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과 토핑
(main and topping)
루카 6,27-38
연중 7주일 강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토핑 경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피자에 소비자가 원하는 재료를 선택해서 올려놓는데 그렇게 올려놓는 재료를 ‘토핑’이라고 합니다. 상품에는 ‘포디즘(Fordism)’이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포드 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조립형 라인으로 생산했습니다. 조립형 라인으로 자동차의 생산이 증가했고, 소비자는 더 싼 값에 자동차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생산 방식은 전 산업에 확대되었습니다. 소비자는 맞춤형보다는 기성품에 만족하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소비자는 선택한 제품에 자기만의 ‘토핑’을 더하면서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에도 여러 토핑을 첨가해서 자신만의 아이스크림을 찾아내고, 옷에도 여러 토핑을 첨가해서 자신만의 옷을 입으려 합니다. 이는 신발, 스마트 폰, 가방, 가구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AI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이 바르는 파운데이션에도 새로운 모델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피부 색조와 어울리는 파운데이션을 AI가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전에는 색조가 3개였는데, 파운데이션의 색조가 30,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있는 물건의 기능도 잘 모르는 저와 같은 세대는 ‘토핑’이라는 말이 생소하지만, 저도 토핑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2005년입니다. 저는 당시 토론토에서 지냈습니다. 거리의 핫도그 가게에서 핫도그를 먹으면서 다양한 토핑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토핑을 골라서 핫도그에 넣어 먹었습니다. 요즘도 이런 토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샤부샤부 집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5가지 정도의 국물이 있어서 입맛에 맞는 국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기를 찍어 먹을 양념장도 여러 가지 양념을 배합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묵, 조개, 계, 라면, 떡, 채소를 골고루 선택해서 국물에 넣어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고기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취향에 따라서 고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토핑은 획일적인 삶에 다양성을 제공하며 활력을 줍니다. 토핑은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토핑이 케이크의 크림처럼 돋보이려면 기본적으로 케이크의 빵이 맛있어야 합니다. 빵이 맛이 없다면, 기본이 충실하지 않다면 토핑이 많아도 소비자는 외면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토핑’이 있습니다. 여러 신심 단체가 있습니다. 레지오, 성가대, 헌화회, 제대회, 독서단, 해설단, 반주단, 복사단이 있습니다. 구역 모임이 있습니다. 한국 학교가 있습니다. 주일마다 미사 후에 친교가 있습니다. 사목회를 중심으로 여러 행사가 있습니다. 사순 피정, 부활절, 세례식, 견진성사, 성모의 밤, 청소년 음악회, 유소년 그룹 피정, 본당의 날, 성령 찬양의 밤, 걷기 대회, 자선 음악회, 대림 피정, 성탄절, 송년 미사가 있습니다. 재정이 허락하면 더 많은 토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시니어 아카데미도 만들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미 교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토핑이 있지만 신앙생활의 중심은 ‘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유산은 ‘미사’이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이루어집니다. 미사에 온전히 참례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미사에 온전히 참례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체를 온전히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몸을 ‘감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백성사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겸손과 순명으로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흙으로 된 사람의 모습은 ‘토핑’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이 것들을 추구합니다. 성공, 명예, 권력, 재물, 학력, 건강, 직장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토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밤을 새우고, 노력합니다. 앞에 가는 사람은 끌어 내리려 하고, 뒤에 오는 사람은 밀쳐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하늘의 속한 그분의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겁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까지도 용서하는 겁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용서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겁니다. 둘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라는 겁니다. 셋째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늘의 것이 나의 삶에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토핑으로 더할 수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목은 카페지기가 임의로 붙인 것임을 자수합니다.
신부님이 토핑을 말씀하시니 메인이 연상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