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언의 득량만, 바람처럼 떠나고 싶은 마음 여행 1번지
* 회천우체국에서(148쪽)
이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했다. 청춘의 한때 '노가다판'에서 '시다'로 뛰었고, 공장 구석에서 가짜 보석(큐빅)을 깎기도 했으니, 도시의 한복판에서 조종만(이 글의 주인공)처럼 ''아둥바둥 죽을 똥을 쌌''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또 우체국에서 삼십 년 넘게 공무원 신분으로 큰 부침 없이 살아왔으므로 소위 온몸으로 살을 부딪치며 땀내 나는 세월을 산 적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다가오는 6월말이면 공무원 신분을 벗는다. 이제 내게 직업은 없다.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시로써 직업을 삼을 만큼의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리라. 사무실에서 펜대를 굴리는 동안 사라진 것은 근육이요, 길러지고 남은 것은 눈치와 요령뿐.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육십 이후의 나에게 직업은 다시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다. 자칫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이 위기를 과연 무슨 직업으로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득량만의 노숙자 아닌 노숙자 조종만-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득량까지 흘러온, 그러나 생의 목표를 포기한 여느 노숙자와는 달리, 말수가 적고 느린 말투에서 생사를 초월한 달관이 느껴지는 인품의 사내-은 서울에서 인생을 '홀라당 까먹'은 자본주의의 희생양이었다.
''아무것도 몰랐어요. 강물에 떠내려가는 물거품처럼 흘러만 다녔어요. 뭘 하든 상관없었고 돈을 벌자는 게 목적이었어요. 월급을 더 준다고 하면 직업도 바꾸고 식당을 운영할 때는 어떤 메뉴가 잘 팔릴까만 생각했으니까 완전히 돼지처럼 생활한 거죠.''
오직 경제, 돈이면 전부인 자본주의는 조종만을 '돼지'처럼 사육했다. 그는 육개장, 돼지고기를 팔며 ''어떻게든 버텨볼라고 용썼''지만, 식당 차린다고 2억원이나 들인 전 재산을, ''그거 밑천 맹근다고 20년 뺑이쳤는디 8개월 만에 홀라당 까먹''고 말았다. 서울은 그를 '맨몸땡이'로 쫓아냈다.
자본주의의 실패자, 아니 '돼지우리'에서 탈출한 맨몸땡이의 조종만을 받아 안아준 곳은 다름 아닌 남도 1번지 득량만이었다.
''...그란디 맨몸땡이로 쫓겨나니께 맘이 편하요
여기가 득량만인지도 모르고 왔제
진짜 허벌납디다
들판도 허벌나고 바다도 허벌나고
입으로 들어가는 건 말도 마소
감자 양파 대파 쪽파 마늘
낙지 전어 꼬막 우럭 서대
선창에도 나가보고 벌판에 가보시오
먹을 거 진진하요
감자 캐줬더니 12만 원 주요 잔치랭이 서너 박스에다가
청운호 통발 좀 챙겨줬더니 발 끊어진 낙지는 또 그냥 주요
나가 멋할라고 여지껏 서울서
아둥바둥 죽을 똥 쌌나 모르겄소...''
그랬다. 득량은 들판이고 바다고 어디나 '허벌난' 곳이었다.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었다. 능력을 따지지 않았으며 이익을 셈하지도 않았다. 탐진치 없는 무욕의 땅. 득량에는 몸만 부리면 ''감자 잔치랭이 서너 박스''에다 ''발 끊어진 낙지''쯤은 거저 얻을 수 있는 평생 직장이고 직업이 있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만을 외치는 자본주의의 서울 살이가 얼마나 잘못된 삶의 방식이었는지 조종만은 득량만에서 맨몸땡이를 부리면서 철저히 절절하게 깨달았다. 다시는 부자라는 말에 속지 않겠다는 조종만의 다짐이 바로 득량의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이 육십은 생의 전환점이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자본의 문명이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는'' 스펙터클한 도시가 아니라 원시의 생명이 살아 숨쉬는 해산천야의 자연이다. 몸을 써서 일하고 일함으로써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생명의 모천, 태반이 처음 자리잡았던 자연, 그곳이 내 육십 이후의 직장이자 새로운 직업이 될 터이기에 나의 삶을 예습하고 있는 득량의 조종만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며 해후할 때까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