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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안나 쉐퍼 민델슈테텐(1925년 10월 25일)
바이에른 지방의 교구인 민델슈테텐 (Mindelstetten, 레겐스부르크 교구)에는 그 마을 사람들로부터 단지 쉐퍼-난들(Schäffer-Nandle) 혹은 가계와 출생의 이름으로 가구장이 난들로 불리었던 동정녀 안나 쉐퍼 (Anna Schäffer)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눈에 뜨이지는 않으나 경건한 삶과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주님을 증거하였다." 1900년 2월 4일 그녀는 하녀의 일들을 처리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끔찍한 상처를 입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속죄의 정신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불쌍한 영혼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며 성스럽게 죽는 날까지 잘 참아 내었다. 고통의 시련 속에서 그녀는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체험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영혼의 지도자가 지시하는 대로 자신의 신비적 체험에 대해 스스로 이름을 붙인 "꿈"의 기록을 만들었다. 이 기록 속에는 깊은 신앙심,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 십자가의 비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을 돕기 위한 준비 등이 나타나있다.
바이글(A. M. Weigl) 신부는 「어느 사랑의 이야기 (Geschichte einer Liebe)」라는 책에 안나 쉐퍼의 전 생애에 대해 그 내력과 고통당한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이 신부는 이 은총받은 동정녀에 대해, 25년간의 고통에 찬 시기 동안 삼십 번씩이나 수술대에 누웠으면서도 거의 매일밤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로부터 기도해 줄 것을 간청받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영혼들을 위해, 그녀의 고해 신부가 말한 바처럼,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지칠 정도로 기도하고 자신을 바쳤다.
바이글과 피슐(Fischl)에 의해 발간된 책 안나 쉐퍼의 비밀에 찬 꿈노트(Anna Schäffers geheimnisvolles Traumbeft')」의 4장에는 '불쌍한 영혼들 곁에서'라는 제목으로 은총받은 여인에 의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918년 4월 19일 금요일 아침 네시에서 여섯시까지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교회에 있었는데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심장을 모신 본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오랜 동안 기도했다. 갑자기 주위가 매우 밝아져서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광 휘와 빛 가운데 있는 가장 성스러운 심장을 보았다. 나는 꿈속에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께 많은 영혼들을 의뢰하였으며 그들을 위해 간청했다. 내가 어떤 영혼(그중에는 아는 자도 많이 있고 모르는 자는 더욱 많다)을 위해 간구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심장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나와 그 영혼이 있는 자리에 이르렀다. 같은 순간 나도 그 영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꿈속에서 기도했다. '나의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또다시 수많은 다른 영혼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들이 불쌍한 (연옥) 영혼들인 것이 꿈속에서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내게 말했다. 나를 위해서도요!' 그들은 대단히 많아서 나는 그들 모두를 쳐다볼 수도 없었고, 그런 무리가 내 주위로 모여들자, 나는 꿈속에서도 큰 공포를 느끼며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나의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제 다시 감실로 부터 놀라운 빛이 비쳐서 내게는 온 땅이 그것으로 밝게 비춰지는 듯했는데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쩌면 안나 쉐퍼는 이후 이보다 더 아름다운 불쌍한 영혼의 위로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온 빛이 아직 내세의 정화소에 머무르고 있는 영혼들에게로 뻗쳐 나간다. "나의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심장이 보여주는 기적적인 힘과 구원하는 피의 순결한 힘 속에 완전한 구원의 효력을 보였다. 한 무리의 불쌍한 영혼들이 안나 쉐퍼의 주위로 몰려들어 "나를 위해서도"라고 간청하는 부분은 감동적이다.
안나 쉐퍼의 꿈노트」는 계속된다. "1918년 7월 22일 월요일 나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몹시 아픈 한 부인을 방문하였다. 그 부인은 나에게 그녀의 방에서 나가서 일곱 개의 방들을 지나 마지막 방에 잠시 동안 머물러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그 후 그 부인이 명령한 대로 여섯 개의 방을 지나 일곱 번째에 도달하니 그곳에 유리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을 통해서 보자 저쪽 방에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포가 나를 덮쳐 왔다. 나는 그들이 확실히 불쌍한 영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소리쳤다. '그대들 모두에게 나의 예수님의 자비를!' 그러자 모두가 내게 크게 감사했다. 그 많은 모습들 중에서 아직 어리게 여겨지는 어느 소녀가 특히 내게 많은 말을 했다. 그녀의 머리 주위와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빛나는 빛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영혼들은 훨씬 더 괴로운 것처럼 보였다. 그 밝게 빛나는 소녀는 또 내게 자기가 세상에서 귀족 신분이었으며 혀의 죄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운 치아 때문에 가졌던 오만함으로 인해 더 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나의 오른쪽 손을 잡고 자기 입 앞으로 끌어 가서, 자기가 먼저 말한 것 때문에 얼마나 열(熱)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내가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녀의 치아로부터는 뜨거운 열이 나왔는데 나는 꿈에서도 손의 뼈가 타 버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두려움을 느꼈고 그러는 동안 계속 기도했다. 그런 후 그녀에게 '나의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짤막한 기도에서 특별한 위 안을 받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순간 적으로 통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화살 기도는 우리(불쌍한 영혼) 에게 커다란 위로와 위안을 줍니다!' 그때 나는 모두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였다. 저 밝게 빛나는 불쌍한 영혼만 빼고 모두가 울었다. 그다음 그 소녀는 내 손을 잡고 창문으로 나를 이끌고 가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세요. 여기는 모두 고통스럽게 보속해야 하는, 눈이 멀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요.' 나는 그때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탁자 곁의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러나 다른 모두 (불쌍한 영혼)는 자기들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소원대로 그녀를 위해 부지런히 구해 주겠다고 말했다. '아니면 글로 써 주어도 좋아.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적어 줘!' 나는 그녀에게 종이와 연필을 주었다. 그녀는 그 위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첫째줄에 는 '거룩한 미사 한 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이상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이름도 거기 있었지만 역시 읽을 수가 없었다. ...다른 자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모두 큰 소리로 울었다. 나는 각자에게 종이를 한 장씩 주었다. 그러나 이들이 쓴 것은 완전히 흐려서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이제 이 많은 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동안 나는 다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때 나는 갑자기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여러분 각자에게 성찬식을 바치겠어요.' 그 순간 모두가 다시 감사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 다음 모두 서로 말했다. '성찬식! 거룩한 미사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에게는 무한한 위안이며 격려입니다. 우리는 먼저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이미 오랫동안 여기 있었으니 그만 가야 한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나는 구석에서 열여덟살쯤 된 소년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특히 가장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에게로 가서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내 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똑같은 것을 너를 위해서도 하리라는 것을 잊지 않았겠지!' 그러자 그는 아주 기뻐하며 애정을 가득 담은 채 내게 감사했다. 그때 밝게 빛나는 것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열두시야.' 그러자 내가 말했다. '나의 예수님의 자비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그리고 나는 여러분을 잊지 않겠어요!'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 긴 안나 쉐퍼의 꿈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고통, 또는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아름다운 치아 같은 사물에 대한 고통을 체험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기도, 성찬식과 미사에서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피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희생과 희생적 고통을 통해 모두를 돕고 싶어하는 안나 쉐퍼의 감동적인 도움의 자세를 체험한다. 계속해서 안나 쉐퍼는 「꿈노트」에 적고 있다.
"1919년 11월 29일 토요일에 꿈을 꾸었다. 나는 연옥 속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혼들이 말할 수 없이 고통받는 것을 보았다. 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나는 전혀 묘사할 수 없다. 나는 그중에서 몇 년 전에 죽은 친지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대단히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1919년 3월 초에 나는 연옥에 대한 꿈을 세 번 꾸었는데 매번 연옥 안에 있는 친지들을 보았다.
1920년 7월 25일에 다시 꿈을 꾸었다. 나는 수년 전에 죽은 나와 친했던 한 부인(Th. w.)이 연옥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는 그 부인이 그렇게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 또한 이미 그렇게도 많이 고통을 당했다고 여겼지. 나는 이제 내가 약간은 고통을 겪었다고 말할 수 없고, 전혀 고통을 받지 않았다고 말해야해. 나의 고통이라는 것은 이렇한 연옥의 고통과 비교하면 서늘한 이슬과 같아!' 그 부인이 내게 말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줘.'"
42. 우르술라 힙벨른(1940년 5월 17일)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이며, 불쌍한 영혼의 벗인 우르술라 힙벨른의 생애는 로마의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의 생애와 아주 흡사하다. 우르술라 힙벨른 처녀적 성은 하르하우젠은 순결하고 경건하였으나 쇠약한 유년 시절과 청춘 시절을 보냈다. 1898년 고향 도시 보쿰(Bochum, 루르 지방)에서 전철 공무원인 아우구스트 힙벨른(August Hibbeln)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아홉 자녀를 낳았으나 여덟째만을 빼고는 모두 영원 속으로 불려 갔다.
외형적으로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의 삶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그녀의 기도와 희생의 삶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곧 그들은 그녀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즉 그녀는 어릴 적부터 불쌍한 영혼들과 신비에 싸인 통공을 하였고, 동시에 비범한 방법으로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많은 미래의 일들을 예측했으며, 때로는 가족들이 그녀에게 알려 주기도 전에 어떤 사람들에게 닥쳐온 죽음을 알기도 하였다. 이 신앙심 깊은 부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삼위 일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심 없이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녀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 '희생 제물이 된 영혼'이었으며 불쌍한 영혼들의 벗이었다.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은 자신의 큰 의무는 죽은 이들을 도와서 가능하면 빨리 하늘 나라의 지복의 기쁨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어린 시절에 그녀는 종종 내세로부터 온 방문객을 맞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바쳤다. 그녀가 다닌 성당의 사제는 그녀가 체험한 환상이 속임수에 불과한 것으로 믿게 하려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죽은 이의 운명이 관련된 부분에서 그녀가 죽은 이들에 대해 말한 것들을 그들의 친척들이 확인해 주었으므로 그녀는 일어난 일들이 명백한 진실임을 확신했다. 죽은 친척들의 처지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로 몰려오자 우르술라 부인은 고해 신부의 지시에 따라 대답하였다. "호기심에 찬 질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무실도 열어 놓으신 바가 없습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께 기도와 금욕으로써 불쌍한 영혼들을 도울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베푸는 자비는 여러분과 여러분이 간구해 주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보답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르술라 부인은 많은 부질없는 사람들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그녀를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보다는 점쟁이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서로 남아 있는 증거들이 말해 주듯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죽은 가족의 처지에 대해, 이들이 연옥에서 필요로 하는 충분한 기도의 도움에 대해 그리 고 마침내 얻어진 천국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훌륭한 품행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자녀들에게 이기적이고 사랑이 없었던 어느 부인은 죽은지 며칠 후 힙벨른 부인에게 나타나 자신은 연옥이 그렇게 무서운 곳인지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고 말하고는 자기 가족들에게 말해 그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많은 죽은 영혼들이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에게 기도로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절과 모든 성인의 날 등의 축제일이 되면 죽은 이들이 찾아와 그녀에게 그녀의 기도나 자기 가족들의 기도를 청했다.
어느 날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은 어느 젊은 부인에게 말했다.
"당신에겐 얼마나 좋은 부모님이 계신지! 아버님과 어머님은 하늘에 계세요!"
어느 부인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내 아버지는 1927년 2월 17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실 당시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1927년 여름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에게 갔는데, 그때까지 그녀와 내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전혀 이야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르술라 부인은 아주 자발적으로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 아버님이 내게 나타나셔서 몇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특히 천국에 들어가기가 절대로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어요. 성령 강림절 전날 저녁에 그분은 천국으로 올라가셨어요."
보쿰에서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이 죽었을 때, "우리는 성녀를 잃었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한 신부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성녀를 잃었다고요?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녀 안에서 성녀를 얻었다'라고,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의 생애는 현세와 내세가 서로 분리된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이 서로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하늘과 땅은 서로 밀착되고 엉켜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이 이미 그녀의 현세의 생애 동안 거룩한 삶과 기도, 그리고 희생과 보속, 고통을 통해 그렇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면, 하느님의 권좌 앞에서도 더 많은 은총을 우리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르술라 힙벨른 부인이 자기들의 육체적이고 영적인 고통에서 기적적으로 자기들을 도울 수 있었음을 증언하였습니다. 물론 우르술라 부인은 한 가지, 곧 우리를 위해 고통받는 것만은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그녀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입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큰 부탁은 바로 그녀의 희생적 삶을 이어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삶과 죽음에 일치되어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과 땅 위의 죄인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나 또 누구에게서나 하느님께서 찬양받으시도록 하는 일입니다!"
1. 마르가레타 쉐프너(1949년 4월 15일)
바덴 (Baden)의 북쪽인 게를라흐스하임 (Gerlachsheim)에서 1863년에 태어나서 1949년에 역시 같은 곳에서 고령으로 죽은 마르가 레타 쉐프너 (Margareta Schäffner)는 경건한 삶과 빈곤 그리고 병의 고통을 통해 성화된 부인이었다. 이 부인은 계속적인 기도와 보속의 고통을 통해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의 위대한 조력자였다.
궁핍 속에서 성장하면서 일찍부터 고통스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열여덟 살에 그녀는 연옥을 처음 보는 은총을 입었다. 후에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고통받는 영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스러워 기절할 만큼 몸이 떨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그 광경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당시 고향에 있는 사제에게 이야기하였으나 그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믿어 줄 다른 신부가 후임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불쌍한 영혼 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었다. 마르가레타 쉐프너는 그녀가 속임수의 희생물이 아니고, 그녀에게 나타난 것이 정말로 불쌍한 영혼들이라는 것을 보여줄 어떤 표지를 하느님께 구했다. 그녀는 이 표지를 받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벗들"이라고 불렀던 불쌍한 영혼들은 점점 더 자주, 거의 매일같이 주로 성찬식 후에 나타났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죽은 가족들에 대해 알고 싶어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예언자'가 되어 버렸다. 마르가레타 쉐프너는 죽은 이들에 대해 이들이 아직 연옥에 있는지, 또는 아직도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등을 말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녀는 살아 있을 때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그 특징을 그려 내었다. "고통받는 영혼들과의 통공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은총이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 있으며 우리를 보고 우리의 생각을 알고, 우리의 성향과 계획을 안다. 우리 인간들은 그들을 보 지 못한다. 그들은 고통받고 있지만 그것은 현세의 실제의 불과는 다르다.” 마르가레타 쉐프너는 언젠가 이렇게 설명했다. 또한번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만일 사람들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보속하게 될지를 안다면 그들은 아주 다른 삶을 살아갈 텐데"라고,
편견과 선입견 없이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단순함과 솔직 그리고 친절, 맑음, 투시력, 경건함 등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던 마르가레타 쉐프너는 불쌍한 영혼을 돕기 위해서는 하찮아 보이는 기회라도 모두 이용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대단히 가난했다. 그러나 때때로 자선가들이 보내 오는 돈과 식료품을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주 조금만 사용했고, 돈은 불쌍한 영혼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연미사를 위해, 혹은 같은 목적으로 다른 자선 행위 등을 위해 사용했다.
마르가레타 쉐프너의 일생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보속의 고통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68년 동안, 이들에 대해 근면하고 진정으로 희생적인 조력자였다. 축복받은 이 희생의 영혼은 여든여섯 살의 복된 나이로 1949년 성금요일 그리스도의 임종시와 같은 때에 온화하고 평화롭게 죽었다. 그녀를 잘 아는 한 신부는 "그녀가 그토록 많은 희생을 해주어 천국에 들어가게 된 영혼들로부터 천국에서 감사의 말을 듣게 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1. 콘너스로이트의 데레사 노이만(1962년 9월 18일) 두体
영웅적인 보속의 고통과 박애심 그리고 많은 희생적 활동으로 두드러졌던 콘너스로이트(Konnersreuth)의 데레사 노이만(Theres Neumann)은 때때로 그녀에게 나타나 도움을 청하는 죽은 이들의 영혼과 통공하였다. 밤에 자신의 소망을 피력해 오는 면에서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그들의 본연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에 따라 "애원하는 고양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녀는 밤이면 몇 시간씩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기도하였고, 모든 성인의 날과 위령의 날에는 대개 밤을 새워 기도하였다. 그녀는 또한 불쌍한 영혼을 위해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 냈다.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 중 많은 수를 그곳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녀의 기도와 보속으로써 연옥 고통에서 벗어난 모든 영혼들의 말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해 종종 그녀는 바이글 신부에게 말하였다. 모든 성인의 날은 데레사 노이만에게 있어 항시 축제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그녀의 도움으로 천국에 들어간 과거의 불쌍한 영혼들과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데레사 노이만이 어렸을 적에 콘너스로이트에서 봉직 했었던 에벨(Ebel) 신부가 죽은 뒤 그녀에게 나타나 부탁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다오. 나는 너에게 세례를 주었고 첫영성체를 시켜 주었단다...."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은 데레사 노이만은 특별히 이 죽은 사제를 위해 기도했고, 곧 그가 연옥에서 해방되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 기쁨을 맛보았다. 2
콘너스로이트의 나버(J. Naber) 신부는 1928년 11월 23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늘 데레사는 여느 때처럼 성금요일 고통의 절정을 체험했다. 그녀는 또한 개신교가 완전히 들어오기 이전까지 마지막으로 봉직했던, 아르츠베르크(Arzberg) 출신의 가톨릭 신부를 연옥에서 풀려 나게 해주었다. 그는 과음과 미사 봉헌 때의 태만함 때문에 연옥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받아야만 했으나 그의 어린이 같은 순박성과 그녀의 희생적 도움으로 그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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