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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머리 전체를 감싸거나 온몸을 가릴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가면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원을 지닌 주술적·종교적·예술적 표현물로서,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왔다. 가면의 재료로는 목재·금속·돌·종이·찰흙·가죽·모피·뼈·천·잎·줄기·깃털·조개·상아·산호 등 거의 모든 자연물이 사용되며, 보석이나 헝겊조각 등으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초자연적 존재, 인간, 사자, 동물 등 여러 가지 대상을 표현하는 가면은 그 사회적 역할 또한 다채로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인식·제사·풍년기원·의료·장례 등의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상징적인 존재의 역할이다. 그밖에도 호부·장식·호신용 수단·장난감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며 연극이나 무용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면의 본질적 기능은 표정을 바꾸는 데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단순한 자연물로 그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내면에 어떤 초월적 대상을 느끼고자 한다. 가면은 이처럼 모순된 이중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그 상징적 대상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매체역할을 해왔다.
기원
가면의 기원을 설명하는 학설은 매우 다양하다. 첫째, 원시시대의 수렵민들이 사냥에서 위장의 수단으로 가면을 사용했던 것이 이후에 신령을 깃들게 하는 신접물로 발달되었다고 설명하는 학설이 있다(→ 영). 둘째, 싸움터에서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얼굴·몸·방패 등에 채색을 하고 문양을 그리던 것에서 가면의 기원을 찾는 견해가 있다.
셋째, 시체에 악령이 깃드는 것을 막고 죽은 사람의 영혼불멸을 나타내기 위해 가면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특히 신화적 조상을 그려내는 수단이었다고 보는 견해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다. 넷째, 비밀결사의 구성원들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처음 고안해냈다고 보는 학설도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결사조직이 없는데도 가면을 사용했던 많은 예를 지적하면서 이를 반박하는 입장도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 속에서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가면이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그 기원을 명백하게 하나로 설명하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가면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했던 것은 종교적·주술적 의식과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제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인식 가면
성인식이란 어린아이가 자라 어느 정도의 연령에 이르렀을 때 성인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 행하는 통과의례이다. 성인식의 형태는 관습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면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람들은 그 가면을 쓴 초월적 존재에 의해 비로소 입문식이나 종교의식이 성립되고 또 그 힘으로 결사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성인사회에 입문하는 젊은이에게는 가혹한 시련과 공포가 주어지는데, 이때 기괴한 가면을 쓴 장로들이 초인적 존재로 젊은이들 앞에 나타나 가르침을 전한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세누포족(族)의 마을에서는 긴 머리를 신비롭게 늘어뜨린 '쿠베리에'가 매우 명상적인 표정의 가면을 쓰고 의식을 주재하는데, 이 가면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나약함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같은 코트디부아르의 포로 결사에 속한 부족이면서도 워베족은 원통과 기묘한 형태의 돌기로 근대조각처럼 구성된 가면을 사용하며, 게레족은 윤곽이 뚜렷하면서도 어둡고 격렬한 표정의 가면을 사용하는 등 부족마다 독자적인 양식을 발달시켜왔다.
콩고 바벤데족의 성인식에서는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어린 정령의 가면을 쓰는데, 이 가면을 벗고 상아로 만든 작은 가면 모형의 펜던트를 달면 그것으로 완전한 성인이 된다. 부족민들이 재난을 물리치고 몸을 지켜준다고 믿어 일종의 호부로 지니는 그 작은 가면은 큰 눈을 감고, 입은 속으로 이야기를 하는 듯 꽉 다문 신비한 표정에, 정교하게 세공한 머리장식이 독특하게 조각되어 있다.
태평양 문화권, 특히 멜라네시아의 성인식에도 매우 다양한 형태의 가면이 등장하는데, 그 표정은 대체로 압도적인 박력을 지니고 있다. 뉴기니의 세비구 강 유역에는 각 부락마다 고유한 가면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각 부락민들은 그 가면이 신화적인 조상의 상(像)이라고 믿어 평소에도 비밀결사 의식을 행하는 장소에 보관하는데, 아녀자들은 접근할 수도 없고 장기간의 성인식을 거쳐 결사에 입문한 남성만이 그 가면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지역의 가면 형상은 상상력이 매우 풍부하고 현실의 재현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보여주는데, 긴 얼굴 가득히 그려진 기묘한 문양과 변형된 표현방식은 놀랄 만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뉴기니뿐만 아니라 뉴아일랜드·누벨칼레도니·뉴헤브리디스 제도 등지에서도 가면의 보고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예술성 높은 가면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목각을 비롯해 나무껍질을 엮은 것, 건초, 야자나무 섬유, 등과 같은 식물을 교묘하게 가려 쓰며, 찰흙·석회·돼지기름 등을 반죽한 뒤 조개나 뼈를 박아 넣고 모피나 새털을 붙이는 등 다채롭고 생생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가면은 목각을 많이 이용해 입체적인 조형력을 지니면서도 비교적 정적(靜的)인 느낌을 주는 반면, 오세아니아의 가면은 보다 평면적이고도 격렬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토템의 가면
성인식 가면도 대부분 조령을 상징하지만, 조령신앙의 원형은 토테미즘이다. 토테미즘이란 씨족이나 가족과 같은 하나의 사회집단에서 어떤 동물·식물·자연현상 등이 자신들과 특별한 관계를 지닌다고 믿어 그 대상을 집단의 상징으로 삼고 그와 관련된 금기를 통해 사회적 규제를 받는 습속이다.
각각의 토템 집단은 오래전 그들의 조상과 그 자연물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에 관한 신화를 갖고 있으며, 그 내용을 주로 종교의식에서 재현하는데 이때 가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사의식에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인물은 곧 신화 속의 조상과 동일시되어 숭상과 경외의 대상이 되며, 가면 자체에도 토템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평소에도 가면을 잘 보관하고 대접하는 일이 중대한 의무이자 특권이다. 또한 토템 신앙에서는 토템 동물과 인간의 근원을 일체로 보아 인간의 혼이 동물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동물의 혼도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가면에 구체화하기 위해 인간과 토템 동물의 얼굴을 짝지어 하나의 가면에 새기기도 한다.
구와기우도루족·헤이다족 등은 가면에 정교한 장치를 부착해 춤을 추면서 끈을 당겨 그 표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부리·코·턱·눈 등 가면의 일부만을 움직이도록 만들어 그것을 조작해서 신화 속의 이야기들을 재현하기도 한다. 이때 가면에 채색된 극채색 문양들도 그저 단순히 미적 효과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깊은 의미를 전해준다.
움직이는 가면은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도 발견된다. 한 예로 '최초의 여명'이라는 가면에는 검은 날개가 달려 있어 그 날개를 접으면 밤을 나타내고, 끈을 당겨 날개를 펴면 붉은 부리를 가진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끈을 당기면 가늘고 긴 막대기를 따라 태양이 떠오르고, 뒤이어 희게 칠해 빛을 발하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 가면 윗부분에는 안개와 아지랭이를 표현하는 작은 깃털이 나오도록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캐
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인디언과 베라베라족·위게이족 등은 부족의 계율을 수호하는 토템 조령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데, 그 가면의 형상이 대체로 두툼하고 늠름하면서도 섬세하고, 놀랄 만큼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의 아메리카 인디언은 독수리·큰까마귀·곰·늑대 등의 토템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신화적 동물을 미국 삼나무에 조각하고 극채색으로 장식해서 부락이나 집 앞에 문장주(紋章柱)로 세운다. 멜라네시아·동남아시아·중화민국 등지에서도 문장주와 유사한 형태의 관행을 볼 수 있다.
뉴기니의 파푸아족은 높이 6m에 달하는 거대한 토템 가면을 여러 개씩 세우는데, 나무와 나무껍질로 만든 그 가면들은 짐승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는 큰 눈이 그려져 있고, 묘한 영력(靈力)을 느끼게 한다. 또 비밀결사의 집회장소에 벽면을 향해 세워두는 가면은 그 종족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토템 가면을 상아나 단단한 목재에 조각하는데, 선이 우아하고 표면에 광을 냈으며, 사슴·영양·고릴라·코끼리·퓨마·표범 등이 아름답게 양식화되어 있어 다잡혀진 고귀함이 있다. 이에 비해 남태평양 여러 섬의 토템 가면은 보다 기괴하고도 장중하다.
샤먼의 가면
아시아에서는 시베리아·중국·한국·일본 등의 북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샤머니즘이 종교생활의 중심을 차지했다.
샤머니즘은 특이한 영력을 지닌 샤먼이라는 주술사가 신내림을 받아 자유자재로 신령과 교류하면서 여러 가지 신력을 행하는 것으로서, 주술사나 주의(呪醫)가 활약하는 원시적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앙의 형태이다. 북방 아시아의 샤먼은 가면이 없으며, 샤먼이 반드시 가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면을 가진 샤먼에게는 그것이 큰 의미와 역할을 담당한다.
현존하는 샤먼의 가면으로 가장 흥미를 끄는 것 가운데 하나는 에스키모의 가면이다.
샤머니즘의 힘이 매우 강한 에스키모 문화에서는 신들린 상태의 샤먼이 하늘 높이 또는 땅속 깊이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면서 선령·악령과 교제하는데, 이때 악령이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하도록 가면을 사용했다. 어떤 가면은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도록 짐승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것은 1장의 헝겊을 얼굴 앞에만 늘어뜨리도록 만들어지기도 했다. 에스키모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각각의 정령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이누아'라 부른다. 가면에 표현되는 이누아의 형상은 샤먼이 신들린 상태에서 본 몽환(夢幻)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우 환상적이고도 자유로운 풍취를 느끼게 해준다.
옛날에는 몽환을 본 샤먼이 그 형상을 만들어내는 일까지 직접 맡았었다. 예리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이들 가면은 매우 신비적이며 이상할 만큼 가볍다.
북아메리카 남서부 푸에블로 인디언의 샤먼은 두건처럼 푹 덮어 쓰도록 만든 독특한 양식의 가면을 간직하고 있다. 부족민들은 이 가면에 '카치나'라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평소에도 소중하게 단지 안에 밀봉해 특별한 집에 보관하고 샤먼이 관리한다. 해마다 샤먼은 구름과 비의 영, 별과 대지의 여신, 하늘의 신 등을 나타내는 '카치나 가면'을 쓴 춤꾼과 함께 풍년을 비는 정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한다.
푸에블로 인디언에게 최초로 비를 내려준 카치나는 그후 사막의 땅밑에 살게 되어 그들을 떠나 갔지만 그때 가면을 남겨두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가면을 쓴 춤꾼은 비를 오게 하려고 되돌아온 카치나의 화신으로 간주된다.
이들 가면은 원통형으로 머리 전체를 푹 덮어 씌우고도 어깨까지 닿으며 무두질한 가죽, 오래된 안장, 생가죽 등으로 만드는데, 사람의 얼굴을 본떠 양털이나 말털로 머리카락도 만들어 붙인다. 또 이들 가면에는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횐 독말풀 꽃이나 깃털·구슬·모피 등으로 장식을 하기도 했으며, 다채롭게 채색을 했다.
카치나 가면은 특히 형태에 따라 성별이 있어 둥근형의 머리는 남성을, 모난형의 머리는 여성을 나타낸다.
병을 고치는 주술사는 특별한 카치나 가면을 사용했다. 북아메리카 북동부의 이로쿼이 연합에 속하는 세네카족·오논다가족·가우가족의 부락에서는 가면을 쓴 비밀결사가 병마를 쫓아내는 주술적 의료행위를 했다. 결사의 성원들은 질병을 불러온다고 전해지는 가하도고가·고고사 등의 악귀를 가면으로 만들어 썼는데, 참피나무로 만들어야 생명이 깃든다고 여겨 가면을 만들기 전에 먼저 참피나무에게 잘라내도록 허락을 청하는 주술의식을 행했다.
그뒤 벌목을 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는 나무에 직접 가면의 형상을 새긴 다음 기도를 드리고 제물로 담배를 바치면, 마침내 가면에 깃들려는 숲의 정령이 눈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그 정령의 모습대로 가면이 완성되었다. 이때서야 비로소 나무에서 가면을 파내 말갈기 따위로 머리카락을 만들어 붙이고 혼을 불어넣는 의식을 행한 뒤 의료행위에 사용했다.
이밖에 '옥수수껍질 집단'에서도 다른 형태의 가면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며, 콩고 지방에서도 주술사들이 주력이 응고된 듯한 을씨년스런 형상의 가면을 사용한다.
샤먼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가면은 그 자체에 병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져 널리 이용되었다. 그 일반적 형태는 특정한 질병을 상징하는 가면을 쓴 사람이 춤과 음악으로 환자에 붙어 있는 병을 떼어내 가면에 옮겨 붙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북아메리카 남서부의 나바호 인디언은 샤먼이 모래 그림으로 병을 치료한다고 믿었으며, 특히 역질(疫疾) 퇴치를 위해서는 군신(軍神) 가면을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질병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 홍역·천연두·콜레라 가면 등을 쓰게 했다. 질병의 악귀를 쫓는 가면이 번성한 곳은 스리랑카로서, 가면의 종류가 모두 19가지나 되며 귀머거리도 가면의 힘으로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 나바호 인디언, 샤머니즘, 스리랑카, 에스키모, 카치나, RFIDXRF IID="ID23" RID="id158923">푸에블로 인디언
액막이 가면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가면을 쓰고 춤을 추거나 연극을 해서 악령을 축출하는 의식이 많이 행해졌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면이 악령에 대해 힘을 가지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재앙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겨 행사가 끝나면 대부분 그 가면을 태워버렸으며, 다시 사용할 경우에는 그때마다 색깔을 바꾸어 칠했다. 티베트의 라마교 사원에서 행해지는 제의 무용도 악마를 쫓기 위한 행위의 일종이다.
징계의 가면
가면은 또한 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는 탑처럼 높이 솟은 가면, 수호신을 상징하는 맘보와 쟘보, 요란하게 채색된 거인상 등 여러 형태의 가면을 쓴 남자들이 부족의 질서를 지키고 범죄인을 처벌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뉴브리튼의 '다구다구'라는 비밀결사는 1개월에 1번씩 1.5m나 되는 거대한 가면을 쓰고 부락을 순회하면서 재판을 하거나 범죄인을 처형하는 일을 한다. 이밖에 중국·일본·아프리카·오세아니아·북아메리카 등지에서도 교육용 가면을 흔히 볼 수 있다.
풍년의식의 가면
인류의 문화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수렵·목축 등으로 유동 생활을 하는 민족에 비해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족에게서 보다 풍부한 가면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기술수준이 낮고 자연조건의 지배를 크게 받은 시대일수록 주술적인 농경의례가 성행했는데, 지금도 그 전통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농경의례의 양식은 다양하지만, 풍년을 가져오는 신격과 정령이 가면의 형태를 빌어 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에서 샤먼의 가면으로 예를 들었던 카치나 가면도 이에 포함된다.
보르네오의 가얀족은 볍씨를 뿌릴 때 벼의 영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어 그 영이 자신들의 땅에 머물도록 하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수확제사에 정령의 가면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풍년제에도 다양한 종류의 가면이 등장하는데, 서민의 생활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소박하면서도 신비스런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농경민족에게서는 농작물의 영이 일단 죽은 후 다시 부활해 결실을 가져온다는 내용의 신화가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대지의 풍년과 죽음의 관념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풍년의식에도 사령이나 조령의 가면이 등장하는 예가 많으며, 이밖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가면도 풍년을 의미하는 가면으로 쓰인다. 한편, 북아메리카의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풍년의식에는 오늘날 할로윈이나 사육제 등의 축제에 쓰이는 것처럼 을씨년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익살꾼들이 등장했는데, 이는 악의없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져 도에 지나친 것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사령의 가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은 인류의 모든 문화지역에서 발견된다. 또 에스키모는 지금도 장례식 때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본뜬 가면을 관위에 걸어 시체를 악령으로부터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며, 고대 이집트인들도 왕이나 귀족의 시체는 미라로 만든 후 보옥과 극채색으로 장식한 황금가면을 씌워 관에 넣었다. 이집트인들은 저승에서도 이승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며, 시체를 원형대로 보존하면 영혼이 돌아와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전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 돌아온 영혼이 자신의 육체를 찾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미케네 문명의 유적에서도 그와 같은 황금가면이 발견되며,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방의 여러 왕국에도 미이라에 사자의 가면을 씌우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멕시코 고원의 테오티와칸·마야·아스테카 문명에서도 사자를 위해 정교하고 화려한 가면을 만들었으며, 캄보디아와 타이에서도 죽은 왕의 얼굴에는 황금 가면을 씌우는 것이 관례였다. 이밖에도 중국,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크림 반도, 페니키아, 메소포타미아, 프랑스, 영국, 도나우 강 유역 등 세계 각지에서 금·은·동·테라코타 등으로 만든 매장용 가면이 발견된다. 특히 고대의 페니키아·이집트·그리스·아시리아 등지에서는 주요인물의 얼굴을 재현할 때 직접 그 사람의 얼굴에서 틀을 뜨는 방법을 이용해 가면을 제작했다. 로마인들은 밀랍으로 원형을 뜨는 방식을 고안했으며, 19세기 구미에서는 소성석고를 사용하는 기법이 유행했다.
한편 뉴기니의 아스마트파푸아족은 부락 주위를 방황하는 사령을 쫓기 위해 '지파에'라는 제의(祭儀)를 행했는데, 죽은 사람의 혼령을 다른 세계로 떠나 보내야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이 엄숙하고 비밀스러운 의식과 춤으로 사령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장례식은 죽은 당사자와 조령, 악령, 자비로운 사령, 신화적 존재 등 다양한 가면들로 장식했으며, 특히 난동을 부리며 좀처럼 육체를 떠나려 하지 않는 완고한 혼령을 위협하기 위해 무서운 형상의 가면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도네곤족의 장례식은 6일간이나 이어지는데, 그동안 가면을 쓴 무용수가 계속 춤을 추어 혼령을 육체에서 분리시키려 했다.
또 멕시코나 멜라네시아 등지에서는 두개골로 만든 가면이 발견된다.
고대 멕시코의 아스텍족은 정신이 머리에 깃들어 있다고 믿고 주요인물의 두개골을 소중히 여겨 이를 가면으로 만들고 벽에 걸어 우상으로 섬겼다. 멜라네시아에서는 사자의 상(像) 앞면에 장식을 단 두개골을 씌워 그 형상에 생명을 주었는데, 이는 알래스카 인디언의 추장이 죽으면 제사용 기둥의 구멍에 시체의 재를 넣어 기둥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알래스카 이퓨타쿠 유적의 선사시대 두개골은 악령이 들어가기 쉽다고 여겨진 눈·코·입 등의 구멍을 모두 바다코끼리의 송곳니로 봉해 놓아 훌륭하게 조형된 가면으로 보인다.
방호용 가면
전쟁이나 격투기에도 가면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원래 얼굴을 보호하기 위한 것보다는, 적을 위협하고 또 그 가면으로 주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가면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아프리카, 자바, 북아메리카 북서안 인디언 등의 무용공연이나 의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뉴아일랜드의 원주민들은 싸움이 끝난 뒤 '평화의 가면'을 쓰고 적과 어울려 주연을 벌이기도 했다.
연극용 가면
가면은 원래 성스러운 영력을 지니는 종교적인 상징물이었고, 그 신성한 전통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연극이나 무용공연에 등장하면서 가면은 점차 세속화되고 분장용 소도구로 사용되는 예가 많아졌다. 유럽에서 그리스 연극과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라르테가 발달되고 동양에서도 중국, 한국, 티베트, 인도, 발리 섬 등 각지의 가면극이 성행하면서 각각 독특한 가면들이 발달했다. 중앙·남아메리카에서도 스페인 침입 이후 가면무용과 풍자극이 도입되어 널리 행해져왔다.→ 가면극, 탈춤
한국의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가면을 탈·탈바가지·초라니 등으로 부르거나 가면·가두·면구·가수 등과 같은 한자표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가면은 일반적으로 얼굴 앞면만 감추는 형태를 가리키며 머리 전체를 감싸는 것은 가두·가수·투두 등으로 구별한다.
한국 전통 탈
한국 전통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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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서 漢書〉 예악지에도 가두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으며, 〈주례 周禮〉에 나오는 '방상시가면'도 주대 이래 방상두·희두 등의 용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가면·가두의 2가지 양식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면을 기능에 따라 나누면 신앙가면과 예능가면으로 분류된다. 신앙가면은 지정된 장소에 가면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거나 얼굴에 쓰고 잡귀를 내쫓는 등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된다. 신앙가면으로는 벽사·의술·영혼·신성 가면 등이 있고, 죽은 사람을 본뜬 추억이나 기우 또는 토템 가면 등도 신앙가면에 속한다. 이밖에 수렵·전쟁 가면도 원래는 실용적 동기에서 사용된 것이지만 역시 주술성을 지니기 때문에 신앙가면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예능가면은 다시 무용가면과 연극가면으로 나누어지는데, 처용무·산대가면극·서낭신제가면극 등의 가면들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탈은 인물에 바탕을 두어 얼굴 형태를 한국적인 표정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며 배역에 따라 인물의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하회가면의 양반·선비·중·각시 조각은 매우 뛰어나다. 탈에 새겨진 얼굴의 용모는 기괴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로 표현의 힘이 강하며, 색상은 주로 주홍색을 사용하고 흑남색과 금색·은색도 많이 쓰인다. 또한 헝겊으로 만든 탈보와 노끈을 달아 연기자가 자유 자재로 행동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하회별신굿의 탈처럼 얼굴에서 턱을 분리시켜 움직이게 해서 표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가면은 대부분 인물을 표현한 것이 많지만 '처용가면', 산대가면극의 '연잎가면', '방상시가면' 등과 같이 여러 신(神)을 형상화한 것도 있으며, 오광대가면극의 범·사자 가면처럼 동물을 묘사한 가면도 등장했다. 또하나 특이한 것으로는 양반가면을 들 수 있는데, 양반을 언청이·코비뚤이·입비뚤이·사팔뜨기 등으로 풍자해 평민들의 불만을 가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탈은 대부분 짙은 색채와 끔찍스러운 형상으로 기괴하고도 상징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다.→ 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