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장의 노부부
김 경 숙
5월의 날씨가 변덕스럽다. 아침저녁은 쌀쌀한데 한낮만 되면 뜨거워진 열기가 벌써 여름의 맛을 내고 있다. 며칠째 결정짓지 못한 고민 때문에 마음은 더 답답해져 온다. 바람에 실려 온 장미 향기에 잠시 걱정은 내려 두기로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써야 한다. 며칠째 벼르던 세차나 하러 가야겠다.
지폐를 넣자마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쨍그랑거린다. 꽃가루와 빗물로 꼬질꼬질해진 차에 물을 뿌리고 바퀴까지 골고루 거품을 묻힌다. 구석구석 꼼꼼히 헹궈낸다. 이제 잘 닦아주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옆자리 칸에서 조금 나이 드신 남자 어르신이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 “내가 여기 처음 와서 잘 모르겠네요.” 망설이라 말씀하시는 듯하다. “예, 저도 그랬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부인과 함께 오셨는데 하얀색 자가용을 몰고 오셨다. 지폐와 동전 교환, 세차 순서, 세차기 사용법, 비품 사용법까지 꼼꼼히 알려 드리고 나니 두 분 얼굴은 싸움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해 보인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한 시간 넘게 이곳저곳 닦아내고 내부청소까지 하고 나니 여기저기 쑤시지만, 깨끗해진 차를 보니 뿌듯한 마음이다. 옆을 보니 아까 말을 주고받았던 두 어르신이 열심히 차를 닦고 계신다. 자신들의 차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기 좋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부부의 차도 눈부시다. “와! 정말 깔끔하게 세차하셨네요. 길에 나가기 아까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두 분이 정성껏 세차한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남자 어르신은 고마웠다며 음료수를 하나 주신다. 두 분은 하얀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닦은 곳을 또 닦으신다.
여자 어르신은 “노인네 둘이서 웃기지요? 우리 첫 차예요.” 두 분 다 나이가 있어서 운전은 포기하고 지내다가 부인이 용기를 내서 면허를 따고 남편이 새 차를 선물한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첫 세차를 하러 오셨다고 한다.
“용기가 대단하세요. 저는 지금도 손수레보다 조금 빠르게 간다는 마음으로 운전하거든요.”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어르신들도 계시는데,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신 두 분이 신기했다. 여자 어르신은 “천천히 가면 어때요? 후회 없이 살아야 해요. 몇 년이라도 돌아다녀 봐야지요”라고 하신다.
몇 년 전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두 번 만에 겨우 합격을 하고 나니, 남편은 덜컥 중고차를 사 왔다. 운전대만 잡아도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뜀박질하니 쳐다보기도 싫었다. 운전해야 할지 불편한 삶을 유지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운전은 인생에 긍정적 변화를 주었다. 돌아보면 후회 없는 선택이었고 가치 있는 도전이었다.
‘후회’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안 하고 싶은 핑계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싶다는 욕심만 앞세우고 실천해야 할 용기는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게으름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탓을 하며 숨고 싶은 것은 아닐까? 며칠 동안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실마리가 보인다. 하나씩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를 만난다. 그때마다 책을 보기도 하고, 주변에 조언을 구하며 해결하기도 했다. 우연히 세차장에서 만난 두 어르신을 통해 깨닫게 된다. ‘후회 없이 살아라’라는 짧은 말씀은 시원한 바람이 되어 걱정을 날려 주었다.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말고 저질러 보고 후회하기로 결심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후회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결정짓지 못한 고민’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두 어르신은 신나게 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목적지를 확인하고 있을 수도 있다. 천천히 가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용기와 후회 없는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멋진 어르신들이다. 유난히 하얀색에 조금 천천히 가고 있는 차를 만난다면 그분들이 아닐까 기대할 것 같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다. ‘어르신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