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드라마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제빵왕 김탁구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막장급 소재들로 시작부터 말이 많았고, 드라마 전반에 흐르던 범죄적인 코드들로 시청자의 원초적인 감정인 권선징악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건드려주며, 마지막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던 드라마였습니다. 워낙 벌여놓은 일들이 많은 작품이었기에 결말이 신파로 흐르는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을 위한 억지전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준이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들만으로 멈췄다는 것이었는데요, 거성가의 상처를 봉합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테두리 역시도 이탈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배신감을 주지 않았던 것도 좋은 마무리였습니다. 특히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아가 치밀게 했던 악을 대표하는 인물 한승재와 서인숙의 실질적인 파멸은, 나쁜 인간들의 바람직한 말로를 보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했네요. 작가가 마지막까지 구마준을 놓지 않고 보듬고 갔던 부분에 대해서는,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탁구와 마준이의 화해없이 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은 의미가 없었겠지요. 무엇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 마준이에게, 자신의 문제를 자기 안에서 돌아보게 한 것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행이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자기 것을 빼앗아 간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믿었기에, 야욕과 증오만을 키워갔던 인물들이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회 제가 가장 감명깊게, 그리고 의미있게 보았던 장면들만 간추리면서, 제빵왕 김탁구 리뷰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1. 서인숙으로부터 마준의 홀로서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탁구의 힘도 있었지만, 결국은 모든 문제의 시작과 해결은 자신에게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와닿더군요. 마준이가 서인숙에게 팔찌를 돌려주며 했던 말은 서인숙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했지만, 마준이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서 부터 시작된 방황에 대한 참대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만 내려놔요. 엄마 자신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엄마 불행도 끝나지 않을 거예요. 이제는 엄마 불행에서 발을 빼고 싶어요. 이젠 날 위해 살고 싶어요". 마준이가 출생의 비밀이라는 트라우마와 분노를 치유하고, 홀로서기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뻔한 신파로 급포장하려고 했다면, 마지막 서인숙의 회한의 눈물로 마무리를 했겠지만, 그녀는 여전히 거성가라는 겉포장만 화려한 텅빈 집의 안주인이라는 자리를 끝내 내려놓지 못하지요.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이 서인숙을 지탱해 왔던 힘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서인숙은 서인숙으로 남았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말이지요. 서인숙이 마지막 결말에서 유경과 화해하고, 탁구에게도 사죄하며 하하호호했더라면, 제빵왕 김탁구가 신파결말이 돼버렸을 겁니다. 완성도를 해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 것도, 갈등드라마에서 좋은 결말의 예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2. 한승재의 눈물과 마준의 마지막 인사
한승재에 대한 마무리 역시도 깔끔했습니다. 마준의 친부라는 이유로 권선징악의 테두리에서 이탈할까봐 가장 조마조마했던 인물이었거든요. 아들인 마준이의 손으로 비리장부를 넘기고,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한 점도 한승재라는 인두겁을 쓴 나쁜 인간의 가장 비참한 최후를 위한 단죄였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마준이가 한승재에게 마지막 인사라며 면회가서 말했지요.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이(아버지가) 나한테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좀 더 살기가 수월했을텐데... 그랬다면 당신을 용서하기가 훨씬 더 쉬웠을텐데... 내가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는데 좀만 더 잘 살지...". 처음으로 나온 생부 한승재에 대한 연민과 애증이 묻어나왔던 구마준의 심경고백이었습니다.
30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신인연기자 주원의 연기력이 드라마 속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한승재(정성모)와의 면회장면에서는 감정신과 표정연기가 특히 많이 성숙했고, 깊어졌다는 생각이 든 장면이었습니다. 주원이라는 배우의 성장이 기대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제가 뽑은 마지막회 가장 마음 아프면서도, 많은 여운이 남았던 장면이었습니다.
납치한 탁구를 옥상에서 실족사시키려는 한승재,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한승재의 야망과 구일중에 대한 굴욕감은 마준이가 탁구에게서 느꼈던 열등감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경쟁만이 있을뿐, 내가 가지지 않으면 빼앗기는 것이고, 내가 이기지 않으면 진다는 양분법적인 비뚤어진 사고는 그가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던 서인숙을 빼앗겼다는 구일중에 대한 패배감에서 비롯되었지요.
마준이에게만은 2인자의 설움을 주지 않겠다는 잘못된 욕심은 결국 아들의 외면이라는 결과만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마준이가 한승재를 면회가서 한승재의 잘못이 빚은 결과를 깨우치게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마준이가 돌아가고 나서 오열하는 한승재의 모습은, 진심으로 자식 앞에 부끄러운 아버지로서 반성의 눈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마 죄값을 다 치르고 나온 후에는 한승재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지 않을까 싶더군요. 아무리 세상의 눈이 무섭다고 하지만, 자식의 눈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3.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옹하는 형제들거성식품의 차기대표를 정하는 이사회, 거성식품의 전문경영인으로서 자경이가 구일중의 뒤를 이을 것이라 예측했었기에, 탁구의 대표직 고사는 사실 큰 반전은 아니었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정도 예상되었던 것이었고요. 이사회에서의 탁구와 마준이의 훈훈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도 보기 좋았는데, 최고의 장면은 세 사람의 포옹신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화해하고,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모습이 한 장면에 압축되었는데, 자경이가 두 형제 탁구와 마준이를 안는 장면이었어요. 핏줄로 치자면 자경이가 유일하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버지가 같은 탁구와 자경, 어머니가 같은 마준이와 자경, 그래서 이 아이들은 세상이 열두번이 변해도 형제이고, 가족일 수 밖에 없고 말이지요.
무엇보다 탁구와 마준이의 죽 잘맞는 친구같은 모습도 훈훈하고 좋았습니다. 특히 처음으로 26살 마준으로 돌아온 밝은 모습이 편해 보이고, 진짜 형제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좋았어요. 마준이 웃는 모습이 귀여운 햇살소년의 모습인 것은 처음 알았어요. 비주얼이 좋은 주원이라는 배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고 말이지요. 눈에 분노와 증오의 빛을 버리고, 마음에 독기를 뺀 마준이는 정말로 26살 구마준이라는 싱싱한 젊은이로 태어난 듯 보였습니다. 마준이와 탁구가 서로를 향해 웃는 모습은, 대사가 전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와닿았던 화해의 장면이었어요.
마지막에 탁구에게 말실수처럼이라도 형이라고 불러 주었다면 싶었는데, 마준이 그 녀석은 여전히 자신이 탁구와 피를 나눈 진짜 형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더군요. 탁구에게도 진짜 형제가 아니라고, 고백해 버리고 말이지요. 탁구는 그 말의 깊은 뜻은 몰랐겠지만, 만약 알았더라도 탁구에게 마준이가 동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요. 탁구에게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 구일중의 그늘 아래 있는 이유만으로 형제요, 누나들이었으니까요.
4. 사랑을 시작하는 청춘들, 해피엔딩이었나?
신유경의 복수는 사실 이 드라마 결말부분에서 옥의 티였습니다. 어설픈 악녀였을 뿐 그 명분과 하는 방법이 유치하고 졸렬했기에, 신유경이라는 캐릭터가 실패해 버렸고, 아마 거기서 멈추지 않았더라면, 골칫거리 캐릭터가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만큼 그녀에게 거성가라는 곳은 어울리지 않았고, 서인숙을 목을 죄는 모습도 서인숙만큼이나 천박하게 흐를 뻔했었거든요. 다행히 정신차린 마준이가 신유경을 끌고 나오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마준이와 유경이 진짜 부부로 사랑을 시작해가는 동안 탁구의 사랑도 시작되었지요. 옥떨메 양미순에게 "난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다. 그 살아갈 날들은 네 추억이 훨씬 더 많아질거야"며, 고백을 했지요. 탁구답게 프러포즈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러나 진정성있게 했던 고백이었어요. 알콩달콩 소꿉장난 하듯이 탁구와 미순도 작은 연인들처럼 사랑을 시작하고, 추억을 만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드라마 속에서 울고 웃고 함께 성장해 온 인물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빵왕 김탁구가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 저는 그에 대한 답을 선뜻 '그렇다'라고는 못하겠더라고요. 왜냐면 드라마 속 인물들, 김탁구, 구마준, 신유경, 양미순, 구일중, 한승재, 서인숙, 김미순 등의 모든 인물들이 제 주변으로 걸어나온 듯 싶어서 말이지요. 여전히 탁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고 있고, 마준이는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 어느날 갑자기 돌아올 듯 싶거든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고, 지금도 진행중인 이야기지요. 그래서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이 아닌 진행형으로 남겨두고 싶더군요.
이 드라마에 흐른 작가의 메시지는 탁구가 온갖 난관에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냈지만, 제빵왕 김탁구 강은경작가는 결말을 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준이가 탁구에게 왜 웃을 수 있냐고 물었지요. "살아야 하니까.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끝나지 않잖아. 오늘 잘됐다고 혹은 잘 안됐다고 내인생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결국 다 지나가는 거니까".
결국 인생을 다 살때까지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겠지요. 마음의 집 팔봉빵집으로 돌아간 탁구, 유경과 함께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난 마준, 거성가의 텅빈집에 홀로 남은 서인숙,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그 아이들이 이뤄가는 것을 지켜보는 구일중, 감옥에 들어간 한승재까지 말이지요. 드라마는 끝났지만 작가가 제빵왕 김탁구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계속 남아있을 듯 싶습니다.
5. 드라마의 여운, 탁구의 진심과 사람
오랜만에 본 좋은 드라마의 여운이 바로 이 메시지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드라마에 시종일관 흘렀던 것은 권선징악, 사필귀정이라는 것이었지만, 드라마가 끝난 지금 제게는 '진심'이라는 말과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라는 팔봉선생의 말이 더 깊게 남습니다. 지난회 처음으로 마준이의 방에 걸려있던 거성식품의 사훈을 눈여겨 봤었습니다. 오랫동안 드라마를 보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사훈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정확하게"더군요.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돈을 위해, 또 누군가는 최고의 빵맛을 위해, 또 누군가는 가족의 배부름을 위해 빵을 굽고 있겠지요. 그리고 또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굽고 있을 것같기도 하고요. 팔봉선생과 구일중, 그리고 탁구가 담았던 빵의 진심, 형이상학적이라고만 느껴졌던 빵쟁이의 철학, 그것을 빵에 담아 굽는 제빵사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비단 빵쟁이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진심을 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싶고요. 그것이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진심이었겠지요.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비결은 사람을 움직이는 탁구의 진심,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것, 정직한 사람이 이긴다는 것에 대한 사필귀정의 메시지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진정으로 원했던 해피엔딩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형같습니다.
* 마지막회 리뷰글에 항상 하는 말이지만, 배우들과 제작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광렬, 전인화, 정성모, 박상면, 장항선, 이한위, 전미선 등 중년연기자들의 튼튼한 연기는 제빵왕 김탁구를 지탱해 온 가장 큰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발견한 주원이라는 배우는 제빵왕에서 건진 수확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주얼도 좋고,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처음 긴장돼 보였던 표정과 대사처리도 많은 성장을 보인 좋은 배우였습니다.
또한 시트콤에서의 코믹이미지를 벗은 윤시윤에게는 새로운 연기도약이라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듯 싶습니다. 정극에 도전하는 윤시윤의 연기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김탁구라는 인물은 오히려 윤시윤에게 큰 행운을 준 듯 싶습니다. 김탁구라는 거친 야생마의 이미지와 순박함, 하나 밖에 모르는 돌진형의 캐릭터는 윤시윤의 기교부리지 않는 연기와 오히려 잘 맞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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