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손꼽히는 대표 미항이 낳은 전설 두 가지
우리나라 대표미항 중 한 곳으로 알려진 경남 통영!
이 통영은 예로부터 자랑하는 명물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맑고 수려한 바다풍경과 굴 등 각종 싱싱한 해산물의 본고장이라는 점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한 시절 한국 연예계를 평정하고 사상최초 한류스타의 시초가 되기도 한 아시아의 대표미녀 정윤희를 탄생시킨 고장이라는 것이다.
정윤희는 1954년 경남 충무(95년 통영과 하나로 통합됨)에서 위로 두 언니를 둔 세 자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부터 유별나게 뛰어난 용모로 늘 주변인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유년시절 부산 당감동으로 전 가족이 이사해서 그 곳의 당감초등학교와 혜화여중 그리고 동일계 혜화여고를 다닌다.
2. 여고시절 부산의 명물이 되다
데뷔 전인 소녀시절부터 정윤희의 미모는 그 지역에서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도 그 지역에서(부산 당감동과 과거 혜화여고가 있던 부산 진구 부전동, 원래는 이 곳에 학교건물이 있다가 87년 현재의 동래구 명장동으로 주소를 옮김) 오래 사신 연세 꽤 있는 분들은 6,70년대 소녀 시절 정윤희의 모습과 존재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을 정도.
학창시절부터 미모가 특출나 당시 혜화여고 주변에서 정윤희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학창 시절 정윤희와 친구관계였던 한 분은 정윤희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때는 1970년대 초반 부산의 어느 빵집, 당시는 고교생들의 빵집 미팅이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까까머리 남고생이었던 그 시절의 난 우리학교 친구들과 함께 혜화여고 여학생들과의 단체미팅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지금처럼 남녀관계가 편하고 자유로운 시절이 아니라서 수줍어하며 긴장감에 연신 우유만 들이키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눈을 놀라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졌다.
자리에 먼저 나온 여학생들은 인물이 그닥 아니어서 친구들과 실망감의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데 눈이 튀어나올만한 여학생 하나가 등장한 것. 그녀가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와 친구들은 전기에 감전된 듯 경악했다. 빵가게 주인과 다른 손님들 시선도 일제히 그 여학생에게로 쏠리며 놀라는 눈치였다.
그 때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니!` 하면서 날 놀라게 만든 여학생이 바로 훗날 영화배우가 된 정윤희, 당시 혜화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었다. 시 정윤희는 키는 작았지만 유난히 작은 얼굴과 약간 까무잡잡하고 탄력 넘치는 고운 피부를 지녔고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유난히 큰 눈과 맑고 까만 눈동자 그리고 속삭이는듯 붉고 도톰한 앵두같은 입술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앉는다`는 외국 시인의 구절이 문득 떠오른 순간 얼굴도 얼굴이지만 각선미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여자들은 무다리가 많았는데 정윤희는 교복치마 밑으로 곧게 뻗은 종아리를 지녔고 내가 살면서 지금 현재까지 정윤희의 각선미를 능가하는 여자다리를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수십년 전 보았던 너무나도 예뻤던 단발머리 여고생 정윤희의 모습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며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여태 이 땅에서 본 경험이 없을만큼 너무나도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정윤희는 이렇게 꾸밈없는 단발머리 쌩얼 여고 시절부터 그 지역의 스타로 날렸다.
당시 부산지역 정윤희를 아는 사람들 말로는 당시 정윤희를 보려고 편지나 선을물 들고 여고 교문 앞에 진 치고 기다리던 남학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학교 근처 어딜 가도 정윤희 이름 석자만 대면 그 존재를 인근 주민들이나 상인까지 대번에 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즉 부산 혜화여고 주변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
3. 부산 미니스커트 서울 명동의 명물이 되다
정윤희를 회상한 학창시절 친구분은 정윤희를 미팅 때 사귀고 후 친한 사이가 돼 몇 번 더 본 적 있는데 여고졸업 후 그녀가 서울로 떠나면서 소식이 끊어졌다고 한다.
여고졸업 후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언니네에서 함께 살게 된 정윤희.
정윤희 활동 당시 그녀의 인터뷰 및 회고록 등에 소개된 내용들을 묶어본다.
정윤희는 서울로 오게 된 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 부산은 직할시로 한국 제 2의 대도시이긴 했지만 그녀가 서울로 첫걸음 내딛고 보니 규모나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부산과의 격차가 너무 심해 당사자로서는 강한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점 서울의 마력에 빠져들었고 재수를 위해 학원을 다니는 틈틈이 당시 서울 최대번화가인 명동에 나갔다가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된다.
여전히 미모와 몸매가 남 라 당시 유행하던 미니스커트 차림에 한껏 멋을 부리고 명동에 뜨면 `부산 미니스커트 떴다`며 옷가게 구두가게 화장품가게 등 명동 상인들이 일손을 멈춘 채 문을 열고 지나가는 정윤희의 모습을 빠끔히 내다보며 혀를 내둘렀다는 전설적 이야기. 당시 연예계 진출 전 시절이었음에도 비주얼이 워낙 튀어서 정윤희의 존재를 명동 상인들도 잘 알아 당시 `부산 미니스커트`라는 별명으로 명동에서 통했다고 전해진다.
역시 미인은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법이다. 인터넷은커녕 이렇다할 소식통도 흔치않던 그 시절 비주얼 하나로 명동 번화가에서 스타 못지 않은 성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의 매력을 절실히 깨달은 정윤희는 원래 지망하던 미술 대신 배우의 꿈을 갖게 된다. 아마 주변의 끈질긴 권유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오디션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맨 처음 지망한 건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대흥행기록을 수립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여기서 여주인공 경아 역에 도전했다.
당시 영화제작사는 기존 여배우들 대신 신인공모를 통해 여주인공을 물색 했는데 정윤희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결과는 낙방.
이유는 온갖 풍파를 겪는 비련의 여주인공 경아 역에 연기경력이 전무한 신인을 쓴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애초 신인을 쓰려던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결국 아역배우 출신 안인숙이 역할을 맡아 대박이 터진다.
4. 드디어 열린 스타탄생의 문
이후 정윤희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오디션에 응모해 이번에는 합격한다. 하지만 부모의 강한 반대로 역할을 포기한다.
이 영화는 결국 이영옥이라는 신인여배우가 맡아 공전의 힛트를 기록.
그러다 그 무렵 오디션장에서 그녀를 눈여겨본 이경태 감독의 눈에 띄어 이 감독의 신작영화 `욕망`(윗 스크린 캡쳐, 화질은 좋지 못 하지만 21세 꽃 같은 시절 햇병아리 시절의 모습이 담겨있음)의 출연제의를 받게 된다. 당시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노주현과 은막의 샛별로 날리던 정소녀와 함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멜로물로 최불암 남궁원 반효정 등 중견배우들도 출연 했다. 이 영화로 드디어 배우로서 뷔를 하게 된 것. 이경태 감독은 생짜신인 정윤희 기용에 대해 `현대미와 고전미를 두루 갖춘 완벽한 마스크와 균형잡힌 체격조건을 지닌 상당한 가능성의 대어급 신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해 정윤희 존재도 묻히게 된다.
그렇지만 이 때 이미 스타탄생은 예고 되어 있었다. 2번 글에서 소개한 한 때 친구분의 회고를 옮겨 본다.
<`때는 1975년 여름, 난 당시 군복무 중이었고 휴가를 맞아 집으로 가기 위해 부산역을 빠져나오던 중 시선을 멈추게 되었다.
벽에 아주 낯 익은 여자의 얼굴이 붙어 있었던 것. 고교 시절 친구였던 정윤희, 그녀가 영화 '욕망' 홍보포스터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난 그제서야 정윤희가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별나게 예뻐서 평범하게 살 것 같지 않더니 역시나라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난 동생과 함께 배우 데뷔한 정윤희를 보기 위해 '욕망' 개봉되는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내용은 진부한 멜로물이었지만 아는 사람이 화면에 나와 끝까지 신기해 하면서 보았다. 옆에 앉아있던 동생이 보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처음 보는 신인여배우(정윤희)가 너무 예뻐서 옆에 있는 정소녀가 영화 보는 내내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고 솔직한 느낌을 말했다.
동생 뿐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영화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밖으로 나오면서 정윤희의 미모에 대한 얘기만 수군수군 나눌 만큼 그녀의 미모는 당시 충격 그 자체였다. 분명 여주인공은 정소녀고 정윤희는 준 주연에다가 부잣집 딸로 나오는 정소녀에 비해 가난한 여성 역할이었지만 인물이 튀어서 정소녀가 순간 초라해 보였다. 당시 정소녀는 청초하고 깜찍발랄한 미모와 분위기로 안방극장과 광고계 그리고 스크린의 신데렐라로 혜성처럼 부상 했다. 그런데 정윤희 등장 후 정윤희 인기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이후 연기보다는 MC에 치중,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정윤희가 여주인공과 광고자리를 몽땅 접수했기 때문>
비록 첫 작품이 흥행에는 실패 했지만 이 때부터 대형스타의 탄생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아래 사진: 뒷줄 맨 오른쪽이 김길호 스승, 가운데가 소설가 송기숙 작가, 그리고 흰 수염(루카 역)으로 분장한 윤삼현>
<아래 사진: 김길호 스승과 정윤희가 '꽃순이를 아시나요'에서 말을 탄 장면>
첫댓글 그녀의 야생미, 청순미, 백치미, 고혹미, 고전미~~~~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다시 보고 한동안,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 정신을 놓아버렸다.
나는 나의 스승 김길호 탤런트 겸 배우께서 정윤희와 <꽃순이를 아시나요>에 공연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베드신도 나오고 이 영화의 후반부를 거의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역할이었다.
스승이 정윤희와 함께 촬영한 영화라서 나는 마치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한것 마냥 괜시리 들떠버렸다.^ ^
이세상에 정윤희씨 처럼
예쁜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