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준의 모토톡] 1980년대 초 일본제 모터사이클이 뛰어난 품질에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 모터사이클 시장을 점령하고 있을 때 그 성공만큼이나 다양한 기종들을 쏟아냈다.
같은 배기량으로 더 높은 출력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선택받았던 것이 바로 터보차저이다.
그러나 안정성 문제로 얼마못가 양산을 중단했다. 일부 커스터머들이
최고속 경쟁의 기록을 위해 터보차저를 장착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양산형 터보 모터사이클은
1985년이 마지막이었다.
배기관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를 엔진으로 강제 과급해 출력을 높이는 터보 기술,
자동차 엔진에서는 흔히 쓰이는 기술이지만 모터사이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고회전 엔진이기에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모터사이클용 엔진에 터보를 장착하는 건
내구성이나 효율성면에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터빈의 부피와 무게도 모터사이클에 장착하는데 문제가 많았다. 한때 많은 메이커들이 시도했었지만
꾸준히 이어오는 브랜드는 없었다.
2015년 가와사키가 슈퍼차저를 단 양산형 모터사이클 H2시리즈를 선보이기 전까지 터보나
슈퍼차저는 자동차들의 전유물이었다.
◆ 혼다 CX500 터보
1981년 혼다는 CX500 터보를 내놓는다. 이는 세계 최초로 터보가 달린 모터사이클로 기록된다.
CX500 터보는 1977년부터 양산된 GL500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GL500은 현재 ‘킹 오브 모터사이클’이라 불리는 골드윙의 초기 모델이다. 혼다는 이 투어링 타입의
모터사이클에 터보를 장착했다. 세로배치 V트윈 OHV 엔진은 애초에 고성능 엔진이 아니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터보 터빈인 IHI터보를 달아 원래 최대 50마력이었던
이 엔진에서 최대 82마력을 뽑아냈고 206km/h의 최고속도를 기록했다.
혼다가 고성능 모델이 아닌 투어링 모델을 기본으로 터보를 장착한 것은
고회전 엔진보다 저회전 엔진이 내구성이 더 좋고 다루기가 쉬워서였다.
그럼에도 불규칙한 터보랙이 잦아 다루기 어려웠다.
CX500 터보는 터보 장착으로도 유명해졌지만 세계 최초의 퓨엘 인젝션 모델로도 유명했다.
정확한 연료분사가 필요했기에 기존 카뷰레터에서 인젝터 방식으로 연료공급마저도 바꾸게 한 것이다.
이듬해 독일(당시 서독) 수출용으로 배기량이 커진 CX650 터보도 생산한다.
1년 만에 혼다는 터보차저 기술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해 최대 140마력까지 낼 수 있도록
개선을 했지만 판매를 위해 최대 마력을 낮췄다.
당시 독일의 모터사이클 최대 마력 기준이 100마력이여서 여기에 맞게 만들어서 판매된다.
전체적인 감량도 이루어졌고 터보랙을 비롯해 500에서 있었던 트러블을 대거 개선하긴 했지만
여전히 다루기 어려워 총 1751대만 판매 되는 데에 그쳤다.
CX500 터보는 총 7천대 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이는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였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의 터보 모터사이클에 비하면 엄청 많이 팔린 것이다.
자연흡기 모터사이클에 비해 판매가 저조했던 이유는 비싼 가격이 가장 컸다.
당시 미들급 클래스 두 배, 리터급 바이크 이상의 가격을 했기 때문에 같은 가격이면 더 안정적이고 편하게
더 나은 출력을 얻을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 법규 때문에 내수 판매는 전혀 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고, 복잡한 구조 때문에 정비도 쉽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터보, 퓨얼 인젝션 모터사이클은 이렇게 2년만 생산되고 1983년에 단종이 되고 말았다.
◆ 가와사키 GPZ750 터보
가와사키 역시 1981년부터 터보 엔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본 후 단점을 개선해 나오기 위해 시간이 좀 더 걸렸다.
1984년 다른 일제 브랜드들이 터보 엔진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멈춰갈 때 등장한 GPZ750 터보.
738cc 엔진에 터보를 달았다. 압축비를 낮추고 기어비를 더 길게 해서 터보가 작동했을 때를 대비했다.
최대 112마력을 내고 최고속도 238km/h를 냈다.
역시 정밀한 엔진 작동을 위해 퓨엘 인젝션 방식을 채택했다.
유럽에서는 ZX750E라고도 불렀다. GPZ750E가 높은 출력을 낸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한 배기량에서 봤을 때다.
당시 시판 중이었던 가와사키 GPZ1100과 거의 비슷한 최고 출력과 속도였고
가격 역시 비쌌기 때문에 1985년까지 단 2년만 생산되고 단종됐다.
◆ 야마하 XJ650 T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출시됐던
야마하 XJ650 터보. 653cc 공랭 엔진에 터보를 장착해서 9000rpm에서 최대 90마력을 냈다.
당시 터보 모터사이클 중 유일하게 연료 공급 방식이 전통적인 카뷰레터였다.
그럼에도 꽤나 정확하게 움직였고 핸들링 또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관은 당시 유행하던 엣지 있던 스타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성능 면에서
혼다와 가와사키에 비해 내구성과 안정성이 뒤떨어졌다.
그럼에도 총 8000대 가량 판매가 되었는데 꾸준한 TV광고와 영화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숀 코네리가 타고 나왔던 모습이 크게 작용했다.
◆ 스즈키 XN85
1982년 혼다에 자극을 받은 스즈키도 터보 모터사이클의 양산에 서두른 결과 XN85를 출시할 수 있었다.
당시 인기가 좋았던 GS650을 베이스로 만들어졌으며
역시 퓨엘 인젝션 방식의 673cc 공랭 엔진으로 최대 85마력을 발휘했다.
더 적극적인 엔진 냉각을 위해 오일 쿨러를 추가했다.
XN85는 스즈키 최초의 터보 모터사이클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양산형 최초의 프론트 16인치 휠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풀 플로터라고 이름 붙은 독자적인 모노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당시 전위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던 카타나1100과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더 친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판매는 매우 저조했다. 1153대만 만들어졌고 이 중 300대가 미국에서 운행됐다.
◆ 네안더
네안더(Neander)는 세계 최초로 디젤 터보엔진을 사용하는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다
. 2003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2005년에 트윈 크랭크 프트가 있는 터보차저
디젤 엔진을 개발하고 모터사이클에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대표 기종인 네안더 1400은 1340cc 2기통 디젤 엔진에 터보를 장착해
4500rpm에서 최대 112마력, 2600rpm에서 214Nm의 높은 토크를 낼 수 있다.
크루저 타입으로 만들어졌지만 최고속도는 220km,
제로백은 4.2초. 연비는 리터당 22km 정도 나온다.
고연비, 친환경을 목표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고 있으며
100마력 미만의 저배기량 터보 디젤 엔진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 가와사키 H2
1985년에 GPZ750 터보를 단종시키며 터보차저를 잠시 내려놓았던
가와사키가 2014년 모터쇼에서 제트스키나 배를 만들며 축적했던
가스 터빈 노하우를 적용한 모터사이클을 발표한다.
그것이 바로 슈퍼차저가 달린 H2 시리즈이다.
터보차저와 달리 슈퍼차저는 배기압이 아닌 엔진 동력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별도의
큰 터빈이 필요 없어 공간상 유리하다.
998cc 병렬 4기통으로 엔진 내에서 나오는 압력을 압축기를 통해 다시 흡기쪽으로 공급한다.
슈퍼차저는 스로틀 반응이 좋고 저회전에서도 안정적인 고출력이 가능하다.
저회전에서는 터보차저보다 안정적이나 고출력에서는 반대로 출력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가와사키의 가스터빈 노하우로 이를 극복하고 소형화 시키는데 성공해 모터사이클에 접목한 것이다.
서킷용 H2R은 램 에어 과급까지 더해지면 최대 326마력을 내며 이론상 시속 400km를 낼 수 있다.
공도용 사양인 H2는 안전을 위해 최대 210(램에어 과급시)마력을 발휘한다.
역시 시속 350km에 도전할 수 있는 파워다. 투어링 버전인 H2SX/SE 버전도 존재한다.
지난달 15일 가와사키 팩토리 라이더인 야마시타 시게로가 실측 337km를 기록해 1000cc
미만 양산형 모터사이클 최고속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터보차저는 부족한 출력을 메우는 수단으로 모터사이클에 접목이 시도됐다
. 하지만 엔진의 안정성이나 공간적인 한계 그리고 생산비용 등의 문제로 기피하던 기술이다.
그러나 30여년이 흐른 지금 가와사키는 안정적인 슈퍼차저 엔진을 판매하고 있고
혼다 역시 2015년 슈퍼차저에 관한 특허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스즈키 역시 새로운 터보차저 방식에 대한 특허를 등록해 놓는 등 꾸준한 연구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과거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점차 실현시키고 있다.
칼럼니스트 최홍준 (<더 모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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