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김 동 인
피고는 경찰서와 검사국에서 자백한 바를 모두 부인하되, 피고인의 범죄 사실은 확실하다. 피고는 5월 31일 오후 6시쯤, 용산에서 동대문으로 가는 제1호 전차 안에서, 피해자 이○○의 미모를 보고 종로에서 같이 내려서, 피해자의 집까지 뒤를 밟아서 집을 안 뒤에, 그 이튿날 오전 3시쯤 안국동 피해자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강간을 하려다가 붙들린 사실은 피해자가 검사국에서 공술한 바이며, 피고도 그 일부 사실은 인정한다. 피고가 ○○내외술집1)에서, 친구와 술을 먹고 헤어진 것은 오전 2시며, 나머지 한 시간 동안을 들어갈까 말까 주저한 것은 피고에게 약간의 양심이 남아 있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강간미수라는 큰 죄는 법으르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관은 형법 제○조에 의지하여 피고를 징 역 3년에 처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운·운.
이것이 검사가 그에게 대하여 한 논고였다. 그 뒤에는 소위 관선 변호인이란 사람이 그를 위하여 변호를 하였다. 피고의 모든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었고, 또 그의 이전의 품행이 단정하였던 것을 보고 특별히 가벼운 벌을 씌워주시기를 원한 것이다.
저녁 뒤에 어둠침침한 감방 안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에는 아까 재판소에서 지낸 광경이 활동사진같이 지나갔다. 검사도 그를 강간 미수죄로 다스려달라 하였다. 변호사도 ‘그를 위하여’ 죄는 그렇지만 특별히 용서해달라고 원하였다. 이에 극도로 어지럽게 된 그의 머리에는, 과연 자기가 그 이모라는 여학생의 집에 강간을 하러 들어 갔다(는 것같이) 생각되게까지 되었다.
5월 31일, 그는 한 달을 땀을 홀려서 얻은 월급을 받아 쥐고 문득 친구 D를 생각하였다. 동시에 술과 취한 뒤의 아름다운 환상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D를 찾아서 한잔 술을 나누어 먹을 작정으로 공장을 뛰처나와서 안국동 사는 D를 찾으러 동대문 가는 전차를 잡아탔다. 이리하여 전차가 남대문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예쁜 여학생이 하나 전차에 올라서 그의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젊은 사내인 그는 문득 ‘예쁜 계집애다’ 생각하였다. 그와 함께 저런 계집애를 마누라로 삼고 살았으면 얼마나 즐거우랴 생각하였다.
전차는 종로에 이르렀다. 그는 전차에서 내려서(그에게는 향기롭다 생각되는) 피존 한 대를 붙여 물고 안국동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문득 앞을 보매, 아까 그 계집애가 앞서서 활발히 걸어간다. 그는 한 번 다시 그런 계집애를 마누라로 삼고 싶었다. 그는 앞에 보이는 좁은 골을 보고, ‘그리로 들어가서 한참 가면 D의 집이거니’ 생각할 때에 그 계집애는 벌써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는 부끄러워서 옆 골목우로 돌아가려다가 그만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리하여 한참 가는 동안 그 계집애는 길을 인도하는 듯 때때로 힐끗힐끗 돌아보면서 그의 앞을 걸었다.
마침내 D의 집에 이르렀다. 그가 D를 찾으려고 뜻 없이 앞을 볼 때 그 계집애가 D의 집에서 대여섯째 되는 어떤 깨끗한 집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그는 그만 정신없이 걸어나가서 그 집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펄떡 놀랐다. 가난한 그에게는 ‘깨끗한 집과 학교 졸업한 마누라’ 라는 것이 머리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몇 가지의 집을 머릿속에 그려보고는 지우고 하였다. 이리하여 마침내는 완전하고 쓸모 있고 깨끗한 집이 머릿속에 생겨났다. 그리고 돈만 벌면 이런 집을 지어보리라고 마음속에 굳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계집애가 들어간 그 집이야말로 ‘이것이면’ 하고 그의 머릿 속에 건설된 그 집 에 다름없었다. 드높고 서늘한 대청 이며, 깨끗하게 생긴 건넌방이며, 또는 대청 앞에 새로 해놓은 화단이며, 그의 연래(여러 해 전부터)로 바라던, ‘바람’ 의 덩어리가 뭉쳐서 이 집이 되지 않았나 생각될 만한 집이었다.
이런 집에 한번 살아보았으면. 아까 그런 계집애를 마누라로 삼고…….’
그는 얼마 동안 거기 서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좀 있다가 건넌방 장지문이 덜컥 열리며 아까 그 계집애가 머리를 쑥 내밀다가 대문 안에 눈이 멀둥멀둥 서 있는 그를 보고 눈을 홀기더니 도로 쑥 들어가버렸다.
그는 펄떡 정신을 차리고 그 집을 나서며 D의 집에 이르렀다.
서너 시간 뒤에 그와 D는 그 근처에 있는 어떤 내외술집에 얼근히 취하여서 마주 앉았다. 술로 말미암아 용기가 난 그는 이 세상이 모두 제 앞에 꿇고 앉았는 듯이 지절거렸다. ‘레닌이 노동 노국(露國)을 세우매 마르크스가 도와주었다. 그래서 맬서스가 생어(미국 산아제한운동의 창설자인 생어(Margaret Sanger, 1883∼1966)를 말하는 듯)를 하여 마침내 보이콧이 되었다. 그러매 우리 프를레타리아는 힘을 다하여 부자들올 없이하고 잡지에 투서를 하여야 한다…….’
그는 여기저기 강연회에서 얻어들은 어려운 말을 함부로 내뿜었다. 그리고 자기도 한낱 훌륭한 사람이 된 것같이 생각하였다.
새벽 2시쯤 그들은 술집을 나서서 D는 자기 집으로 가고, 그도 동대문 밖 자기 집으로 향하였다.
종로에 이르러서 보매 전차는 벌써 없어졌다.
“제길, 걸어가주어라. 전차가 다 뭐야. 부르주아 놈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걷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한참 결어서 어떤 큰 문 앞에까지 이르렀다.
‘벌써 왔다. 전차가 있기만 했더면 두 냥 반 삭을 뻔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그는 그것이 동대문이 아니고 남대문인 것을 깨달았다.
‘흥. 내가 취했구나.’
그는 크게 한 번 웃은 둬에 돌아섰다. 그러나 그는 길을 어떻게 들었는지 좀 뒤에 그의 앞에는 커다란 경성일보사가 우뚝 서 있다.
‘옳다, 됐다. 인젠 이리로 쑥 나가서 동쪽으로만 가면 된다.’
그는 다시 마음먹고 다시 결었다. 그러나 여우에게 홀렸는지 그는 암만 걸어도 동대문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유행 노래라 양산도라를 코와 입으로 부르면서 좁은 길 큰길 할 것 없이 한없이 걸었다.
이리하여 얼마 뒤에 그는 아직 동대문은 보지 못하였는데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그는 서슴지 않고 대문을 밀매 대문은 열렸다. 그는 안뜰로 들어섰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은 그의 집은 이전에 살던 그 오막살이 집이 아니고 어느덧 자기의 마음에 맞게 지은 그 집이었다.
‘언제 내가 다시 지었나?’
잠깐 머리에 이런 생각이 지나갔지만 시재(時在 : 현재) 눈앞에 이 집 에 있는
지라 그는 서슴지 않고 다 떨어져가는 꺼먼 구두를 벗어던지고 대청에 올라섰다.
‘역시 나는 지중지물(池中之物)이 아니다. 집두 잘은 지었다.’
그는 돌아서서 대청에 켠 전등빛으로 뜰에 만발한 꽃발을 둘러보고 자기 방(이라 생각되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 또한 뜻하지 않은 광경이 벌여 있었다. 대청에 켠 전등빛으로 그는 아랫목에는 비단 이부자리가 펴 있는 것을 보았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어디선가 보고 자기 마누라로 삼고 싶었다고 생각되던 어떤 여편네가 그 이불 속에서 곤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의심할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이미 크고 깨끗한 집의 주인이매 이만한 마누라가 있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역시 서슴지 않고 옷을 활활 벗어던진 뒤에 이불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드러누우면서 어느덧 잠이 들었다(그 뒤에 한 주일을 연구하고 생각하여 겨우 생각난 일은 그가 어렴풋이 잠이 들 때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살의 맛이 그를 스치고 넘어간 것이다).
그 이튿날 그가 겨우 잠이 깬 때에는 그는 벌써 경찰서 구류장에 들어 있었다.
모든 사실이며 중거는 확실하였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서와 검사국에서 그가 자기의 딸의 뒤를 따라서 마침내 ‘자기 집 안뜰까지 들어온 일’ 이 있음을 공술하였다. 그리고 그도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그 집 안뜰까지 정신없이 들어간 일은 자백하였다.
이 이상의 증거가 필요없었다. 그는 곧 재판소에 넘어갔다.
그는 마침내 자기를 의심해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사실이 너무도 기적적 인지라) 자기는 역시 아까 검사며 변호사가 말한 바와 같이 참말 강간하러 그 집에 들어갔었다 의심하게까지 되었다.
세월이 닫는 말과 같다(如走馬) 하지만 오히려 소걸음(如行牛)이라 형용하고 싶은 감옥 안의 한 주일은 지났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재판소에 불려갔을 때에 재판관은 (피고가 이전에 선량한 직공이던 것을 생각하여) 특별히 징역 2년에 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리하여 선량한 시민인 그는 지금 서대문 감옥에서 매일 톱질과 대패질로 세월을 보낸다.
-끝-
2016년 10월 20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