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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2:6-9절
제목 :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설교 작성노트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가 “감추어졌던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빛을 1:24절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는 진술에서 받을 수가 있다. 그리스도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하는가?
강론
본문에는 “지혜”라는 말이 5번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핵심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라”하고,
㉡ “곧 감추어졌던 것이라”하면서,
㉢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 그리고 8절에서는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는데 누가 알았더라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지 않았으리라는 의미일까요? 문자적으로는 당시의 통치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몰랐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는 뜻으로 여길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어찌하여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라 하는가? 하나님께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모르도록 “감추어놓으셨다”는 뜻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열쇠는 두 말씀에 있다 하겠는데 첫째는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둘째는 “하나님의 지혜”를 어찌하여 감추어놓으셔야만 했는가를 추적해보아야만 분명해질 것입니다.
사도는 이 문단을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2:16)고 마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우리들도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 주의 마음”을 알아서 담대히 증언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①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리”란 어떤 상태에 있는 자들입니까? 죄 값에 팔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히 2:15)하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떤 방도로 “영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 히브리서 2:10절에서는 “많은 아들들(우리들)을 이끌어 영광(榮光)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그리스도)를 (십자가)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고 말씀합니다.
㉢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合當)하도다”하는데 이점을 로마서 3:25-26절에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진술합니다.
“곧 이 때”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때를 가리키고,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란 뜻은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을 정죄(定罪)하고, 심판(審判)하여, 죽음에 내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손상됨이 없이 합당하게 이루어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이렇게 하시기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 또한 “미리 정하신 것이라”하는데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다”(행 2:23)고 증언합니다. 이 십자가사건이 임기응변으로 된 일이 아니라 이사야 53:10절에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한 예언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명백하게 깨닫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② 그러면 둘째로 추적해야 할 문제는 “곧 감추어졌던 것이라”(7)한 점입니다. 전쟁을 할 때 작전을 비밀로 하는 것은 적이 모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누가 모르도록 감추어놓으셨다는 뜻인가 하는 점입니다.
㉠ 이를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로 가보아야만합니다. 우리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신 창세기 3:15절을 “원 복음”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하신 선고입니다. 사탄은 자신이 “여자의 후손”에 의하여 멸망당하게 되리라는 점을 창세기 3장에서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 그리하여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신 대로 그리스도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계속적으로 대적한 것이 성경역사인 것입니다. 그 절정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한 요한복음 13:2절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죽이면 자신이 승리하는 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주님은 악한 농부의 비유에서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마 21:38-39)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맥락으로 본문 2:7절의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는 언급을 음미해보면 어떤 뜻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계획, 즉 작전(作戰)을 사탄이 모르도록 감추어놓으셨다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점을 주 성령께서는 바울에게 계시하셔서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3-4)고 진술합니다.
바울 서신에는 “비밀”이라는 말이 모두 19번 등장하는데 에베소서와 동시에 기록한 골로새서에 각각 6번씩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옥중에 갇힌 상황에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고 담대히 증언하여 격려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점이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한 부탁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③ 이제 오늘 설교의 중심주제인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가를 증언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 사탄은 “예수”를 죽이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실패할 줄로 여겼으나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도리어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점을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4-15)고 담대히 증언합니다. 십자가복음의 승리를 증언하는 중 성경 전체를 통해서도 여기가 압권입니다.
㉡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었다”하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첫째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는”(마 27:52)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죄가 대속이 되어 죄로 말미암아 막혔던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 즉 구원의 문이 열려졌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폭탄적인 증언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롬 8:1-2)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방도로 해방을 하셨습니까?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罪)를 정(定)하심”(롬 8:3), 즉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을 “정죄”하심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하시고 심판을 받지 않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으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해방되리라는 점을 간교한 사탄이라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사탄은 “예수”를 죽이면 승리하는 줄로 여겼으나 도리어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의 바로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2:9), 즉 상상을 초월하는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 것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시키시는 것으로 예시하셨던 것입니다.
④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도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선언합니다.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믿고 죽은 자들에게 부활의 문을 여셨다는 뜻입니다.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0-21)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만 부활의 문이 열려진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히 11:13)한 구약시대 성도들에게도 부활의 문이 열려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입니까?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으면 믿고 죽은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게 되리라는 것을 간교한 사탄이라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계시록 7:9절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⑤ 끝으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가 또 있는데 성경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히 2:14)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점에서 두 가지에 확고해야하는데 첫째는 사탄이 어떻게 해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요, 둘째는 사탄은 이제도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데 “마귀를 멸하셨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 첫째로 사탄이 어떻게 해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되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점도 바울에게 계시하셔서 증언하게 하셨는데 “죄가 기회를 타서”(롬 7:8), 즉 사탄은 “기회”를 엿보는 자라 하면서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고 진술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하시자, 기회를 엿보던 사탄은 “옳다 됐다”하고 하와를 유혹하여 금령을 범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죄 값은 사망이라 하셨죠, 법대로 집행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밤낮 참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탐내지 말라”(출 20:17)하시자, “옳다 됐다”하고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貪心)을 이루었나니”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금령, 계명”이 이처럼 사탄에게 악용당할 것을 모르셨단 말인가? 하나님의 단수가 사탄보다 한 수 아래란 말인가? 아닙니다. 사도는 “그런즉 선한 것(계명, 율법)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고 대답합니다.
현대교회의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입으로는 “죄인, 죄인”하지만 진실로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날”뿐만이 아니라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한 완전히 깨지고 부서지는 깨달음이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감기에 걸렸다 나은 사람과 말기 암에서 고침을 받은 자의 감사와 기쁨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을 깨닫게 하여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행함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갈 3:24)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감추어졌던 지혜”인데 사탄은 이를 모르고 유혹하고 정죄하고 참소했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둘째로 “마귀를 멸하셨다”는 뜻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경계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히 2:14)니 무슨 뜻인가 하는 점입니다.
계시록 12:10절에서는 “마귀를 멸하셨다”는 점을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낮 참소하던 사탄이 어찌하여 쫓겨났는가? 그것은 분명합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죄 값은 사망이라”하신 대로 성취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취해주셨습니까?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심”(고후 5:19, 21)으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은 참소할 근거(根據)를 잃었기 때문에 추방을 당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세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권세를 상실한 점을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좀 더 말씀을 드리면 계시록 20:2-3절에서는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하면서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지금도 “우는 사자 같이”같이 활동하고 있는 사탄을 “결박했다”는 뜻이 무엇인가? 핵심은 “미혹”에 있는데 복음진리에 확고하게 세워진 자들은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혹하던 자가 도리어 복음의 능력으로 결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⑥ 사도는 골로새서 1:26절에서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순교 직전에 기록한 목회서신에서도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는데 이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나타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의 비밀,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다음은 무엇이 와야 하겠습니까?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1)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주님께서 박해자였던 바울을 “사울아, 사울아”하고 부르셔서 “내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 놓은 복음을 네가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하고 시작이 됩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만 이렇게 부탁하셨겠습니까? 계시록 12:11절은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십자가복음)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엡 6:19)한 바울의 기도제목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의 고별설교를 인용함으로 강론을 마치고자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아멘.
그 큰일을 행하신 주께 영광 이 세상을 사랑해 주 오셨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사 저 영원한 생명문 여시었네
우리 주 높이세 귀한 말씀 듣고 우리 주 높이세 모두 기뻐하며
주 예수님 힘입어 하나님께 그 행하신 큰 역사 찬양하세 (615장)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