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 임씨 정승공파, 그 뿌리와 꽃》
― 태안을 아호로 시를 쓰는 사람, 28세손 임석순의 가문 이야기
프롤로그
뿌리는 풍천에서, 삶은 태안에서, 오늘은 아산에서
사람에게는 태어난 곳이 있고,
살아가는 곳이 있으며,
마음속 깊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
나에게는 그곳들이 서로 다르다.
나는 태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나의 뿌리를 찾아 족보를 펼치면
그 길은 멀리 황해도 풍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천 임씨(豊川 任氏).
시조 임온(任溫)에서 시작하여
중시조 임향(任珦)으로 이어지고,
그 후손들이 이루어 온 정승공파의 긴 계보.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내가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이름 하나가 있다.
12세손 임응규(任應奎).
그리고 수많은 세대를 지나
그 계보의 스물여덟 번째 자리에
나의 이름이 놓여 있다.
28세손 임석순(任石淳).
‘석’은 돌 석(石)이다.
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견딘다.
나는 때때로
내 이름의 그 ‘석(石)’을 바라보며
가문의 시간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충청남도 아산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보면
몇 개의 지명이 하나의 길처럼 이어진다.
풍천.
먼 조상의 뿌리.
태안.
내가 태어난 곳.
보령 주산 황율리.
아버지의 고향이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신 선산.
그리고 아산.
오늘 내가 살아가는 곳.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네 곳이
내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길이 된다.
풍천에서 뿌리가 시작되고,
태안에서 내가 태어났으며,
보령 황율리에 부모님이 계시고,
아산에서 오늘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시를 쓴다.
나는 태안을 아호로 시를 쓰는 사람,
한 사람의 시인 임석순이다.
시는 어쩌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일인지도 모른다.
족보가 이름으로 시간을 기록한다면
시는 마음으로 시간을 기록한다.
그래서 나는
족보를 펼치듯 시를 쓰고,
시를 쓰듯 선조의 삶을 돌아본다.
세 권의 족보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임온.
임향.
임응규.
그리고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선조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이어졌기에
오늘 내가 있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 역사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이름도 있다.
유정(惟政), 사명대사(四溟大師).
임진왜란의 격랑 속에서
승려의 몸으로 나라를 위해 나섰던 사람.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호국의 길을 걸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평화를 위한 길을 찾았던 사람.
나는 사명대사의 이름을
단순히 위대한 영웅의 이름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고,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을 생각하고,
그 이름이 오늘의 후손인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생각하고 싶다.
나라와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려운 시대에 나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조상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족보에 적혀 있지 않다.
그 답은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으로
한 줄씩 써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쓴다.
태안의 바람을 기억하고,
보령 황율리의 선산을 바라보고,
아산에서 살아가는 오늘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의 뒤편에서
먼 조상의 땅 풍천을 생각한다.
제1장
풍천에서 시작된 이름
풍천 임씨의 시조는
임온(任溫)으로 전해진다.
황해도 풍천.
그곳에서 시작된 한 가문의 이름은
긴 세월을 따라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족보를 펼치면
수많은 이름이 나온다.
한자 몇 글자로 남은 이름들.
그러나 나는 그 이름마다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식을 키웠고,
누군가는 가족을 지켰으며,
누군가는 나라의 어려움을 걱정했고,
또 누군가는 평범한 하루를 살아냈을 것이다.
그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가문의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긴 역사의 끝에
오늘의 내가 있다.
제2장
임향, 절의를 선택하다
풍천 임씨의 계보에서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임향(任珦)이다.
고려 말의 격변 속에서
자신의 절의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시대가 바뀌는 순간
사람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다.
권력을 따를 것인가.
자신의 뜻을 지킬 것인가.
임향은 자신의 뜻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홍성으로 유배되고
다시 남포로 옮겨지는 고난을 겪었지만,
귀양살이가 풀린 뒤에도
새로운 권력에 편승하기보다
남포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켰다고 전한다.
나는 그 삶을 생각하며
‘절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절의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쉽게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절의일 것이다.
제3장
12세손 임응규
족보를 따라 내려가면
내 눈은 한 이름 앞에서 오래 머문다.
임응규(任應奎).
12세손.
그분의 삶을 아직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함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족보에 기록된 것은
족보에 기록된 대로.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역사적 사실 그대로.
집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이야기 그대로.
그것이 선조를 기억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임응규에서 이어진 후손의 계보가
오늘의 나에게까지 도착했다는 것.
12세에서 28세까지.
열여섯 세대의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탄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 그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의 한 자리에
임석순.
내 이름이 놓여 있다.
제4장
사명대사 유정을 생각하다
그리고 가문의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유정(惟政).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사명대사다.
임진왜란.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들의 삶이 무너졌던 시대.
그때 사명대사는
승려의 몸으로 나라를 위한 길에 나섰다.
의승을 이끌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과의 교섭에도 참여하며
평화를 위한 길을 걸었다.
나는 사명대사의 삶에서
용기라는 말을 생각한다.
싸울 때의 용기만이 아니다.
전쟁을 멈추게 하는 용기.
사람을 살리는 용기.
자신보다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용기.
그래서 사명대사의 이름은
오늘의 나에게도 질문한다.
“너는 네가 살아가는 시대에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제5장
조상의 이름 앞에서
나는 조상의 이름을
자랑하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이름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조상이 절의를 지켰다면
나는 나의 자리에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
조상이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다면
나는 오늘 내 곁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훌륭한 조상을 둔다는 것은
자랑이기 전에
하나의 책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명대사의 후손’이라는 말을
가볍게 쓰고 싶지 않다.
그 이름에 기대어
나를 높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름 앞에서
나를 낮추고 싶다.
그리고 조상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제6장
태안에서 시를 쓰는 사람
나는 태안에서 태어났다.
태안의 바람을 맞으며 자랐고,
태안의 길을 걸으며
나의 삶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에게 태안은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다.
내가 세상을 처음 만난 곳이며,
기억의 첫 페이지가 시작된 곳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태안의 삶을 시로 적는다.
나는 태안을 아호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인은 거창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바람 하나를 기억하고,
부모님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풀 한 포기와 오래된 길 하나에도
자신의 시간을 담아내는 사람.
나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조상의 역사가 족보에 남아 있다면
나의 오늘은 시 속에 남기고 싶다.
제7장
보령 주산 황율리, 부모님이 계신 곳
내 삶에서 특별한 곳이 또 하나 있다.
충남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
아버지의 고향이다.
그리고 그곳의 선산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셨다.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것을 느낀다.
아산에서 출발하여 보령으로 향하고,
황율리에 들어서면
현재의 나보다 더 오래된 시간과 만난다.
그곳에는 부모님이 계신다.
그리고 부모님 위로
또 다른 선조들이 있고,
그보다 더 먼 곳에는
풍천으로 이어지는 긴 뿌리가 있다.
나는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
조용히 인사를 드린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태안에서 태어나
이제 아산에서 살고 있지만
잊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제8장
벌초, 지워지는 발자국
추석이면
나는 부모님을 뵈러 간다.
일 년 동안 자란 풀을 깎고,
무너진 흙을 고르고,
묘역을 정돈한다.
그러나 벌초를 하며
풀만 베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시간과
미루어 두었던 마음이
낫이 지나간 자리마다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 닫혀 있던 길 하나가
풀 사이에서 열린다.
산을 내려올 무렵이면
내 발자국은 다시
풀 속으로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께 늦게 찾아온 마음 하나가
그곳 어딘가에
잠시 머물렀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시로 남긴다.
제9장
풍천, 태안, 보령, 아산
돌이켜보면
내 삶은 네 곳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풍천.
조상의 뿌리.
태안.
내가 태어난 곳.
보령 주산 황율리.
아버지의 고향이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곳.
아산.
오늘 내가 살아가는 곳.
네 곳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에서는 하나의 길이다.
풍천에서 뿌리가 시작되고,
태안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고,
보령의 선산에 부모님을 모시고,
아산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이를
한 사람의 시간이 흐른다.
임석순.
나는 그 시간을
시로 기록하는 사람이다.
제10장
스물여덟 번째 이름
족보를 다시 펼친다.
수많은 이름을 지나
마침내 나에게 닿는다.
28세손 임석순(任石淳).
나는 이제 내 이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이 이름은
나 혼자만의 이름이 아니다.
앞선 세대가 살아낸 시간이
나에게 잠시 맡겨준 이름이다.
그러므로 나는
족보의 마지막 줄이 아니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음 세대의 기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정직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 삶의 흔적을
시로 남기고 싶다.
맺음말
꽃은 오늘 피어난다
나는 28세손 임석순이다.
태안에서 태어나
아산에서 살아가며
보령 주산 황율리의 선산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먼 조상의 땅 풍천을 바라본다.
풍천에서 뿌리가 시작되었다.
태안에서 내 삶이 시작되었다.
보령 황율리에 부모님을 모셨다.
오늘의 삶은 아산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에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임온.
임향.
임응규.
유정, 사명대사.
그리고 이름으로 남은 수많은 선조들.
그 이름들의 긴 강물이
오늘 나에게까지 흘러왔다.
나는 그 강물의 끝이 아니다.
잠시 그 물을 받아
다음 세대로 흘려보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조상의 영광만을 노래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들이 남긴 마음을 생각한다.
절의.
호국.
애민.
그리고 가족을 잊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오늘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쓴다.
태안에서 시를 쓰는 사람.
조상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모님의 묘소를 찾고,
오늘의 삶을 돌아보며
한 줄의 시를 남기는 사람.
나에게 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족보가 조상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시는 그 이름 앞에서 느낀
나의 마음을 기억한다.
언젠가 다음 세대가
족보를 펼쳐 내 이름을 만나게 될 것이다.
28세손 임석순.
그때 그들이
내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추어
이렇게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
“이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구나.”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꽃을 피우려 했구나.”
그것이면 충분하다.
풍천에서 시작된 뿌리.
태안에서 태어난 삶.
보령 황율리의 부모님.
아산에서 이어지는 오늘.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시로 바라보는 한 사람.
태안 시인 임석순.
뿌리는 과거에 있지만
꽃은 오늘 피어난다.
그리고 나의 시는
그 꽃잎 하나를
다음 세대의 마음 위에
조용히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