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구혼
지난 10월 22일 한강 뚝섬 선착장에 위치한 ‘한 리버랜드 웨딩홀’에서 황기순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경사스러운 날에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만감이 교차해서일까? 이 행복을 안아오기까지 지난 5년은 길고도 험난했다. 우연히 간 필리핀에서 도박의 검은 마수에 걸려 무일푼이 되고, 비참한 생활을 하다 귀국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개그맨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비록 일시적인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동료, 선배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는지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다. “먹을 것 가진 것 없었을 때 저에게 친형제처럼 저의 보호자가 돼 지켜준 박래헌 사장님께 감사합니다.” 결혼식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찌 박래헌 사장뿐이랴!
“너무나 고마운 분이 또 있습니다. 김정렬 선배와 제가 방송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선배인 주병진 선배께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힘든 과거와 곤궁한 처지를 모두 받아준 신부는 일곱 살 연하의 중학교 교사인 윤혜경 씨. 충청도 소재 한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그야말로 소설처럼 극적이었다. 두 사람은 2년 전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 때 그녀는 황기순을 그저 연예인이고 언론지상에 오르내렸던 사람이라는 정도 외에는 특별한 의미로 생각하지 않았다. 참한 인상에 성격까지 좋은 그녀에게 한눈에 끌린 것은 황기순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서갈 뿐 그녀는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처음 볼 때부터 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 과거도 있고 해서 좋다는 마음을 표시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잊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사회적인 편견도 만만치 않고, 저 혼자만 욕심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이다 첫눈 오는 날 용기를 내서 데이트를 신청했다. 솔직히 딱지맞을 각오까지 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선선히 데이트에 응했다.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그녀는 황기순이 마음에 들어서 데이트에 응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확실하게 선을 그어서 황기순을 정리시키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데이트 장소에 온 것이었다. 친구와 함께 나온 자리에서 황기순은 마치 무대에 서서 개그공연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최선을 다해 그녀를 웃기고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을 조금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해해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지난 시절이 떠올라 눈까지 붉어졌다.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그 사람과 끝난다 하더라도 조금의 후회를 남겨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제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을 보고 차마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다시 선 무대… 새로운 개그인생을 쓰고 싶다”
그렇게 만남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음 같았던 그녀의 마음도 만남이 잦아질수록 점점 녹아들어 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영글었고, “당신과 결혼하지 못하면 다시 필리핀으로 간다”는 반 협박에 속아(?)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황기순의 결혼식은 후배 개그맨인 이휘재가 사회를 맡고 이제는 원로개그맨이 된 김병조가 주례를 맡았다. 개그맨 선배들은 새로운 출발을 하는 후배 개그맨을 위해 멋진 이벤트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고영수와 김흥국이 자신의 군 후배인 해병대를 동원하여 자리를 빛내준 것이었다. 개그맨의 결혼답게 황기순의 결혼식은 다양하면서 짓궂은 이벤트도 빠지지 않았다. 신랑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박상민과 박미경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진한 키스를 시키기도 했다.
후배 개그맨들의 축하공연도 볼거리였다. MBC ‘웃으면 복이 와요’ 팀은 ‘라이브의 황제’를, KBS 개그콘서트의 박준형, 정종철 등은 ‘사랑의 가족’을 준비해 결혼식장인지 무대인지 모를 정도로 웃음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부케를 받는 것이었다. 기념촬영 시 부케 받을 사람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자 하객들은 만장일치로 엄용수를 강력 추천했고, 결혼을 두 번이나 한 그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부케를 받았다.
황기순은 온종일 울다 또 웃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자신은 속으로 선후배들이 얼마나 하객으로 참여할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몇 배로 많이 온 하객들을 보며 자신이 아주 잘못 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날 하객으로는 이홍렬, 유재석, 서경석, 고명환, 김준호, 이봉원 등 선후배 개그맨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편 황기순 부부는 1박2일 일정으로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온 후 지금은 경기도 일산의 신혼집에서 행복한 신혼일기를 쓰고 있다.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내도 열심히 사랑해주고요. 예전부터 펼쳐왔던 사회봉사활동도 꾸준히 이어 나갈 겁니다. 최근에는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비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개그인생을 다시 써 내려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