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원석아! 너를 그렇게 안동병원에서 울면서 하늘로 보낸지 꼭 일곱 달이 지났다.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이신 두 어른의 묘소 밑에 너의 흙장막집을 지을 때에는 비가 좀 내렸다. 하나님께서 너를 먼저 데려가시면서 눈물로 그 비를 네 관위에 뿌려 주신 것으로 믿고 있다. 청운의 꿈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너를, 그렇게 서른넷 젊은 나이에 보내야 하다니.......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2003년 4월에 일본 와세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유학생활 7년 만에 귀국해 취직시험을 치르고 건강검진 결과 폐암 말기판정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한스러운지....... 내가 교토 도지샤(同志史)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갈때에 너를 데리고 간 것이 크게 후회가 된다. 네가 객지에서 7년간을 공부하면서 무진 고생을 하여 그 몹쓸 폐암에 걸리게 했다고 지금도 크게 뉘우치고 있단다. 너도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네 사역에 좀 익숙하게 숙달이 되어가고 있겠지? 너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네 누나들이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많은 글이 있었더구나. 진작 알았더라면 네가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인데 네 뜻대로 못해줘서 미안타. 시신기증도 못했고 각막기증도 못했다. 사전에 네가 이야기를 좀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시신기증은 못했다마는 각막기증은 그 몫으로 실로암센타에 1인당 30만원씩, 60만원을 보내서 네 이름으로 개안수술을 해 줬으니 안심이다. 실로암안과병원에서 지난 2월달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네 어머니는 가끔씩 네 방에 들어가 책상머리에 놓여있는 영정을 보고 일기를 쓰더라. 쓰는 도중에도 눈물방울이 일기장에 떨어져 번지니 읽지 못하는 부분이 셀 수가 없이 많더구나. 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네가 돕던 몇곳을 확인했다. 너의 뒤를 이어서 내가 계속해서 돕기로 했다. 사랑의 집과 행복공학재단에 매월 조금씩 후원하고 있다. 네 1주기에는 조그마한 유고집을 만들어 네 친구들에게 한권 씩 나눠 주고 싶다. 그건 괜찮겠지? 그래서 원고를 모으고 있다. 너와 함께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했던 친구 다일 군과 종훈 군이 많이 힘써주고 있다. 네가 와세다에서 공부할 때 몇몇 한국인 학생도 너에 대한 글을 보내왔더라. 그리고 너를 많이 사랑해 주시던 보바스 병원 이경순 여사에게도 원고를 부탁해 놓았다. 네가 일본에서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님의 글은 이미 받아 놓았다.
네 외조모님께서 한 달 전에 대퇴부를 다치셔서 안동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았고 4월 25일에 퇴원을 했다. 그리고 어제 우리가 내려오는 김에 네가 용인에서 사놓고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던 접이식 침대를 네 외조모가 쓰시겠다고 해서 삼촌차에 싣고 내려갔지. 경대옆에 놓아보니 아주 잘 맞고 할머니께서 며칠 잠을 주무시더니 쓸만하다고 하니 다행이다. 4월 25일 새벽에 우리 내외와 삼촌내외가 네 장막에 다녀 온 것을 알지? 네가 좋아하던 찬송을 부르고 통성기도를 했다. 그동안 큰집 형님께서 네 장막의 잡초를 뽑고 잔디를 심고 물도 좀 주곤 했다. 또 그동안 묵밭에 들어섰던 아카시아 나무들을 다 베어 냈더라. 앞이 훤하게 잘 보여서 좋더구나. 이제는 땅을 고르고 산기슭 쪽에 도랑을 파내고 들어가는 찻길을 새로 냈으면 하는 궁리를 하고 있다. 물론 자금은 좀 들것 같지만 최소한도로 내 살아있을 동안에 맘 먹었던 대로 한번 너의 장막을 꾸며주고 싶다. 너도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네 덕에 너의 조카들 준석이 형석이 승찬이가 맘대로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다. 네 생각대로 아래층이 비어 있으니 시끄럽다고 원망하며 달려 올 밑층 사람이 없어서 좋다. 너를 그렇게 앞서 보내고 네 어머니는 많이 앓았었다. 주야로 숱한 눈물을 흘리고 식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밤중에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였다.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 두어 달은 치료를 받았었다. 지난 2월 16일 토요일에는 네 사촌동생 수경이가 용산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감은 헝다오군이라고 호주에 사는 청년이다. 네 어머니는 아픔 중에 겨우 참석을 했고 날씨도 퍽 좋았다. 그 예식장 8층 옥상에는 신랑 신부가 탈 수 있는 말과 꽃가마도 있어서 애들에게도 크게 인기가 있어서 사진도 몇 장을 찍었더라. 지난 3월 25일 화요일에는 내가 너의 큰누나가 근무하는 학교에 가서 네 큰 누나의 사표를 내고 왔다. 교장선생님이 조금 당황하더구나. 우리는 사표를 내고 끝내려고 했더니 우선에 4월까지는 병가를 하고 1년간을 휴직처리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다. 4월 12일 토요일에는 내가 내과에 다녀왔다. 며칠 동안 신경을 쓰고 해서 목이 좀 붓더니 1주일간 신경안정제를 먹어보라고 하더라. 일주일 치를 먹으니 지금은 다 나았다. 4월 26일 토요일에 ‘아버지 학교’를 수료하게 되었다. 너의 두 자형과 같이 등록을 하려고 했으나 작은 자형은 바빠서 도저히 안돼서 미루었고 큰 자형과 내가 둘이서 등록을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축복권과 말씀권과 훈육권과 또 신앙전수권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아버지의 영향력이 그렇게 큰 줄도 몰랐단다. 너를 멀리 일본과 미국에 보내놓고 우리 두 내외가 더 많이 기도를 하지 못했던 걸 크게 뉘우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잘 못한 죄로 너를 앞세워 보냈다고 애통해 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 대신에 모범적인 할아버지가 돼서 손주 셋을 보살피려고 한다. 또 어제는 충남 서산에 있는 해미순교성지를 다녀왔다. 조선조 대원군 시대에 천주교인을 박해하여 약 천명을 생매장했던 순교의 모습을 견학했다. 평대원 12기 생 부부를 합쳐서 33명이 다녀왔다.
내 진작부터 너에게 편지를 써야 했는데 좀 늦었다. ‘아버지 학교’에서 편지를 쓰는 숙제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며 아내에게 쓰는 편지도 있었고 자녀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두 누나에게는 이미 써서 부쳤고 이제 늦었지만 너에게도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원석아.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 네 어머니가 너를 덜 걱정하도록 기도하여 다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모든 것을 잘 정리하고 봉사의 길로 나가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봉사를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또 네 마음에도 들지 기도하는 중에 있다. 오랜만에 편지를 쓰면서 네 마음을 너무 무겁게 해서 미안하다. 너는 네 사역을 힘써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도록 노력하여라. 그럼 아들아......안녕! 2008년 4월 30일 서울에서 사랑하는 아빠 적음. |
첫댓글 그런일이 있었는줄 몰랐네요 !!힘든일을 곁으신 아재요 무슨 말이 위로가될지 .....마음 잘 다스리고 건강 챙기세요 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남윤수님이 누군지 다들 아시지요.. 사오아재 아들입니다.
가슴아파요 힘내세요 전 누군지 모르지만 가신님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