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신앙, 질문하는 신앙,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빛과 향기에 취하는 계절에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한다.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수천년에 걸친 신앙인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마지막날에 안식을 가졌던 것에서 부터, 이집트의 오랜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히브리인의 유월절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낮은 곳으로 내려옴 부터 그의 수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그들의 이야기를 시간 속에 새겨넣고 그 시간을 통해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나와 너의 모습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 처럼 우리는 실패하고, 그들의 좌절 처럼 우리는 좌절하였다. 기억하는 신앙은 우리의 고통과 어리석음, 우리의 비참함을 바라보게 하고, 지금 이 곳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알게 한다. 나의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고, 너의 실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기억하는 것이다,
유독 봄빛이 찬란한 시간에 기독교신앙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타인에게 보다는 자신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우선적으로 던진다. 수천년간 신앙인들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보다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하여 염려하기 보다는, 왜 나는 이러하며, 이럴 수 밖에는 없는가, 왜 그리스도는 이곳에 오셨고, 왜 그렇게 배척받고 모함을 받으며 십자가형에 처해졌는가, 왜 내가 아니라 그가 고난을 받아야 했는가, 질문하는 자만이 생각할 수 있고, 질문하는 자만이 기억할 수 있으며, 질문하는 자만이 답을 얻을 자격이 있다. 질문하는 자만이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나에 대해서 질문하고, 계속하여 다시 묻는 것이다.
질문할 때에 무엇을 해야할 지 알게 되며, 질문할 때에 자신을 던질 수가 있다. 그래서 질문하는 신앙은 그에게로 나아가 그와 대면하는 것이다.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질문하는 것이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이 기쁨을 주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을 안다. 시간은 두려움을 갖게 한다. 지금 가진 것을 계속 가질 수 없으며, 지금 누리는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된다고 할 수 없다. 지금 주위 사람의 환호가 언제 저주로 바뀔 지 알지 못하며, 지금의 건강과 젊음이 오래가지 않는다.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르며, 만남은 끝이 있다. 두려움이 현실을 부정할 때, 지금 이곳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두려움이 심해질 때 세상을 탓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세상을 향한 원망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아서 더욱더 거듭하여 자기안에 갇힌다. 우리의 좌절, 우리의 슬픔을 아는, 이 세상에 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을 바로 보고 나를 볼 수 있으니, 그것은 두려움을 떨치는 일이다. 그는 세상을 이기신 구주이시며 두려움을 떨친 첫 사람이다. 두려움을 버릴 때에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두려움을 이길 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궁극의 승리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꽃은 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모든 봄을 이기는 꽃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