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ie Ray Vaughan (1954.10.3~1990.8.27)
guitar, vocal, song-writer
- with Double Trouble
Texas Flood / 1983
Couldn't Stand the Weather / 1984
Soul to Soul / 1985
Live Alive / 1986
In Step / 1989
The Sky is Crying / 1991
In the Beginning (1980 live)
Live at Carnegie Hall
Family Style (with Jimmy Vaughan)
history
미국 텍사스 달라스 태생.
어린 시절부터 역시 블루스 기타 연주자로 성공해 있는 친 형인 Jimmy Vaughan의 영향을 받아 기타를 시작했다. 어린시절 형이 듣는 음악을 들으며, 형이 치는 기타를 동경하며, 항상 뒤를 쫓는 모습으로 형의 그림자를 밟아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기타리스트 Stevie의 모습이 완성된다.
어린시절 Jimmy와 Stevie는 Otis Rush, Albert King, Mudy Waters등에 심취했으며 Jimmy Hendrix, Lonnie Mack등의 락 뮤지션들을 동경했다. Stevie는 17세때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고교를 중퇴하고 The Cobras라는 이름의 밴드로 라이브클럽에서 실력을 쌓기 시작한다. 이후 Triple Threat라는 밴드 시절을 거쳐 Otis Rush의 곡명을 딴 밴드인 Double Trouble이 탄생하게 된 것이 1978년이다. Stevie가 기타와 겸해 보컬을 맡게 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이후 명성을 쌓아가며 Texas 내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갖게 된 Stevie와 Double Trouble은 1982년 Montreux페스티발에 참가하던 중 David Bowie의 눈에 띄게 되며 Stevie Ray Vaghan은 곧장 David Bowie의 앨범 Let's Dance의 녹음에 참여하게 된다.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Stevie의 이름은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곧장 메이저 음반회사와의 계약을 따내고 이듬해인 1983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첫 앨범 [Texas Flood]를 발표하게 된다.
Texas Flood에서 들려준 강하면서 섬새한 Stevie Ray Vaughan의 기타가 세계속에서 인정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1986년 공식 라이브 앨범인 Live Alive까지 Stevie는 쉴 틈 없이 일년에 한 장 꼴로 앨범을 완성시켜 낸다.
그러던 중 쉴틈없이 달려가던 음악 행로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는데, 성공의 이면에 있었던 힘겨운 창작/연주활동을 약물, 알콜 의존해 왔던 탓에 그의 몸과 정신이 파멸 직전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에 집중하게 되고 재활에 성공, 1989년 In Step을 발표하며 수많은 팬들의 박수 속에 재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재기의 기쁨은 길지 않았다. 1990년 Eric Clapton과의 공연 이후 다음 공연장소로 이동하던 헬리콥터의 추락사고로 그의 길지 않은 생애는 끝이나고 말았다.
그의 사망 직후 미발표곡, 미발표 라이브 음반들이 줄줄이 발표되며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그의 흔적들을 더듬기도 하였다.
그의 창작력과 연주력을 볼 때, 그 죽음은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장르를 뛰어넘어 수많은 동료, 후배들에게, 심지어는 선배들에게까지 충격과 영감을 주던 그였기에 그러하다. 또한 파멸 직전의 고통에서 재기한 이듬해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었기에 더욱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
style
Jimi Hendrix를 존경했다는 부분으로부터 눈치 챌 수 있듯이 그가 추구한 음악은 장르적으로는 Blues였지만 Rock의 정신과 연주기법등을 담뿍 머금고 있다.
그가 들려주었던 블루스는 "젊은" 블루스였다. 정통 블루스의 톤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힘과 테크닉으로 일반 팝팬들이 느끼기 쉬울 만한 "따분함"을 날려버림으로 Heavy Metal 음악과 다양한 장르의 팝음악들이 세계 음악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1980년대의 와중에서 블루스 연주자로서는 유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울 받을 수 있었다고 판단되어진다.
그리고 그는 많은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이 그러하듯, 훌륭한 보컬리스트이다. 내지르는 듯한 그의 힘있는 보컬은 그의 기타소리와 둘도 없는 세트이며, 기타 만큼이나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영혼의 울림을 들려주었다.
Rude Mood의 미친 듯한 연주로부터 Tin Pan Alley의 심금을 울리는 잔잔함까지 Stevie의 연주는 테크닉과 겸비하여 기타 소리에 영혼을 담아내는 깊이까지 들려준 흠잡을데 없이 훌륭한 연주자였다.
gear
그의 톤은 전적으로 Fender Stratocaster와 Fender Twin Reverb로 만들어진다. 카랑카랑하면서도 윤기있는 사운드에 힘을 더해주는 것은 굵은 현이다.
보통 전자기타 연주자들이 사용하는 현의 굵기는 009~042(인치)이며 속주형 기타리스트들은 손가락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008 게이지의 세트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반해 Stevie의 경우는 013~게이지의 굵은 현 세트를 이용했다. 대신 유연한 밴딩과 비브라토를 위해 반음을 낮춘 튜닝을 했다. 보통 어쿠스틱 기타에 사용되는 스트링이 012~인 것으로 볼 때 거의 비상식적인 현 사용이라고 할만큼 특별한 케이스라 하겠다. 또 Stevie에 의해 유명해진 장비가 한가지 있는데, Ibanez에서 제작한 Tube Screamer라는 플로어타입 컴팩트 이팩터이다. 기본적으로는 오버드라이브 계열의 이팩터로 알려져 있는데, Stevie는 Tube Screamer를 오버드라이브 목적이 아닌 톤 부스터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Jimi Hendrix에 대한 오마쥬로서 그의 메인 기타에는 왼손잡이용 트레몰로 유닛이 장착되어 있으며 프랫은 일반 팬더 기타와는 달리 베이스기타에 장착하는 굵은(인반 점보프랫보다 더 굵은) 프렛을 장착했다. 굵은 프랫을 장착하는 것은 속주계열 기타리스트들이 흔히 하는 지판의 스캘럽 가공과 동일한 효과를 주어 밴딩이 용이해지고 현의 울림이 좋아진다(서스테인이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