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작품에 있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_ 상황의 일시정지나 화면 capture가 아니다.
모르겠습니다. 미적가치가 무엇인지 정서가 무엇인지는 천천히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최근의 미술경향에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가 결합되고 있습니다. 회화작품에 사람사는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그림 그리는 공간의 한쪽에 장식되어 있는 진열대위의 항아리나 거기에 꽂혀있는 꽃들, 혹은 산이나 바다나 도시의 한 단면을 포착하는 스틸사진 같은 그림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스틸사진과 같은 회화작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꽃을 그리다가 물감으로 뭉개고, 배경을 슬그머니 감추고, 풍경을 추상화처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인물을 그리거나 인물이 들어간 풍경을 그리더라도 잘 만들어진 영화의 한 장면을 일시정지 시킨 듯 한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회화작품이 잘못되었다거나 미술이 아니라거나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최근 미술 경향을 살펴보면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미술작품들이 힘을 쓰지 못한고 있다는 말입니다. 좋고 나쁘고의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문제는 회화라는 예술장르의 고유 영역에 문학이나 음악이나 무용에 사용되는 시간성이 개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콜라보레이션이 워낙 유행하니까 시화詩畵도 회화가 되고, 스피커가 캔버스에 붙어서 음악을 보여줘도 회화가 된지 오래입니다. 융합이란 단어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각기 독립된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합쳐져서 각기의 특성이 잘 반영된 새로운 사물이어야 합니다. 따로따로이나 잘 어울리는 것은 융합이 아니라 조화입니다. 스토리텔링이 유행한다고 이야기를 만들거나 꾸미지는 일이 능사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키치해 놓고 팝이라 우기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회화작품에서 스토리텔링이란 수필이나 일기나 어떤 사건에 대한 정황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회화작품이 다른 예술장르와 다른 것 중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시간을 멈추는 일련 이미지 입니다. 음악이나 연극 영화 등은 보거나 듣는 순간 과거로 정착됩니다. 현대예술에 와서 감상을 위한 rewind 기능이 강화되어 다소 약화된 상태이지만 그래도 시간의 연속 예술임에 분명합니다. 이것이 미술이 음악이나 영화와 다른 특성입니다.
미술작품은 연속된 시간의 일시정지나 화면 capture가 아닙니다.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시간의 길이를 회화로 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화라는 독립된 장르에 충실할수록 거기에 맞는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일반인을 위한 사물로 행세가 가능해 집니다. 회화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재료적인 측면이야 부서지고 깨지고 흩어진지 오래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음악은 곡으로, 회화는 이미지라는 영역에는 표현을 위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음입니다.
그림이 들어가는 글 종류는 참 많습니다. 그림일기, 문인화, 시화, 삽화 등등. 여기에서 일러스트나 만화는 고유영역이므로 재론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림일기나 문인화나 시화 등은 文字의 성격에 그림이 슬그머니 애교떠는 형상입니다. 문자란 의사소통을 위한 기호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문자또한 그림이라 우기면 할 말이 없지만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의사소통이 우선됨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소통을 위한 기호에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문학의 영역에 대한 보조수단이 되기 쉽습니다. 미술의 영역에 문학이 보조수단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작품 제목이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