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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 책으로 가는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중에서 3.11 이후에 후기처럼 쓴 글입니다.
사실 이번달 빠지는 대신 옮겨놓겠다고 한 다이어트 원전 숙제인데, 올릴데가 마땅치 않아 이 게시판을 이용합니다. ㅎㅎ
2. 3월 11일 후에 - 아이들 옆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 속에서
3월 11일 이후
소년문고 50권을 고른 것은 2010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고쿠리코 언덕에서> 개봉을 앞두고 한창 제작에 몰두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계획 정전'에 대비해 밤낮으로 근무를 교대하는 등 제작현장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이 지역은 정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그다음 애니메니션 제작에 들어가려는 참이었고, 스토리보드의 일부 밑그림은 다 그린 상태였지요.
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우리의 최대 문제였습니다. 과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의미가 무엇인지 혹여 얼빠진 짓은 아닐지, 역사적인 참사를 겪으면서 거듭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그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습니다. 계획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고, 일은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앞으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에는 긴토 대지진이 나옵니다. 지진의 충격으로 지금도 그 스토리보드를 보려 하지 않는 스태프가 있습니다. 무서워서 볼 수가 없다면서요. 그런 일은 있었지만 굳이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한 장면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완성되었을 때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애니메이션이 될지 어떨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일본에서는 경제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마치 터질 만큼 물이 가득 찬 풍선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과 게임과 소비에 빠져들면서, 개를 키우고 건강과 연금 걱정을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결국 경제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불안만큼은 착착 부풀어 올라 스무 살 젊은 이와 예순 살 늙은이가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뭔가 일어날 거라고, 다들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전쟁보다 어리석은 평화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돌연 역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일본만이 아닙니다. 파국은 세계적 규모가 되었습니다. 대량 소비 문명이 확실한 종말의 제1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바람이란 상쾌한 바람이 아닙니다. 무섭고 요란하게 지나가는 바람입니다. 죽음을 안고 독을 품은 바람입니다. 인생을 뿌리째 뽑으려는 바람입니다.
이번에 고른 소년문고 가운데 카렐 폴라체크의 『우리는 개구쟁이 5인방』은 그러한 바람 안에서 쓰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과 어딘가 통하는 데가 있는 이 작품에 대해 잘 알진 못한다고 썼습니다만 방사능을 품은 창밖의 바람이 나무들을 거칠게 흔들어대는 것을 보면서 지금 다시 한번 『우리는 개구쟁이 5인방』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렐폴라체크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했을 때, 이 원고는 어느 출판사의 책상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제가 생각하는 어린이문학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해준 이도 나카가와 리에코입니다. 문학작품으로서 좀 더 정확히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되새겨봅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1914년에 태어나 일흔아홉 살까지 사셨습니다. 아홉 살 때 간토 대지진을 겪으셨지요. 4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에 타 죽은 피복창 터의 광장을 여동생 손을 끌고 도망쳐 살아남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식구들 모두 배를 든든히 채우고 버선발로 피난한 덕분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거대한 참상의 한가운데에서 아홉 살의 소년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요? 그것은 그의 인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불에 타 죽은 시체가 포개져 있는 피복창 터 광장의 사진을 중학교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끔찍한 사진이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도쿄 대공습 때는 친척의 안부를 확인하러 공습 이튿날 우쓰노미야에서 도쿄로 올라왔습니다. 신체가 겹겹이 쌓여있는 교코쿠의 참상 한가운데에서 그는 친척을 방문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후 패전 직전 우쓰노미야에 폭격이 있었을 때는 네 살인 저를 업고 도부 철도의 둑을 기어올라 도망쳤습니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업고 작은아버지가 형의 손을 끌고 있었습니다.
밤은 대낮처럼 밝아 둑 위에서는 우쓰노미야 시내의 집들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길이 치솟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있었고 그로부터 미국의 소이탄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엄청나게 큰 경험을 했는데도, 아버지에게는 그런 그림자 같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근사한 말도 하지 않고 어려운 말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손해 볼 일은 하지 말라는 말만 간혹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당시 병약한 큰아버지를 도와 군수공장을 꾸려 나갔습니다. ㅏ마 그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했던 듯합니다.
패전 후에는 주둔하던 미군과 거리에서 알게 되어 집으로 초대하고 친구 삼기도 했습니다. 미군에 대한 적개심은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배운 역사에서는 전쟁으로 굴러 떨어진 회색빛임이 분명한 쇼와 전기를 아버지는 좋은 시대였다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군인을 몹시 싫어하며 속으로 아주 무시하고 있었지만, 하야오라는 제 이름은 당시 유명한 군인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사춘기 때는 종종 아버지와 언쟁도 했습니다. 전쟁 책임에 대해서였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을 한 것이 군부이지 내가 아니다. 스탈린(당시 소련의 독재가)도 일본 인민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중일전쟁 때 군대에 들어갔지만 전장에 나가지 않은 채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아버지에게 딱 한 번 들은 그때의 무용담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럴듯해서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대체로 요령이 좋았으며, 다라 따위보다는 아내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일관한 삶이었습니다.
만년의 아버지는 역사 드라마 <미토코몬>이 이해하기 쉬워 좋다며 거실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외출할 때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등을 곧추세우는 등 마지막까지 상당한 멋쟁이로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이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청춘의 꿈은 지금 어디에>를 보고 망연자실했습니다. 주인공 청년이 아버지의 판박이였기 때문입니다. 안경만 썼을 뿐 생김새도, 사고방식이나 행동도 똑같았습니다. 되는 대로에다 향락적이며 권위를 무척 싫어하고 염세적인, 쇼와 모던보이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바탕에 니힐리즘의 영향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모습 그대로 전전, 전중, 전후의 쇼와를 살았습니다. 아홉 살 소년이 경험한 간토 대지진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무정부주의적인 니힐리즘은 피복창 터에서 경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을 테지요.
아버지는 아홉 살에 그리고 저는 일흔 살에, 같은 바람이 부는 시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시대와 카렐 폴라체크의 시대와 저의 만년은 같은 수레바퀴의 한 조각이었던 것입니다. 수레바퀴는 돌고 있었는데 알아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쩐지 아버지를 전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들 안에 싹트는 값싼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니힐리즘에도 여라가지가 있습니다. 깊은 니힐리즘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만, 값싼 니힐리즘은 게으름의 변명이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하는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아이들, 때로는 중년을 위해서도 만들었습니다만, 그 자세는 앞으로 질문을 받을것으로 생각합니다. 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삽니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만들다보니, 낑낑거리며 하나를 완성하면 곧바로 다음 작품이 시작되고 또 고개를 넘으면 다음 고개가 벌써 눈앞에 와 있는 식이어서, 일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시간과 돈과 재능을 쏟아부어 애니메이션을 만들 기회는 점점 줄어들 거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영화는 채상 서랍에 숨겨야만 할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제 나이 탓만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이십대의 젊은 스태프들에게도 같은 일일것입니다. 원자력 발전 폐기하기, 청산할 수 없는 빚을 자손에게 남기지 않기 등,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말의 시작
지금 판타지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어린이책 이야기인데, 점점 벗어나더니 그만 영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판타지를 만들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보는, 그런 행복한 영화를 당분간은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들머리에서는, 행복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도 어쩐지 거짓말같은 냄새가 나니까요. 정말 21세기의 막이 올랐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게 고작입니다.
연필과 붓으로 그리는 방식을 끝까지 지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뇌에 잠입하는 디지털화는 나날이 현장을 부식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도 아이들이 ‘정말 보길 잘했다’ 하고 느낄 수 있는 판타지가 있겠지만, 지금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몇 년은 걸리겠지요. 그때까지 스튜디오는 살아남아야만 할 텐데요. 저는 대체 몇 살이 되어 있을까요?(웃음)
살아남기 위해서 <고쿠리코 언덕에서> 다음 영화를 시작했습니다만, 스튜디오의 커다란 무덤을 파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셈입니다.(웃음)
소리를 줄인 <보물찾기>
지브리 미술관에서는 2011년 6월부터 <보물찾기>라는 아홉 번째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했습니다. 원작은 나카가와 리에코와 오무라 유리코의 그림책으로, 제가 40년간이나 품고있던 기획입니다.
시사회를 본 한 스태프가 “달렸다, 뛰어올랐다, 먹었다, 가른 내용이네요”하고 감상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심플한 영화입니다. 쾌활하게 보이려 만든 것도, 명랑하게 굴며 만든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보물찾기>를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운이라 생각했습니다. 행운이지요.
이 작품에는 음성이 거의 담기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음악은 들어갔지만 그리고 화면은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한가로운 영화입니다.
오늘날 영화는 너무 과잉되어 있습니다. 색채, 효과음, 대사, 음악, 어느 것이나 북적거립니다.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소리가 소용돌이치고 튀어나오고 진동합니다.
저희는 ‘되돌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시도가 <보물찾기>입니다. 영화는 3월 11일의 대지진보다 먼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덜아나가는 방향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흥청거려도 저희는 온화하고 차분한 방향으로 키를 돌릴 생각입니다. 그 이유가 단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지만요.(웃음)
하지만 그 방향에 우리가 찾는 새로운 판타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직 말할 정도의 내용은 없지만,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이 시작되는가
우리가 만드는 것 이상을 소비하는 이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해지기도 하겠지요. 전쟁마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전세계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괜찮습니다”같은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장난처럼 ‘커다란 무덤’이라 부르는 다음 영화도 끝까지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어떨지 모릅니다. 거대한 경제 변동에 농락당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마음가짐은 무너지지 말자 다짐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자포자기한 데카당스나 니힐리즘이나 향락주의는 한층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살벌해지겠지요. 아버지가 그 한 가운데 계셨던 거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덜렁대던 무사태평함이 그리워집니다. 한편 절망의 깊이도 전보다 더 사무치고요. 역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어린이문학이 가지는 의미
이런 상황에서도 책 읽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필요’입니다.
이시이 모모코를 비롯한 동시대 어른들은 패전 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소년문고를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다시 해볼 수 없다”하는 어린이문학도 꽤 나왔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후 이와나미 소년문고가 출발한 무렵은 “인생이 재생이 가능하다”라는 희망이 어린이책의 가장 큰 특징이었을 것입니다.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넘어 다시 한 번 해볼 수 있다고 말이지요. “비록 지금 가난에 시달리더라도 노력하면 앞날이 열릴 것이다”“그대를 도와줄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하는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려고 쓰인 책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태어나길 잘했구나”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 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공자』를 쓴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작은아씨들』의 루이자 메이 올컷, 『한스브링커』의 메리 메이프스 도지,『아카이토리』를 시작한 스즈키 미에키치, 그의 권유로「두자춘」을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근본은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하는 뜻입니다. 아이들 일이라면, 그렇기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평소에 니힐리즘이나 데카당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도, 눈앞에서 아이의 존재를 본다면 “이 아이들이 태어난 걸 쓸데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하는 마음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주위에 없으면 그런 마음을 금방 잊어버리지만, 제 경우는 이웃에 보육원이 있으므로 내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이런 시기에 이웃에 보육원이 있어 다행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제정신이 들도록 해줍니다.
패전이 아니라 '개전'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늘날 상황은 종말이 막 시작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새로운 판타지가 등장할 것입니다. 지금이 아닌 이유는, 아직은 이시이 모모코 등이 소년문고를 만들었을 때처럼 완전한 초토화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패전 후 다양한 것들이 폭력적으로 사라져버린 황폐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몇 년간 자신들을 위한 책은 구경도 못하는 상태를 겪었습니다. 신슈의 구마가이 모토이치라는 선생이 남긴 시골 초등학교의 기록을 보면, 전쟁 당시 매일 농사에 동원되었던 아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막상 교실로 돌아가도 책상앞에 전혀 앉아있지 않아 학교가 제자리를 잡을 떄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구마가이 모토이치의 학생이 추억을 담아 만든 글모음집을 보면, 선생님이 남몰래 눈물 흘리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본적이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쇠퇴했다 해도 여전히 인쇄물이 쏟아지고, 강요하는 듯한 텔레비전과 게임과 만화가 아이들 영혼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명 같은 음악도 흘러넘칩니다. 이만큼만이라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겠지요.
아무리 그렇게 해도 허사일 때가 올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참담한 일이 속속 일어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테지요. 아직 끝난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진도 끝나지 않았고 '몬주'도 정리되지 않았고, 원전도 재가동하려고 기를 쓰는, 그런 나라니까요. 아무도 현실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에
소년문고에 나치 침공 전후의 네덜란드를 그린 『폭풍 전』과 『폭풍 후』라는 연작이 있습니다. 『폭풍 후』에 나오는 "정상으로 돌아간다""원래대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정말 의미를 가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의 미래 같은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네가 뭘 만들 수 있다는 거야'하고 늘 추궁을 당하고 있지요. 자신이 자신을 추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느새 이 나이가 되었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이 이미 분명해졌다고 생각하므로 힘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여러 가지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생각하면 한가한 일이었습니다. 혹독한 시대에 단련되었던 것이 아니지요.
다음의 새로운 판타지를 만드는 이는, 제가 지금 책 고르기를 하며 싸우고 있는 소년,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이어나갈지 완전히 새로이 거듭날지는 그들 몫이겠지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앞으로 어떤 것을 보아나갈지에 달렸겠지만, 아무튼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남는다면, 다음 작품은 그들 세대가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