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스의 골룸바는 프랑스에서 크게 공경받는 순교자이나,
순교한 연대와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스떼파노 St.Stephen ? 순교자
♤뽄시아노 St.Pontian ? 순교자
♤아딸로 St.Attalus ? 순교자
♤파비아노 St.Fabian ? 순교자
♤고르넬리오 St.Cornelius ? 순교자
♤섹스또 St.Sextus ? 순교자
♤플로스 St.Flos ? 순교자
♤귄시아노 St.Quintian ? 순교자
♤미네르비노 St.Minervinus ? 순교자
♤심플리치아노 St.Simplician ? 순교자
♤도나따 St.Donata ? 순교자
♤바울리나 St.Paulina ? 순교자
♤루스띠까 St.Rustica ? 순교자
♤노미난다 St.Nominanda ? 순교자
♤세로띠나 St.Serotina ? 순교자
♤힐라리아 St.Hilaria ? 순교자
♤사비니아노 St.Sabinian 300년경 순교자
♤뽀뗀시아노 St.Potentian 300년경 순교자
♤실베스뜨로 1세 St.Silvester 1
실베스테르 1세 SilvesterⅠ 335년
# 성 실베스텔은 로마 사람이다.
그는 313년에 신교의 자유를 얻고 평화를 획득한 시기에
성 밀시아데스를 계승하여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의 이름이 교회사에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은 알려진게 거의 없다.
교회의 첫번째 공의회는 325년의 니체아회의이다.
그러나 실베스뗄은 감옥에 있었으므로 직접 참석치 못하고 대표자 2명을 파견하였다.
그는 비아 살라리안의 프리실라 묘지에 안장되어 있으며,
그때까지의 교회사를 보면 순교하지 않은 최초의 교황이었다고 한다.
# 12월 31일 성 실베스뜨로 1세 교황
314년 로마 교회의 주교로 서품되어 콘그탄티누스 대제 때 교회를 다스렸다.
그 당시 도나투스파 분열주의자와 아리우스 이단이 교회에 큰 문제를 가져다 주었다.
335년에 세상을 떠나 비아 살라리아의 프리스킬라 묘지에 묻혔다.
모든 것에 대해 우주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우리 영혼의 구원자이시고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드린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의 평화가 온갖 외적 위험과 온갖 악한 내적 성향 및
혼란 속에서 벗어나 견고하고 안전히 보존되기를 간구한다.
한 점의 구름도 없는 맑고 잔잔한 날이 밝아 와
그 빛으로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비추게 되었다.
우리의 일치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들까지도 우리같이 완전치는 못하다 해도
부분적으로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즐기고 있다.
이제까지 폭군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산산히 파괴된 모든 곳이
길고도 치명적인 파괴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는 우리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고
우리의 얼굴은 신적 기쁨으로 빛났다.
성당들도 파괴에서 일어나 높이 솟아오르고 그것을 헐어버린 이들이
그 안에서 행한 예식보다 더 큰 광채를 지닌 예식으로 빛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고 기원한 것을 목격했다.
도시마다 새로 지은 성당과 경당의 축성식을 지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축제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곳에서마저
많은 주교들과 무수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럴때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한 조화에로 일치되어
민족들간의 친교와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때에 "뼈에서 뼈가 이어지고 관절에서 관절이 이어지리라."는 예언자의 말과
미래에 일어날 것을 은밀히 예시한 다른 여러 가지 예언의 비밀이 밝혀진 것이다.
모든 지체들을 통해서 같은 성령의 힘이 흐르고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며 같은 신앙과 열성과 합심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바쳤다.
주교들은 장엄한 예식을 거행하고 사제들은 교회의 엄숙한 예식에 따
라 순수한 제사를 바쳤다.
시편을 노래하고 하느님께서 남겨 주신 말씀을 들으며 구원적 수난의 신비들을 나누어 받았다.
모든 연령과 남녀 할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다해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기도와 감사로써 찬양 드렸다.
♤조띠꼬(콘스탄티노블) St.Zoticus of Constantinople 350년경 증거자
♤멜라니아(젊은) St.Melamia the Younger 5세기경
멜라니아 Melania 383~439 축일: 12-31 자선사업가 예루살렘
성녀 멜라니아는 로마 원로원인 이교 사제의 딸이나 크리스챤이 된 알비나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불과 14세의 나이로 결혼하였는데,
이 결혼은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두 어린이가 태어났지만 곧 죽었는데, 남편인 발레리오 피니아노는 아내의 신심을 인정하여,
부친이 사망하면 하느님께 대한 봉헌생활을 하도록 아내에게 허락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녀의 부친이 막대한 유산을 딸에게 남긴채 사망했을 때,
그녀와 피니아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알비나는 로마를 떠나
신앙의 중심지인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멜라니아는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막대한 재산 일부를 매각하자,
집안의 반발을 샀지만, 황제 호노리오에게 호소하여 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당대 최고의 박애주의자가 되었다.
그녀는 에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고,
유럽의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도왔으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 포로들과 순례자들을 도왔고,
2년 동안 약 8,000명의 노예들을 해방시켰던 것이다.
406년, 그녀와 그 일행들은 고트족의 침입을 피하여 메씨나로 갔고,
거기서 다시 카르타고로 건너갔다.
그들은 리파리섬에 좌초하였으나, 해적들에게 속량금을 줌으로써 풀려날 수 있었으며,
410년 경에는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에 정착케 되었다.
여기서 그녀는 남자와 여자를 위한 수도원을 각각 세우고,
자기 자신도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며 지냈고,
417년에는 남편과 알비나와 더불어 성지로 순례하고,
에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을 찾아보고,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사촌 바울라, 조카 성 에우스토치움을 만났고,
이들의 안내로 성 예로니모가 지도하는 베들레헴의 수도자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 후 14년 뒤에 알비나가 사망하고, 그 이듬해에는 피니아노가 운명하자,
그녀는 그들의 무덤곁에 움막을 짓고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므로, 자신이 원장이 되었다.
이리하여 그녀는 439년 12월 31일에 예루살렘에서 귀천하였다.
♤삐니아노 St.Pinian 5세기경
♤바르바시아노(라벤나) St.Barbatian of Ravenna 5세기경 증거자
★이스라엘 Israel 1014년 축일: 12-31 원장 도랏
그는 리무진의 도랏에 있던 율수회에 가입하여, 리모쥬의 주교관에서 일하였다.
그 후 그는 아우구스띠노 회원이 되었고, 교황 실베스뗄 2세의 명에따라
오뜨-비엔나에 있던 성 율리안 수도원 재건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