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칼럼】
老年四苦(노년 4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필자가 참여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존경하는 학자님과 ‘노인 문제’를 주제로 한 댓글 토론이 있었다. 노인들의 자성이 요구되는 ‘착각’의 사례도 짚어 볼 수 있었다.
성인군자가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 한평생 살아가면서 ‘성찰(省察)’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자신을 늘 돌아보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매사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이 되면 다르다. 과거 시골에서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였다. 어르신들이 흔히 “늙으면 애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게 무슨 뜻인가.
무언가 기분 좋은 일보다는 아쉽고 서운한 일이 있을 때 하신 말씀으로 기억된다. 당당하고 의젓한 어르신의 모습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곧잘 고깝고 화나는 일이 많다는 뜻도 포함한다.
그럴 때마다 연로하신 노인들은 속에 있는 말을 다 발설하고 살지는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절제도 지나치면 병이 되는 걸까?
노인 문제에 관해 그런저런 갖가지 상념에 잠기다 보니, 과거 일간지 논설을 하던 시절에 쓴 「노년4고(老年四苦)」 제목의 칼럼이 떠올랐다.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를 다시금 떠올려 보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어느덧 그 나이에 이른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 돼 버린 것이다.
시골에서 노부모님 모시고 살 때, 연로하신 동네 어르신들이 주고 받으시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 당시 어르신들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노년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 --- 2023. 11. 3.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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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칼럼】 老年四苦(노년 4고)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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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 『윤승원의 세상風情』 (2011.11.17.)
老年 4苦
― ‘행복’을 말하기 어려운 어르신들
윤승원 논설위원
삶은 유한하다. 종착역 없는 인생은 없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려도 노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노인들은 추억을 반추하면서 산다. 꿈길처럼 화려했던 과거도, 눈물겹게 힘들었던 과거도 돌아다보면 그리운 세월이다.
곡절과 시련이 많았던 노인일수록 이야기가 많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한다. 꽃은 시들면 추하다. 사람도 늙으면 육신은 보잘것없지만 건강한 정신으로 창조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노년의 삶은 아름답다.
건강을 잘 지키면서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노인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곱게 늙었다’는 소리는 그래서 노인들에게는 최상의 찬사다. 곱게 늙으려면 신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 그런데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이 시대 노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가난, 질병, 고독이다. 이를 ‘노년 3고(三苦)’라 한다. 세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해당이 안 되는 노년은 ‘행복’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흔치 않은 일이다. 세 가지 고통도 이겨내기 어려운 명제인데, 또 한 가지 추가할 일이 생긴다.
하고 싶은 말을 제 때 하지 못하고 사는 일이다. 자식, 며느리, 손자 앞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
말씀을 절제하는 것도 좋지만 제 때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고 사는 노인들은 쓸쓸하다. 이것이 쌓이면 화병(火病)이 되고 우울증이 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노인들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걸핏하면 ‘열린 가슴’을 말하고,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노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어르신 큰소리 지르기 대회’라는 이색적인 행사를 개최했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평소 하고 싶었던 말씀을 5초간 시원하게 외치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느 노인이 힘들게 고함을 지를까 싶지만 반응은 예상외라고 한다. 목소리를 들어 보면 건강상태도 알 수 있다.
의욕은 넘쳐도 안타깝게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인도 있다. 이 ‘큰소리 지르기’ 대회는 정상 혈압(80∼120)의 참가자 위주로 심사를 한다.
지난해 어느 노인은 예선에서 혈압이 150이나 되는데도 “꼭 나가고 싶다”며 5번이나 재 측정했다니, 노인이 정작 ‘외치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기백이 여전히 살아있는 노인들의 ‘훈시형 목소리’도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어느 82세 할아버지는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 바로잡으려면 집중하기와 정신 차리기부터 시키자”며 “열중쉬어! 전체 차렷!”을 외치기도 했고, 77세의 어느 할아버지는 “용돈 좀 많이 줘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지난해 1등을 차지했던 노인의 ‘큰소리’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들과 며느리를 향해 “얘들아, 손자 키우기 힘들다”라고 외친 73세의 할아버지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목소리 크기는 무려 106dB이었다고 한다.
퇴직 후 맞벌이인 아들 부부의 손자를 돌보는 이 어르신은 “아침에 밥 먹여 유치원 보내는데 1시간이 걸린다”며 “손자 키우는 게 얼마나 고달프면 우승까지 했겠느냐”라고 웃었다고 한다.
올해엔 예선을 통과한 어르신 20여 명이 참가했는데 개인전뿐만 아니라 1·2·3세대가 함께 소리를 지르는 이벤트도 펼쳐졌다고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연히 말수가 많아진다. 말수가 많은 노인을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겨운 ‘노인네 잔소리’로 여긴다. 그러나 오래 사실 분들이 아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잔소리마저 그리워지는 게 자식의 마음이다.
옛 어르신들은 ‘큰기침’을 자주 하셨다. 헛기침이었다. 그 기침 속에는 권위와 위엄이 들어 있었다. 큰기침은 어르신의 상징이었다.
동네 골목에서 어르신의 기침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온순해졌다. 못마땅한 것을 보더라도 말씀으로 꾸짖기보다 큰기침으로 대신하셨던 선친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어르신 큰소리 지르기 대회’도 뜻있는 일이지만 집안에서 ‘큰기침’ 하시는 어르신의 깊은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젊은이가 진정한 효자효부다.
‘효는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옛 가르침도 새겨 봄직하다.
가뜩이나 ‘3苦’에 힘들어하시는 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터놓고 하시도록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드렸으면 한다. 노인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의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 (201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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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청촌수필’ 카페에서
◆ 김준태(수필문학 독자) 2011.11.18 08:27
곱게 연만하신 분들을 보면
‘마음을 잘 다스려서 온화한 기풍이 바깥으로
나타나시는 구나’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셔서 그러시구나’하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젊어서는 앞모습을 보고, 늙어서는 뒷모습을 본다”라고
윤 선생님께서 예전에 어느 수필에서 쓰신 것이 생각납니다.
앞으로 뒷모습 볼 일이 더 많은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욱 더 ‘큰기침’이 듣고 싶어집니다. (김준태)
▲ 답글 / 윤승원(필자)
고맙습니다.
김준태 선생님의 답글이 한 편의 수필입니다.
행복의 꽃밭을 잘 가꾸시면서 멋지게
인생 나이테를 쌓아 가시리라 믿습니다. (윤승원)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高林 지교헌(철학자, 수필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3.11.04 20:57
‘노년3고’에 하나를 더 보태어 ‘노년4고’를 논한 것이 매우 뜻깊고 공감하게 됩니다. 늙으면 이런저런 형편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탄없이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본인이 직접적으로 행하지도 못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므로 스스로 단념하고 그저 이따금 헛기침이나 하는 것으로 그치는 수가 많은 듯합니다. 예사로이 생각하였던 어른들의 헛기침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값진 지혜를 얻은 셈입니다.
나도 이제 ‘노년3고’에서 또 하나의 지평을 넓혀서 ‘노년4고’를 맞이하게 되었음을 자각하고 헛기침이나마 침착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좋은 글을 읽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청계산 – 高林)
▲ 답글 / 윤승원(필자)
교수님께서 시니어TV ‘노인의 착각 문제’를 주제로 한 유익한 강연 내용을 소개해 주셔서 저의 졸고 칼럼까지 언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노인 문제는 토론하기조차 매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이든 어르신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는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노년4고’는 열거하기는 쉽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기가 간단치 않은 명제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면서 ‘노년4고’를 잘 이겨나가야겠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귀한 고견을 듣고 저의 졸고 칼럼까지 소개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고 보람을 느낍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