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각하님 귀하
각하 국정을 돌보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그동안 국회가 정상으로 운영되지 않아 온 국민은 불안과 긴장 속에
생활 한 것 갔습니다. 그러나 각하님 탁월하신 결단력으로 나라 안은 평온을 다시 찾아
제각기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여 국운은 날마다 세계만방으로 더욱 힘차게 뻗어나가고
국가경제는 날마다 더욱 부강해진다는 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선진조국 창조와 민주복지국가 정책에 열과 성을 다하시는 각하 님 전에
불초 국민은 삼가 글월을 올립니다.
저희가정은
불행하게도 아버님은 말도 못하시고 듣지도 못하시는 분이며 연세 42 세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혼자되셔서 지금까지 저의들 4남매 불초자식 들을 위하여 힘든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시면서 짜증한번 안내시고 화도 한번 안내시는 금년 60세 된 장한 아버님 덕분으로
저는 그런 데로 잘살아왔습니다.
각하 저희들 3형제는 10여세 때부터 근육이 점점 힘이 없어 졌습니다.
그러나 겨우 겨우 국민 학교는 졸업을 했습니다. 이런 자식들을 직혀 보는 엄마에 마음은
얼마나 가슴아파겠습니까?
지금에야 비로소 어머님이 왜 그렇게 일찍 돌아 가셔 는지 알고도 남습니다.
각하 그러나 저희들은 좌절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신념으로
아버님 뜻을 받들어 서로가 힘을 합쳐 살았습니다. 다섯 살 때 엄마를 잃은 막내여동생이
국민 학교를
겨우 3학년 1학기 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저의 3형제 오빠들의 의복과
아버님
의복을 빨래하며 밥을 짓고 그 어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살림을 살아야했습니다.
각하 저는 이런 가정을 이끌어 나온 정신적 지주가 되어 29세 때는 동생들과 함께
조그마한 신발가계 까지 차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가를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바로 밑에 남동생이 영농수기 “참깨 쏟아지는 땅” 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이
새 농민 책에 실려 그 글을 읽고 찾아와서 자기를 희생하여 저희가정을 위하여
살아주겠다는 아가씨가 저의 제수씨가 데어주셔서 지금 1남 1녀를 낳아 기르며
신발가계는
경험이 없어 실패를 하고 현제는 전자오락실을 경영하며 인장 술을 익혀
28세 된 동생이 떳떳한 한 가정을 이루어 잘살고 있습니다.
다음 남동생은 25세입니다.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건강을 잃어가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양장 재봉 기술을 익혀 당당하게 사회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각하 이런 가운데 저는 31세 때 폐결핵이 발병하여 군보건 진료소에서 무료로 치료약을 주셔서
9개월간 복용하고 치료를 끝냈습니다. 저에 투병생활은 끝이 없습니다,
결핵을
치료 한 후 그 후유증으로 간장과 신장 위장 모든 장기는 더욱 약화대어서 86년
5월 달에 종합병원에서 입원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 못하시는 아버지가 이 자식을 위하여 애쓰신 보람도 없이 아무것도 못해드리고
먼저 죽는 다는 것은 더 큰 불효를 한다. 는 생각과 막내여동생이 지금까지 이 오빠에
손발이 되어 힘든 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지극히 돌봐준 정성을 져버리고 죽는다면
많은 한이 남을 거 같아서 살고 싶은 의지는 한결같은데 여러 가지 합병증이 이러나므로
기왕에 죽는다면 나와 같은 병으로 한 많은 세상을 살고 있을 사람들을 위하여 하루빨리 연구해
달라고 내 몸을 연구대상자로 바칠 생각이라는 뜻을 담당 과장님께 말씀 드려 더니 그러면
대학병원에 연락 해보겠다며 즉석에서 전화를 하시니까 보내 달라 하신다며 경북 의과
대학 병원으로 가도록 주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여러 가지 좋은 약으로 치료하여 주시어 저에 건강은 다시 회복되고
85년 4월부터 고려의과 대학 구로병원에서 근육 크리닉 연구 기초를 닦고 있으며
진행성 근육위축증 환우를 위하여 잔디 회라는 협회가 구성 데고 국가에서 복지법인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환우를 위하여 고려병원 재활 의학 과장 강 성관님께서 잔디 회 회장 직을
맡으시고 미국 일본 선진국으로 동분서주 바쁘게 활동 하고 있으니 앞으로 좋은 결과 있을 것이라며
전국에 있는 환우를 위하여 더욱 열심히 굳은 의지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투병
생활을 해 달라는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과 함께 이 수영교수님에 격려편지를 받아보며
집에 와서 투병생활에 철저하면서 한국 근육디스트로피협회 <잔디회>지를 받아와서 서로서신을
주고받으며
지난 86년 11월1일 날은 대구 경북지부 창립총회에 참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또 다른 병마로 투병 하며 아무 것도 가진 것은 없으며 오직 강인한 정신력과
마음만 가지고 환우들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 죽기 전에 환우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한 가지 이루고 싶은 생각은 한결같은데 마음뿐이랍니다.
그냥
마음 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 복된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나의 소망을 이뤄보지 못하고 죽으려하니 원통하여 죽기 전에
각하님 전에 저에 애절한 사연이나 드려보고 죽으려고 이렇게 두서없이 글월을 올려 죄송 천만이옵니다.
각하님에 넓고 높으신 도량으로 헤아려 주시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각하님 재임 중에 국운은 더욱 융성하옵고 정운대통 하시어 뜻하시는 대로 국정이 펼쳐지시기를
우주에 가득한 제천제불님은 가피력을 내리시기를 기원 드리면서 졸필을 주리겠습니다.
1987년4월15일 권오윤 드림
첫댓글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 해서 무조건 우러러 볼 수는 없는 일.
대통령도 대통령 다워야 그 예우를 해 줄텐데...
그 때는 우리가 삶에 지쳐서 나랏일을 아무것도 몰랐으니 그저 전두환 장군이라고 이미 방송 언론을 장악하여 좋은 뉴스만 내 보내니 그분으로 인하여 국운이 융성해지는 줄로만 알았었지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년 단임제 개헌이니 대의원이니 삼청교육대가 생기고, 광주5.18 민주 항쟁이 터지고... 수천억원을 빼돌려 놓고도 통장엔 수십만원 뿐이라고., 그분에 의해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래도 당시엔 대통령이었으니,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고해 볼 수도 있었겠지요. 어차피 피나는 노력을 해도 살기가 궁핍했지만.
ㅋㅋㅋ 아무리 악인이라도 뒤집을 수 없다면 잘 달래어 좋은 쪽으로 인도하심이 당연지상 아님감요. 그게 형님의 의중이라고 생각...
그려총칼로잡은 정권이지만 그때는 그분 정권밑에서 살아가는 국민이였으니까?
면에가서 수급자해달라하니 머가있어안되고 머가있어안된다해서 그럼 대통령께 한번 달라해보자하고 했더니 그래도 수급자로 되도록 만들어줬으니 수천억 해먹었든지 말든지 나한텓 주는게있으니 고맙기도했으며 한번 졸라보는거도 괜찬은 생각도들데... 역지사지 생각을 다시해보니 나역시도 대통령이 대면 동생들 한자리씩 주고싶고 내덕에 전쟁을억제해서불바다가 될나라를 구했으니 수천억이 문제가아니지 그런생각도할거갖네 다자기한일을 합리화하고 잘했다할것이니 한사람죽이면 살인자가되고 많이죽이면 영웅이 되는법이니 그때상황이라하겠지
87년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에 보낸 편지군요. 편지 잘읽었습니다. 권선생님께서 병마로 많은 고초를 겪으셨군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병마로 약으로 살면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고있습니다...그때써둔 편지를 다시읽어보고 입력을 해놓고 이렇게 올렸습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가되었지만 아픔을 격고있는 분들은 공감하실지 하는마음에 올려봤습니다
그림자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그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의 가슴찡한글 잘 읽었습니다.
긴글 쓰시느라 수고 하셨구요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명심보감님.^*^
젊어고생은 사서한다는 말도잊지만 저는 날이가고 달이가면 점점 더진행되는 몸으로 아무거도할수없는 몸인데도 수급자도 안된다해서 생각끝에 이런사연을 대통령께 보낼생각을 했더니 결국 수급자로 책정 해주더군요...고맙습니다 읽어주셔서요 건강하시고 즐거운나날 되시기바랍니다
오라버니의 가족에 되한 책임감과 여려움을 이겨 나가시는 강인함이 오늘의 오라버니가 잇게 된거 같아요 항상 즐겁게 행복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글쎄다 내가 뭐 ㄴ가를 한게있어야지 놀고 주는 밥만 축내고무의 도식하고 살았지
그러함에도 옥이동생이좋은말로 위로하니 기분좋은걸 사는날까지즐겁게살아야지 자내도 항상 즐겁고행복하기를 바란다네
젊은나이지만 대통령님께 글을 올리실수있도록 해주신 명심보감님께 큰박수를 보냅니다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절망과 병마속에서도 후배들을위해 연구용으로 시신기증까지 어디에서 그런용기가 나셨는지요? 이제 믿바닥을첬으니 이제 희망과 용기로 살으십시요 오빠들을 위해 희생하신 동생분에게도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긴글 잘읽었습니다.
나름대로 두들기면 열린다했으니 두서없이막 써봣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짓이없다는걸 그때 알앗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수급자가 안된다며 해당 면에서 해주지않아서 대통령께 편지를 쓰고 나서 정부합동민원실에서 조처하기를 경북도지사 한테위임 하고 도에서 안동 군수한테 위임해서 군수님이 친하 방문하셔서 확인하시고 수급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여동생이 출가해서 열심히 돈벌어서 이제 살만해졌습니다.. 학교도 식혀주지못한 동생이 아직도 오빠를 위해서 맨날 걱정하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보감님의 24년전에 이런일이 ,,,투병중에서도 고되고 힘든 파란만장한 삶을 일기 못지않게 글을 잘 표현해서 대통령도 감동 받고 수급자로 책정해주셔서 도움을 주셨네요.그래서 가정살림에 가장 노릇을 잘 하셨네요. 금화언니가 어린 고사리손으로 오빠들을 위해 고생한거 보고 여자로써 참 장하고 눈물나는 대목이었어요. 금화언니 사랑해요~
지금까지 내가 절망하지않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온것은 부처님 믿는 마음에서 관세음보살 하루 만번씩 외우면 소원성취를 할수있다해서 남들은 김을 메고 잠을 잘때도 나는 안즈나 서나 관세음보살 남들이 노래 할때도 나는관세음보살 하다보니 소원이 하나하나 성취대기 시작 하더니 어려운일이 생기면 지금 아내가 나타나서 도와주듯이 다해결되고 지금은 큰 걱정없이 다 잘살아가고있으며 나는 덤으로 가을이 만나서 행복을 추가로 누리고 살지 ㅎㅎ
당시의 그런글을 쓸수밖에 없었던 형님의 절절함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어느누가 외면 하겠습니까..
형님의 그 절박했던 순간에 그런 용기를 낼수 있었던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전대통령이 냉혈은 아닌것 같다네 사람같은 사람이라면 나라도 외면은 못할거라 생각이드네 내가쓴 사연이지만 글을 이쁘게도 못쓰고 문장력도없는데 감히 대통령께 편지를 쓴다는건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데 죽기를 각오하니 못할일이없다는생각이들어서 그런 용기가 생긴것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