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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0일 주일말씀>
환난 후 이상세계, 심판 후 이상세계
<마24:29-31>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사11:1-9>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할렐루야! 다시 또 한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세계 각 나라, 각 교회 모두 금년도의 마지막 한 달을 놓고 열심히 뛰느라고 수고들 많습니다.
먼저 금주의 말씀이 늘 궁금하고 또 한 주일의 말씀이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또 주려고 하시는지 그 본문 말씀이 궁금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4장 29절로부터 31절까지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은 주일말씀의 본문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을 먼저 봉독하겠습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31절까지 봉독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1절부터 9절까지인데 몇 군데만 보겠습니다. 3절부터 보겠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두 곳을 본문말씀으로 삼고 말씀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오늘 처음 온 신입생들도, 처음 오신 여러분들, 세계 각 나라 각 교회가 하나님께 오늘 찬양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모두 세계 각 나라는 일제히 일어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립해 주세요. 나는 곧 나와서 찬양을 지휘할 것입니다. 오늘 노래는, 여러분이 여러 곳의 찬송을 보내왔습니다. 제일 많이 부르자고 한 노래들이 한 다섯 개 있는데 그 중에서 덜 불렀던 노래를 여기에서 뽑아서 찬양을 합니다. 새노래 다섯 개, 찬송가 다섯 개가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 선생님이 직접, 많이 안 불렀던 것을 불러봅니다. 그렇게 해서 주일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는 102장 “내 주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찬양을 하고 새 찬송가, 시대의 찬송가는 “주님 없이는 못살아” 이 노래를 여러분이 많이 부른다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울고 넘는 섭리재”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만 하지 않고 두 노래가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세 곡을 계속 지휘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준비하시고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지휘를 하면 여러분이 그 지휘에 따라서 빠르게, 느리게 하게하고 싶지만 직접 현지 녹화를 못하니까 관악대, 음악부들이 모두 합동으로 보내준 곡에 의해서 찬양하는데 거기에 의해서만 찬양을 하니 아쉽습니다. 그것은 연구해서 한번 해보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각 교회마다 피아노를 치면서,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보면서 하면 또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먼저 알고, 오늘은 합동으로 모두 세계 각 나라에게 본래 녹화한 내용에 따라서 노래 지휘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준비하고 있기 바랍니다.
♪ 주일 전체찬양 - 찬송가 102장 “내 주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주님 없이는 못 살아”
♪ 웃고 넘는 섭리재
모두 편히 정리하고 그리고 편한 대로 모두 앉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금주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처음 오신 신입생들, 처음 오신 우리 어른들, 그리고 요즘에 와서 말씀을 듣고 가르치고 수고하시는 여러분들, 모두 한 주일이 시작되니 우리 처음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또 인사하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들어가겠습니다.
우리 인사 먼저 할까요? 인사하고 하늘의 귀한 말씀을 듣겠습니다. 악수할까요? 악수! 고맙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보내줬으니 우리는 환영하고 기쁨으로 맞고 하늘의 위대한 이 시대의 말씀을 전해주며 같이 손을 잡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풀어지고 여러분의 소망과 꿈이 이곳에서 풀어질 것입니다. 정녕코 풀어지고 이상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비디오에 대한 거리감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악수할 때는 가깝게 잡아당겨 달라. 그리고 또 넓게 보이다가 선생님으로 압축시켜 주고 그러면서 선생님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달라. 생생하게 카메라도 살아 움직이고 선생님도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해서 오늘 그 첫 번째 시도를 하겠습니다. 모두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환경상 그렇게 안 되고 그런 기술자들이 다 와서 한 것이 아니고 해서 아주 아쉬운 대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를 해주시고, 오늘 한번 시작해보라고 해서 이제 할 것입니다. 카메라를 얼굴을 클로즈업 시켜서 잡아당기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관악대, 가수팀, 치어, 무용하는 사람들, 밴드, 그리고 바톤부들을 총 동원해서 월명동에서 다시 노래를 연주해서 보내줬지요? 참 생생하고 좋았습니다. 추운데 수고들 했습니다. 편지 받아봤지요? 수고했다고 내가 금일봉도 전달했습니다. 추웠을 것입니다. 그날 굉장히 추울줄 알았는데 춥지 않고 다행스럽게 추운 가운데 잘 녹화가 됐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생한 모습 보면서 지휘하니까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난주 수요일 말씀부터 시작된 말씀이 있었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동안 잘 한 사람에게는 칭찬도 하고 못 한 사람에게는 책망도 하셨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중심해서 이 세계 전체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도 놀랐고 여러분도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말씀을 더 들어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되고 새롭게 할 것은 새롭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금요일 새벽말씀까지 들었지요? 금요일 새벽까지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워낙 많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다 못 해서 이번 주에도 말씀이 나가면서 새로운 주일의 말씀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금요일 새벽까지 일부를 전했습니다. 그날 핵심적인 것은 전하고 또 말씀이 연속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서 열심히 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새로 온 여러 신입생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사람을 통해서 부르시고 또 본인이 스스로 오고 싶어서 오게도 하셨습니다. 편지 온 것을 보니까 신입생이 편지를 했는데 “나는 누가 오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오고 싶어서 왔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처음 와보니까 말씀을 잘 못 알아들었다고, 그러나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을 보니까 참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더 듣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너무너무 젠틀맨 같이 멋있게 보여서 호기심이 있다고 너무 좋았다고 했습니다. 너무 멋있어서 나 이 교회 다니겠다고 편지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교역자는 내가 보니까 멋있어야 되겠더라는 것입니다. 멋도 있고 맛도 있고 흥미도 있고 이런 것이 많이 갖추어져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나뿐만 아니라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 학생은 정말 내가 못생겼으면, 그렇게 안 보였으면 교회 안 올 뻔했습니다.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오늘도 처음 오는 사람들이 첫 번째는, 말씀 듣고 오기도 하지만 약간 전초만 했지 말씀은 안 듣고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를 탁 쳐다볼 것입니다. 쳐다보니까 어떻습니까? 멋있어요? 좋아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교회 다니면서 편지에다 요만한 자기 얼굴을 찍어서 보내겠지만, 대개 내가 편지가 오면 “참, 멋있다. 아름답다. 너는 뭔가 할 것 같다.” 하고서 편지에 그것을 적어줍니다. 사람을 내가 잘 봅니다. 많은 청중을 다스리고 또 내가 사람만 연구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이는 어떻습니까? 가다가 말씀 배우다가 말 사람 같습니까? 다니다 말 것 같아요? 앞으로 뭔가 할 것 같아요?”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오늘 새로 온 여러분들에게 참 귀한 발걸음 했다고 진지하게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10대들, 20대, 30대, 우리 장년부들 전체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옛날에 교회 다녔을 때가 생각납니다. 내가 교회 다닐 때 누가 쳐다보고 ‘저 사람이 큰일 할 것 같다’ 생각을 아무도 안 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할 것을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겨서 교회에 왔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께 “나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대답 안 하십니다. 왜냐하면 “만들어 봐야 알지. 내가 만들기에도 달렸지만 네가 얼마만큼 내가 만들 때 적극적으로 사람이 되고 적극적으로 내 말을 귀히 여기고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을 귀히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구촌의 세계가 한 촌처럼 하나 되어서 살지 않지 않습니까. 지구촌에 하나님께서 사역을 줘서 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빵집에 빵 먹으러 갔다가 잘 보이면 사장이 “내가 아르바이트 구하는데 학생 어때? 아가씨 어때?” 할 것이고, 좋으면 하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입니다. 회사 사장한테 잘 보이면 “해외에 출장 가서 근무하고 싶지 않아?” 할 것입니다. “혹시 어떤 것을 하고 싶냐?” 할 것입니다. 정치인에게 잘 보이면 정치하는 자리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잘 보이고 좋게 보이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왔을 때 첫 번째 잘 보여야 됩니다. 맞선볼 때도 그렇고 친구를 사귈 때도 첫 번째 볼 때 인상이 좋다, 나쁘다, 풍기는 것이 있다, 당기는 것이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하나님께 잘 보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요즘에 늘 가르치느라고 목도 쉬고 목도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압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사람 만들어 놓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지 모릅니다. 나도 그야말로 ‘저걸 가르쳐서 앞으로 뭐할까?’ 그런 사람도 내가 계속 가르쳤습니다. 하기야 나도 나를 하나님께서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가르칠 때 ‘저걸 가르쳐서 뭐할까?’ 할 정도로 외모로 봐서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가르쳐놓고 말씀 들어가고 단장하고 만드니까 이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누가 어떻든지 열심으로 가르치고, 보화가 들어있다는 밭을 가는 어떤 농부 같이 깊이, 천천히 마음 밭을 잘 갈아야 됩니다. “외모도 보지 말고 무엇도 보지 말고 중심을 보면서 잘 가르쳐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이 섭리사의 세계를 보면 아주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나와 같이 외모는 그렇게 키가 크고 풍채가 멋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나도 키가 크고 풍채가 멋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같이 열심히 하네.’ 합니다. 또 키 큰 사람들은 속을 못 차리니까 속을 다시 차릴 수 있도록 내가 가끔 이야기합니다. 키 크고 속 차리면 잘 합니다.
모두 칭찬도 해주고 싶고 못한 사람들은, 기질과 재질이 있는데 안 하는 사람들은 왜 안 하냐고 책망도 하며 지난 수요일 말씀에 말씀했습니다.
지난주의 말씀을 통틀어 말씀하면 “역사와 심판”이었습니다. 심판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도 하나의 심판 아닙니까? 쓰레기 심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사는 사람은 좋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심판은 무엇인가 하면, 회개하는 것도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잘못을 용서를 구하고 없애버리고, 그 얼마나 좋습니까? 꿉꿉하고 근지러울 때 머리 감고 깨끗하게 하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심판은 꼭 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크게 나누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 심판인데, 입으로 혼내는 것입니다. 말의 채찍. 오늘 말씀도 나옵니다. 그리고 또 실제 매로 때려서 책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그 뜻대로 안 한다고 맞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혼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전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혼나는 것입니다.
‘아, 나는 혼 안 나고 하나님 안 믿고 저쪽에서 그냥 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 많지 않습니까? 한번 쳐다보십시오. 결국 인생들이 무에서 왔다가 무로 끝나고 말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짐승 같이 살다 짐승 같이 사라진다.” 하셨습니다. 그냥 죽고 끝나면 괜찮은데 죽은 다음에 그렇게 살았다고 (그런 세계로 가게 됩니다.)
이 엄청난 지구촌을 하나님이 주시고 살게 하고 생명 보호하고 지켜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지구상에 지금 사람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도 무지해서 실수해서 죽고, 사고 나서 죽고, 서로 전쟁해서 다 죽이고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지켜줘서 이만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봐도 너무 사람들이 모르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줬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감격하고 살지 않고 평생 살다가 갔기 때문에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정말 무서운 형벌로 영원히 대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이곳에 새로 온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맞고 고맙다고 하고 우리와 같이 손을 잡고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멋있게 남은 여생을 살자는 것입니다.
금년도는 그냥 열심히 전도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자”고 선포해놓고 악착같이 전도해서 오늘 여러분이 오게 된 것입니다. 새로 온 사람들, 알겠습니까? 그렇게 안 했으면 아직도 교회에 못 왔습니다.
편지를 보면 말씀을 듣고 교회를 보고 참 찾던 곳이라고 하고, 말씀을 듣고서 이럴 줄을 상상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외부 사람들이 악평하고 나쁘다고 해서 의식하고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2주일 만에 변화되었고 열흘 만에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들도, 그분들이 다 와서 간증을 못하지 않습니까? 내가 대신 해주는 것입니다. 마음 푹 놓고 열심히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 때문에 천천히 주일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말씀을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이치와 법칙과 뜻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입을 통해서 말씀을 합니다.
자, 그러면 먼저 마태복음 말씀도 보고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도 보겠습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은 11장의 말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1절까지 읽어보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상황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낸다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가 어떤 것을 갖추고 오는가 하면, 지혜와 총명과 모략을 갖추고 와서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 육체가 되어서 그가 세상을 구원하며 역사한다. 그런데 먼저 그가 와서 보는 대로 심판치 않고 공의롭게 심판한다.”
여러분은 보는 대로 막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렇게 이야기하지요? 공의롭게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공의롭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의를 저울에다 달아봐야 되고 길고 짧은 것을 잣대에 재어봐야 됩니다. 1미리 가지고 왔다갔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수를 세어봐야 됩니다. 수가 어떤 것이 더 많은가. 그러면서 판단합니다. 내가 그렇게 못하고 대충 했더니만 나에게 무슨 음성이 들렸는지 압니까? “왜 자는 만들었느냐? 왜 저울이 있느냐? 왜 숫자가 있느냐? 확실하게 달아보고 확실하게 하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더욱 말씀을 절감하고 세밀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세밀하게 해야 됩니다.
일본이 보다 세밀한 민족입니다. 일본 사람이 세밀한 민족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전자제품 만드는 것을 보세요. 다른 나라도 세밀합니다. 그러나 또 세밀을 따질 때는 더 세밀합니다. ‘섬세하다.’ 그런 민족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섬세하다기보다는 뭔가 확확 해버리고 실수도 하고 또 일어나고 또 하고, 이런 민족입니다. 각 나라별로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잘 해야 됩니다. 한 민족에 살면서도 성격이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밀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세밀한 것도 있지만 크게 왕창 왕창 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밀하게 꼭 해야 됩니다.
여러분, 세밀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실수를 안 합니다. 실수하면 작은 것은 별것도 아닌데, 큰 것은 실수하면 큰 손해가 가지 않습니까. 또 확인하고 또 알아보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그래야 되겠지요? 그것이 인생에 대해서 굉장히 큰 것입니다. 확인을 세 번 이상씩 해야 됩니다. 그러면 실수를 덜 할 것입니다.
“공의롭게 심판할 자를 보낸다.” 그리고 가난한 자, 빈핍한 자, 없는 자, 빽이 없는 자, 빽이 있는 자 이것을 공의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11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입의 막대기로 그들을 칠 것이요, 악인들을 쳐서 심판할 것이고 공의롭게 할 것이다.”
입의 막대기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말씀을 배우면 다 나옵니다. 입의 막대기가 입에다 막대기를 물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검으로 때린다, 말씀으로 심판한다, 말씀으로 공의롭게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의롭게 하지를 못합니다. 법관들도 공의롭게 못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때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개할 정도로 상황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공의롭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의롭게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는 구원자는 공의롭게 하신다. 악인은 반드시 쳐서 없앨 것이고 공의로운 심판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을 하십니다.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압니까? 배추가 있는데, 배추 사러 많이 다녔지요? 그런데 사다 보면 배추가 거죽은 멀쩡한데 열어보면 썩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진짜는 거죽은 조금 썩었는데 알맹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죽은 멀쩡한데 속이 썩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너무 속상합니다. 여러분도 배추 사러 가면 알맹이가 어떤지 꼭 열어봐야 되겠습니다.
배추 비유를 들어보십시오. 배추가 썩어 들어가는데 거죽 까갱이를 까서 안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썩었다고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됩니다. 썩은 것만 버리면 알맹이는 남아 있고 안 버립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도 썩은 것이나 잘못된 것이나 회개할 것을 회개해서 안 버리면 여러분을 같이 썩었다고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동일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해서 없애버려야 다른 것도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옷을 보십시오. 옷에 냄새나는 것이 묻었으면 거기만 빨아서 깨끗하게 하면 냄새가 안 나는데 놔두면 그 옷 냄새난다고 못 입는다고 합니다. 사람을 옷으로 비유했고 더러움을 죄로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잘못이 있으면 딱 회개해 버려야 귀하게 취급을 받는다. 사용할 수 있다.” 음식도 더러운 것은 버리고 좋은 것만 만들어서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썩으면 버려야 됩니다. 또 썩는 것을 아깝다고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배탈나든지 병이 생길 것입니다.
반드시 심판은 해야 됩니다. 심판을 해야 될 때는 꼭 해야 되고 심판을 받을 때는 꼭 받아야 됩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동생이든지 손위에 있는 사람이든지 잘못했으면 꼭 말이 나가지 않습니까? 또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 일을 맡기지 않습니까. 집에서 부모가 자식에게도, 또 자식이 볼 때 부모가, 형제끼리도, 국가끼리도, 민족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도 똑같이 여러분이 싫듯이 싫은 것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어도 그냥 가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반드시 회개하고 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안 주면 그것은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사람이 밥을 먹고 영양분을 다 빨아 들였으면 배설물은 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안 버립니까? 필요도 없는데. 그와 같이 회개할 죄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버려야 됩니다. 얼른 버려야 됩니다. 꼭 ‘나는 무릎 꿇고 기도할 것이 없어. 회개할 것이 없어.’ 그것 찾지 말고 무조건 서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나 잘못했습니다. 이것 정말 잘못했습니다. 확실히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 대신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반드시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회개를 한없이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하면 그 죗값이 가중됩니다.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죄 지은 것하고 두 번째 죄 지은 것이 사회에서도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회개할 것을 본인이 인정해야 되겠지요? 인정하고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가르쳐주러 왔습니다. 무조건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것이 아니라 나도 회개를 많이 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회개를 많이 하고 씻고 닦고 하니까. 오늘도 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왜 이렇게 반짝반짝한지 압니까? 자꾸 닦고 깎고 해서 반짝반짝하게 만드니까 그런 것이지 계속 한 달, 두 달, 석 달 세수 안 하고 나와 보십시오. 내가 조명을 켜도 시커멓게 비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옷이 왜 이렇게 하얀지 압니까? 빠니까 하얀 것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 의인이냐? 회개하면 의인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가 지나가도 계속 하나님이 보시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심판하니까 잘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심판받으면 무엇이 나쁜지 압니까? 하나님이 구원주이시고 하나님이 축복 주는데 그분한테 심판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한 하나님이 하시니까 얼른 회개를 해버려야 됩니다. “쟤는 회개를 참 빨리 잘해.” 하시도록 꼭 그래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다시 이야기 안 해도 여러분들이 알아서 오늘 처음 온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러면 깨끗한 마음으로 역사를 펴나간다. 또 하나님께 받을 것을 받고 기뻐하며 살 수 있다.
그동안 교회 안 다닌 여러분들도 회개해야 됩니다. 왜 회개해야 되는가 하면, 왜 안 다녔냐는 것입니다. 일찍부터 열심히 다녔으면 됐지 않습니까? 그랬으면 여러분들이 그런 위치에서 살지 않고 더 기쁨과 이상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너무나 큰 죄입니다. 지옥 간 사람들에게 “왜 지옥 왔나?” 다 물어보십시오. 본인들은 “나는 지옥 올 수 있는 여건이 없는데 왜 왔나 모르겠다. 나는 그런 지옥 올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지옥으로 왜 보냈나 모르겠다. 지옥 올 자격이 없는데... 세상에서도 자격이 없으면 거기를 안 보내는 건데 나는 이 지옥에 올 수 있는 자격이 없는데 왜 보냈나 모르겠다.” 한다고 합니다.
지옥을 누가 보냈습니까? 자기가 찾아간 것입니다. 자기 행위로 찾아간 것입니다. 그렇지요? 누가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 지옥 가!” 했으면 왜 보냈냐고 하나님만 계속 원망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구원 받고 좋은 하늘나라를 내가 만들어 놓았는데, 너희가 하늘나라 만들 때에 수고도 않고 하늘나라 만들 때 무슨 돈을 냈냐? 내가 만들어 놓았는데 너희가 나를 믿고 나와 같이 이상세계 누리며 살자.” 그것만 했지 “너를 지옥 보내려고 내가 계획적으로 지옥을 만들었어.” 그런 것은 없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기 아들을 감옥에 보내려고 계획하고 낳았겠습니까? 감옥에 보내려고, 영창에 보내려고, 감방에 보내려고 낳았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도 부모보다 천 배, 만 배 그런 데에 보내려고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나면서부터 천국으로 오도록 계속 역사하시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런 존재자가 어디 있습니까. 감격하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러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을 없다고 하고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분석이 잘 안 나옵니다.” 하고 하나님께 물어봤더니만
“첫째는 안 보이니까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랬습니다.
“아, 나부터도 그전에는 안 보였으니까...”
보였으면 있다고 할 것 아닙니까. 좋든지 나쁘든지 일단 봤기 때문에 있다고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봤기 때문에 없다고 한다.”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돼요?” 그랬더니
“하나님은 신이기 때문에 존재하고도 신의 세계에서만 본다고 해. 나를 보는 것을 합당치 않게 여겨 보지 못하게 했어.”
태양이 밝고 좋되, 아무리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도 가고 하지만 해나라는 못 가게 만들어 놨습니다. 가면 죽으니까. 그렇게 데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비유가 적절할까요? 어린 아이들은 절벽을 뛰어내리지 못 하게 했습니다. 암벽타기를 못 하게 했습니다. 왜? 다치면 죽으니까.
“그와 같이 그런 법칙과 이치로 그렇게 해놓았다. 보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나를 본다고 해서 위신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무시할까봐 그런 것도 아니고 너무 놀라서 죽을까봐 그런 것도 아니다. 법칙이 여러 수천만 가지가 있어. 그래서 보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고 해놓았다.”
“그래도 보고 싶은데...”
내가 그래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 같으면 그래도 보고 싶다고, 어떻게든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보고 싶으면 봐라. 실력껏 보라.”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래도 보고 싶으면 실력껏 보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하든지 하늘나라를 가든지 사닥다리를 만들어서 올라가든지 실력껏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좋아서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했더니 “실력껏 봐.” 했는데, 이렇게 여러분이 선생님을 보듯이 딱 안 보입니다. 옛날 선지자들도, 모세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등을 봤다. 손을 봤다.” 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지나간 것이었다.” 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이렇게 확실히 봤다.” 하는 사람이 없었고 예수님만이 “나는 늘 하나님을 보고 있다.” 그랬습니다. 나는 늘 내 아버지를 뵙고 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세하게 ‘하나님의 코가 이렇게 생겼고 눈은 이렇게 생겼고 얼굴은 이렇게 생겼고 입은 이렇게 생겼고 옷을 무엇을 입고 다닌다.’ 이렇게 쓰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늘 하나님을 보고 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이렇게 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아, 하나님도 예수님형의 기본형이구나. 하나님도 코끼리 같이 생기지 않고 호랑이같이 생기지 않고 사람의 형을 갖고 계시는 영의 존재자구나.’ 이렇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지는, 우리보다 100배 크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기 사랑하고 좋아하는 애인이 자기보다 100배 크면 징그러워서 대하기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크면 좋습니까? 3배, 2배라면 모를까 4배, 5배로 하나님을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스무고개로 해볼까요? 하나님의 눈이 우리 주먹만할까? 하나님의 손가락이 내 허벅지만할까? 하나님의 입이 이만할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존재로 적당하게 존재하고 계시고 인간 같이 기본형을 갖고 계시다.” 우리가 원래 하나님 원존재로부터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을 창조할 때 내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그랬으면 됐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직접 보려면 너무 영계에 들어가서 7단계, 8단계, 10단계 들어가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보냐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뭐냐고 하니까 만물을 통해서 나를 보여 깨닫게 하고, 태양을 보이면서 ‘나 태양같이 저렇게 화끈한 사람이여.’ 이렇게 인격을 보이고, 또 바닷물을 보이면서 ‘바닷물같이 내가 마음이 넓어.’ 이렇게는 하나님께서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버뜩 버뜩 가지가지 조금씩 조금씩 여러 가지를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는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꼈지요? ‘아, 그렇게 느낀 사람이 많아요?’ 앞으로 느끼게 해주겠습니다. 예수님같이 말합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주님을 보았거늘. 예수님을 못 봤지요? 나를 본 자는 예수님을 보았거늘 예수님도 눈 두 개 달렸고 인상 찌푸리며 살지 않고 웃으면서 살지 않았겠습니까? 나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의 옷을 입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보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안 믿는가 했을 때 하나님이 안 보여서 안 믿는다고 했고 두 번째는, 자기가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안 도와줬다고 해서 안 믿는다고 했습니다. 늘 도와주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확 도와주고, 환난 때 누가 확 건져주고 이렇게 하나님이 탁탁 해줬으면 믿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안 믿는다고 했습니다. 크게 나누면 그래서 안 믿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것은 상식으로 아는데, 하나님은 늘 우리 인생들을 90%를 항상 도와줍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확실히 압니다. 겪어봐서도 알고 사람을 통해서도 도와주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내 마음에 감동을 주면서 나를 힘있게 돕게 만들어서 어려운 환경을 이기게 만들고 그렇게 하나님이 돕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때는 개미 가지고도 도와줍니다. 어떻게? 개미가 자기 앞에 나타나서 그렇게 하라고 원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개미도 저렇게 아니까 그만큼 안 밟히고 가지 않느냐? 에이, 바보야. 거기에서 피하면 될 것 아녀? 좋은 사람은 피해가지만 너를 잡고 죽이려 하는데 피해 가겠냐? 그러니까 너는 피해 가면 되지 않겠냐?” 이렇게 개미를 가지고 보여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개미 가지고 만물 가지고, 동물 가지고, 어느 때는 거미 가지고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거미가 왔다갔다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손님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여주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준 것은 여러 수천 가지,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좋으니까 따져보지도 않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녀석 오면 내가 혼내고 심판할 거야. 호통을 줄 거야.” 했는데 나는 그런 것도 하나님께 안 알아보고
“하나님, 얘 있잖아. 내 대신 축복해 줘요.” 했더니 예수님이
“저놈은 쓸개도 없어. 아니 그릇도 깨끗하게 안 하고 뭘 준다는 거여? 혼내려고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내가 대신 해줄 테니까 하나님, 혼내지 말아요. 내가 사람 만들 테니까.”
“알았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돕고 있는데 자기를 어려울 때 안 돕는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서운하게 생각하고 교회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 놓고 가서 “아, 병도 안 고쳐주고... 내가 그렇게 충성하고 열심히 했는데...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세상에 다른 사람은 병도 고쳐주고... 나는 충성파인데.” 그럴 때 “에이, 헌금이고 뭐고 긁어서 병원에 가서 고쳐야겠다.” 해서 병원에 가서 고쳤습니다. 그때부터 허공에 빠지는 것입니다. “의사가 최고여. 하나님이 고쳐줄줄 알았더니.”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눙력을 부려서 고쳐주는 사람 따로 있고 의사를 통해서 고쳐주기도 하고 그럽니다. 여러 수백 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모릅니다. 옆의 사람이 꽃 가지고 즐거워하니까 ‘왜 나는 꽃 가지고 즐거워하지 않지? 나도 즐겁게 해주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는 열매 가지고 즐거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자가 가지고 즐거워하고 어떤 사람은 남자 가지고 즐거워하고, 어떤 사람은 이 말씀 가지고 즐거워하고 어떤 사람은 축복 가지고 즐거워하고 가치가 각각 다른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역사하니까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를 보십시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 믿고 섬기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가 많았는지 모릅니다. 빈부의 격차, 씨불씨불씨불 하루종일 하고 ‘하나님이 계시면 왜 이렇게 못살고 잘살게 했나? 하나님이 이처럼 모든 세상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똑같아야지. 그건 좋은 말씀이여. 그런데 실제가 안 그런데?’ 얼마나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화가 나면 산에 가서 나무 심어 놓은 것 다 잘라 없애버리고 “이 나무들아, 네놈들은 내 손에 달렸어. 내가 치면 죽는 거고 내가 캐내면 뿌리가 없어. 알겠어?” 저 밑에서 밭 매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큰 돌을 뒹굴렸더니 막 뒹굴어가니까 사람들이 막 도망갔습니다. “역시 내가 활동해야 돼.” 그때 그랬습니다.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셨지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처음 온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다시 보기 바랍니다. 내가 다시 느꼈더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90%를 항상 도와줬고 나머지 10% 인간이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을 버티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절대적어야 됩니다. 절대 믿어야 됩니다.
앞에서, 예수님이 지옥에 가면 “왜 내가 지옥 갔습니까? 지옥 올 자격이 아닌데 왜 왔습니까?” 하면 예수님은 “너는 나 안 믿었잖아.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나 예수를 안 믿었잖아.” 그 말 뒤에는 안 한다 합니다.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서 믿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이 당신을 이단이라고 악평했는데, 십자가에 죽였는데 무엇을 보고 믿습니까? 죄 지어서 죽었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해도 이유가 없습니다. “너는 내가 메시아인데 안 믿었잖아.”
누구든지 메시아를 안 믿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현들도, 성자들도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안 믿고 메시아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론에다 썼습니다. 무조건 믿으면, 어떻게 생겼든지 무조건 천국 갑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좋아하면 가는 것입니다. 교리를 잘 몰라도 무조건 하나님을 좋아하고 믿고 하나님이 보낸 자가 누구냐고 하고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 열심히 믿겠습니다 했으면 지옥은 안 갈 것 아닙니까.
내가 영어를 잘 몰라서 한번 인터넷을 봤는데, 거기에 이런 뉴스가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인가 그쪽쯤의 여자 스님, 아가씨 스님 비구니가 죽었는데 완전히 죽어서 묻을 정도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살아나온 것입니다. 어디에 갔다 왔냐고 하니까 죽었다 나왔다는 것입니다. 태국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분명히 봤습니다. 한국 인터넷을 떠들어서 보기 바랍니다. 그런데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나 보니까 “너는 지금 여기 올 것이 아니다.” 하더랍니다. 석가모니를 찾고 갔는데 석가모니가 험한 세계에 있으면서 그 고통 속에 있더랍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거기에 있는가 보니까 그것이 아니고 그런 지옥 같은 곳에 있더랍니다. “왜 여기 있냐”고 하니까 “내가 하나님을 안 믿어서. 예수를 안 믿어서.” 그러더랍니다. “너는 가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어라. 그렇게 외쳐라.” 그 승려가 그래서 계속 외쳤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막 따르고 했는데 그 사람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인터넷에 찾아보기 바랍니다.
선생님인 쓴 구원론에는 나와 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메시아를 안 믿으면 나부터도 지옥 간다.” 나는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메시아를 믿어야 됩니다. 만일 내가 메시아라면 내 말을 내가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으로 나오니까 믿고 행치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누가 내 부모냐, 형제냐. 내 뜻대로 하늘 뜻대로 하는 자라야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밀림 속에서 전쟁하다가 전투할 때 나침반을 안 믿으면 죽습니다. 방향이 다른 데로 가기 때문에 나침반을 믿어야 됩니다. 그와 같이 절대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내가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20년 전부터 외쳐왔지 않습니까. 그 설교를 듣고 배수연 목사님의 어머니 권사님이 그 10시간 설교를 듣고 “야, 불교법보다 더 깊은 말씀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내가 구원을 못 시키는데 자꾸 나한테 구원을 시켜달라고 하면 그 얼마나 난처하겠느냐. 성현들도 마찬가지다. 구원을 받으러 나타난 것이다. 전부 구원 길을 찾고 있지 않느냐.”
4대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르쳤고, 석가모니는 인생무상을 가르쳤습니다. 무상하니 무상치 않은 길을 찾아라 가르쳐줬습니다. “긍휼을 베풀고 살으라” 했습니다. 공자 선생은 “부모를 공경해야 돼. 부모 공경하다 보면 하늘 공경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요?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사천리로 하나님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옆에서 같이 살다가 온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그 나라를 상속받으리라.” 했습니다. 성인이라 할 수 없이 제일 큰 어른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종교에서는 예수님이 늦게 출발했다고 아기 취급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종교를 공의롭게 생각합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다면 “거기에도 일부 가라. 교회도 없으니까.” 그럴 것입니다. “불교도 가고 유교도 가고 소크라테스도 믿으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내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성서를 보고 모든 이치를 보고 영계를 뒤져도 그것이 아닙니다. 절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고 이 시대는 또 내 말을 믿어야 됩니다. 믿고 따라야 됩니다. 꼭 믿어야 됩니다. 믿음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스님들하고 굉장히 친했습니다. 같이 이야기도 하고 나를 보고 스님이 크게 된다고 했습니다. 크게 된다고 해도 내가 크게 되는 것이 뭔지 몰랐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크게 쓰이는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안 해줬다고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무엇 안 해줬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해줄 것 다 해줬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것은 혹시 못해줬다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해줄 것은 해줬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안 해줬겠느냐 믿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애인도 해줄 만큼 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안 해주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직접 갖다 주지 않아도 다 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안 해준다고 할 때는 늘 원망과 불만과 힘들었습니다. 아주 옛날에, 10대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해준다고 생각했을 때는 해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기뻤습니다. 실상은 안 해줬습니다. 산에 있을 때 ‘하나님이 다 나를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안 됐는데도 마음부터 그렇게 기뻤습니다.
엔돌핀이 있지 않습니까? 하늘 앞에 감사할 때 엔돌핀이 생깁니다. 최첨단의 엔돌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해야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병도 안 들고 늙지도 않고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픈데 안 낫겠다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 해줘서 그것 가지고 간증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어떤 한 사람을, 자기를 오해하고 하나님을 오인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마음을 돌이켜서 도와주고 능력을 일으켜서 함께해 준 다음에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을 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대개 그런 일을 많이 하십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금 인정하고 다시금 감격하고 살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딪히면 안 되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말을 안 하십니다. 너무 크고 크신 존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법칙을 벗어났을 때는 스스로 자신이 발이 넘어지고 다치고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우리가 알고 삶을 살아야 됩니다.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덜 도와주는가 봐. 왜 덜 도와주는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 행위만큼 도와줍니다. 그런데 지금 열심히 했어도 나같은 입장은 때가 되었을 때 10년, 20년 후에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왜 금방 안 주나?’ 하지만 한 달 동안 일하고서 한 달 있으니까 봉급 주듯이 그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러지 않습니까. 하루 계산이 있는데 그것은 노동팔이입니다. 노동할 때 금방 하루 만에 돈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돈 있는 회사이고 좋은 회사는 한 달쯤 일하고서 한 달만에 탁탁 줍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것도 그런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1년 만에 주는 것도 있고 저와 같은 입장은 15년 후에, 어떤 것은 20년 만에 주더라는 것입니다. 줬어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보니까 믿겨졌습니다. ‘아, 이제 왔구나. 역시 내가 노동의 삶을 한 것이 아니라 신사의 삶을, 권위 있는 삶을 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하나님께 늘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느냐? 은혜 받고 싶은데.’ 합니까? 감사하면 은혜 받습니다. 고마워하면 은혜 받고 감사하면 은혜 받는 것입니다. ‘받은 것도 없는데...’ 무조건 그동안 받은 것 이야기해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그렇게 줬기 때문에 정당으로 받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고맙네요.” 하면 “그래. 나도 고맙다. 귀엽다. 네가 감사하니까. 받았다고 깨달았으니까.” 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고 하늘이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나를 보십시오. 괜히 제가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하나님, 나를 왜 못생기게 만들었어요? 하나님이 세상 만들었다면서요?” 그랬었습니다. 부모한테는 못합니다. 그러면 얻어맞습니다. 그때는 코수술 때도 아니고 입 수술 때도 아니고 성형수술 때도 아니니까 돈이 있어도 못하지만 하나님께 왜 못 생기게 만들었냐고 그렇게 불만불평을 했었습니다.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듣는 사람들이 “지금은 그러면 성형수술 정형수술 했어요?” 할 것인데 안 했습니다. 전혀 칼은 댄 일이 없습니다. 전혀 안 댔습니다. 면도칼은 댔습니다. 이마 넓어지라고 민 것은 있지만 그 외에는 나머지는 안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있는데 왜 지금은 감사합니까? 바보 같이 그때 당시 시골에서 있을 때는 얼굴이 태양에 그을리고 일하느라 얼굴 시커멓게 되니까 못생기게 보였던가 봅니다. 성장기간에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얼굴 자세히 보고 못생겼다고 막 고치지 말기 바랍니다. 잘 보고 고쳐야 됩니다. 적어도 나한테 보여주고 고치라는 것입니다. 내가 딱 보면 잘 압니다. 왜? 여러분의 머리통을 가지고 영계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얘가 좀 못생겼다고 고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못 만나면 내가 그 사자들한테라도 만날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사자들이 “얘는 고쳐야 되겠네요.” 그런 사람은 고치라고 코치해주고 그러나 “왜 이 개성의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얼굴을 고칩니까?” 할 때는 그냥 가지고 내려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보세요. 그때는 불만이었고 그때 당시 못생겼다고 성형수술을 할 수 있었으면 아마 밤에 가서 바로 뜯어고쳤을 것입니다. 그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지금 와서는 감사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때보다 더 젊어진 것도 아닙니다. 수십 년, 43, 44년을 지났으니 더 늙었지 않겠습니까? 늙었는데도 왜 감사하는가 하면, 역시 정신머리가 살고 양심짓을 하니까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살피시는데 스스로 자기가 그런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하늘의 말씀을 들어보자. 철학자의 말씀도 아니요, 어떤 학자들의 말씀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쳐다보면 나는 얼굴 내놓고 싶지 않아.’ 내놓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한테 내놓으십시오. 칭찬받으려면 나한테 내놓으십시오. 그러면 내가 얼굴 수술 해주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는가 하면 칼 안 대고 합니다. “하나님, 얼굴 뺄 데는 빠지게 해주세요.” 그렇게 살 가지고 합니다. 그러면 광대뼈가 조금 올라옵니다. 또 하나는 머리 가지고 합니다. “큰 머리는 옆머리로 가려라.” 누가 지나갈 때 머리를 확 걷어보고서 “어휴 얼굴 너무 크네.” 그럽니까? 그러니까 머리로 가리고 다니면 됩니다. 그러면 뾰족하니 조그맣게 보입니다. 얼굴이 너무 작다고 원망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싹 까서 상투를 꽂고 다녀보십시오. 그러면 얼굴이 커집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연구하고 자기를 어떻게 할 것을 알고 지내야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고민하고 그렇게 인생을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괜히 지가 지옥 만들고 지가 천국 만들고 지가 웃고 미친척하고 삽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중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들끼리 누가 진짜 잘못해서 이야기하면 그것은 고쳐야지요. 그러나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형제들이 오인하고 그러면 ‘나를 몰라서 그래.’ 하고 가서 이야기도 해주고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형제들이 나를 오인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있어요.”하면 내가 “그렇지 않다.” 하면 말씀 때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데 대해서 튼튼한 마음을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뭐 또 여기 오니까 미움 받고, 여기 오니까 사람들이 나한테 미운털 박혀서 미운오리새끼...’ 그런다고 안 나오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누가 지랄해도 오직 하나님만 좋아하시면 되니까 굳건한 마음 가지고 열심히 다니고, 혹시 지도자들이 윗사람들이 그런 말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혼나기도 하고 저렇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 책망도 받는 것입니다. 나도 수백 번, 수천 번 혼나 가면서 여기까지 컸습니다. 자기가 신이 아닌 이상 책망거리가 있고 모순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옆에서 이야기할 때는 본인이 그것을 모릅니다. 의인도 책망하는데 더군다나 모순자는 책망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자기를 생각하면서 마음 넓게 살라는 것입니다. 나를 만났으니까 나한테 일러바치고 손해갔으면 내가 잘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그러면서 섭리를 뛰고 달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는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보는 눈이 잘 봐야 됩니다. 알고 말하라. “알고 말해!” 하나님께서 “알고 말해! 모두 알고 말하라고 하라.” 알지도 않고 말하고 알지도 않고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제 맘대로 자기 주관대로 보는데 그런 것도 참고해야 됩니다.
바다에서 보면 새우가 불만이 많습니다. 왜 많은지 압니까? 고래만 지나가면 저기로 밀려갔다 와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결혼식날 결혼하려고 오다 보니까 물이 싹 지나갔는데 자기 신부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습니다. 너무 환장하고 이 새끼 죽인다, 배때기를 완전히 다 물어뜯어서 없애버린다고 합니다. 불만이 많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고래를 또 없앨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 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다보니까 바로 옆에 신부가 와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결혼식 하고 오는 것입니다. 그 나름대로 하는 것입니다. “어, 고래가 지나감으로 인해서 오늘은 완전히 딴 세상에서 결혼식했네.”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새우들이 죽인다고 해봤자 그것은 엔돌핀이 아니라 완전히 분노의 분돌핀만 생깁니다. 그런다고 하나님께서 고래를 죽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 가면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우리가 여러 환난과 어려움도 이기면서 살고 웃어가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환난이 왔어도 ‘왜 그런가? 왜 이런가? 내가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왜 가정이 또 일어나지? 뜻이 아닌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번 뜻이 있으면 좋은 것은 계속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주일날 설교를 들어보면 다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다 아시니까 말씀하십니다.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있는 섭리나라, 50개국을 알지 않습니까. 거기를 보고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금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심판 후에 이상세계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에 “공의로 허리띠를 삼고 악인을 죽일 것이고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성실로 몸에 띠를 띠고 살 것이다. 그가, 메시아가 오면 자동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때가 되면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게 되고 서로 이해하고 알고 물지 않는다.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들이 함께 잡아먹지 않고 있는다.”
호랑이가 배고파서 빼짝 말랐는데 살진 양이 있으면 안 잡아먹습니까? 그것을 못 잡아먹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상세계가 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호랑이와 사자의 이상세계가 아니고 동물 이상세계가 아니고 호랑이 같은 사람, 염소 같은 사람, 들이박기를 좋아하고 물어뜯기를 좋아하고 뱀같은 사람, 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물어 뜯기기만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서로 그렇게 못하게 하면서 공의롭게 다스리니 그렇게 될 수밖에 더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곳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나는 혼자 못 다스립니다. 하나님이 내 입을 통해서 온 백성들, 이 시대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상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냥 “형만 고쳐라.” “동생만 고쳐라.” “너나 고쳐라.” “누나만 고쳐라.” “또순이만 고쳐라.” “교역자만 고쳐라.” 하지 말고 서로 고치자는 것입니다. 고칠수록 빛이 나는 것입니다. 석공예를 해서 돌 조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고치고 뜯어내는 대로 멋있게 다듬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빛이 나는지 압니까? 하도 환난과 어려움으로 얻어맞아서 그때마다 ‘어, 회개해야지. 이것 때문에 죄지은 것 아녀?’ 하고 맨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맨날 고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치면서 사는 것입니다.
칭찬보다 책망이 나쁘지만 결국 그것을 실행하면 본인에게 더 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팍팍 잘라내지를 못합니다. 겁나서 무서워서도, 욕 얻어먹을까봐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누가 지적하면 “고맙습니다. 하나님이 형제를 통해서 나를 지적한 것 같다.” 그래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한테 지적하려고 하다가도 겁나서 좋은 게 좋다고 놔둡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반드시 “이건 잘못했다. 내가 볼 때 정확하게 잘못했다. 이건 고쳐야 된다. 이것은 정말 잘 했다. 고치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라.” 지도자들은 그렇게 해줘야 됩니다. 두 가지입니다. 너무 지적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지적 안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래도 안 됩니다. 좋은 약은 쓴 것입니다. 산삼도 씁니다. 얼마나 쓴지 모릅니다. 그래서 못 먹습니다. 쓰지만 일반 삼의 100배, 200배의 효력을 발생합니다. 간에는 쓴 것을 꼭 먹어야 간이 좋아집니다. 피곤할 때, 잠깐 피로할 때는 단 것을 조금 먹어야 됩니다. 많이 필요 없습니다. 그때는 단 것을 먹어야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자기를 만들어 가자. 나도 나를 안 만들어 놨으면 이렇게 하나님이 쓰겠냐? 안 쓴다.”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대로 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자기를 만들어라. 아무리 위대한 말씀을 해도 자기를 안 만들면 필요 없다. 아 만들면 자기가 여기에 와서 육신 쓰고 있을 때 조금 위로생활 했을 뿐이지 천국을 어떻게 상속받을 수 있느냐. 못 받는다. 천국은 땅에서부터 이루어져 간다. 지금. 땅에서부터. 자기가 천국을 찾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료를 주었다. 이 시대를 주었고,”
이러면서 어디에 있어도, 어떤 주관권에 있어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 할 수 없는 환경인데 하는 사람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제 새벽에 기도하는데 한 40개의 잠언이 왔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는 사람이야. 그 사람은 할 수 없는 환경이 와도 다 하는 사람이야. 그가 훌륭하다. 환경이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사람은 얼마나 밉겠냐. 얼마나 싫겠냐. 얼마나 소득이 없겠냐.”그랬습니다.
여러분들, 할 수 없는데도 하는 사람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은 할 수 없는데 합니다. 그것을 자부심을 가집니다. ‘야,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인데 나는 한다.’ 하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나는 할 수 없는데 한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한다. 환경은 안 되지만 한다.’ 할 수 없는데 하는 것입니다. 길이길이 그렇게 하면서 해야 되겠습니다.
이상세계를 말씀했지요?
“서로 형제들끼리, 섭리사의 사람들끼리 서로 화목하라. 서로 하나되라.”
오늘 이 시간 말씀하는데, 온 세상은 일률적으로 12월이 되어서 문제가 아니라 전부 화목해야 됩니다. 하나 되어야 됩니다. 그것을 안 하면 아무리 날고 기는 사명이 있어도 열심을 안 알아줍니다. 안 알아주고 하나님께 올리지를 않습니다. 하나님도 안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화목해야 됩니다. 그것이 큰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형제들끼리 화목해야 되고 인사성도 있어야 되고, 잘했다고도 하고 수고했다고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역자인데 잔뜩 부려먹고 수고했다 소리도 안 합니다. “정말 수고했다. 너무 잘 했다.” 해야 됩니다. 아니, 노동판에 가서 하루만 일해도 돈 주면서도 참 수고했다고 합니다. “오늘 참 수고했습니다.” 그 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수고했다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돈도 안 주면서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했는데 수고했다고라도 해야 됩니다. 그들이 전도 안 하면 누가 합니까. “당신, 수고했어. 너무 수고했어.” 입술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 행한 만큼은 칭찬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 형제들끼리 화목하라.”
집의 부모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형제끼리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싸우는 것을 좋아합니까? 서로 일러바치는 것을 좋아합니까? 서로 우애있게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로 우애있게 지낼 수가 없는데 우애있게 지내면 그것은 정말로 위해주고 싶습니다. 정말 기특하고 정말 좋습니다. 그렇게 지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지적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지적자만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뭔가 있어서 지적하니까 또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적해도 모릅니다. 지적해도 모르면 안 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서 고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회개하고 심판하고 공의롭게 하면 이상세계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상세계가 일어났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또 미워했지요? 죽였지요? 그래도 기독교는 그런 환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 나름대로 계속 공의롭게 화평하게 지냈습니다. 워낙 예수님을 죽이고 환난이 많이 있어서 못했지 그 나름대로 공의롭게 지냈고 그 나름대로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것은 하나님이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하나님이 가르친 대로 해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같이 앉아서 대화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나와 같이 하나 되고 살려면, 하나님의 이 시대의 이상세계를 펴려면 내가 말한 것을 지켜야 되지 않겠냐. 그렇지 않으면 나를 멀리하는 자요, 나를 반대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이 화목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다 해야 됩니다. 거기는 하나만 빠져도 안 됩니다. 다 화목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10명이 있으면 10명이 다 씻어야 됩니다. 다 깨끗이 옷을 입어야 됩니다. 그래야 냄새가 안 풍기고 향기가 풍깁니다. 9명만 하면 안 됩니다. 다 해야 됩니다. 화목도 다 해야 됩니다. 화목치 못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무엇이 되지요? 왕따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왕따가 됩니다. “화목하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했으니까 화목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공의롭게 해야만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내가 다닐 때만 해도, 내가 서른두 살, 서른세 살, 서른네 살까지 기독교를 다녔는데 그때까지 이 본문말씀을 주석에도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이 오시고 메시아가 오시면 양과 염소가 하나되고 동물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이상세계가 일어난다. 반드시 송아지도 사자와 같이 논다. 사람들도 서로 싸우지 않게 논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 이상세계를 말한 것이 아니고 인생들의 이상세계를 말한 것입니다.
양, 염소, 이리, 사자, 소, 뱀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압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야곱의 아들이 12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12아들로 이스라엘 나라에 12지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2아들을 전부 한 명씩 야곱이 별호를 지어줬습니다. “너는 사자 같다. 너는 뱀 같다. 너는 염소 같다. 너는 양 같다.” 이렇게 지어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희 형제끼리도 싸우고 지파끼리도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싸웠지 않습니까? “그렇게 싸우던 형제들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오면 너희들이 싸운 것을 공의롭게 심판받고 회개하면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12지파가 서로 천국을 이루면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모시고 살 것이다.” 이 예언이 사실상 그 예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왔을 때 12지파가 서로 하나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보고 “너는 이단이다.” 하고 저희들끼리 서로 싸우고 바리새인파와 사두개인파가 서로 싸우고 신진파와 구진파가 서로 율례를 지킨다 안 지킨다 하며 싸우지 않았습니까. 12지파는 내내 야곱의 한 씨에서 나왔습니다. 정자는 똑같습니다. 다 야곱의 정자 씨인데 배는 다릅니다. 야곱이 배가 두 배가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큰 부인과 작은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밑에 또 있었습니다. 몇 명이 낳아서 그 아들딸을 낳았는데 아들 12명이 그 족속을 이루었습니다. 남자만 쳐서 12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왔을 때는 이미 족속을 이루어서 12지파를 이루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이 오면 모시고 섬기면서 공의롭게 심판을 받고 깨끗함을 받고 천국을 이루고 이상세계를 이룬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성경이나 기독교 목사님 성경이나 똑같습니다. 이것을 그렇게 해석 안 하고 동물 이상세계로 주석에 다 써놓았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이미 30년 전부터 그것이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고 이단 소리를 한 것입니다. “왜 동물을 빼느냐? 근본은 동물의 이상세계다. 문자 그대로 봐야 되지 않겠냐.”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답답하지요? 여러분, 처음 오는 사람들은 “아, 그렇습니까?” 하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보내는 메시아가 이 시대에 오면 야곱의 열두 지파가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열두 지파 같은 종교가 하나 됩니다. 지구촌의 열두 지파와 같은 그 지파들이 하나 됩니다. 열두 지파 같이 열두 종교들만 하면, 불교, 유교, 기독교 등등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내 이 말을 듣고 하나되리라. 하나님의 보낸 자 메시아 말을 듣고 하나되리라.” 그가 내가 됐든지 여러분이 됐든지 누가 됐든지 역시 그가 메시아라면 그 말을 듣고 모두가 하나되리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종교가 하나되면 좋은데 하나가 잘 안 됩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그 종교가 이단이라고 해도 죽어도 따라갑니다. 그 교주가 죽었는데도 따라갑니다. 그전에 무슨 종교가 있었는가 하면 자기는 영원히 산다, 절대 안 죽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래돼서 잊어버렸는데, 대전 근방 계룡산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절대 안 죽는다. 나는 영원히 산다. 육신이 변화하면서 그대로 영원히 산다.” 그런 종교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압니까? 그 교주가 여름철에 너무 더워서 계곡에 가서 수영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지도자들이 조용히 가서 시신을 갖다가 가둬 놨습니다. 그래서 살아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살살 이 지도자 저 지도자에게 이야기해서 결국 죽은 것을 외부에서 알았습니다. ‘그 사람이 죽었구나.’ 일주일 동안 놓고 살아나라고 기도했답니다. 역시 영영 죽었습니다. 가서 묻었습니다. “이분은 언제 올지 모른다. 바로 온다. 필시 바로 온다.”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확실히 알고 살고 알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하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모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나는 가르쳐줄 테니까 와서 말씀을 듣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전혀 아닙니다. 이번 주일쯤 되면 아마 새벽에 받은 영적인 세계의 깊은 말씀들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 주일말씀에는 다 못 나올 것입니다. 이것 말씀 두 군데가 끝나면 이 잠언 말씀이 나옵니다. 앞의 말씀 18장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지난 새벽에 40개 중에서 5개 해줬지요? 이것을 금주에 다 보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나올 것입니다.
이상세계는 끝났습니다. 이상세계를 이제 확실히 알았지요? 또 마태복음의 말씀을 떠들어볼까요? 왜 요즘에 성경을 떠들라고 하는데 안 떠들지요? 떠들으라고 하니까 막 소리내서 떠들기만 합니다. 그렇게 떠들지 말고 성경을 떠들라는 말입니다. 왜 오늘 성경을 안 가지고 왔습니까? 성경 안 가지고 온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 ‘아, 창피한데 왜 손까지 들라고 해요?’ 내가 다 압니다. 오늘 처음 교회 온 사람은 성경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이 있으면서 안 가지고 다니냐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큼직한 놈을 가지고 다닙니다. 내가 힘이 좋아서 이렇게 큰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누가 사줬습니다. 이 성경을 누가 사줬는지 볼까요? 이름도 안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대충 누가 사준 것을 압니다. 이름을 안 써놓았습니다. 이름 쓰면 자기 낯난다고 할까봐 이름을 안 쓴 것입니다. 이 성경을 내가 본 지가 벌써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벌써 꿰장이 나는데, 괜찮습니다. 또 사서 보내지 마십시오. 이것은 남자 상록수가 보낸 것으로 내가 알고 있습니다. 거죽도 잘 쌌습니다. 계속 지금 보고 있는데, 여러분들 교회를 올 때 성경을 갖고 와야지 왜 안 가지고 다니냐는 것입니다. 성경 떠드십시오. 오늘은 옆의 사람 것을 보십시오. 성경이 작은 것이지 않습니까? 이것도 못 갖고 다닙니까? 갖고 다녀야 되겠습니다.
나는 옛날에 성경 안 갖고 다니면 마치 위험한 전쟁터에 무기를 안 갖고 다니는 군인 같은 입장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허전해서 성경 갖고 밭에 가고 성경 갖고 산에 가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가다보니까 뭔가 서운했습니다. 보니까 먹을 고구마는 포켓에 갖고 왔는데 성경을 안 갖고 온 것입니다. ‘이런, 내가 육적인 사람이구나.’ 하고 얼른 집에 가서 성경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읽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다 보셨습니다. 여러분들 성경을 꼭 갖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오늘 마태복음 24장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날에 환난 후에...” 몇 장입니까? 마태복음 24장이라고 해줬지 않습니까. 24장 29절입니다.
“그날에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못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막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막 흔들리리라.”
말세가 되면 막 해가 변해서 핏빛처럼 되고, 달이 빛을 못 내고, 별들이 막 떨어진다고 해서 기독교에서는 전부 정말 말세가 되면 이렇게 된다고 하고 아직 안 떨어진 것 보니까 아직도 말세 안 왔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해하고는 상관없고 별하고는 상관없고 달하고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이 비유만 든 것입니다.
해는 지도자입니다. 달은 지도자를 받쳐주는 대상, 별들은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정치로 보면 해는 대통령, 달은 옆에서 딱 붙잡고 모시는 사람들이 달 같은 사람들이고 그 따르는 사람과 백성들은 별로 보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다 떨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새로운 시대가 오면 우수수 떨어지지 않습니까? 지도자가 바뀌면 그냥 3만명, 4만명의 정치인들이 싹 바뀌지 않습니까. 심할 때는 저 밑의 이장, 반장까지 바뀌지 않습니까? 그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가 오면 종교도, 역사의 무엇도 싹 바뀌는 것입니다. 옷도 그렇지 않습니까. 봄만 되면 겨울옷이 싹 바뀝니다. 봄이 왔는데 누가 밍크코트 비싸다고 그놈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동물 취급 받으려고?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것을 짊어지고 땀을 삘삘 흘리고 다녀.” 그럴 것입니다. 여름철인데 누가 선물로 줬다고 해서 귀하다고 털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싹 바뀝니다. 그와 같이 새로운 세계로 오면 지도자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그날에 환난 후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빛을 내지 못하고 달도 빛을 못 내고 별들도 떨어지고...” 했는데 그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성경 해석한 것을 보십시오. 주석을 보면 전부다 어디에서 주워 들었는지 “해가 떨어진다. 빛을 못 낸다. 달이 떨어진다. 별들이 떨어진다.” 했습니다. 별이 하나 떨어지면 지구상이 다 박살나 버릴 것 아닙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을 별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너희 자손을 별과 같이 믿는 사람이 많아지게 해주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들이 절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총리대신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미움을 받던 사람이 외국 가서 총리대신이 되었는데 형제들이 와서 부모님과 같이 엎드려 요셉 앞에 절을 했지 않습니까. 아버지를 해, 엄마는 달, 형제들은 별이 되어 결국 그 꿈대로 절을 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순수하게 이루어지는데 그냥 거하게 이뤄질 것으로만 생각하고 지구상에 이상세계가 이루어지고 천국 되면 완전히 먹을 것도 안 먹고 공중으로 다 올라가 버리고 공중에서 이상세계가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지구라는 공중에서 하나님이 보낸 자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살고 서로 형제끼리 하나 되고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웃으면 그 웃음이 미쳐 버립니까? 지구에서 맛있는 것 먹으면 그것이 배탈 납니까? 지구에서 서로 사랑하면 거기에서 사랑이 배탈 납니까? 뭐하러 공중까지 갑니까? 공중까지 가서 어떻게 하려고 갑니까.
이 사람도 비행기를 한 3천 번 이상을 타본 사람입니다. 공중에서는 있을 곳이 못 되었습니다. 내가 비행기에서 동전을 갖다가 떨어트렸습니다. 못 떴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뜨겠냐?” 예수님이 나에게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저 지구에서 한다. 어떻게 공중에서 이상 세계를 하냐?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구라는 공중에서 한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고 따르는 것, 그것이 휴거다.”
나를 가르쳐줬으니까 하지 안 가르쳐주면 어떻게 합니까? 누가 가르쳤냐 하면 예수님이 나를 가르쳐주고, 또 그렇게 집중적으로 내가 기도를 했습니다. 20년에서 30년을 말씀을 가르쳐 왔으니 그것을 정중히 가르치는데 “왜 나는 아는데 모르냐?” 나는 그런 이야기는 잘 모릅니다. 그것은 하면 안 됩니다. 감점입니다. 왜? 나는 가르쳐줘서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르쳐주면 아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너는 못 하느냐?”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나이 먹고 노련해져서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어려서 못 한다. 앞으로 할 수 있다. 나이 먹기 전에 너희들은 더 빨리 할 것이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낙심치 말고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믿는데 나는 얼마나 낙심했는가 하니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낙심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낙심은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큰 형이 나에게 가르친 것이 있습니다. 광석이 형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너는 포기하지 마라. 낙심하지 마라.”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나머지는 머리에 들어온 것이 없습니다.
또 작은 형은 나에게 가르쳤습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오래 가야 돼. 오래 가야 돼. 너 큰 사람 되고 싶어?” 내가 산에서 기도할 때 나무 하러 와서 우리 인석이 형, 둘째형이 와서 그랬습니다. “너 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때는 큰 사람 될 생각도 안 할 때였습니다. “너, 큰 사람이 되고 싶으면 오래 가야 돼. 오래 동안 가야 돼.” 그리고는 “나 갈란다. 나 나무 해 갖고 집에 갈게. 집 걱정하지 말고 공부해. 공부 못해서 공부 소원이니까. 내가 대신 할게.” 그러고 갔습니다. 그 이야기 한 것만 생각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오늘 설교할 때 다 잊어버려도 뭔가 생각할 것이 있고 뭔가 깨달을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깨닫기도 하고 적게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래는 내가 없으면 만물로 깨닫게 해줄 것이고, 자기 스스로 깨달아지게 할 것이고, 꿈으로 깨닫기도 할 것이고, 영감으로 깨달아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온 지구상에 이 복음을 듣는 50개국 나라에서 같이 동일하게 듣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떡끄덕 하면서 너무 통역이 빠르니까 통역 받아가면서 듣고 있습니다. 한 번에 다 못하니까 핵심만 지금 통역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세밀하게 통역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천천히 해야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직접 말씀을 들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한국은 말씀을 직접 들으니까 전도가 다른 나라보다 50배, 100배 더 된 것입니다. 물론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도 그렇지만, 복음이 한국에서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언어 때문에 그런 것도 많습니다. 여러분들 언어를 빨리 배워야 됩니다. “외국 사람들, 한국어를 배워라. 배워서 이 복음을 전하라!”
예수님 시대 때 히브리어를 중심해서 번져 나갔지요? 빨리 배웠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어권은 영어를 배워서 전하고, 그리고 일본어권은 일본어를 배워서 전하고, 나아가서는 독일은 독일어를 배워서 전하고 막 전해줘야 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 나라에 복음을 들은 사람이 있어서 그분들이 전하니까 좋을 것입니다. 한국의 원어를 듣고서 그렇게 전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부지런히 전해서 하늘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지금 우리 생활 가운데 이루어지게 부지런히 하자.”
이런 해와 달과 별들은 지도자가 바뀌는 것이고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해는 모세였고, 그리고 그 따르는 사람들, 제사장들은 달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모세 하면 완전히 따랐습니다. 그리고 별 같은 사람들은 그때 시대에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와서 예수님이 기다린 역사로 가니까 역시, 모세가 또 죽었고, 또 그 때 사람들도 죽었고, 또 그 주관을 받고 있는 사람도 예수님 말씀에는 도대체 비교가 안 되니까 해같이 모두 빛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별처럼 떨어졌습니다. 떨어져서 어디로 가는가 하면 새로운 역사로 오기도 하고 그냥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때는 예수님이 태양입니다. 그리고 또 달 같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면,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달 같은 입장의 제자들입니다. 또 따르는 신약권의 사람들이 별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의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하게 되면 또 그 시대는 문을 닫아야 됩니다. 해가 어두워지듯이. 오늘의 해는 오늘이 지나면 어두워집니다. 달도 밤이 와야 비춥니다. “내일의 해가 다시 빛나듯이 그런 이치다. 똑같다.”
새로운 역사로 역사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의 말씀을 들으면 다 풀립니다. 풀어가면서 역사를 펴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간 사람을 풀어 내놓고 역사를 펴듯이 어떤 문제를 풀어주고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가는 사람과 역사를 펴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역사를 펴고 가는 시대다. 열심히 알아서 하라! 열심히 하라. 하나님의 역사가 왔기 때문에 많이 하는 사람은 많이 받을 것이요, 적게 하는 사람은 적게 받을 것이요. 많이 하라.”
그런데 자꾸 말이 안 들어집니다. 본인의 마음이 아닌데 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그러면 뺨을 때려가면서 하십시오. 나는 그전에 안 돼서 책상에 칼을 꼽아놓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데 마음대로 안 되었습니다. 일찍 안 일어나지고 내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렇게 각오를 하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지금은 시대가 시작 되어서 가는 시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역사가 시작 되어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입니다. 시계를 볼지라도 지금이 몇 시인지 압니까? 지금이 오전이 아니라 오후입니다. 오전이 아닙니다. 지금이 오후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20대 넘은 사람들은 10대가 아니라 20대입니다. 30대 넘은 사람은 30대입니다. 10대 안에 있는 사람들만, 20살 안쪽만 10대라는 것입니다. 가고 있는데 어떻게 25살 먹은 사람이 자꾸 10대라고 합니까? 10대랑 같이 놀고는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엄격히 역사적으로 볼 때에 지금은 성약 역사입니다. 지난주에 말씀했지요? “역사와 심판.” 성약 역사이기 때문에 성약 말씀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 지금은 성약 역사다. 신약 역사는 이미 지나갔노라. 구약 역사 지나가듯이 지나갔다.”
내가 지금 이렇게 청춘이고 이와 같이 정정하다고 해서 지금 20대입니까? 30대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내가 젊고 애기같이 생겼어도 역시 나이 갖고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은 40대, 30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성약 역사이나 행동은 신약 역사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거기에서 살지를 않습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을 믿고 아는 사람만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안 따라갔으면 지금까지도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가 메시아 아니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예수가 메시아 아니고 아직까지는 하나님이 보낸 이스라엘 나라가 기다렸던 메시아 안 왔다. 모세가 메시아다.” 이렇게 삽니다. 옛날의 모세, 애굽 나라에서 백성들 끌고나온 그 모세를 지금도 섬기고 있습니다. 너무 답답하지요? 답답한 사람을 보면 역사가 지나갔는데 온다고 기다리는 사람, 자기가 기다리는 비행기가 떠났단 말입니다. 차가 떠났는데 지금 기다리고 있는 사람 답답하지요. 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습니까? 깨우쳐줘야 됩니다. 이와 같이 그러하다고 깨우쳐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보십시오. 내가 산골짜기에서 있으면서 찍은 사진을 보면 웃깁니다. 옛날 사진을 보여주면 웃깁니다. 머리도 못 깎아서 길고 한글 겨우 알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알고 왔습니다. 그 엄청난, 지구상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목사님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이 나를 가르치고 덤불, 굴속에서 가르쳐서 나와서 예수님이 보냈을 때
“참, 예수님. 내가 말은 못하고... 참 간판도 없고 신학도 안 다니고 그렇다고 일반 학교도 제대로 다닌 것도 아니고 말도 못하는데, 나를 보내서 일한다는데 예수님만 믿고 갑니다.”
“그래서 내가 나만 믿으라고 그렇게 한 거야. 네가 학문을 배웠으면 학문을 믿을 것 아니여? 학문의 문자를 쓸 것 아니냐? 신학교를 갔으면 신학 문자를 쓸 것 아니여?”
그래서 꼼짝도 못하게 한글만 겨우 배워갖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탁 넣어서 시대에 내보냈습니다.
“야, 이 바보야. 호랑이가 새끼를 내보내면 새끼 때는 도망 다니기도 하지만 새끼가 커서 호랑이가 되면 왜 돼지한테 도망다니냐? 돼지를 잡아먹고 살지. 가서 해봐.”
그래서 가서 했는데 처음에는 물론 그렇게 됩니까? 그저 하나씩 갖다 가르치고 두 명 갖다 가르쳤습니다. 그때 가르칠 때 옷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1년, 2년, 3년, 4년 계속 올라온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들어보면 “여기도 좋지만 다른 데는 벌써 크게 해서 엄청나게 10만 명이 가고 20만 명이 갑니다. 거기는 정말로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때는 참 민망했습니다.
“진리대로 되는지 알라. 네 눈에 이렇게 보이지만 똑똑히 끝까지 따라와라. 여기도 크면 커진다. 거기는 가다 없어진다. 비진리는 없어진다.”
그때는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수십 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 빛이 점점점점 비춰오니까, 해가 뜨니까 별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대에 역사가 지금 이렇게 가고 있다. 오늘 말씀대로 모든 환란 때는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지고 빛을 내지 못하리라.”
환란이 끝난 다음에 여기도 이상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올 것이다. 그것을 보리라. 너희들이 볼 것이다. 보리라. 보리라. 인자가 나타나는 것을 너희를 보리라. 환난 때는 안 나타나지만 환난 끝나고 보리라.”
여러분들 개인들도 환난이 끝나고 모두 왔습니다. 그러나 환난 때는 못 왔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집비둘기도 날아갔다가 바람 불고 비바람이 칠 때는 안 들어옵니다. 주인은 뻔히 압니다. “아, 이 비 그치면 온다.” 바위 밑에 앉아있다 오는 것입니다. 다시 날아 들어옵니다. 이런 입장입니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과 오리라.”
나팔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오시면, 메시아가 오면 나팔 불고 온다고 했지요? 예수님이 언제 나팔 불고 왔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태안에서 나와서 나팔 불었습니까? 커서도 나팔 불었습니까? 30대부터 은밀하게 메시아의 나팔을 분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고서 메시아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 말씀 들어보고 깨달은 것입니다. 얼굴 보고 알았습니까? 얼굴은 똑같습니다. 그러면서 주를 시인하고 따랐습니다. 결국 역사를 폈습니다. 주를 시인하고 믿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 시대의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그가 택하신 자들을 모으리라. 복음의 나팔, 진리의 나팔을 불어서.”
예수님께서 “저들은 외식의 나팔을 부는구나.” 했습니다. 유대인들, 예수님을 불신하고 모르는 사람들, 구약시대의 사람들, 구시대 사람들을 보고 외식의 나팔을 분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구시대는 무엇입니까? 기독교가 구시대 아닙니까? 우리는 신시대입니다. 그래서 여기 오면 모든 하는 것이 다릅니다. 설교 자체부터가 다릅니다. 보십시오. 양복 입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거기는 가운 입고 합니다. 새카만 가운 입고 하는데 요새는 약간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식이 다릅니다. 30분만 하면 그냥 딱 끝납니다. 아르바이트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온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님의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1시간 30분이 되든 그들이 구워질 때까지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꼭 30분으로 틀에 박힌 것, 헌금 틀에 박히게 합니다. 그것을 아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뭔가 잘못되었다. 구조가 잘못되었다. 태생이 잘못되었다. 헌금만 강조하고 뭐하고, 이것은 태생이 잘 못 되었어.”
나는 이 역사를 시작할 때 헌금 나오면 “전부 헌금 가져와! 애들 빵 사줘. 갈 때 빵 먹고 가고 집에 차 못타고 가면 차 태워서 보내줘.” 이렇게 하면서 역사를 해왔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줘야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헌금 갖고서 교회 운영해. 남으면 안 된다. 운영하고서 바로 선교비로 써라. 배고프면 먹여줘라. 거처지를 줘라.” 이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나팔, 외식의 나팔 불지 말고 온전한 나팔을 불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들끼리도 시대의 말씀을 듣고 온전한 나팔을 불면서 가라. 그러면 이상 세계가 이루어진다. 이상 세계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나팔 부니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땅 끝에서부터 오기 시작하면서 줄을 지었더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이기 시작하더라.”
여러분들 모여든 자들이 50개국 나라들이 줄을 지어서 모여들고 30년이 아직 안 됐는데 30년 동안 더 하면 교회 짱짱한 것 하나 만들겠지요? 이렇게 지구상의 50개국 나라를 복음을 넣으면서 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말씀을 수천 번, 만 번 이상의 말씀을 해줬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모두 따라오고, 오다가 못 온 사람들은 힘이 약해서 못 오고, 환난에 넘어지고 비바람에 폭풍우에 넘어지고 이런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이 끝났으니까 모두 역사가 시작되며 이상세계가 이루어진다.”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일말씀 설교인데 사실상 이것을 하라고 했었습니다.
지난 새벽에 5개는 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에 말씀을 너희들만 듣지 말고 다 듣게 하도록 하라. 좋은 말씀이 나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많이 나갔다. 물론 90% 이상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오늘 이것을 하나하나 하면서 안 되면 몇 개만 하고 금주에 계속 할 것입니다. 만약에 금주에 내가 다 못하게 생겼으면, 내일 새벽에도 말씀을 또 받습니다. 새벽마다 할까도 하는데 아직은 이야기를 안 합니다. 내가 또 한다고 해놓고 안하면 안 되니까.
여기에 묵시의 말씀을 잠언으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그 엄청난 말씀을 간단하게 써 놨습니다. 이것을 하다가 시간이 딱 되면 그치고 수요일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겠지요?
이것이 다섯 번까지는 나갔습니다. 여섯 번째입니다.
6. 마음도 목숨도 뜻도 다해야 100점이다.
100점 알지요? “금메달이다. 금메달.” “100점 나온 사람 먼저 쓰지 않고 90점 나온 사람 쓸 수 없다.” 지금도 섭리사에서는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마음도 뜻도 목숨도 다해서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100점입니다. 금메달입니다. 금메달 따면 평생 동안 무엇을 받지요? 국가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늘 국가에서 높임을 받고 섭리나라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뭐가 안 되면 ‘재수 없어서 안 된다. 운이 없어서 안 된다.’ 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안 해서 못 된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이 말씀을 준 것입니다.
7. 자기 잘못을 아는 자를 책망하면 인정하고 좋아하나 알지 못하는 자를 책망하면 오히려 격하다고 대항하고 그를 멀리한다.
여러분들, 책망할 때 잘 보고 책망해야 됩니다. 자기를 깨우쳐주고 이야기를 해야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깨우쳐주지 않고 하면 안 받아들입니다. 이상세계를 이룰 때 꼭 그렇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8. 제자가 잘못함을 말해주지 않은 선생은 제자의 선생이 못 된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선생이 있는데 제자가 잘못하고 있는데 그것을 말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선생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지 말해줘야 됩니다. ‘입장 곤란해서 이야기가 안 나간다.’ 그러면 선생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나도 여러분들이 제자들 아닙니까. 말해줄 수밖에 없으니 말해줍니다. 공의롭게 말하지 않습니까.
9. 하나님은 말로 심판하시고 인간은 행동으로 심판한다.
“하나님은 말로 하는데 사람은 무력으로 때리면서 한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하나님처럼 말로 심판하고 말로 이야기하라.” 알겠습니까? 때리는 것은, 본인이 못하면 본인이 가다가 다치든지 넘어지면 본인이 깨닫고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니면 안 돼! 왜 신발을 끌고 다녀. 넘어져!” 확 혼냈더니 “알았어!” 하고 끌고 가다가 계단을 가다가 넘어져서 코 다치고 마빡이 깨졌습니다. 그러니까 말로 심판하고 말로 이야기하고 인격 있게 대화하면서 웃으면서 대화하고 이야기하면 알아듣습니다. 지금은 15살, 16살만 넘어도 20살 넘은 사람들로 봐야 됩니다. 그렇게 안 보면 정말 코 다칩니다. 부모가 자식을 봐도 자식이라고 막 마음대로 하지 마십시오. 왜? 결국은 부모와 떨어져 살기도 하고 자식과 떨어져 삽니다. 크면서 늘 소외감을 가집니다. ‘왜 남을 보면서는 그렇게 잘해주는데 나는 이렇게 하나?’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격해져서 크면 클수록 효도를 안 합니다. 그것은 자유의지인데 어떻게 효도를 하라고 합니까? 그러니까 잘 하도록 하라. 모든 사람을 잘 보고 잘 해야 됩니다. 그냥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세히 잘 보라.”
내가 동영상을 보니까 누가 이렇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 쟤 걔다.” 했습니다. 보니까 10번 봐도 보였습니다. “어, 어디 춤 잘 추는 애 걔구나.” 그랬습니다. 그 후에 내가 알고 보니까, 그 옆에 춤추는 애는 늘 춤을 잘 춘다고 생각했는데 편지가 오기를 그 애는 힘들다고 선생님이 지금 좀 챙겨달라고 자꾸 편지해달라고 했습니다. “지도자 따라서 춤도 잘 추는데 뭐하러 챙기냐?” 그랬더니만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똑같이 생겼는데.” 그랬더니 “95%, 98%는 걔가 닮았어요.” 그랬습니다.
이와 같이 나도 잘못 볼 때가 있습니다. 닮았을 때 잘못 보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즉시 편지를 써줬습니다. 여러분들도 잘못 보면 안 됩니다. 닮으니까, 한 95% 닮으니까 그랬습니다. 같은 이름이 많아서 나는 막 뭐라고 하면서 편지를 썼는데 칭찬 받을 사람하고 이름이 똑같아서 칭찬 받을 애한테 그 편지가 갔습니다. 보고 혼나고서 나한테 다행스럽게 편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뭐하겠습니다.” 말하는 소리를 내가 들어보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 잘못 갔다고 내가 회개했습니다. “내가 편지를 잘못 보냈다.” “제가 분명히 이름이 같습니다.” “그 대신 내가 이름 하나 지어줄게.” 하고 다른 이름을 지어 줬습니다.
여러분들도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많으니까 그것을 잘 파악하고 모르는 체하고 나 몰라라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한번은 “나 몰라라 하겠느냐!”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애들이 자꾸 말을 안 듣고 하기에 ‘하이고.’ 하고 말아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나 몰라라 하냐? 그러면 누가 하냐? 네가 낳은 자식들인데. 너의 사랑하는 신부들인데. 네 것은 하늘 것인데.” 그래서 그때 당시에 했더니만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나 몰라라 하지 말고 말 안 듣는다고 계속 놔두지 말고 계속 챙겨줘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가서, 하나님은 실제로 심판하려면 만물 가지고 심판합니다. 만물 갖고서 재앙도 내리고 만물로 홍수 나게 하고 가물게 만들고 지진 나고 바람 불게 만들고 태풍도 불게 만들고 여러 가지가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도 심판하십니다.
그전에는 12월 17일인가 그때부터 심판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12월 바로 들어서면서 말씀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른 매도 빨리 맞고 끝나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빨리 청소하고 깨끗이 하고 빨리 뛰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도하는 것은 좋지만 깨끗이 해야 되지 않겠냐.”
반드시 예수님도 책망할 때는 항상 제자들을 책망했지 외부사람들 책망을 안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들이 말씀을 들으면 ‘나 몰라라. 내 것 아니다.’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큰일 납니다. 회개하고 무릎 꿇고 감격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나도 말씀을 들을 때는 새벽에 5시간, 6시간 무릎 꿇고 했습니다. 내가 축구를 하기 때문에 정말 무릎을 못 꿇는다고 예수님께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자유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자유롭게 하니까 해이해지니까 말씀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탁 꿇고 말씀 받고서부터 그때 무릎 펴면서 하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늘 앞에는 항상 정중히 행해야 됩니다.
10. 하나님은 말의 채찍으로 때리시며 심판하시고 인간은 매와 몽둥이로 창과 총과 각종 흉기와 원자폭탄까지 동원시켜서 심판한다.
심판이라고 하면서 합니다. 서로 전쟁하면서 “너네 나라는 원자폭탄 맞고 해야 돼.” 하고서 전쟁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말로 하시는데 인간은 무력으로 한다.
말씀으로 하지 않습니까? “잘 한 것은 잘한 것이다. 본인이 양심을 모두 고치고 깨끗케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바로 역사하신다.”
이 시간에 바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살겠습니다.” 고집 부리고 살고 무지 속에 살아봤자 결국 자기만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함정도 10미터짜리가 아니고 100미터짜리가 아닙니다. 그냥 만미터짜리, 10만미터짜리에 빠지면 그거 기어 올라오는 데만 해도 10년 걸리고 20년 걸립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귀만 듣기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얼른 회개해버리고 딱 끝내버리면 가면서 손 붙잡고 가는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11. 하나님은 채찍으로 때려 심판하기도 하지만 그 말한 대로 되어지므로, 실상 그 말씀한 현실대로 되어지며 심판은 말 심판을 할 수 있다.
12. 우리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해놓았다. 생활 속에 행위대로 받게 만들어 놓았다.
13.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이 제자에게, 상관이 밑의 사람에게 책망할 때 말로 혼내고 대가를 주는 것도 있지만 또 때리는 것도 있지 않느냐? 대가를 주는 것이 아니냐. 감옥으로 보내기도 하고.
14. 인간이 하나님에게 잘못한 것을 불순종한 것 모든 것이 다 죄다. 죄를 짓고 회개치 않으면 말로 책망하고 혼내고 마는 것도 있고 줄 복도 안 주는 것도 있다. 행실에 의한 벌을 주기도 하고, 그 벌을 받은 후에 다시 그 위치에 복직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뜻을 돌이켜 복직할 수 없게 만들어서 사명도 주지 않고 다른 길로 가게 틀기까지 하신다. 종국에 가서는 지옥이라는 곳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것은 복직 못할 것도 있으니 복직했어도 자기 위치로 못 가고 다른 위치로 촛대를 옮긴 것도 있다. 이를 깨닫고 열심히 하라.
그 다음에. 우리가 심판할 때 대개 어떻게 심판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니까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 하면,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면 딱 혼내고 좋게 처리합니다. 사랑을 많이 하면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 문제 때문에 심판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사이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문제가 깨지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문제가 깨졌다 하면 ‘사랑만 내가 가까이 안 한다.’ 하고서 다른 것은 가까이하느냐 하면 아닙니다. 사랑 문제가 깨지면 “다 틀렸다.” 그러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사랑 문제가 깨어져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주와 사랑, 하늘과 사랑, 형제들과의 사랑도 깨어지면 형제끼리도 서로 깨어지는 것입니다.
15. 사랑 때문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미움도 다툼도 복도 형벌도 좌우되지 않겠냐.
지금 15번까지 했습니다. 지난 새벽 5개까지 합해서 벌써 10개 했습니다.
16. 하나님을 진정 사랑치 않고 구원받은 사람이 지구촌에 있다는 말은 아마 못 들어봤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그리스도를 사랑치 않고 구원받았다는 소리는 구원론에서도 못 읽어봤을 것이고 성서에서도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구원 받고, 사랑 때문에 사명 받고, 사랑 때문에 역사가 일어났다.
17. 성인도, 임금들도, 주권자들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보내신 메시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사망길로 가다가 지옥의 세계로 간다.
지금 이야기하는 잠언은 새벽에 하늘에서 들린 음성을 두려운 몸으로 하나하나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들, 새벽에 와서 이 말씀을 모두 들을 것입니다. “성현들도, 임금들도, 어떤 주권자들도, 어떤 재벌인들도 하나님과 그 보낸 메시아를 믿지 않으면 구원만큼은 받을 수 없다. 그들이 세상에 착한 일한 것은 착한 것으로 도움 받고 착한 것으로 칭찬받고 끝나지 않았느냐. 전에 소돔 땅을 보아라. 거기 착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너무 사랑도 많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저희들끼리 이성의 사랑을 하였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
요즘에 보면 그 옛 유적품을 다시 발굴해서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 시대 사람들이 보고서 정신 차리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 그랬습니다.
18.
“하나님은 지구의 모든 인생들에게 매일 심판하시고 매일 축복하시고 그 행위대로 매일 사람마다 개인마다, 민족마다, 가정마다, 세계마다 갚고 계시는 것을 너는 아느냐?”
“알지요.”
“외쳐라.”
그래서 주일날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매일 하십니다. 법정 가면 매일 재판관이 재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매일 칭찬하고 상벌 주고 하지 않습니까?
19. 짐승이 사람 손에 잡혀 죽기 전에 그 죽음을 알다 죽듯, 인간도 심판 받고 고통을 당할 때야 그때 비로소 죽음을 깨닫게 되니 탄식할 일이다. 그제야 몸부림치고 그 고통을 벗어나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랬습니다. 누구와 이야기한 것인지 압니까? 영계의 선인들과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입니까? 예수님은 “내가 네 옆에 있다.”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이 쿡 찌르면서 “무릎 꿇어.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 말씀을.” 이 말씀 받을 때 그런 코치를 해줍니다.
여기서 19번까지만 하고서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20. 잡아먹으려고 도살장에 끌고 가는 개를 보았지? 그냥 놔뒀으면 죽는 것이 아니냐. 안타깝게만 생각하지 말고 네가 돈 주고 사와야 안 죽지 않느냐. 나랑 같이 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렇게 했습니다. 마음에 감동 되어서 바깥에 나갔더니만 골목에서 무슨 비명소리가 그렇게도 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를 깊이 할 때 비명소리 나는 비명소리 같다. 지옥 같기도 하네.’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까 개를 잡고 양을 잡고 닭을 잡고 모두 그랬습니다. 잡아서 차로 싣고 멀리 배달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개들은 줄을 지어서 서 있었습니다. 닭들도 여기저기 잔뜩 쌓여있고 토끼도, 짐승이란 짐승은 가지각색으로 다 있었습니다.
어떻게 잡는지 압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개를 잡든지 양을 잡든지 염소를 잡으면 우선 먼저 기를 죽여 놓습니다. 목을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딱 두 다리, 네 다리 벌려놓고 꼭 잡아매놓습니다. 그리고 입도 잡아매놓습니다. 산 채로 몽둥이로 때리고, 거반 죽은 다음에 칼을 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칼을 대서 배를 딱 가르면서 창자를 그대로 끄집어냅니다. 그러면 다 끝난 것입니다. 그 다음 사람이 털을 벗깁니다. 그러니까 눈 뜬 채로 창자가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때 묶어 놨을 때 음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봤습니다. 개 지옥, 동물 지옥을 봤습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주님이 같이 따라다니고 하늘이 쳐다봅니다. 하도 음음 하길래 ‘이게 뭔 소린가?’ 하고 가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비명 소리가 났습니다. 큰 소리가 못 나오게 묶어놨는데 그렇게 살려달라고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것은 살려달라는 것이고 아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개도 딱 묶어 놓고서 칼을 가운데다 박고서 팍 잡아당기면서 싹 잡아당겼습니다. 그것도 여자가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했습니다. 참 도사는 도사였습니다. 맥을 못 썼습니다. 그것을 보는데 옆에 보니까 개가 한 열다섯 마리가 있었습니다. 딱 쳐다보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눈에 띄는 개가 있었습니다. 전부 그것을 보면서 달달달달달달 막 떨고 있었습니다. 서로 안 죽으려고 하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철조망 안에 딱 넣어놨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쳐다보면서 “지옥도 바로 저래. 개와는 다르지.” 그랬습니다.
개들이나 동물들은 사람 말을 안 들어도 팔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르다가 돈 하려고 판 것입니다. ‘이 중에서 주인 말 안 듣고 안 짖고 해서 왔든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불문에 붙이고 동물들은 반드시 돈 때문에 팔고 개 때문에 이사 갈까봐 팔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 사람은 그것이 아니다.’ 의를 행하지 못하고 악을 행함으로 사망에서 이렇게 죽고 있는 것을 나는 봤습니다.
딱 쳐다보고 있다가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다가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내가 개 한 마리를 보고 ‘저 놈을 내가 살려주겠다.’는 마음이 왔습니다. 나는 개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도둑이 든다.’ 이런 것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도둑이 쫓아올 것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 개는 작았습니다. 한 20근 되었습니다. 내가 ‘근대로 재어봤을 때 한 스무 근 되겠다.’ 했었습니다. 그래서 딱 사간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왜 사형을 시키는 이런 개를 사가십니까? 저기 개 파는데 가면 이쁜 개들 많다. 그 놈 사다 기르지.” 그래서 “내가 그것 사가겠다”고 했더니 그 놈 한 마리를 딱 끄집어냈습니다. 끄집어내니까 딱 땅에 들어붙어서 주인을 쳐다보고는, 처음에는 달달달달 막 떨었습니다. “너는 내가 살려줄까? 나 따라가자.” 그래서 돈을 주고 묶어서 내가 가져왔습니다. 결국 거기에서 발버둥쳐서 다치게 되었습니다. 약도 발라주고 “이제 마음 놔라. 내가 너는 안 죽인다. 내가 잡아먹지도 않고 그리고 내가 만일시 다른 사람 준다면 선물로 주면서 절대 잡아먹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 동안 여기 있다가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보내서 부탁할 테니까 떨지 마라.” 그러고서 선생님이 거기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개가 필요치 않은데 왜 개를 사왔나? 평소 같이.’ 그리고 약도 발라주고 그리고 안심도 시켜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그랬더니만 손만 대면 팔딱 드러누워서 달달달달 떨고서 그저 꼬리만 쳤습니다. 개가 고마운 것을 알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봤으니까, 모두 잡아서 창자 끄집어내는 것을 봤으니까, 팍팍 칼을 박는 것을 봤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도 사망으로 갈 사람들을 말씀으로 다 끄집어낸 것입니다. 일단 끄집어냈습니다.
20번째 말씀에 나왔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끄집어내라. 안타까우면 끄집어내라. 안타까운데 왜 그냥 가냐.” 그래서 딱 하나를 끄집어냈습니다. 나머지는 사고 싶은 마음이 안 났습니다. 상징적인 것입니다. 하나를 딱 끄집어내서 그 나머지는 또 사고 싶어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하나는 “왜 네가 거기에서 죽느냐. 너는 거기서 죽으면 안 되겠다.”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망으로 가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여기 섭리로 와야 될 사람들입니다.
“섭리로 끄집어냈으니까 열심히 믿고 따르고 그렇게 되도록 하라.” 나에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이시면서 나에게 깨닫게 했습니다. 주일 단상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말씀할지도 몰랐는데 말씀하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다구요? 뭘 보고 싶습니까? 역시 얼굴이 작고, 다 컸는데 작습니다. 예쁩니다. 예뻐서 사온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개에 대해서 모릅니다. 의를 행한 개인지 뭔지 모릅니다. 일단 내가 마음이 가서 사왔습니다. 나는 생명의 세계는 잘 꿰뚫어봅니다. 그날 그것이 나에게 작품이 되어서 작품으로 샀습니다. 이 소나무도 다 죽었는데 이 소나무 한 나무만 살았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산이, 태산 같은 산을 다 없앴는데 이 나무는 살았습니다. “너도 안 죽인다. 내가 꼭꼭 물 주니까.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입장과 같다. 섭리사에 길이 살고 영원히 살아라.” 이 나무가 지금 한 150년 되었다는데 “천년이나 살아라. 살고 싶을 때까지 살아라.”
여러분들도 그와 같이 되고, 그것을 보고 섬뜩했습니다. 그래서 개만 보면 “하나님, 나도 저런 사망에서 나를 이끌어 냈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늘 쳐다봅니다. 쳐다보면 그 개도 너무 좋아서 쳐다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감격하게 생각하면서 이 시대에 역사 앞에 온 것을 감격하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이야기한 것은 개 이야기가 아니고 여러분들 이야기입니다. “그와 같이 그러했었다. 그와 같이 그러했다. 사망으로 갈 사람들을.”
그 다음에 제자를 보내서 거기를 가보라고 했더니 개가 나머지는 어떻게 됐냐고 하니까 그날 해 넘어가기 전에 싹 없앴다고 했습니다.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냐?” 하고 와서 그 개한테 “너의 동료들, 그날 있었던 개들은 다 죽었다고 한다. 너만 살았다고 한다.” 했습니다. 대물 방언을 내가 하니까 전달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말로 평생 할 수 없다. 너무 감사한 것을.”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감격하고 감사하며 그렇게 지내도록 그렇게 산다면 복이 될 것입니다. 불만 불평 하지 말고 감격함으로써, 못 먹어도 어려워도 잠 못 자도 힘들어도 피곤해도 교회에 주일날 오지 않고 모임도 오지 않고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임 안 오고 공적 모임에 안 오면 안 됩니다. 뭘 그렇게 벌려고, 뭘 그렇게 하려고 합니까. 하늘의 공적 일을 하면서 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뛰라는 것입니다.
항상 사람은 100입니다. 50에서 서 있으면 중립을 지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50, 세상에 50 하면 딱 서 있는데 대개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 보면 60, 70까지 가면 벌써 기울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신앙 주관권이 아니라 자기 육적 주관권에서 합니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을 더 생각하고 더 섬기고 위하고 주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잘되고 형통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20번까지 하고 나머지 아직도 20번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요일 제단에도 말씀하고 못 했으면 새벽 제단도 계속 말씀할 것입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까? 이런 말씀을 하늘로부터 받아서 전하고 가르치니 열심히 뛰고 달리고 시대 섭리의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30개론을 들어보고, 들어본 사람은 다시 듣고 다시 정신 차리고 시대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래야 제대로 말씀이 들리고 뜻 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해됨이 없을 것이고 상함이 없을 것이고 악한 자가 여러분에게 해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망권속에서 계속 살지 마십시오. 거기서는 못 견딥니다. 생명권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모두 이 시간 봉헌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모두 이 시간 봉헌을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기도를 겸해서 말씀 기도와 봉헌 기도를 같이해주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이 시간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기도 및 봉헌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바친 모든 것을 영광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쓰시고 합당케 하시옵소서.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어주신 것을, 늘 주심을 감사하고 또 주시지 않아도 감사할 뿐입니다.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건강을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여러 가지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듣고 새로 온 자들이 결실되게 해주시고 하늘을 섬기고 즐거워하며 이 시대의 구원을 받고 생명의 역사에 동참해 살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온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하나님을 섬기고 즐거워하며 시대의 말씀을 믿고 살게 축복해주시옵소서. 이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에 돌이킬 수가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고 주관해주시고 함께해주시옵소서. 우리가 드린 제물을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도 드리고 청춘도 드리고 젊음을 드리고 하늘을 위해 살겠다고 몸을 드려 살고 있사오니 이들의 몸이 하나님께 귀히 쓰여지게 해주시고, 가정도 모두 하나 되게 해주시고 섭리를 이해하고 깨닫고 시대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고 민족적인 것을 알지 못하고 악평하며 험담하는 자들도 다 하나님께서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흑암들, 어둠들, 밭의 가라지 같은 자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사로잡아주시고 온전케 되게 해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심판하였으니 온전케 되고 모두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 앞에 굴복하며 갈 지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고 주관해주시고 역사해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드리고 봉헌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축도>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그 뜻대로 사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뜻대로 살 수 있게 성령으로 감동과 감화와 역사하심을 주시고 각오를 하고 하면 된다고 하였으니 그런 마음을 먹고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게 축복해주시옵소서. 병듦과 아픔과 상함과 모든 것을 치료해주시고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각자 각 자의 모두 하고자 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면 축복해주시고 함께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시옵소서. 성령의 감동과 감화 역사하심과 인자하심이 날마다 지켜주시고 함께해주시옵소서.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온 섭리나라에 충만하고 이들이 사는 민족 위에도 충만하고 영원할 지어다. 아멘.
말씀 마쳤습니다. 여러분들, 인사하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안녕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음 또 수요일 제단에 만나고 그리고 또 새벽 제단에 만나겠습니다. 바이바이~ 네~ 안녕!
-문서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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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님의 말씀과 시가 있는곳
첫댓글 ㅠ_ㅠ;; ㅎㅎ 감사 ;; 합니다.. ^^
아멘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