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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원통과 내린천 지나서 인제로(만해마을에서 인제군청까지 25km)
4월 23일, 밤새 개울물 소리 들리더니 상쾌한 산골의 아침이다. 아침 8시, 출발에 맞춰 우리 가족들이 한줄로 도열하여 일행들을 환송하였다. 그에 앞서 무사완주 기원 플레카드와 가족문집을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과 앤도 야스오 일본대표에게 전달하며 남은 여정이 평안하기를 기원하였고 양측 대표는 정중한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앤도 대표는 플레카드를 서울 도착 후 갖는 마지막 파티장에 걸겠다고 말한다.
전날 만해마을이 가까울 때 주민이 수도 파이프에서 나오는 물 한 모금 마시고 가라고 권하였다. 백담사 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인데 수질이 아주 좋다고 강조하며. 그 맑은 냇물에 비치는 산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이다. 전날 높은 고개를 넘은 기백이 살았을까, 공기 좋고 물 맑은 골짜기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이 경쾌하고 표정들이 밝다. 도중에 한 번 쉬고 열심히 걷다보니 어느새 북면 소재지인 원통에 이른다. 한 때 군대에 간 사람들에게 유행한 말,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로 널리 알려진 원통마을이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꽤 큰 고을이고 현대식 고층건물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도착시간은 오전 11시, 도로변의 다올식당에서 장작 가마솥 설렁탕으로 이른 점심을 들었다. 12시 지나 오후 행진에 나서니 전날부터 에스코트하던 자율방범대 차량이 바뀌어 정영식 자율방재단장이 길 안내에 나선다.
원통에서 출발하여 임북천을 지나다
인제에서 군 장기 복무하고 전역 후에 인제에 정착한 정 단장은 중요군사작전지역이던 인제 일원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일러준다. 원통에서 한 시간 쯤 거리에 임북천을 가로지르는 교량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다리 이름은 리빙스톤교, 한국전쟁 때 큰 내를 도하하던 미군 병사 다수가 홍수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몰살 당하는 참변을 겪었는데 그 때 지휘관이었던 리빙스턴이 귀국 후 전역하여 자비로 그 자리에 세운 다리가 리빙스턴교란다. 지금은 그 옆으로 새로운 다리가 놓여 통행하지 않는 다리인데 어느 해 폭우에 유실되어 사리진 것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을 지나며 그 사연을 설명해준다.
인제읍이 가까운 곳에 내린천이 흐른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소양강에 연결되고 한강으로 이어지는 큰 하천인데 레포츠시설과 천변이 체육공원으로 잘 가꾸어졌다. 양탄자처럼 푹신한 워킹코스도 훌륭하고. 미시령 넘어 인제에 이르는 산과 계곡, 하천의 경관이 바다를 끼고 걸었던 해파랑길 못지 않은 아름다운 고장인 것을 이구동성으로 찬탄한다. 곳곳에 '하늘 내린 인제'라는 표어가 보인다. 군청 직원에게 물으니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이라는 설명이다.
아름다운 산천 구경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인제읍에 들어서고 중심가를 지나 군청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가깝다. 코스 안내를 맡은 자율방범대가 지름길을 택했을까, 주행거리는 예상거리(29km)보다 짧은 25km다. 군청 화단 표지판에 국토정보지리원이 위성기준점을 측량한 성과가 표기되어 있다. 동경 128도 10분에 북위 38도 04분, 표고 257.525m라 적혀 있어서 군청부근이 38선의 경계선인 것이 인상적이다. 화단의 표지판 옆에는 '제일산수(第一山水)'라 크게 쓴 바위가 박혀 있고.
인제군청에 도착하여서
군청 바로 앞의 숙소(인제호텔)에 여장을 푸니 오후 3시 반, 다른 때보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인근의 공중목욕탕을 찾았다. 전날 높은 고개 넘느라 뻐근한 몸도 풀어줄 겸 한 시간여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틈 나면 자주 목욕하는 재일동포 박효자 씨도 목욕탕에 왔더라고 아내가 말한다. 저녁식사는 전통한옥의 한국관, 깔끔하게 차린 음식에 맥주 한 잔 곁들이니 낮에는 선녀가 내려왔다는 12선녀탕 등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고 저녁에는 산해진미를 맛보니 일행 모두 귀인이 된 느낌이다.
광주의 교회에서 오늘 도착하는 숙소로 많은 양의 찹쌀모찌를 택배로 보내주었다. 차편으로 가져와서 오후 휴식시간에 이를 맛보았다. 걸으며 먹는 간식들은 언제나 꿀맛, 오전의 간식도 그랬지만 단팥을 넣은 모찌떡 역시 꿀맛이다. 멀리 성원을 보낸 호의에 감사하며 앤도 대표가 전화로 인사를 하는 사이 일행들은 큰 박수로 찬사를 보낸다. 건강하게 걷고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맛있는 음식 먹으니 즐겁고 행복한 일 아닌가, 새 힘을 얻어 내일도 열심히 걸으리라.
24. 소양강 줄기 따라 홍천으로(인제군청에서 두촌면 가람벨리리조트까지 34km)
4월 23일, 오늘로 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이 되었다. 아직도 많은 실종자를 찾지 못해 침통한 분위기, 오전 7시 50분에 인제군청에 모여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군청 청시에는 '세월호 침몰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하나님이여,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침울한 분위게에 빠져든 국민에게 긍휼을 배푸소서.
오전 8시, 군청을 춟발하여 홍천방향으로 향하였다. 읍내를 벗어나니 꽤 높은 고개가 나온다. 고개 위에서 내려다보니 인제읍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면적은 넓지만 군 전체의 인구가 3만 3천여 명의 작은 고을이다. 고개를 넘어 한참 내려가서 내린천을 가로지르는 군축교를 지나니 남전리 버스정류장, 소양강둘레길 아낸소가 있는 강변의 쉼터가 아름답다. 바나나를 먹으며 앉아 있으니 나이든 남자 둘이서 승용차를 타고 와 내리더니 소양강 둘레길 안내 팜프렛을 한 장씩 나눠준다. 성함을 물으니 소양강 둘레길 안내소 봉사자 이남호라고 자기 소개를 한다. 소양강 둘레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어서 주말에 찾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소양강 둘레길 안내소가 있는 강변에서 바나나를 먹다
옆에 걷고 있는 나카무라 스스무 씨의 신발이 바뀌었다. 구두 밑창이 떨어져서 인제에서 10만원 주고 운동화를 샀다고 말한다. 시마 후미코 씨도 새로 산 신발이 불편하여 도중에 산 운동화로 바꿔 신고 잘 걷는다. 신발 뿐 아니라 양말이 펑크나고 발바닥과 무릎부상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많은데 모두들 잘 견디며 걷는다. 선상규 회장이 아마츄어 걷기회원 몇 사람은 미시령 길을 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는데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아 크게 기쁘다고 칭찬하기도.
9시 40분 경 인제38대교를 건너 한참 걸어가니 38선이라 쓴 돌판이 있고 38휴게소도 나오는 등 내린천에서 소양강으로 강줄기가 바뀐 곳 대부분이 38선 경계지역이다. 가는 길목 곳곳에 여러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며 이 곳이 군사적 요충지인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선사유적을 발굴하다 중단한 현장답게 가넷고개. 지래비, 다물리 등 때묻지 않은 지명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오전 11시 15분, 신남휴게소의 음식점에서 가마솥 곰탕으로 이른 점심을 들었다. 점심 후 남자들은 큰 키에 껑충다리로 앞뒤를 오가며 사진촬영에 분주한 오오시마 도시하루 씨의 요청으로 개인별 사진을 찍기도.(여자들은 다음날 찍는다고 말한다.) 점심 장소에 이틀간 인제지역의 길안내를 맡았던 인제군 자율방재단의 정영식 단장이 작별인사차 나타나 길 걷다 마시라며 메일우유를 한 박스 건넨다. 바쁜 시간 쪼개서 안전한 길 안내로 편안하게 걸은 것, 감사하다. 아무쪼록 평안하시라.
오후 2시, 멀리 보이던 고개길을 달아오르니 홍천군 두천면에 들어선다. 고개이름은 건니고개. 아직도 갈 길이 꽤 남았는데 목적지가 두촌면 가람벨리리조트라 면적이 꽤 넓은 면인가보다. 고개 아래 건니 기사식당에서 잠시 휴식하는 사이에 간식으로 모치 빵을 돌리니 일행 중 한 분이 차 안에 모치공장이 있느냐며 웃는다. 어제 오후, 오늘 오전에 이어 세번 씩이나 모치가 나오고 나오고 바나나와 오렌지등 과일도 풍성하여 기분이 좋은가보다.
두촌면 장남리에 쥴 장루이공원이 있다. 서양식 이름이 흥미로워 다가가니 한국전쟁 때 프랑스 의무대장으로 참전한 쥴 장루이소령은 이 지역에서 지뢰에 부상당한 군인을 살리고 스스로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하여 한불수교 100년에 그의 공덕을 기리는 공원을 만들고 그의 동상을 세운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시간에 쫒겨 급히 보고오느라 내용중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지도.) 우리는 멀리 타국의 전장에서 고귀한 희생을 한 해외참전용사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런 희생과 공덕에 힘입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워졌음을 잊지말아야 하리라.
홍천은 찰옥수수의 고장이라는 팻말이 자주보이고 옥수수연구소로 들어가는 길안내 표지도 있다. 찰옥수수 맛볼 기회 있을까? 두촌면 사무소 지나서 한 시간 쯤 더 걸으니 오늘 묵을 가람벨리리조트가 보이는 길목에 백두산휴게소가 있다,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리조트에 도착하니 오후 4시 50분, 34km를 걸었다. 크리스쳔 계통의 수련장소일까, 저녁 식탁에 주류가 오르지 않는다. 오래만에 금주만찬일세. 아침 먹은 한국관 벽에는 술이 백약의 으뜸이라 적혀 있어서 애주가인 앤도 일본대표에게 이를 보라고 손짓했는데 애석하구나, 주당들은 밤에 방에서 술파티 열겠지. 술 마시는 시간에 내 할일은 글쓰기, 이 또한 나름의 고역이자 즐거움이로다.
씩씩산 모습으로 숙소에 들어서다
* 2년 전 한국일주 전반기 때 같이 걸은 재일교포 안정일 씨는 내가 쓴 글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본인이 그린 삽화와 함께 프린트하여 일본인들에게 나누어주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번역이 힘든 작업이지만 이번에도 해볼 작정이라며 틈틈이 삽화를 그린다. 며칠 전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아내와 오혜란 씨를 모델로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의 사진을 찍더니 이를 스케치 한 것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으로 이를 찍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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