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유튜브와 씨름하며
이원우
소위 유튜브라는 개인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을 훌쩍 넘겼다. 여태껏 정말 피땀을 쏟았지만, 구독인-나는 그들을 예우해서 구독자라 부르지 않는다, 구독인이다.-470명을 겨우 넘겼다. 다른 유튜버들과 비교하면? 글쎄다, 중상(中上)은 될 것이다. 여기서 ‘다른 운운’의 외연(外延) 주인공은 아마추어 가수들이 그 시작이요 끝이다.
좀 더 설명해야 할까 보다.
평생 노래만 불러왔고, 정통 가수협회의 정회원이기도 하지만, 나도 아마추어임을 고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KBS 가요 무대를 밟지 못한 게 프로로 발돋움하는 데 결격 사유라면 나의 이 푸념은 정답일지 모른다.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한 번 들먹여보자, 저 유명한 조용필 가수조차 못 한 야구장에서의 ‘애국가’ 독창(실제는 先唱)을 하면서 우세했었다. 나는 그걸 거뜬히 해냈었다. 지금도 <네이버>에서 ‘최고의 애국가’를 검색해 보라. 뜨는 내 영상이 그걸 증명하고도 남는다 하자. 7천 회 상회! KBS 가요 무대는 결코 실력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강변(强辯)을 슬쩍 던진다, 이쯤에서. 그렇게 목을 매며 원하지는 않되, 그래도 아직은 거기(가요무대)에 출연할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명분이랄까.
무릇 모든 예술 분야에서는 팬이 있다. 난 행(幸)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노래 외에 문학에 도 몸을 담은 지 오래다. 소설과 수필로 등단한 지 각각 40년, 28년을 넘긴 것이다. 그런데 둘 아니 셋 다, 팬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자기 폄훼고 기만이다. 극소수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억지로 사이사이에 부등호를 넣어 보자. 내 팬은 ‘노래(가곡 ‧ 민요‧ 가요)> 소설(콩트에 국한)> 수필’이라는 부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말이다. 이들을 ‘하나하나씩’은 물론 ‘하나+하나’, ‘하나+둘’ 혹은 ‘셋’을 포용하는 너무나 큰 공간이라는 매력을 지녔다. 나는 거기 점점 빠지는 게 아닌가? 행여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해 설명을 덧붙여보자. 콘텐츠를 몇 개 소개하면서 말이다.
첫 번째다. 나는 ‘비목’을 작사한 한명희 선생의 손을 잡고, 군복을 입은 채 그 가곡을 독창한 적이 있다. 외람된 표현이지만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선생 자신의 전언(傳言)이기도 하다. 조회 수가 6천을 돌파했다.
이름을 들먹이기 무엇해서 그렇지 이런 콘텐츠도 있다. 자작 콩트를 낭독하면서 도중에 가요를 섞어 불렀더니, 이 또한 조회 수가 2천을 훌쩍 넘기는 게 아닌가? 노래와 수필을 한데 묶어 보았는데, 비슷한 결과가 나오더라. 나머지야 고만고만해서 도토리 키재기 격이라, 거론하려니 낯 간지럽다. 그래,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자.
다만 노래와 콩트(소설), 수필을 한 콘텐츠에 담아보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시도해 보지 않았었다. 그래도 머지않아 작은 결실 하나를 선보이리라 결심한다. 이 경우 중언부언하건대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 보아 망설여지고말고.
하여튼 어느덧 콘텐츠가 2백 개를 훨씬 넘겼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그동안 실제 편집 등 제작 작업에 몰두한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다른 데서 노래 불러 녹음한 걸 불쑥 아내에게 내밀고, 나머지 뒤치다꺼리는 아내가 다 했다. 물론 작품 낭독은 내 몫이었고…,
그래도 나는 유튜브에 관한 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틀린 건 곧 바로잡으십시다’와 ‘세상만사 요지경’이라는 제하(題下)에, 내가 겪은 어쭙잖은 체험을 문학 아닌 잡담 형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거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 거라 점쳤는데, 상당수가 공감 아닌 공감을 하는 게 아닌가? ‘산울림’과 ‘메아리’는 다른 뜻을 가졌다고 설명했더니 조회 수 1천 3백여 회!
하나 내가 유튜브와 어깨를 겯고 올라 점령할 데는,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휘파람 세계 챔프, 경기수필 회장, 어느 원로 가수와 코미디언, 마을버스 모범 운전기사, 어르신 주간보호센터 원장, 시니어 모델 등을 면담하고 취재하는 것. 제목은 ‘당신이 주인입니다’이다. 바야흐로 어찌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지 않을 수 있으랴. 솔직히 잠을 설칠 때마저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너무 유튜브 제작에 조예가 없다는 걸 거듭 고백한다.
본래부터 컴퓨터 카메라 등 기기(器機) 조작에 서투른데, 여태껏 억지로 버텨 왔지만 정작 앞으로가 문제인 거다. 지금 나는 아내 앞에 서서 노래 부르는 흉내를 내거나 글을 낭독하지만, 아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녹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장비라고는 스마트폰 두 대, 삼각대 하나 등 세 개뿐이다. 가짜 마이크를 잡고 선 내 모습은 나도 애교(?)로 받아들인다. 다행히 아내는 그런 면에서 보면 집념이며 탐구심이 남다르다. 거기 얹힌 나는 오늘도 외려 부창부수(婦唱夫隨?)를 중얼거리고 있는 거다.
그래도 간단없이 나아가리라 결심한다. 유튜브가 가진 크고 독특한 매력 때문이다.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던가? 씨름과 다름없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이다. 나이 들수록 서로의 샅바를 단단히 매어 준다는 것, 둘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상수(常數)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