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목선부터 시작해서 고무보트에서 콤비까지 왔습니다. 면허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타다가 2006년에 1종을 따고,
보트는 7번~8번 정도 바꾼 것 같습니다. 햇수로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생활낚시를 즐기는 1인입니다.
아무튼 그간의 경험으로 볼때 바다에서는 정말 조심에 조심, 안전에 안전이라는 것밖에 남지 않습니다. 자꾸 바다를
알다보니 점점 바다가 더 무서워지고, 자연은 정말 대단하다라는 걸 조심씩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풍랑주의보가 내렸는데도 출조를 감행할 정도로 막무가내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겁이 없었던거지요.
사설이 좀 길었는데요... 오늘 경험을 여러 초보회원분들과 공유하며 다시 한번 바다의 무서움을... 또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 일을 적어봅니다.
며칠전부터 구정 다음날 출조를 마음먹고 몇몇 지인과 일기예보를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간조는 11시 정도
되고, 어제까지만 해도 바람은 좀 있어도 파도는 없어 보이더군요. 근데 오늘 새벽에 일본해상날씨를 보니 새파라네요.
하늘빛이라도 보이면 출조강행인데... 왜 갑자기 동해바다가 빨가지고 서해는 파라졌을까? 선원중 한명은 무려 3번이나
펑크가 났던 분이라 고생길 훤하지만 출조를 강행했습니다.
슬러프에 다다르니 아니라 다를까 멀리 백파가 보이고, 바람도 엄청 붑니다. 항이야 내만이라 이안하는데 별문제
없지만... 고생 좀 하겠구나.... 바람도 차고...
이안을 시키고 잠시 엔진예열과 연료계통 등을 확인하며 출조를 시작합니다... 다들 경험이 있는지라 파도치는 날은
앞자리에 앉으려 하질 않네요. 3명이 출조했는데 억지로 한 사람을 앞으로 태워 선두를 무겁게해서 통통 튀는걸
좀 방지하고 30키로 정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선두에 탄 지인은 허리도 안좋은데 안절부절 하네요... 갈수록
파도는 높아지고.... 붕 떴다 내리꽂는 순간 프라스틱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왜 자꾸 일어났다 앉었다 하는지...
이게 오늘 사고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 예전에 가의도 갈때 하두 겪어본지라 무섭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죠...
장판일때 5분 거리를 30분 넘게 걸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이래서 보팅시에는 항상 연료는 풀로 채워야합니다.
제 신조이기도 합니다. 항상 주유소에서 풀로 채워서 출조하는게 버릇입니다. 아주 당연한 거구요.
목적지인 무인도에 도착은 했는데 파도가 거세고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잠시 계류를 하고 있는데 지인이 춥다고
하네요... 그래 무심코 스로틀 상태에서 간이 난로를 꺼내는데 배가 무지막지 떠내려 갑니다... 그래서 일단 회피
기동을 하려고 기어를 넣는 순간 딱~! 거리면서 시동이 꺼지네요... 다시 걸어도 같은 증상 반복!! 기어만 넣으면
시동이 꺼집니다. 스크류를 확인하려고 트림을 올리는데 트림조차 올라가질 않습니다. 눈 앞에 하애지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지... 지인에게 배에 있던 우산으로 바닥을 찍어버라고 했습니다. 바닥에 걸렸던가 로프에 걸렸
던가 무슨일이 있는 것 같아서요. 어탐에도 수심이 3미터 정도라 비교적 안정권인데 말이죠...
그 놈의 난로가 뭐라고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벌어진 사고입니다.
배는 한도 끝도 없이 떠내려가고 10여미터만 더 가면 섬과 섬을 잊는 간출여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신조한지 불과 몇개월 되지도 않은 배인데 정말 눈앞에 하야집니다. 침착하자...침착하자...이럴때
경험이 큰 몫을 합니다. 재빨리 선두수납함에서 닻을 꺼내서 떠내려가는 반대방향으로 던져 걸었습니다.
그리고 엔진을 억지로 들어보니...아 놔! 선두에 있는 이안줄이 풀려 스크류를 이안줄에 붙은 너클이 물고 있는겁니다.
파도 때문에 덜썩 거릴때 앞에 탄덧 지인이 들썩거리면서 이안줄을 바다에 빠뜨린겁니다. 정말 예상치도 않은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일단 이안줄을 끊어 너클을 빼고 엔진 시동과 기어 확인을 한 다음 닻을 뽑을려고 하는데... 물살이 너무 세서
닻조차 뽑히지가 않네요. 배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여지껏 닻 못 푼적이 없는데 파도는
꿀렁거리지 배도 마음처럼 자세를 잡지 못합니다... 애석하지만 공구함에 비치한 칼로 끊었습니다. 배에 닻과
칼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간혹 닻 안가지고 다니시는 분 계신데 엔진 문제생기면 답 없습니다.
일단 선외기쪽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고... 무인도에 상륙해야 하는데 예상은 했지만
도무지 답이 없습니다. 솔직히 나갈것이 더 걱정입니다. 예전에 고무보트랑 콤비랑 3~4번 잠수시켰던 악몽이
생각납니다. 파도 치는 날 갯바위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튜브가 찢어지던 헐이 깨지던가 합니다.
섬에 작은 모래사장이 있는데 파도가 높을때면 1.5미터는 되고 파도가 죽으면 바닥을 보입니다.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죠.... 엔진 트림을 올려 45도 가량 올려 잡고 보트가 옆으로 밀리지 않게 핸들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도에 배가 붕 떴다가 내리꽂히는 순간 엔진은 완전히 올리고 선원들에게 뛰어내렷!
그리고 보트 양옆을 잡고 배를 회전시키게 합니다. 배의 선두가 바다쪽을 보게 회전시켜야 트랜섬으로 물이
덜 들어오고, 나갈때 잠수를 안시킵니다. 양쪽에서 배를 잡고 틀어짐을 방지하면서 파도에 밀려 조금씩 조금씩
섬에 안착을 시켰습니다... 그림이 그려지죠??? 그리고도 10여분을 잡고 있으니 그제사 파도에서 벗어납니다.
벌써 나갈때가 걱정이 됩니다.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벌써 보트 안은 물바다입니다. 빌지도 얼어서 돌지를
않네요... 라면 냄비로 적당히 물이 배수시키고 짐을 챙겨 올해 마지막 홍합재취를 시작했습니다.
코펠도 오래 썼는지 손잡이가 부러지네요. ㅠㅡ
홍합작업 할때는 거의 공동어로를 했었는데 오늘은 은근 욕심이 나더군요. 명절이라 동생 내외도 시골에 있고
한가득 담아서 보낼 욕심으로 개인어로로 전향했습니다. 세 명다 숨도 안쉽니다. 아침도 굶었는데 맥주 한캔
물고 죽자사자 채취를 하네요. 결과물로는 제가 홍합 70키로 이상에 굴벅 10키로 정도 했고, 나머지 두 분은
각각 홍합 40키로에 굴뻑 15키로 정도 했습니다. 여지껏 괜히 공동어로했나 봅니다. ㅠㅡ
종패 따거나 싹쓸이 아닙니다. 제가 손이 좀 빠릅니다.
작업을 질리게 하고 보트에 하나 가득 마대자루를 실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잔잔한 물은 눈깜짝할 사이 들어오고, 사나운 물은 오히려 늦게 들어온다더니... 잔잔한
물에 한 눈 팔다가 잘못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 같습니다. 이제 섬에서 나가아죠. 양쪽에서 보트를 잡고
뒤에서 한 명이 버티고 이안을 기다리는데 징그럽게 물이 안들어 옵니다. 보트 무게도 엄청 나니 어지간히 밑에
물이 있으면 밀리던 보트가 꿈쩍도 하질 않습니다. 슬슬 1미터가 넘는 파도에 보트가 꿀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접안보다 더 어려운 이안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원들에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합니다. 기회는 한번 뿐이고...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하라고...살기를 바란다고...
파도가 높을때는 가슴, 낮을때는 무릎정도 높이일때 전 보트에 올라타서 엔진을 45도 정도로 내리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파도가 높을때 기어를 올리고 계속 밀면서 올라타라! 선원 둘 다 단신인데 겁많은 선원은 일찌
감치 올라탔는데 늙은 선원 한분이 더 잡아 주다가 보트 뒷쪽으로 밀립니다. 트랜섬을 잡고 올라타려는 순간
회전하는 스크류에 살짝 부딪혔나 손을 놓아 버리네요. 전 벌써 모래를 스크류로 박차며 벗어났는데요.
10미터 뒤에서 가슴까지 물이 찬 곳에서 선원하나가 어쩔줄 모르네요. 진퇴양난입니다. 뒤로 가면 물이
들어오는 타임이라 또 밀릴테고... 그나마 다행인게 스크류에 무릎 나가지 않은겁니다...ㅠㅠ
이때도 경험이 발동을 합니다... 섬 앞쪽 파도가 심하면 뒷쪽은 덜하거든요... 물 속에 있는 선원에게
섬 뒷쪽으로 가라하고 둘이서 보트를 몰아 섬 뒤로 갔습니다. 경적 몇 번 울려서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면서...
섬 뒷쪽은 해저지형도 잘 모르기 때문에 갯바위나 직벽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파도가 심한 날 잘못하다가는
전복될 수도 있습니다. 파도가 꺼질때 숨어 있던 간출여에 보트가 걸리면 바로 수장이죠...
다행히 섬 뒷쪽에도 작은 모래사장이 있습니다. 보트가 밀릴것을 대비하여 모래사장 가장 중앙에 구출자를
위치시키고 보트에 탄 선원을 선두로 이동시킵니다. 엔진 역시 각도를 들어올려 바닥 걸림에 대비하고
천천히 섬으로 이동! 파도가 낮기는 하지만 조심에 또 조심하면서 접근을 합니다.
파도가 제일 낮을때 물속에 있는 선원을 최대한 보트로 이동하라 하고 엔진 중가속으로 코앞까지 간후
선두에 있던 선원의 손을 잡고 구출작전을 감행했습니다. 물론 보트는 다시 후진하면서 말이죠.... 세 명다
가슴장화를 입고 있지만 가슴 넘어로 물이 들어오면 내부가 수축되면서 상당히 위험해집니다. 넘어지면
일어설 수도 없습니다. 이 때도 필요한게 칼입니다. 칼로 장화를 찢고 탈출해야 합니다. 구명조끼를 입어도
가슴장화에 물이 차면 떠오르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무사히 선원을 구출하였고, 보트는 만선으로
꽉 찼습니다...
이 고생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또 잊고 바다를 찾겠지... 룰루랄라 슬러프를 향해
이동할때 기분이란... 추워도 즐겁기만 합니다...
이동할때도 저는 되도록 오고갔던 항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움직입니다. 혹시나 알수 없는 간출여나 수중
지장물에 대한 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다니는게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포구에 다다랐는데 수위는 2미터 정도밖에 안되네요. 역시나 천천히 이동... 근데 갑자기 엔진에서 툭! 하는
심한 진동이 느껴집니다. 스크류를 살짝 들고 선원에게 노로 바닥을 찍어보라고 했는데... 수심은 나옵니다.
스크류도 이상없고... 다시 천천히 이동... 이번에는 배 바닥에 무엇인가 걸리는 느낌이 나네요... 그러더니
배가 거의 멈추어섭니다... 아니 포구가 50미터도 안남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이리저리 상황파악을
해보니... 아뿔싸! 이번에는 양식장 구조물 위에 올라탄 겁니다. 슬러프 턱이 걱정되어 좀 넓게 돌았더니
항상 챙겨왔던 양식장 구조물 위에 배가 올라탔네요... 바닥에 기스 하나도 없던 오토캐드호가 오늘 아주
상처 많이 입습니다...
다행히 물이 서는때라 일단 엔진을 끄고 걸린 부분이 빠지는 순간 노를 이용하여 잘 저어서 회피기동을
하였습니다... 이게 왠 고생인지... 오늘 정말 마지막까지 사고의 연속이네요. 만약 물이 빠질때였다면
구조물에 배가 올라타서 오도가도 못하고 6시간 넘게 있을뻔 했습니다. 또 항근처에서 속력을 높였다면
양식장과 보트도 동시에 박살났겠지요.... 항근처나 처음 가보는 지형에서 속도를 줄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조심에 조심, 안전에 안전을 귀에 달고 살았는데... 오늘 정말 큰 사고가 없었을 뿐이지 여러모로
위험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오는 길에 잠시 노견에 정차하고 라면과 채취한 홍합을 삶아 먹으면서
오늘 일을 헤아려봅니다. 결코 자랑일 수 없고, 잘한 일 하나도 없습니다.
항공기 사고도 한두가지 이유로 발생하지 않고 여러 조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해서 사고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 큰 사고로 이어질뻔한 점... 아찔하기만 합니다. 그나마 그간의 작은 경험들과 빠른 대처로
더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자위할 뿐입니다.
제가 바다에 다니며 항상 마음속에 묻어 놓은 말이 있습니다.
'바다는 순응의 대상이지 결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20여년 가까이 보팅하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항상 바다 나갈때는 초보라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그래도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고, 안전사고가 발생합니다. 출조하기 전 날 오일계통 전부 교환하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아찔한 하루였습니다.
회원님들도 바다에서는 프로가 없습니다. 항상 초보라 생각하시고, 안전에 안전, 조심에 조심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너무 욕하지 말아 주세요. 온 몸이 뻑적지근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