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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1. (토) 복되신 동정마리아 신심 미사
♣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
옛날에는 달력이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열 달이 1년이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안 맞는 거예요. 이게 그래서 두 달을 중간에 끼워넣은 거거든요.
두 달, 그게 7월하고 8월이에요. 중간에 끼워넣은 겁니다.
그래서 무슨 달이라고 할까 고민을 했는데 당시 로마의 최후의 황제였던 율리우스 이름을 따서 칠월이 된 거예요. 줄라이(July). 그다음에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이름을 따서 어거스트(August) 그래서 팔월이 된 거예요.
그래서 열두달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잘 안 맞아요. 왜 왜 안 맞을까요? 지구가 약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이게 자전과 공전을 통해서 한 바퀴를 다 돌면 딱 맞아야 되는데 그래서 만들어낸 게 윤달이에요. 이게 딱 안 맞아요 그래서 만들어낸 게 윤달입니다.
그래서 1년 365일 돌아가도록 이렇게 만든 게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만들어 낸 지금도 쓰고 있는 이 달력, 이걸 뭐라고 부르냐 하면 그레고리력이라고 불러요. 그레고리력, 그레고리오 교황님 때 만들어진 거예요.
그렇다는 얘깁니다. 오늘 8월이에요. 8월 첫 날이라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달력이 그레고리력입니다.
첫 토요 신심미사를 드리고 있는데요.
성모님에 관한 전구는 복음에 그렇게 많이 나와 있지 않아요.
그러나 성모님의 핵심 가치는 ‘받아들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네가 아들을 갖고 너에게서 네 몸에서 구세주가 태어나게 할 것이다 라는 그 비합리적인 비과학적인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는 것, 당시 상황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수용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관계는 오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 모든 관계는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힘주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은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의무가 생깁니다. 의무.
우리가 누구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의무가 생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기를 낳으면 아기를 양육하거나 아기를 보호할 의무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아기를 낳아놓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의무를 모른 척 한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니겠죠.
여러분 요즘은 애보다도 개 키우는 게 더 많거든요.
우리나라 통계를 보니까 아기 유모차보다도 개 유모차가 3배나 더 많이 팔렸어요. 개 유모차. 키우는 걸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애완견을 키우는 것, 애완견을 내가 들여서 관계를 맺었어요. 그러면 의무가 생기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변을 치워주고 운동을 시켜주고 목욕을 시켜줘야 되는 최소한의 그 주인으로서의 의무가 생기죠.
그래서 관계가 유지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했어요. 그리스도를 믿기로 했다는 그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생기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그냥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그 관계가 발전되거나 더 좋아지거나 아름다워지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사람이 관계를 맺는 그 관계는 의무를 갖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오늘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와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 당신을 받아줄 또 다른 존재를 바라셨는데 그분이 마리아셨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좀 말씀드릴 게 있는데 연애학 박사가 있어요.
참 신기하죠. 미국의 연애학 박사 도르티라는 여성 학자입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는데 아무리 천생연분이라 하더라도 결혼 후 여러분들 한번 비교해 보세요 3년이 지나면 상대에 대한 설레는 감정은 많이 사라진다. 그러십니까 여러분?
3년이 지나니까 속으로 가슴이 뛰는 게 많이 사라지셨습니까?
아니예요? 아직도 두근거려요? 그러면 부정맥이야. 아직도 두근거리면 부정맥이에요.
그 설레는 감정이 사라지죠. 그러니까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지 못하게 되죠.
사랑에 빠지면 그 도르티라는 기록에서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게 되고 모든 감정은 깊이 서로 매료된다, 매혹당한다.
그래서 표현이 이래요.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은 천국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은 이상한 안경으로 보는 거예요. 사랑은 한 쪽만 보게 만들어요.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좋은 거야.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좋은 거예요. 그래서 사랑은 이상한 안경으로 보게 만들어요.
구리를 황금으로 보게하고요, 가난한 것은 풍족함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게 사랑에 눈멀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때가 되면 아까도 말씀드렸죠. 그 모든 설레임이 한 꺼풀 딱 벗겨져요.
그리고 상대방의 온갖 것이 다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온갖 것이 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관계는 악화되는 거죠.
서로 다른 행동 양식과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충돌하죠. 거기서 못 버티며는 헤어지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그 어려운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해 오셨어요?
대단하세요. 그 눈꺼풀이 다 벗겨졌을 때 적나라하게 보이잖아요.
상대방의 그 모습이 정말 그 추한 얼굴이 다 보이잖아요. 안 그러셨어요? 안 그랬어요?
아직도 안 그러면 부정맥이야. 병원에 가봐야 되는 거예요.
적나라하게 다 보이는 거예요.
예를 들어볼까요?
그 못난 것도 그 거친 것도 다 좋아 보였어. 그런데 어느 날 눈꺼풀이 벗겨지고 난 다음부터 다 보이는 거예요.
한 사람은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고 이 배우자는 중간부터 짜고 신기하죠. 옛날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는데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했어요. 한 사람은 어지럽혀지면 견디지 못합니다. 한 사람은 적당히 어질러져야 안정감을 느껴요.
한 사람은 옷을 옷걸이에 걸어야 하는데 한 사람은 침대에 던져놔요. 한 사람은 양말을 홀딱 뒤집어서 벗어놔요. 그 모든 것 하나하나 이제 거슬리기 시작하죠. 한 사람은 연속곡을 봐야 되는데 한 사람은 프로 야구만 봐.
옛날에는 그 TV 보는 모습도 사랑스러웠는데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야구 방망이 있으면 내리치고 싶어요. 이렇게 관계가 어긋나고 어긋납니다.
방 안에 들어가면 욕실에 들어가면 널려져 있는 머리카락, 벗어서 팽개친 양말, 옛날에 그 멋있어 보였던 그 말투가 남자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 말투가 그리고 그 쩝쩝거리면서 먹는 그 음식 먹는 거 다 보기가 싫어요. 옛날엔 남자답다고 생각했어요.
자, 이렇게 진행할 때 우리는 내 안에서 분열이 생겨요.
우리 앞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우리 앞에 놓여진 게 세 가지 선택지야.
예전에 제가 무서운 말을 들었는데 고백소에서 누군가 내게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여기가 아닌 다른 본당에서 “그래서 관계 회복을 원하십니까?” 내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니요.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 싫어요.” 얼마나 마음에 상처나 그게 있었으면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게 싫다고 하는지 “그냥 멀리 떨어져서 서로 이렇게 있는 게 훨씬 나아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결혼을 안 한 저의 입장에서는 충격의 말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앞에는 선택지가 3개가 있어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어떻게 하시고 싶으세요?
1번, 나쁜 관계지만 참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는 냉냉하게 서로 갈라져 있지만 밖에 나와서는 이렇게 같이 걷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것.
2번 완전히 결별하는 것, 떠나갑니다.
3번 불편한 관계를 넘어 새로운 관계로 진보한다.
정답은 분명한 거지만 새롭게 새롭게 불을 타오르게 할 수도 있는 그러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어렵죠. 어려운 일이에요. 그 관계를 다시 애틋하게 설레게 만드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 극단적인 말을 해도 좀 이해해 주세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관계의 회복 없이 그냥 산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 없이 그냥 산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거와 다를 바 없다.
왜 그러냐면요. 아름답고 올바른 관계는 나를 한층 업그레이드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행복의 관건이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나 행복해지고 싶지 않아요 라는 뜻이기 때문에
나 행복해지고 싶지 않아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어요.
관계의 회복을 위해 결정적 한 가지가 있어요. 어려워요. 저도 어려워요.
관계 회복을 원하세요 여러분? 아니 이건 부부가 아니더라도 우리 레지오 팀의 누구, 아니면 또 누구 있어요? 동사무소에서 하는 노래교실에 가서 그 미운 그 사람 그 관계 회복을 원하세요? 원한다면 한 가지가 있을 거에요.
그것은 1번 최소한 이것부터 시작해야 돼요. 결심. 결심이에요.
많은 문제점이 있고 어렵지만 서로의 벌거벗은 신체를 오히려 보듬어 주면서 행복해지기를 결심하는 거예요.
1번이 결심이야. 나 정말 정말로 힘들지만 그래도 관계 회복을 원해요 라고 결심하세요. 관계 회복을 원해요.
교우님들 불편한 관계가 있어요.
그런데 그 불편한 많은 관계를 지니고 사는 것은 나 자신을 구속시키는 일이에요.
나라는 존재는 이만한 데, 나라고 불리는 존재는 이~만한 데 불편한 관계가 생겨 그러면 나를 이렇게 작게 만드는 거예요.
나를 구속시키는 거예요. 나를 쬐그만하게 만드는 거예요.
교우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불편한 관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다 불편한 관계를 갖고 사는 거예요.
누구나 다 불편한 누군가 있어 그 사람 보면은 꺼름직한 사람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두를 불편하지 않을 만큼으로 만드는 건 기적이야 그런 일은 없어요.
모든 사람이 불편하지 않는 그런 사람, 그런 경우는 없어요.
그러나 결정적인 관계, 그게 누굴까요? 예를 든다면 우리 두촌성당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내 교우 이런 거는 결정적인 거죠. 그것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나의 세계를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래서 부처님 말씀하시잖아요.
인간의 마음이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어요.
자. 1번 결심이다.
성당에 아무도 없을 때 와서 성체 앞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주님! 나 관계 회복을 바랍니다.” 주님께 말씀드리는 거예요.
나쁜 관계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은요, 이것뿐만이 아니라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거예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친구들 안에서 기쁜 일이 있어도 마음 한 구석에 뭔가를 찢어 물리라는 그 무엇을 느껴. 그게 불편해요. 인간관계가 서로 불편하고 목에 가시 같은 이 감정은요 육체적으로도 연결이 돼요. 이게 누적되면 내 육체에 질병으로 드러나요. 열이 난다던가 심장이 두근거린다든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우울해지고 아까 얘기한 부정맥. 아무 때나 가슴이 뛰어 설래지가 않는데 가슴이 뛰어 부정맥, 소화 불량, 약 장사 같네. 소화 불량 등등등...
결국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선물이에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모두를 다 좋은 관계로 맺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내가 죽어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있어요. 정신적 질병이 있는 사람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그거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전문가에게 얘기해 정신병원에 알려줘.
그거를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내가 애쓸 필요가 없어요.
에너지 낭비야.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는 거예요.
제가 정말 신부 생활하면서 제일 무서웠던 말은 “신부님 내 남편과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싫어요.
그냥 이대로 살래요. 가까이 오는 게 싫어요.” 이거는 농담처럼 말씀하는 거 같지만 교우님들 지금부터 생각해 보세요.
첫사랑이 있었나요 첫사랑? 왜 첫사랑은 잊지 못하는 걸까요?
신기하죠. 왜 첫 사랑은 시간이 그렇게 지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걸까요?
여러분 그 이유를 아세요? 첫사랑이 없었다면 불행한 거예요.
다 있었죠? 아니 고개를 끄떡끄떡해요. 아니면 아니다고 하고 이렇게. 첫 사랑이 있었죠?
그런데 그 사랑은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잊혀지질 않아 왜 그럴까요?
집에서 어릴 때 자라면서 우리는 우리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어요. 이 놈의 새끼 공부도 못하고 이 놈의 새끼 뭐 뭐 막 부정적인 말만 듣고 자랐어.
어느 날 그 남자를 만났어. 그 남자로부터 인생에 처음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영어로 유 아 오케이!, 너 좋아 라는 말을 듣게 된 거예요. 그래서 잊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잊지 못하는 거예요. 내 평생에 처음으로 받아들여진 거예요. 너 유 아 오케이! 좋아 너 좋아라는 말을 들은 거예요.
그러니 첫사랑이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지금 바보가 됐다하더라도 가슴 속에는 그 사람이 그 첫사랑이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저는 그래요. 제일 어려운 일은 관계를 맺는 거고 관계는 더군다나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정말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에 가시처럼 그 불편함을 계속 가지고 살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고요.
회복되기를 바란다면 주님께 나오세요.
우리의 성모님이 그 받아들임 속에서 인류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오늘 첫 토요 심신 미사를 통해서 관계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려보고 싶었습니다.
내 말이 거슬린다면 잊어버리세요. 잊어버리세요.
안타까울 때가 있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과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