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의 2일차 여행은 서호관광이다
오늘은 24시 불가마앞에서 홍여행사의 가이드와 8시에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데 누나가 밖에 비가 온다며
오늘 여행에 대한 걱정을 하며
중국에 와서 형님에게 따스한 밥 한그릇이라도 먹이겠다고 아침 밥과 콩나물 국을 끓인다.
형님은 잘하는 것은 스팸을 후라이펜에 데우는 것도 기술이라며
맛있게 잘 구어 왔는 데 노하우는 후라이팬을 데운 후에 살짝 데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야 후라이팬이 타지 않고 스팸이 맛있게 구워진다(나도 한수 배웠다)
아마 어머니가 바라는 형제간의 우애와 정이 이런 것이리라.
밥을 하니 증기가 빠지지 않아 어제한 밥과 햇반을 먹으니 밥솥에 찬 밥으로 되면
먹기 어렵다며 혼자서 상해에서 터득한 밥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형님이 밥을 다 조그만 프라스틱 보관기에 푸어 놓았다.
옛날에 밥을 할 줄도 모르는 형님이 혼자서 밥을 해 먹고 혼자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넘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비오는 날은 택시를 잡기가 넘 어렵다는 형님의 말에 따라 택시를 태워주겠다는
형님의 말을 무시하고 스마우빙장 입구로 나온다. 택시가 들어오면 5분을 넘길 수 없는
고급맨션이라서 입구의 직원이 한 대를 부르면 한 대가 들어오면서 감시카메라에
번호가 찍히는 시스템으로 고객들의 안전을 중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락가락하는 여우비가 내리는 상해거리를 택시를 타고 24시 불가마에 도착하니
6시 50분경이다. 약간 사정이 있어 여덟시에 도착한다는 버스를 기다리자니
옆에 있는 1004가게에 가서 필요한 필수품들을 사고 오늘 먹을 물, 우유,과자 등을
구입해서 자전거를 보관해 놓은 공간에서 기다리자니 모양새가 좀 그렀다.
뿌연 안개속에서 비내리는 소주행 4차선 넓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여행에 대한
걱정으로 반바지에 샌달 차림의 내 모습이 한 편으론 우스워 보이기도 했지만
옆에 있는 작은 누나는 내 고향(소주?)에 가는 길이라면서 막 웃는다.
연변 출신의 조선족 남자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국인구는 16억에 달하며
한족이 92%에 달하고 8%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소수민족은
중국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와 권력을 차지하기에는 제한이 넘 많아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기껏해야 우리나라의 면장 정도의 지위란다
중국에서는 하는 말이
소주는 문인들이 많아 높은 학문을 할 수 있는 곳이므로 태어나고
항주는 산과 호수를 볼 수 있고 서호가 있는 절경으로 자라고
광주는 다양한 각종 음식이 있어 생활하며 삶을 즐기고
유주는 관으로 쓸 수 있는 잘 난 나무들이 많으므로 삶을 마감하기에 좋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대운하를 파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노역을 하여야 한다는 데서
유래하여 서로가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을 정도로 보기싫을 때
“운하파러 간다”라는 말을 농담으로 쓰기도 한다
이 곳에서는 남녀북남이라는 말이 쓰이는 데
황하를 중심으로 강남은 여자들이 기세가 센 곳으로 주로 상해와 항주가 대표적이고,
북쪽은 날씨가 추워서 남자들의 기세가 센 곳이라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강남이 좋고
남자들은 강북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곤 한다.
오늘의 소주 여행은
호구산-한산사-졸정원-주장(쌍교, 부안교, 심청, 장청, 수로유람선)의 순으로 한다.
소주의 북서쪽 약5km지점에 위치한 40m의 산을 평지에 사는 이들은 산이라 부른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의 맛을 알까.
당대 고승인 한산자가 머물었다는 한산사는
천축의 불경을 전한 삼장법사와 손오공 등이 등장하는 곳으로
목조로 지어진 2층탑에서 맞은 편 지붕으로 돈을 던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특징은 삼장법사 불상만 100여개 있었다)
<전 사진의 2층 탑에서 돈을 던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앞 건물의 전각위에 있는 동전들>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 합려의 묘로 장사한 지 사흘만에 백호가 나타나 지켰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호구산 전체의 모습이 호랑이의 모습을 닮았다.
들어가는 입구의 다리가 입술에 해당하고 다리위의 조각은 호랑이의 이빨이라 하며
호구탑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47.5m 높이의 호구탑은 월왕 합려와 오왕 부차의 “와신상담”, “오월동주”,
“구밀복검” 등의 전설이 담겨져 많은 고사성어를 연상케하는 곳이다.
또한 왕의 무덤을 건설한 1천인을 독살하려다 못해 참수하였으며 4대 미녀중의
한명인 서시라는 미인이 얼굴을 비춰 보았다는 능의 입구에 호수가 있었다.
여우비가 그치니 부연 안개는 씻겨 나가고 중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상쾌한 날씨가 오늘 여행의 즐거움을 한껏 더해 준다.
<야! 꽃보다 아름다운 나는 이런 장소에서 꽃과 같이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구~~~>
<푸르고 넓은 이런 정원에서 살고 싶다는 누나의 원에 의해~~~~>
<호구탑을 뒤로하며 식구들이 같이 한 장을>
<호구탑의 성채를 보호하기 위해 성둘레에 흐르는 수로에서 다니는 한가한 뱃사공의 모습>
점심은 돼지 두루치기에 옌벤에서 가져왔다는 고려00주를 20원에 주고
한 잔의 술을 마시니 고국과 별로 진배 없음이 느껴진다.
이제는 중국의 4대 정원중의 하나인 졸정원으로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 있다.
졸정원은 왕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 정승이 정치를 비하한다는 의미로
만든 정원으로 중국에서 왕을 의미한다는 누워있는 용이 한 마리 있다.
밭과 논을 가꾸었다는 동원, 기묘한 수석과 분재가 있는 서원과
주인이 묵는 본채가 있는 데
중국인들은 집을 지을 때 속이 보이지 않도록 먼저 담을 쌓고
그런 다음에도 집안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가산이나 별채를 지어
본채가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한다.
이는 벗겨도 벗겨도 속이 보이지 않은 양파와 같은 중국인들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전면에서 잡은 안채의 모습입니다>
<졸정원의 안채를 배경으로 하여>
자그마한 뱃길이 있는 주장이라는 곳의 관리가 살았다는 장청과
주원장에게 죽음을 당한 해외무역상인 “심만삼”의 무역창고인 심청이 있다.
이 곳 전설은 돼지다리로 만든 요리로 주원장에게 죽을 뻔한 전설과
친한 친구에게 술김에 이야기한 사병이야기 등으로 끝내는 죽음을 당한 이야기가 있다.
취중에 말을 조심하고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한국 속담이 생각난다.
이곳에서는 단연
자그마한 수로유람선을 타고 여자뱃사공이 불러주는 한스런 듯한 중국노래를
들으며 여행의 막을 내린다.
<족발파는 집이 양쪽으로 늘비했던 주장로>
<옛 주인은 흐르는 운하속으로 사라져가고 이제는 꽥꽥이만이~~~~>
일찍 끝내 여행후 중국 짝퉁시장의 맞은 편 연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차돌박이와 불낙전골로 저녁을 먹었다.
맞은 편 짝퉁시장에 가보니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 지
어느 중국인 여상인 왈 “짠돌이”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사고 집에 돌아오니 피곤한 몸이 그져 침대속으로 빠져든다.
3일차
동방명주-황포강유람선-상해임시정부-홍구공원-써커스공연관람
동방명주의 자주빛 진주묶음
<동방명주내 중국의 역사관내 근대사앞에서>
와이탄과 동방명주를 유자형으로 나눈 황포강의 1시간 유람
<와이탄거리의 1900년대 근대 초기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주로 은행들이 입주해 있지요>
그 다음에 간 용이 열마리가 있다는 어느 정원(?)의 모습입니다
<들어가는 입구 양쪽으로 늘어선 재래시장이 있으며, 누나들이 이 곳에서 같은 색의 잠옷 네 벌을
구입하여 선물로 준 곳이기도 하지요>
<용이 곳곳에 숨어있고, 구멍이 숭숭뚫린 태호석이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멋진 정원이었답니다>
빈민가와 같이 있는 초라한 상해임시정부
동네 뒷공원처럼 한적한 홍구공원(윤봉길의사의 이야기가 넘 슬픔)
“챠밍 상해”의 “타이타닉”을 주제로 한 써커스 묘기,
둥근 원안에서 다섯 대의 오토바이가 보여주는 환상의 묘기가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4일차 (집에 와서 추가한 것임)
상해에서 김포공항으로 오는 날 형님은 가족들의 입맛을 돋아주기 위해
상해의 호텔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한국보다 양이 조금 많은 소고기 종합 2인분을 시키고
조기찜과 쏘가리매운탕을 시켜 맛있는 음식으로 점심을 즐겼다.
형님은 이 곳 식당이 단골이라며 식사를 하며 공연을 보기 위해
가족들이랑 같이 식사를 한다하니
지배인은 점심에 쇼는 없어졌으나 우리를 위해 특별히 공연을 해 주었다.
인상적인 것은 “반갑습니다”라는 북한식 노래와
갯마을 선생님이라는 한국노래를 부를 때 형수님이 무대에 올라가
북한 가수들과 같이 열창한 것이다.
무척도 즐거이 멋지고 맛진 점심후 형님이 데려다 준 홍코우 공항에서
김포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제 정리해야 할 시간이 없어
3일차도 한꺼번에 여행지만을 표시하며 끝내는 것을 아쉬워하며 중국여행기를 마친다.
또한 머릿털나고 처음으로 형제들이 며칠을 같이할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형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과 행운을 바랍니다.
항상 주님안에서 은총이 가득하길~~~~~
첫댓글 상에 있는 그 유명한 정원인 "예원"을 갔다와서는 사진만 잔뜩 올려놓고 이름을 모르다니... 그 옛거리도 예원 앞 거리라네
오라버니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어여~~~졸정원을 보며 중국인의 문화도 알게되고...합려의묘를 돌아보며 한시대의 정치를 통한 삶의 치열함도보고 ....다시한번 중국의 잠재력을 보는 시간들이었어여....삶의 시야를 넓혀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