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인간의 육체적 생활을 위하여 의식주(衣食住)세 가지는 꼭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적 생활은 신망에(信望愛)세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옳은 관계요, 소망은 앞으로 장례에 다한 바를 태도요, 사랑은 둘러있는 모든 사람들에 다한 옳은 관계입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도 사랑은 제일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 주님도『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도『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가르치셨습니다.
사도 요한 도『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요한 1서 四․七十八)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 장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고린도 전서 12장 마지막 절부터 읽어야 그 뜻이 더욱 분명합니다.『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2장에 사도 바울은 우리 믿는 이들이 받는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하여 말하다가 모든 은사가운데도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며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면서 사랑이 곧 더욱 큰 은사요 제일 좋은 길임을 가르칩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더욱 큰 은사인 사랑을 사모할 것이요,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좋은 길을 꼭 걸어야 합니다. 왜? 그 이유를 13장에 설명합니다.
一, 고린도 13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로 3절은 사랑의 우월성, 필수성(必須性) 곧 사랑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4절로 7절까지는 사랑의 본질 혹은 내용을 분석하여 자세히 가르칩니다.
그리고 8절로 13절까지는 사랑의 영원성 곧 기리 페하지 아니하고 영원함을 지적합니다.
13절 1절에『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아무리 무슨 방언을 하고, 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언을 알고, 또 비록 하늘에서 쓰는 천사의 말을 할 찌라도 사랑으로 그 은사를 쓰지 못하면 쓸데없는 소리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또『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 요』사실 아무리 예언과 능력과 모든 신비를 깨닫는 지식을 가졌다 하여도 그리고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을 가졌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사실 아무 것도 압니다.
그리고『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찌라도』다시 말하면 아무리 많은 구제 사업을 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랑은 햇빛과 같습니다 아무리 붉고 누른 아름다운 꽃들이 많다고 하여도 빛이 없으면 그 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소금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진수만찬이 있을 지라도 거기 소금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맛이 아니 납니다. 사랑은 모든 귀한 은사를 빛나게 하고 사랑은 모든 좋은 일을 더욱 맛나게 하는 귀한 은사입니다. 아무리 다른 은사와 재능을 많이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의 은사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는 누구나 반듯이 받아야 합니다.
사랑 없는 신앙, 사랑 없는 정통, 사랑 없는 열심, 사랑 없는 선물, 사랑 없는 봉사(자선사업)는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는 꼭 받아야 합니다.
二, 그런데 이미 말한 대로 4절로 7절까지에는 사랑을 자세히 설명하여 줍니다. 여기 사랑이라는 말은 아가페라는 말로 하나님이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기 사랑을 분석하여 사랑 안에는 열 다섯 가지의 요소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긍정적 요소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긍정적 요소가 일곱이요, 부정적 요소가 여덟입니다.
이제 고전 13장 4-7절을 천천히 읽을 때에 자세히 들으시며 내 자신을 살펴 이렇게 사랑의 생활을 하였는가 생각하여 보시기바랍니다.『사랑은 오래 참고』그렇게 허였는가?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시기하지 않는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남 위하여 무엇을 좀 하여주고 자랑하지 않는가?
『교만하지 아니하며』겸손한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작은 일에 사랑의 예절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사랑은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성내지 아니하며』신경질 부리지 않습니다 라는 말.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남의 잘못을 오래 품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남의 잘 안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누가 오해를 받다가도 사필귀정[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감.]으로 일이 바로 되면 그것을 즐거워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덮어주며.『모든 것을 믿으며』『모든 것을 바라며』『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우리가 사랑하는 이에 대하여는 모든 허물도 덮어주고 그의 말은 늘 믿고 혹 현재에 실수가 있으나 장례에는 잘 되리라고 바라고 그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도 낙심치 않고 그냥 견딥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서 된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도 제일 먼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스승이 제자에게-
"사랑하며 미소 지을 줄 알아야 한다" 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내가 잘 웃지 않아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 당부를 곱씹어보니,영적으로 성숙하려면 마음의 긴장을 풀고 모든것에 너그러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려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三, 8절로 13절까지에는 사랑의 영원성을 가르쳐 줍니다.
예언도 페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요, 예언도 부분적으로 하는 것인데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자연히 페하여집니다.
여기에 기록한대로 어린아이 때의 지식은 장성할 때에는 자연히 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옛날 거울은 매우 희미하였습니다)희미합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 가게 되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됩니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만은 페하여지지 아니하고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도 사랑은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곧 사랑이신 까닭이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면 사랑의 종교입니다. 위로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랑은 신앙생활의 법칙일 뿐더러 모든 삶의 법칙입니다.
햇볕아래서야 풀과 나무가 옳게 자라는 것처럼 사랑 안에서야 인간의 심령과 인격이 옳게 자랍니다. 흔히 불량 소년들은 사랑 없는 가정에서 나오게 됩니다.
사랑은 가정생활의 법칙이요
사회생활의 법칙이요
교회생활의 법칙이요 일반 국민 생활의 법칙이요 국제 생활에도 역시 옳은 법칙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화평(和平)이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평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도 화평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사회가 화평 하야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이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사는 집을 닮았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는 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요. 살면서 하나씩 나에게 맞게 바꿔가야 하죠. 특별히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하는 게 당연하고요. 그래야 그 집에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과 같이 벧엘 근처에서 살 때에 아브라함의 가축도 많고 롯의 가축도 많았는데 아브라함의 가축을 먹이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먹이는 목자들 사이에 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떼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하는 말이 나나 너나 또는 나의 목자나 너희 목자가 서로 다투지 말자, 우리는 다 한 골육이요 또 우라 주위에는 가나안 사람과 부리스 사람이 있다 하였습니다. 여기 특별히 다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들었습니다. 하나는 서로 골육이므로 또 하나는 원수인 이방 사람이 있는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언제나 화평을 도모할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다 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골육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를 비난하려는 불신 사회가 사방에 둘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차에 양보하며 사랑으로 심령이 하나가 되게 우리 온 국민이 화평하고 단결해야할 이유도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다 한 혈통의 자손인 단일민족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 사방에는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빼앗으려는 악한 원수들이 둘러 있습니다.
세상살이는 수많은 좌절과 고뇌, 상처가 뒤따르는 험난한 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외롭다. 우리는 살아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용을 쓰고 있지만 화려한 성취도 빛나는 복수도 이 근원적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한다.
그래도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근원적 한계와 절대적인 고독을 치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새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전망할 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참된 삶의 법칙인 사랑의 원칙을 새롭게 재발견하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특별히 전 국가적으로 평화를 이루어 대동 단결하여 모든 일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삶의 법칙인 사랑을 북돋을 수 있을까? 특별히 몇 가지 기억해야 될 줄 압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하여 고린도 전서 13장을 금년 내에는 매일 한번씩 읽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합니다. 사도 요한 은『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사랑하셨음이라』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하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우리가 다른 이들을 좀 더 사랑하게 됩니다.
셋째는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을 충만이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은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영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현신(現身)인 사랑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입니다.
넷째는 사랑은 연습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연습을 통하여 새것을 배웁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사랑을 배웁니다. 성경에 있는 사랑의 요소인 열 다섯 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매일 실천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한 번 참고 두 번 참고 오래 참는 가운데 인내를 배웁니다.
작은 일에도 친절하도록 힘써 실천하는 가운데 점점 온유한 성품이 됩니다. 단번에 모두 실천 할 수 없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계속하여 실천하는 가운데 점점 사랑의 생활을 배웁니다.
때로는 사람이 무엇 하려 사는가? 스스로 물어 볼 때도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무슨 큰일을 한다고 하여도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랑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사랑을 많이 배울수록 우리는 점점 하나님께 온전히 갈 것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 우리는 사랑의 나라를 향하여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한번밖에 지나가지 못하는 인생 길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지나가는 길가에 꽃씨를 뿌립시다! 그리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갑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