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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꿈에서 본 일본 스님이 아닌가!”
대원화(순천 보승사 총무)
1) 생전 처음 해보는 큰 행사
2001년 10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당시 금당절 3층에 있는 요사채에 있었는데 갑자기 많은 스님들이 3층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스님마다 나에게 봉투를 하나씩 주었는데 어떤 스님은 5만원, 어떤 스님은 10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오신 스님은 한국 스님이 아니라 일본말을 하였다. 신기한 것은 나도 일본말을 다 알아듣고 자연스럽게 일본말로 이야기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본말을 하는 스님은 노란 서류 봉투에 돈을 가득 넣어 주었는데 100만원도 넘을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우리 스님에게 ‘일본 스님은 돈을 많이 주신다.’고 말씀드렸다.
‘참 이상한 꿈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한 달쯤 지난 뒤 영도 스님에게 내 꿈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스님이 아주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큰 행사를 치루는 꿈이다. 사실은 내가 중국의 관정 스님을 초청하여 큰 법회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총무가 도와주면 잘 될 것이라고 본다.”
알고 보니 스님은 일찍이 이 일을 추진하면서 일이 자꾸 뒤틀려 마음고생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찬성하였다. 평소 나의 생각은 출가해서 수행하시는 스님들에 비해 속가의 우리들은 사욕이 많아 바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 스님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열심히 일을 추진하기로 하고 임원들에게 이야기 해 보니 모두 걱정이 앞선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재기 거사와 성불 보살을 비롯하여 임원들이 힘을 합쳐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기본자금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결국 열심히 노력하여 100만원씩 보시할 수 있는 10명쯤을 모아 기본자금을 확보하였다. 특히 김재기 거사님이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그 다음에는 홍보다. 아무리 좋은 밥상을 차려 놓아도 참가자가 없으면 실패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사 안내문을 준비하여 가지고 직접 여러 절로 뛰기 시작 하였다. 스님이 전화를 해주시면 나는 안내문을 찍어 봉투에 넣고 그 봉투에 붙일 우표 값까지 함께 가지고 가서 각 절 신도들에게 부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순천 시내 뿐 아니라 후원한 송광사 화엄사 선암사 같은 절에도 가서 현수막 . 책자(당시 「극락세계 유람기」을 1,000권이나 발행했다) . 팸플릿을 다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지만 열심히 뛴 만큼 결과는 나왔다. 각 절에서는 현수막을 걸어주었고, 그 현수막을 보고 여러 불교 매체들이 스스로 홍보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행사일이 다가오고 11월 2일 법문을 해주실 관정 대법사님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우리 절에 도착하셨다. 그 때 도착한 관정 대법사님을 본 나는 깜짝 놀랬다.
“아니! 꿈에서 본 일본 스님이 아닌가!”
바로 내가 본 일본 스님과 똑 같은 스님이 우리 절을 오신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그때 우리가 한 말이 일본말이 아니라 중국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로서는 두 가지 말을 다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꿈에 만난 그 스님이 틀림없이 나는 우리 스님에게 ‘저 스님은 내가 꿈속에서 뵌 일본에서 오신 스님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영도 스님께서는 ‘저분은 중국 관정 법사님이다’고 하셔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 1,000명이 넘게 참석한 대법회
행사 당일 우리는 일찍 왕지초등학교에 가서 부지런히 준비를 하였다. 김재기 거사, 성불 보살과 함께 임원들은 열심히 뛰었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강당의 의자를 다 채우더니 체육관에 꽉 차고 가에까지 뺑 둘러 차버렸다. 정말 상상도 못해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성불과 함께 관정 스님 시중을 들고 있는데 김재기 거사님이 오셔서 신도가 넘친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강당에 꽉 찬 신도들을 보고 너무 좋아서 ‘이제 됐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 어깨동무를 하고 뛰었다. 그때서야 다른 임원들도 기뻐하며 함께 동참해 주어 일은 훨씬 쉬워지고 행사가 잘 진행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여기저기 뛰어 다녔지만 하나도 힘든 것도 몰랐다. 특히 놀라운 것은 스님들이 50~60명이나 오셨다는 것이다. 이 행사를 치룬 임원 가운데 김재기 거사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무척 좋아 했을 것이고, 관정 법사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행사는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50명이 넘는 합창단의 찬불가로 시작되어 진옥 스님과 여수에서 가장 큰 절인 흥국사 주지 스님의 축사가 있었고, 이어서 관정 큰스님 법문이 있었다. 통역은 대주 스님이 맡아서 해 주셨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마정수기는 하루 종일 이어져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계속되어 우리들은 우유와 빵을 사다가 참가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지만 힘들고 비용이 나간다는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큰스님의 극락왕생 수기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했다는 자부심 때문에 하나도 피곤하지도 않고 아깝지도 않았다.
행사는 아침 10시부터 시작하여 날이 어두워져야 끝났고 체육관에서 다 하지 못한 불자들은 그 다음 날 금당 절에서 계속되는 성황을 이루었다. 어림잡아 1,200명이 참석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순천에서 불교행사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행사의 피크는 오히려 마지막 날이었다. 나중에야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수 석천사 신도들이 흥국사에 갔다가 소식을 듣고 함께 찾아왔다.
“아니,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 왜 연락도 안 했어요? 잘못했더라면 놓칠뻔했잖아요.”
나는 보살님들께 “일손이 부족하고 경험이 없어 모든 분들에게 다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셔서 마정수기를 받으셨으니 다행입니다.” 라고 했더니 모두 그렇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또 한 분 특별한 손님은 화엄사 종국(은산) 스님이다. 첫 날 아침 일찍 오시려고 챙겼는데 주변 스님들이 말렸다고 한다.
“큰스님 어디 가십니까?”
“순천 금당절에 극락 다녀오신 중국 스님이 오셔서 법회를 한다고 해서 가려한다.”
“참선을 종지로 삼은 우리 절에서 그런 행사에 참석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난리를 쳐, 그날 못 오고 마지막 날 몰래 챙겨 입고 서울 간다고 한 뒤 금당절에 오셔서 관정 대법사로부터 마정수기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 때 나는 종국 스님을 처음 뵈었는데 키도 크고 잘생긴 스님이 정중하게 마정수기를 받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불 보살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화엄사 큰스님이라고 한다. 나는 그때 종국 스님을 큰스님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큰 절의 큰 스님이 정말 진지하게 마정수기를 받는 것을 보고 더없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행사가 끝난 뒤 우리 스님의 요청에 따라 그때 찍은 사진과 꽃다발을 준비하여 찾아뵈었으나 출타중이시라 유발상좌에게 맡기고 왔다. 그 뒤로 종국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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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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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
바다건너
일본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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