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오늘은 좀 어떠세요?』
김은배(스텔라) 수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 초점없는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최루시아(70)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금새 변화가 인다.
『어쩌나? 수고만 끼쳐드려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얼굴만 봐서는 그가 호스피스 간호를 받고 있는 말기 위암환자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할머니의 대소변 상태와 맥박 등을 체크하고 잠자리와 기분, 환자만이 알 수 있는 몸의 변화까지 꼼꼼히 챙기는 김수녀의 물음이 끝나자 이번에는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린다.
『자식도 이렇게는 못합니다』
김수녀의 손을 꼭 잡고 『편안하게 생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 분들께 어떻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천국에 가셔서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셔야죠』
김수녀의 말에 할머니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람 만나는 일까지 꺼리던 할머니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모현 호스피스」의 호스피스팀이 찾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산통에 버금가는 통증에 낮과 밤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뜬눈으로 괴로워하던 할머니에게 호스피스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두려움에 떨던 그에게 봉사자들은 통증 조절을 통해 죽음이 생의 한 과정임을 깨닫게 해준 것은 물론 새로운 생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더 이상 치유가 어려워 병원에서 나와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말기 환자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전해주는 「가정 호스피스」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알더라도 「호스피스」하면 곧바로 「죽음」으로 연결지어 꺼리는 경향도 없지 않다.
가정 호스피스는 대체로 의사와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팀 단위로 활동을 한다. 의료활동은 물론 공기침대, 산소발생기 등 의료기구 대여 등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또 환자 가족들에게 투약법과 주사법 등 기본적인 간호법을 교육해 이들이 직접 간호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가족간의 유대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나아가 상담 등을 통해 환자와 함께 어려움에 빠져있는 가족에게도 안정을 찾아주거나 말벗, 심부름, 병원 등과의 연계 등 다양한 활동으로 도움을 준다. 아울러 사별가족들을 위한 모임을 마련해 사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가정 호스피스는 가족이 함께 하는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기간의 80%를 가정에서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호스피스의 원조라 할 강릉 갈바리의원을 비롯해 광주 천주의 성요한병원, 순천 성가롤로병원, 전진상복지관 등 10여곳에 이르고 있다.
김은배 수녀는 『핵가족화되면서 죽음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정 호스피스는 가족의 소중함과 역할을 새롭게 해줄 수 있다』며 『가까운 가정 호스피스를 통해 도움을 청하면 24시간 언제든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모현 호스피스 (02)779-8245, hospice6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