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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9구간(진고개-구룡령)산행기
다음주 스케줄을 생각하면 갈 형편이 못 되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안가면 마음이 더 무거워질 것 같다. 미래는 여백 같지만, 금새 마찬가지로 버벅대는 현실의 일상이 된다. 한 달 후 정도 일정을 잡으며 마치 여백처럼 인식하지만 닥칠 때면 마찬가지로 여념이 없게 된다. 일상이라는 것이 여유가 주어지지가 않는다. 산행에 나설 결심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덜고 가려고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듯 했다. 그런데 그처럼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산이 더 그리워지게 된다.
빠듯해진 시간을 의식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강동역으로 가서 차에 오르며 인사를 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임재범 사장이 참가한 후로 빠지지 않고 나와서 막바지 대간 길에 활력을 불어 넣는 느낌이었다. 지난번 따로 두 구간을 한꺼번에 진행하고 난 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지난 예기를 했다. 이번에도 두 구간이다. 먼저 진고개- 구룡령 구간을 시작하고 내일 진고개에서 거꾸로 대관령까지 가기로 했다.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막고 있게 때문에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 이런 번거로움이 생기게 된다.
11시 출발했다. 12시 55분 평창 휴게소 당도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순두부찌게를 시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휴게소 안에 크게 걸린, 지난번 보았던 지도를 보니 다시 갈 구간이 줄어 있었다. 휴게소를 나와 1시 25분 출발했다. 1시 32분 지난 구간을 갈 때 지난 진부령IC를 통과해 59번 국도로 들어서 1시 53분 진고개에 도착했다. 거기서 노인봉이 3.9KM 쓰여 있었다. 수 많은 별이 총총히 보였다. 그리고 오리온, 쌍둥이 자리 등 별자리도 선명했다. 풀에 이슬이 맺혀 있어서 숲을 오르는 동안 젖을 것이 걱정되었다.
2시 10분 산행을 시작했다. 오르다 보니 길이 마른 길이었다. 완만한 능선 길을 오르고 내리며 걷다 계단길을 올랐다. 날씨가 맑아 랜턴 불빛이 밝아 길이 잘 보였다. 길옆에 키 낮은 산죽 군락이 펼쳐져 있었다. 2시 20분 진고개를 0.5KM 지나고 동대산이 1.2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다시 완만한 능선 마루를 오르고 내리며 지나갔다. 길바닥에 떨어진 도토리가 보였다. 차가운 밤을 뒤척이듯 풀벌레 소리가 다소 작게 들렸다. 길바닥에 기어다니는 벌레도 보였다. 비록 미물들이지만 그들의 존재로서의 모두 세계의 주인일 것 같았다.
2시 26분 계단 오름길을 걸었다. 통나무와 돌계단이 번갈아 나타났다. 이 대장이 “들쭉날쭉, 안 놓은 것만 못해” 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걷기 편하라고 계단을 설치해 놓았지만 보폭과 잘 맞지 않으면 계단길이 걷기가 더 힘이 든다. 잠시 후 돌을 깐 길을 걸었다. 우측 숲 너머로 불빛이 보였다. 동해 불빛이거나 소황병산 시설에서 발하는 불빛 같다고 했다.
경사가 급한 바위 암릉 위를 지나 다시 완만한 길에 들어섰다. 길에 낙엽이 쌓여가고 있었다. 떡갈나무 단풍나무 낙엽들이 많았다. 위에서 파도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들렸다. 2시 44분 길 옆에 500m 마다 세워둔 02-03 푯말이 보였다. 아까 02-02에서 한 구간이 지났다. 힘 들여 걸었는데 거리는 별반 줄어 있지 않았다. 이대장이 “이제 500M 밖에 지나지 않았어?” 라고 했다.
불빛이 우측 뒤 쪽으로 보였다. 그 불빛이나 별빛이나 크기나 밝기가 마찬가지 모습으로 보였다. 2시 52분 계단을 올랐다. 내일 진행하기로 한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는 완만한 구간이지만 진고개부터 다시 큰 산이 일으켜지는 형국이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한강 기맥이 시작되는 큰 산세가 솟아 나 있다. 그런데 오늘 지나는 오대산은 불교의 문수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불자라면 경건해져서 스스로 마음을 여미게 될 듯 하다.
2시 56분 동대산(1433M)에 올랐다. 동대산은 오대산 다섯 봉우리 중 하나이다. 부석사의 안대인 도솔봉, 비로봉 등이 화엄의 세계로 설정된 것이라면 상원사 월정사가 중심 동량인 이 곳은 좀더 현실적 인식을 담고 있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이 곳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상주처로 인식해 불교 성지로 삼아온 곳이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로 알려지는데 그가 상주하는 곳이 오대산이라 하여 이 곳 오대산에 문수 신앙이 펼쳐지게 되었다. ⌜육십화엄(六十華嚴) 권 29 보살 주처품 제27에 의하면 사방사유(四方四維)의 각 산과 해중(海中) 그리고 인도 및 서역 제국에 각기 보살들이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여 설법을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그 여러 보살 가운데 동북방 청량산에 상주한다는 문수의 이름이 가장 뛰어난데 중국의 산서성 태원부(太原俯) 동북쪽에 실제로 청량산이 있으니 중국 불교도들은 그 곳에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산은 보현보살이 상주한다는 아미산,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과 더불어 중국 3대 영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강원도 오대산은 다섯 산봉우리가 원호를 그리며 둘러서 있는 형국인데, 현재 5대(臺) 이름은 서쪽에서 원호 방향으로 호령봉(湖嶺峯1561), 비로봉(毘盧峯1563.4), 상왕봉(象王峯1491), 두로봉(頭顱峯1422), 동대산(東臺山1434)이며, 옛 오대산의 5대 이름은 지로(地盧), 상왕(象王), 장령(長齡), 기린(麒麟), 만월(滿月)봉이었다. 그리고 오대산에서 오대는 동서남북 다섯 곳에 있는 암자를 일컫는데 서대 수정암(호령봉) 북대 미륵암(옛 나한당, 상왕봉), 동대 관음암(만월산), 남대 지장암(월정사 부근), 중대 사자암(옛 보천방, 비로봉)이 그것이다. 오대산 신앙은 오악사상처럼 세계에 대한 중심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 의미대로라면 사방의 봉우리가 중심을 둘러싸고 잇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되어 있지는 않다.
이 곳에 오대산 신앙을 전파한 사람은 자장이다. 그는 신라의 고승으로써 국사를 지내며 국가의 사상을 형성하고, 국운을 이끌어 왔는데 선덕여왕 때 황룡사를 짓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장은 만년에 오대산을 찾아 화엄 불국의 세계로 형상화하였으나 상주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그는 강릉에 수다사를 짓고 오대산에 월정사를 짓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어 문수보살의 계시로 태백산에 정암사를 세웠다. 그리고 후대에 이 곳 오대산에서 문수를 친견하고자 했으나 번번이 만나지 못했다.
몇 번은 바로 앞에 두고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친견에 실패한 것은 세속적 지위와 권위 의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장이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러 있던 어느 날 문수보살이 남루한 차림의 노인 행색을 하고 삼태기에 죽은 개를 담고서 찾아왔는데 자장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 버리자 문수는 사자를 탄 모습으로 현신하고서 떠나니, 나중에야 알아차린 자장은 위의(威儀)를 갖추고서 산으로 뒤따라가 보았지만 이미 문수보살의 보습은 사리진 뒤였다. 자장은 이 일로 크게 실망하여 곧 입적했다고 한다. 수행자의 덕목은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런데 높은 지위를 지님으로써 본래 수행의지와 다른 일들을 하며 겪게 된 괴로움일지 모른다.
오대산 신앙은 자장 이후 보천 태자에 이르러서는 오대산의 각 대마다 다섯 성(聖)이 거주하고 있다는 오류성중(五類聖衆)으로 더욱 신비화되고 장엄해진다. 신라 효소왕 때인 658년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과 효명 두 태자는 속세의 뜻을 버리고 오대산에 들어가 각기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오대로 참배를 하러 올라갔다. 이 때 동대에서는 1만 관세음보살이, 남대에서는 1만 지장보살이, 서대에서는 1만 대세지보살이, 북대에서는 1만 미륵보살이, 중대에서는 1만 문수보살이 나타났기에 이 5만 진신에게 일일이 참례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북방으로 진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던 신라가 전략적인 근거지로 삼으려는 국토 경영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설도 있다.
하늘을 보니 사방이 트이고 별이 총총히 보였다. 야영하는 사람이 머물다 막 떠날 채비 하고 있었다. 밤하늘을 바라볼수록 안에서 스물스물 생겨 나오는 듯 별이 많아져 보인다. 그리고 그 공간 안으로 삘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뒤에 도착한 사모님이 하늘을 오려다보며 진짜 멋있는 밤이라고 했다. 머무르는 동안 땀이 식어 추위가 느껴졌다.
3시 6분 동대산을 출발했다. 우측 동해바다 쪽에 불빛이 보였다. 어촌이거나 고깃배에서 나오는 불빛일 것 같았다. 완만한 능선의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동안 바람이 불었다. 3시 13분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 길을 걷다 보니 랜턴 불빛에 단풍이 보였다. 3시 15분 헬기장에 도착했다. 공터 같은 곳이라 그런지 풀에 이슬이 짙게 맺혀 있었다. 다시 출발해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3시 17분 두로봉 6.1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앞으로 가나 지날 두로봉은 동대산과 함께 대간 마루금에 위치한다. 그리고 오대산의 다른 세 봉우리인 상왕봉, 비로봉(오대산 정상), 호령봉은 대간에서 갈라지는 한강기맥상에 위치하는데. 결국 둘러친 형상을 연상케 되는 오대산은 대간 마루금과 한강 기맥의 큰 산세가 만나며 이루어 진 형국이다.
길을 가는 동안 다시 불빛이 보였다. 내리막길을 걷다 큰 나무 가지 아래로 머리 숙여 지나갔다. 리본 거의 안보였다. 이대장이 리본을 다 떨어낸 것 같다고 했다. 좌측으로 불빛이 보였다. 상원사 불빛 같았다. 상원사를 몇 번 다녀간 일이 있다. 특히 재작년 초 서울건축사 회원들을 모시고 답사 설명을 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상원사는 문수신앙의 도량이다. 즉 오대산 신앙 중심에 상원사가 있는 상황인데 그 절 뒤로 오르면 자장이 가져 온 사리를 모신 곳이라는 적멸보궁이 있다.
중심을 향한 위계적 세계관이 적용되어 있다.
오대에 대한 인식은 불화의 구도를 떠 올릴 수 있다. 불교에서는 중심을 의식하는 사상이 있다. 가장 고귀한 것을 중심에 두는 개념이 있다. 즉 중심의 부처를 우러르며 가르침을 받으려는 의식이 적용되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대산 신앙의 중심에 상원사 적멸보궁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곳은 오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주변 산세가 중심을 장엄하거나 호휘하는 형국이 된다. 하지만 실제는 기하학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아서 다소 관념적으로 설정된 느낌이다.
완만한 오르막 길에 바람이 불었다. 낙엽이 떨어지며 점차 숲이 앙상해지고 있었다. 3시 29분 봉우리를 지나 큰 자작나무를 보며 지났다. 3시 35분 두로봉 5.0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계속해서 안부를 지나니 세찬바람이 불었다. 3시 37분 암릉 봉우리를 지났다. 조망이 트이며 멀리 바다 불빛이 보였다.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다시 큰 나무 가지가 걸쳐진 아래로 지나갔다. 3시 45분 내리막을 지나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에 접어드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겨울이 닥친 듯 추위가 와 닿는 바람이었다. 계속해서 완만한 길을 걸었다.
다시 내리막길을 걷다 3시 56분 차돌백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돌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며 잠시 쉬고 다시 길을 가다보니 4시 8분 다시 차돌백이가 나타났는데, 그 곳에는 정말 흰 차돌이 놓여 있었다. 그 곳은 두로봉이 4.0KM 남고 동대산을 2.7KM 지나온 지점이었다. 다시 오름길을 걷다 대려가 4시 15분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지났다. 그리고 다시 내리락오르락 하며 걷다 4시 25분 다시 작은 봉우리를 지났다.
다시 내림길에 안부를 지나 숲길을 가는 동안 공터가 나타나 트인 하늘에 별이 보였다. 다시 오름 길을 걸었다. 길 가에 “ 대피 공간이니 위험 한 때 이용하세요...오대산 관리소장” 이라고 써 있었다. 산에서 대피할 상황이 생기면 이런 곳에서 험한 기후는 피할 수 있지만 식량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름길을 오르니 4시 24분 헬기장이 나타났다. 4시 30분 1260 두로봉이 3.0KM 남은 지점이다. 4시 40분 세찬 바람이 불었다. 옆에 02-15 푯말이 보였다.
4시 44분 신선목이(1120M)에 도착했다. 편안한 공터 느낌 공터주위나무 가 좋았다. 주변에 공간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키 큰 자작나무가 몇 그루 둘러쳐 서 있었다. 그리고 한쪽 숲 사이로 북두칠성이 보였다. 4시 50분 다시 출발해 급경사 오름길을 걸었다. 4시 55분 두로봉 1.6KM 남은 이정표를 보며 지났다. 그리고 5시 6분 다시 두로봉이 1.2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길 가에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이번 구간에서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나타났다. 5시 14분 약간 완만한 길을 걸었다. 5시 15분 오른 후 내림 길을 걷는 동안 가끔 너덜길 나타났다.
5시 19분 5시 20분 헬기장을 지났다. 하늘에 별빛이 약해지고 있었다. 두로봉이 0.6KM 남은 이정표를 지나며 오르는 동안 뒤로 먼 산세 보였다. 그리고 완만한 오르막 길에 뉘인 나무가 보였다. 앞에 정상부 산세가 검게 보였다. 앞에 가는 이대장이 누운 나무를 지나며 비월할까 말까하다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특히 길에 쓰러지거나 고목 가지가 길을 가로 막듯 놓여진 곳이 많았다. 그런데 길은 정상부에 다가갈수록 완만해지고 있었다.
5시 35분 두로봉(1423M)에 도착했다. 비로봉 5.7KM 상원사 주차장 7.6KM 거리가 나타나 있었다. 두로봉은 한강기맥이 갈라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시작해서 동서로 가로막 듯한 산줄기를 이루며 서쪽으로 지나간다. 두로봉 정상에 감시 초소가 서 있었다. 멀리 동해 쪽에서 띠처럼 붉으스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오대산으로부터 점차 벗어나는 지점이었다. 어느 덧 문수 도량 영역도 지나고 새로운 장소와 지형을 느끼며 걷게 되었다. 오대산 이후는 설악산으로 향한 큰 산세가 이어지는 구간이다. 그 너머는 이 곳과 달리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이는 다른 세계가 있다. 5시 39분 헬기장에 닿았다. 앞쪽 숲 너머 산세가 겹친 좋은 풍경이 보였다. 급경사 내림 길을 걸었다. 앞 쪽 숲에 넘어진 나무가 드문드문 있었다. 이슬 젖은 길이 미끌거렸다. 주변이 밝아오고 있고 시야 넓게 트였다. 숲 너머로 불빛이 보였다.
가야할 산들을 보면서 5시 58분 완만한 길을 걸었다. 나뭇잎이 색깔이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햇살이 실오라기 처럼 멀리서 퍼지듯 들어와서 숲에 닿으니 마치 봄에 녹음이 피 듯 아름다움 색깔이 피어났다. 마치 봄에 잎이 돋아날 때 처럼 단풍이 들며 바래서 투명해진 빛깔이다. 그리고 새가 황홀한 아침을 축복하듯 지저귀었다.
지난해 가을 대간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었다. 대간 산행을 하는 동안 비도 많이 맞았다. 가을은 공기에서 향기가 난다. 들은 들대로 숲은 숲대로 행기가 난다. 과실 아니어도 자연 전체가 익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과실과 낙엽이 되어 떨어져간다. 결실은 번식의 본능이다 그리고 결실에는 희생이 수반된다. 수목은 스스로 지탱하고 떨어져 동절기에 생장을 멈춘다. 그 기간에는 수분 발산도 거의 없게 된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은 침묵의 시간을 위한 몸상태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그 가운데 겨울의 텅 빔이 있다. 계속해서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6시 10분 길 옆 풀이 하얗게 바랜 모습이 보였다. 다시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긴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걸어 6시 17분 완만한 봉우리 지났다. 떡갈나무가 노랗게 잎이 물들어 있었다. 바람에 가을 향기 가 묻어나는 길이 되어 있었다. 또한 어느새 낙엽이 많이 쌓여 있었다. 낙엽이 지니 숲의 시야가 넓어지고 있었다.
6시 23분 우측 숲 너머 해 솟아 있음 뜨거운 불덩이처럼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을 받은 숲이 부분적으로 선홍색으로 보였다. 그 분위기기 고대인들이 신성한 햇살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어둠이 밝아져 산 속 공간의 깊은 정취를 풍겼다. 뒤로 지나온 두로봉이 보였다. 완만한 길을 걸어 봉우리를 지나고 6시 39분 다시 더 오른 봉우리를 지났다. 그리고 다시 완만한 봉우리를 넘으며 숲 너머 산세가 트여 보였다.
완만한 능선 길을 가다 6시 45분 봉우리 지났다. 그리고 좌우로 굽은 길을 지나 칙칙한 단풍숲을 지났다. 7시 21분 다시 봉우리를 넘고 안부를 지나 다시 한번 봉우리를 넘어 7시 2분 신배령에 도착했다. 길을 막기 위해 줄을 쳐 놓은 곳을 넘어 지나 왔다. 바람에 안개가 능선을 타고 흐르고 있어서 으스스 추위가 느껴져 우비를 꺼내 입었다. 원래는 그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바람이 불어 식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가며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기로 하고 7시 15분 출발했다.
7시 33분 1210봉에 올랐다. 두로봉을 4.2km지나고 만월봉 1.3KM 남은 곳이다. 거기서는 복룡산 가는 능선이 우측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봉우리를 넘어가다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 아늑한 공터가 있어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바람도 없고 평평하여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식사 준비를 하며 뒤의 일행이 오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한참 후 나타났다. 최회장이 자리에 앉으며 두로봉서 다른 길로 가다 돌아 왔다고 하자 채 총무가 헤멘 거리가 한 구간은 될 거라고 했다. 사모님이 거미줄이 많은 것이 이상하다고 해서 다시 두로봉으로 올라와 길을 잡아 왔다고 했다. 최회장 사모님은 작년에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 설악산을 다녀오다 발목을 다쳐 몇 구간을 쉬 적이 있는데 다 나은 후로는 빠지지 않고 줄 곳 참가했다. 갈수록 길눈이 밝아지고 걸음이 가뿐해지는 것 같았다.
김치, 전, 오징어, 골뱅이 무침 등 각자가 가져온 여러 가지 반찬을 나눠 먹으며 맛 잇게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머물러 앉아 있자니 추위가 느껴졌다. 라면 두개를 끓여 라면 국물과 함께 나눠 먹으나 따뜻한 느낌에 몸이 금새 데워지는 듯 했다. 먼저 일어나 둘러보니 멀리 동해 바다가 보였다. 양양 공항이 보여 위치를 가늠 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바다 가까이까지 첩첩한 산세가 겹쳐 보이는 것이 특별한 느낌이 들어 스케치 했다.
8시 36분 출발했다.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햇살이 투명했다. 오른 쪽 숲에 높게 빨강색 열매가 선명해 보여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이대장이 마가목 열매일거라고 했다. 길가에 철 늦게 핀 것 같은 투구꽃이 보였다. 그런데 늦게 피는 구절초 쑥부쟁이 등은 이미 지고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능선길에 오르다 이대장이 멀리 대청봉이 보인다고 해서 함께 바라보았다. 좌측으로부터 귀떼기봉청, 우측으로 대청봉이 보였다. 백두다간은 설악산 구간만 가면 거의 다 마쳐가는 셈인데 그 곳을 바라보니 t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9시 2분 맞은편서 오는 사람을 만났다. 인사를 하며 어디서 오느냐고 하니 구룡령에서 온다고 했다. 우리에게 물어 진고개에서 온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하며 지나갔다. 길을 가는 동안 앞에 보이는 산들이 햇빛을 직접 받아 점차 물들어가는 단풍 빛깔이 선명해 보였다. 나아갈 곳에 큰 봉우리들이 보이고 능선이 겹쳐진 산세가 보여 깊은 지역임을 느낄 수 있었다.
9시 4분 만월봉(1281MM)에 도착했다. 두로봉을 5.9km 지난 곳이다. 앞으로 도착 할 응복산은 1.5km 남았다. 거기서 약수산이 4.8km, 그리고 약수산에서 구룡령까지는 1.9km, 도합 8.2km가 남아 있었다. 완만한 봉우리를 넘나드는 완만한 길을 걸었다. 9시 12분 봉우리를 넘고 다시 안부를 넘어 봉우리를 지났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가성산 부근을 지나올 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산세는 이 곳이 훨씬 크고 넓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기온 높아져 바람이 시원했다.
9시 38분 응복산(1359m)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이번 구간에 마칠 구룡령이 6.71km, 그리고 지나온 진고개는 15.29km 로 표시되어 있었다. 작은 공터 같은 그 곳 주변 숲이 마가목 열매가 빨갛게 달려 있었다. 사모님이 다른 곳에서 마가목 열매를 파는 것을 보았다면서 따서 술을 담가 다음번 산행 때 가져 오겠다고 했다. 9시 50분 출발했다. 대간 길은 좌로 급히 꺽여 나 있었다. 응복산 정상서 진행 방향으로 보던 것과 다른 산세가 보였다. 10시 2분 구룡령이 6km 남은 지점 이정표를 지났다.
10시 5분 우측으로 멀리 대청봉이 보였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길을 걸어갔다. 좌로 크게 보이는 산을 지나야 할 듯 했다. 작은 봉우리 지점을 지나 10시 19분 급경사 내림길을 걸었다. 뚝 떨어지듯 한 긴 내림길이 통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며 거꾸로 올라오려면 힘이 많이 들 것처럼 생각되었다.
10시 22분 안부에 벤치가 있어 쉬기 좋은 공터가 나왔다. 옆에는 샘이 있다고 써 있었다. 맑은 대기에 가을 숲 정취가 싱그러웠다. 아침엔 추웠으나 점차 기온이 높아져 걸을 때는 땀이 흘렀으나 거기서 땀을 식히며 앉아 있기가 더 말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이었다. 뒤의 최회장 일행이 땀을 흘리며 도착했다. 일행이 휴식을 할 때는 앞에 뒤의 일행을 기다리다 도착하고 나면 조금 있다 바로 출발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 뒤의 일행이 쉴 시간이 부족할 듯 해서 좀 더 쉬었다 가자고 했다. 이대장이 다음 봉우리가 마늘봉인데 마늘처럼 맵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서 긴장이 되었다.
휴식을 마치고 출발하자마자 바로 오름길을 걸었다. 10시 44분 오르던 봉우리에 올라서니 또 다시 앞에 능선 오름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오르는 동안 뒤로 지나온 응봉산이 높게 보였다.
오르던 봉우리에 오르자 정면과 좌측에 각각 큰 산 봉우리가 보였다. 앞쪽으로 가면 바로 대청봉 방향이었다. 하지만 지나갈 약수봉은 좌측에 놓여 있었다. 다시 출발해 내림길을 걷다 11시 2분 안부를 지나 방금 지나온 봉우리보다 더 높은 봉우리를 행해 긴 오름길을 걸었다. 경사가 급하고 점차 햇살이 따가워 이마에 땀이 났다. 갈 가에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11시 4분 1261봉에 닿았다. 거기를 마늘산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이미 지나온 것 같았다. 그 곳에서는 멀리 설악산 쪽 산세가 시원스레 펼쳐보였다. 이대장과 채총무에게 스케치를 하고 가겠다고 하며 앞서가라고 했다. 그 사이 뒤에서 최회장 부부와 임사장이 올라와 대청봉을 가리키며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간식을 먹으며 쉬다 앞서 갔다. 잠시 후 스케치를 마치고 경사가 급한 내림 길을 내려갔다. 일행이 떠난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내리막 길을 걸어 다시 앞에 놓인 봉우리 오름 길을 걸었다. 11시 30분 1260봉에 도착해 다시 쉬고 있는 일행을 만났다. 쉬면서 지도를 보니 이제 오늘 구간에서 지날 큰 봉우리는 약수봉만 남아 있었다.
11시 33분 출발했다. 앞의 일행이 큰 나무 가지 길을 막음 고개 숙여 지나갔다. 11시 46분 급경사 오르다 완만해지기 시작한 곳을 지났다. 길 바닥에 다람쥐가 까 먹은 듯 잣 껍질이 모여 있었다. 다시 앞에 보이는 정상을 행해 오름길을 걸었다. 12시 3분 봉우리에 올라보니 그 너머로 다시 약수봉일 듯한 봉우리가 보였다. 그러나 그 후로도 4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12시 7분, 12시 11분, 12시 12분, 12시 14분 봉우리인 듯 도착하면 다시 길이 어어지기를 반복했다.
전망대에 당도했다. 옆에 그 곳에서 조망되는 모습을 담은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된 구도를 살피며 바라보니 날이 맑아 안내한 풍경보다 더 너르게 전망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좌측으로 약수봉 정상 봉우리가 보엿다. 마루 능선이 거친 암릉 너덜길로 다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걸어 12시 19분 약수봉에 닿았다. 그 곳서도 주변이 너르게 조망되었다. 좌측으로 지나온 산세가 펼쳐 보이고 우측으로는 구룡령을 지나는 도로가 보였다. 좌측의 바로 앞 숲이 화려하게 물든 모습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했다. 바라보던 채 총무가 참 좋다고 했다.
12시 30분 급한 내리막 길을 내려갔다. 길게 돌 계단이 되어 있었다. 12시 40분 다시 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작은 봉우리를 지나 내림길을 걸어가자 차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직전급하 하듯 경사가 심한 내리막 길에 대부분 통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어 걷기 불편한 곳이었다. 오늘 구간은 계단이 많은 편이었다.
1시 40분 구룡령에 도착했다. 차는 보이지 않고 앞서 내려온 이대장과 채총무가 주차장 경계석에 걸터 안자 쉬고 있었다. 우리 차는 방금 지나갔는데 차를 돌려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대장이 식사 할 곳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양양의 병팔네 집인데 이대 장의 친구의 친구인 사이인데 그 인연으로 이쪽으로 산행을 올 때면 자주 들렸었다고 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차가 도착해 안으로 올라섰다. 이번에도 기사님이 시원한 맥주와 안주를 준비해 두셨다. 구룡령은 56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우측으로 가면 양양, 좌측으로 가면 홍천이다. 좌측으로 가는 도로 옆에 내린천이 있고 우측으로 가다보면 남대천을 지난다. 그런데 좌측의 내림천은 열목어 서식지이고, 우측은 연어가 회귀하는 남대천으로써 인근이 모두 천혜의 생태 보고인 샘이다.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삭막하게 느껴질수록 그런 곳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가는데 맨 뒤에 오는 임사장이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최진 회장이 무릎이 아파서 뒤에 천천히 오고 있다며 배낭이라도 들어주고 올 걸 그랬나보다고 걱정을 했다. 기다리는 동안 차 박으로 나가 주변을 구경했다. 관광객들이 표지석에 모여 다소 들뜨고 즐거운 표정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가에서 할머니들이 그 지역에서 나는 나물 등을 싸가지 와서 팔고 계셨다. 그 모습에서 현지 삶의 체취가 베어났다. 다시 산 쪽을 바라보니 임사장이 내려오고 걱정하던 강성택 건축사가 마중을 가서 만나고 있었다.
2시 40분 차가 출발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 좌우로 굽어서 차가 흔들렸다. 누군가 한 없이 내려간다고 하자 최회장이 천삼백에서 제로인데. 라고 했다. 동해가 바로 옆이니 정말 표고가 제로에 가까울 것 같았다. 창 밖을 보다 조는 사이 차가 양양 시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양양은 전에 진전사, 굴산사 등지를 답사할 때 왔었다. 산행을 마치고 인근 도시를 찾으니 지리에 대한 인식이 좀 더 확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 시내를 통과해 가자 큰 건물들이 보였다.
3시 30분 병팔 횟집에 도착했다. 주인 얼굴을 보니 조용하고 정직한 느낌이 드는 분이셨다. 부인과 둘이서 식당을 운영하는데 구분도 성격이 비슷해 보였다. 자연산만 취급한다고 해서 그런지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식사를 하고 술자리가 끝 날 때까지 먼저 차에 가 있으려고 나오다 보니 바로 옆이 남대천이었다. 그 곳 사는 분에게 연어가 있느냐고 했다. 앞으로 10일 정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연어가 꼭 있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보니 물이 매우 맑았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로 들어갔다. 연어야 있든 없든 남대천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족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건너까지 갔다 다시 올라오자 주차장에 차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니 갈 방향으로 돌아 나오고 있었다 .
4시 30분 차를 타고 숙소를 행해 출발했다. 기사님이 횡계의 월정사 입구에 숙소를 정해 두었다고 했다. 내일 시작하는 진고개에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이대장이 우측 멀리 높게 보이는 곳을 보고 우리가 지나간 능선이라고 했다. 지날 때 보지 못한 철탑이 있어 같은 위치는 아닐 것 같지만 그처럼 가장 높은 능선을 걸었을 것 같았다.
산행을 할 때는 그 위에서 이 쪽 동해가 보였었는데 이제 바다 쪽에서 산을 올려 보고 있었다. 산과 물은 이상적인 조화의 대명사와 같아서 산수(山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런데 동해를 바라보는 이 곳 대간 산세는 바다와 큰 산수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큰 산 등성이도 바다 내음을 솔깃해 할 것 같다. 쭉 뻗은 해안 도로를 가면서 하조대 등이 간판이 보였다. 차로도 먼 거리인데 우리가 걸어서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7번 국도를 가는 동안 좌측으로 동해가 보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해 특유의 느낌이 느껴졌다.
동해바다
1991. 5
나는 문명의 언저리로 나와
그곳을 벗어난
안도의 숨을 쉬리라
부서진 파도가 거품을 물고 스며드는
해안 따라 걸으며
천천히 내 안에 잠기 우리라
영겁의 시간 동안 쌓인 침묵 속에서
일렁이다 깨어지는 파도의 몸부림은
무엇을 말하렴인가
모두 다 잠구어
존재의 형상을 빼앗고
마음에 눈 뜨임을 기다리라고
말하렴인가
날이 어둑해진 무렵 차가 목적지 숙소에 도착했다. 모텔 격의 건물이었다. 방을 두개 얻어 작은 것은 최회장 부부가 쓰고 큰 방은 나머지 일행이 모두 함께 쓰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니 넉넉해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양양에서 식사를 했으나 시간이 일러 저녘을 거르기가 다소 애매하게 느껴졌다. 그 때 바깥으로 나간 임 사장으로부터 이대장에게 전화가 결려와 숙소 근처에 한우를 파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사서 식당으로 가면 구워주는 곳이 있다며 자기가 사계다고 한다고 했다.
함께 그 곳으로 나가니 식당에 사람들이 북적 거려서 상차림이 많이 지체되었다. 조금 기다리자 상차림을 해 주었다. 올해 수입 쇠고기 문제로 시끄럽던 차에 한우가 새삼 귀하게 느껴지게 되었는데 유명한 횡계 한우를 현지에서 먹데 되니 더욱 맛이 좋았다. 최회장 부부는 일찍 쉬는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채 총무가 먼저 일어나 올라갔다. 식탁에는 아직 술병이 더 놓여 있었다. 나도 따라 일어나 방으로 들어오니 방 안이 따뜻한 훈기가 느껴졌다. 글을 쓰다 내일 일정을 의식해 잠자리에 들었다.
기상 시간이 되기 전에 잠이 깨었다. 이대장은 욕실에서 벌써 세수를 하고 나오고 있었다. 3시 20분 방에 전드을 켜고 일어나 한사람씩 욕실을 사용했다. 그런데 일어나면서 생각하니 일 때문에 그냥 올라가야 될 것 같았다. 일행에게 말을 하고 4시에 식당으로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 곳에서 나오는 된장찌게가 색깔이 진해서 색깔이 특별하다고 하니, 최회장이 다시마를 넣어서 그런데 이 곳 된장은 다 그렇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진고개로 갔다. 4시 27분 진고개에 도착하니 인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함께 출발 지점으로 가 일행을 배웅 했다. 내가 산행에 가지 않아서인지 힘든 곳을 떠나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들어서는 길에 일출 2시간전 야간 상행 금지라고 쓴 네온 싸인 글씨가 보였다. 일행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돌아서 차에 올라 횡계로 가서 동서울행 시외버스를 탔다. 결국 시간이 없어 두구간을 함께 마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시간을 내어 땜빵을 해야 하지만 시간이 잘 날지 걱정이었다.
(081003)
첫댓글 바쁜와중에도 시간을 만드셨군요...땜빵은 시간에 구애없이 다녀올수있습니다...제가 이구간은 잊지못하는구간입니다...새벽에 오르다가 공단직원에 적발되여 회장님과 대장님이 대표로 세금을 납부한구간이기 때문이네유...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군요... 저희들도 군데군데 국단의 통제 때문에 시간을 조절하느라 더 힘든 산행이 되고 있습니다. 빠진 구간이 눈이 많이 오는 구간이라 가급적 빨리 다녀올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