느낌이랄까?
팔고 있는 쨈도 어쩐지 예사롭지 않군요.
AKI 빵공방의 치즈 케이크.
치즈케이크는 이틀 전에는 미리 주문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2010년 크리스마스.
초코처럼 보이겠지만, 이거 치즈 케이크임.
블루베리 쨈 같은 것으로 도포되어 있음.
달지 않고 촉촉... 단점은 그래서 많이 먹게 됨.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보면 알겠지만, 데코는 기존 공산품을 써서 좀 간편하게 했네요.
혼자 만드시는 거 같던데, 워낙 붐비는 날이니 데코에서 이렇게 타협하더라도... 맛은 좋으니 패스~
빵 모듬 샷.
식빵은 무조건 냉동실에 쟁이고,
먹을 수 있는 거 최대한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로 고고~
여기 스폰지 컵케이크는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와도 굳어지지 않고 부드럽다.
당도도 딱 적당하다.
첨가물을 쓰지 않고 좋은 재료와 버터를 쓰면 그렇다고 하던데... 여기를 알게 된 뒷배경이 더해져 더욱 신뢰가 간다.
트랜디하고 화려한 곳을 찾는 사람에게 이곳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늘 먹는 백반 같은 느낌의 빵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테리어나 여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그게 백반의 미덕이 아닌가?
여기 단팥빵 예술이다.
팥이 아주 알차다.
(가격도 참 착하게 천원)
사실 처음에 팥빵 먹다가 이곳에 전화했다.
“너무 맛있어서 전화했는데요, 혹시 팥을 직접 조리시나요?”
“그건 아니고... 시중에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 걸 씁니다.”
“죄송한데, 여기 반죽에 버터를 쓴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혹시 반죽 모두에 버터가 들어가는 건가요?”
“파운드에는 마가린을 쓰고요, 다른 빵 반죽에는 버터를 씁니다.”
“정말 죄송한데요, 혹시 다른 비결이 있나요?”
(팬을 자처하면서 궁금한 거 막 물어봤다. 이쯤 되니 사장님 좀 웃으신다... 사실 포스팅을 염두하고 염치불구 막 물어봤다.)
“배운대로 반죽 공정을 철저하게 지키는 거랑... 효모를 좀 쓴다는 거죠...”
“(화들짝) 효모를 쓴다구요?”
“그게 그렇게 대단하고 어려운 건 아니고, 그냥 조미료 첨가하듯 효모를 쓰는 거에요.”
대단치 않다는 듯 말씀하시는데, 어떤 빵집에서는 효모 쓴다고 광고를 엄청 때리기도 한다.
그걸 본 뒤라 그런가? 대단치 않게 말씀하시는 게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기 재료 냉장고가 카운터 옆에 있는데 거기에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막 쟁여져있다.
베이킹은 잘 모르지만,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쓰는 정도면 역시 재료에 신경 쓰는 거 아닌가... 싶다.
크림치즈가 들어간 빵 한번 먹어보심 안다. 크림치즈가 정말 꽉 들어차있다.
근데, 그건 얼리지 말길... 치즈가 푸슬푸슬 아주 못 먹게 된다.
그래도 거죽에 있는 반죽은 여전히 맛있더라...
아키공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곳을 알게 된 계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재료상의 일화에서 엿보게 된 주인장의 철학과 좋은 재료를 쓰는 집이라는 믿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이 곳을 응원하고 사랑하고 싶다.
*빵공방 AKI : 일산 보건소 옆 원프라자 104호
031-976-3007
첫댓글 펌글입니다
제가 애용하는 싸이트에서 슬슬 인기몰이 중인 이곳 단팥빵을
서울분들께 소개해 드리고싶어 올립니다
아지는 시댁이 일산이니 오며가며 들러 밤비엄마댁에도 맛. 좀. 보.이.길!!!
좀 되는 양은 미리전날 주문해놓고 가야한다네요
지방택배는 여름빼곤 가능하다니 이번여름 지나면 저도 주문 할까봐요
시어머니랑 지금 일산 코스트코에 있는 신랑에게 문자 보냈습니다. 사오라고. ㅎㅎ 팥빵 맛이 매우 궁금합니다. ㅎㅎ
(저는 어디 있냐구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먹고난 후기 올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