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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나봐] 원영옥 - 시놉시스
일일 아침 드라마
사랑했나봐
- 기획안 -
원영옥
<주제>
뒤엉킨 운명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와 아이와 사랑을 찾는 한 여자의 악전고투기
<기획의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족과 삶의 풍요와 자신의 전부를 빼앗긴 여자.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인생을 훔치고 거짓과 배신을 불사한 또 다른 여자.
진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영원한 주제, 사랑!
불행과 불운 앞에 물러서지 않고 한 아이의 엄마와 사회인으로 우뚝 서는 윤진.
윤진의 모든 것을 빼앗아 온실 속 화초로, 왕비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선정.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에서 윤진과 선정 사이에 서게 되는 윤진의 전남편, 현도.
배신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 윤진과의 사랑을 이루는 능력 있는 컨설턴트, 재헌.
이 드라마는 네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과 사랑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모두의 인생에서 자유롭지 못한 네 사람.
그들의 감정이 움직이고 충돌하고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리얼하게 펼쳐질 것이다.
사람!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잔인하고 무섭다.
여기, 3년 전 성공과 부를 위해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를 힘껏 짓밟고 상류사회로 뛴 여자 최선정이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선택이 가져온 소용돌이 속에 네 명의 젊은 남녀가 발을 담갔다. 그 지독하고 모진 선택의 끝은 어디일까.
이 드라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분출되는 감정의 부딪힘을 끈질기게 따라가며, 자기 몫의 운명과 맞선 인물들 저마다의 깊은 내면을 심도 있게 보여줄 것이다.
수많은 감정의 오류와 충돌이 그들의 절박한 선택과 버무려져 각각의 인물이 어떤 사람들로 거듭나는지 지켜보게 될 것이다.
모성애!!
모성애에도 옳고 그름이 있을까? 모성애의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정죄해야 할까, 면죄부를 줘야 할까. 모성애란 정말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것이기만 할까?
이 드라마는 양극단을 달리는 윤진의 모성애와 선정의 모성애를 대비시킴으로써,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것이다. 그들의 모성애가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과 희생이라는 고전적 의미에 국한되어 있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처절한 집착에 가까이 있든, 이 드라마의 두 인물은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가족!!!
이 드라마는 주인공 한윤진이 자기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고 그 진실 속에 묻혀 있던 사랑과 아이를 찾는 이야기이다. 동시에 자신을 추운 벌판으로 내던져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한 사람조차 가족으로 껴안으며 용서하는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응원하며 또 누군가를 욕하며 이웃집 들여다보듯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이 어느 틈엔가 그 모두를 ‘우리 가족’으로 여기고 그들의 삶을 응원했으면 좋겠다. 세상이 악한 물결로 뒤덮이고 악순환이 판을 쳐도 결국 세상을 이끄는 힘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사람들>
한윤진. 31세. <쿤스트 현 갤러리> 판매사원.
서울 변두리에서 허름한 손짜장 식당을 하는 집의 1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홀어머니 밑에서 보낸 학창시절은 늘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구겨지고 모난 데 없이 맑게 자랐다. 뼛속 깊이 뿌리내린 강력한 긍정 마인드와 강단, 독립심은 부모님이 윤진에게 물려준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 덕에 장안에서 손에 꼽는 대학을 나왔고 CJ 푸드빌 대졸 신입 공채에 당당히 합격, 지금은 외식 업체에서 홀 서빙과 주방 보조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인턴 기간을 보내고 있다. 늘 잠이 부족하고 체력이 달리지만 윤진의 미소는 언제나 좋다.
그런데 본사로 돌아가 본격적인 인재개발팀 업무를 보기도 전에 사표를 쓰는 윤진. 친구 선정이 주선해준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주현도라는 남자가 청혼을 해왔다. 이상스런 까칠함으로 센 척하지만 그의 눈을 보면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보여 당분간 만나볼 생각은 있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청혼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 그가 <노호 가구> 공장 막내가 아니라 사장 외아들이라는 사실은 더군다나 몰랐다.
수순처럼 시부모님의 반대가 격렬했지만 현도는 물러서지 않았고 현도의 당당하고 확신에 찬 사랑 앞에 윤진은 감동했다. 결혼과 임신, 출산까지 윤진은 밤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데렐라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 마법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선정.
윤진 아버지와 선정 아버지가 의형제를 맺고 살았던 터라 선정과는 태어날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다시피 한 선정을 윤진 엄마가 거두게 되면서부터는 한 집, 한 방을 쓰는 진짜 자매가 되었다. 말이 자매지 사실 윤진은 선정의 몸종 같은 친구였다. 늘 선정의 기분을 살펴야 했고 청소, 설거지는 물론 선정의 속옷 빨래까지 맡아 놓고 했으니까. 윤진은 선정이 이 끔찍한 시간을 잘 견뎌주는 것만도 고마워 뭐든 선정에게 양보하고 선정 뜻을 받아주며 지냈다. 뭐든 다 나누자고, 콩알 한 알도 나눠먹자고 했다. 그 말이, 내 남편과 아이까지 나눠 가져도 좋단 뜻은 아니었는데.
윤진이 난산 후 종합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는 동안 선정은 현도를 자기 남자로 만들어버렸다. 그 무서운 아버지 뜻까지 거스르며 자신을 사랑하고 결혼했던 현도는 선정을 사랑하게 됐다며 윤진에게서 등을 돌렸다. 시어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윤진을 한정치산자로 만들어 딸 예나까지 빼앗아갔다. 모두가 협력하여 윤진에게서 모든 걸 털어갔다. 간신히 붙어 있는 숨소리만 남기고 전부 다 빼앗겼다. 부유한 시댁도 남편 현도도 되찾을 생각 없다. 다만 예나. 내 딸만은 포기할 수 없다. 선정의 딸로 살게 할 수는 없다고 두 주먹을 쥐는 윤진.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윤진은 하나하나 벗겨지는 선정의 실체에 경악한다. 선정이 백재헌의 아이를 낳아 버리고 계획적으로 자기 자리를 빼앗은 것, 버려진 아이가 선정의 아이가 아닌 윤진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당장이라도 선정에게 복수하고 파멸의 끝을 보고 싶지만, 아홉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착하고 예쁘게 살라고 당부하셨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선정 하나 때문에 뒤틀리고 뒤바뀐 모두의 운명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최선정. 31세. 현도의 아내. 예나의 엄마.
운동화 사업으로 성공한 부부의 외동딸. 똑똑하고 예쁘고 새침한 부잣집 딸 선정은 친구들 사이에서 파워 그 자체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이라고는 모르던 열세 살 선정은 그 해 여름 너무나 잔인한 장면을 보고 만다. 아빠가 윤진 엄마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던 것.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어느 날, 윤진 가족과 함께 떠난 계곡에서 아빠는 물에 빠진 엄마와 윤진이 엄마 중 주저 없이 윤진이 엄마를 먼저 구했다. 그 장면을 홀로 목격한 선정. 그 바람에 식물인간이 된 선정의 엄마. 아빠가 엄마를 죽인 거라고 죽일 듯 아빠에게 대들었던 밤, 만취해 차를 몰고 나간 아빠는 그 길로 가로수를 들이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 선정은 자기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죽음과 동시에 운동화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체와 으리으리한 집은 다 날아가 버리고 선정은 윤진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공주 같은 내 방도 아빠 엄마도 다 잃었다. 윤진 엄마는 죄책감을 갖고 선정을 성심껏 돌봐주었지만 윤진이네 얹혀살며 선정은 분노와 복수심을 차곡차곡 저축했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한 선정은 일류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에도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악착같이 장학금을 타내며 고학했고 끝내 해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은 없다는 두려움이 근성을 만들어줬고 졸업과 동시에 <노호 가구> 경영기획실에 입사해 단숨에 회사로부터 인정받는 직원이 된다. 게다가 부잣집 아들 백재헌이 나 최선정에게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재헌은 선정 인생에 깃든 유일한 빛이요 선정을 상류층으로 올라가게 해줄 튼튼한 사다리였다. 인생역전, 신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드디어 내 앞에도 놓였다.
아무 생각 없이 윤진에게 소개한 회사 공장 직원 주현도가 실은 <노호 가구> 집 아들이었고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하게 되자 죽을 만큼 화가 나고 힘들었지만 재헌은 그 존재만으로도 선정의 오래 묵은 열패감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내주기에 충분했다.
재헌의 아이를 임신한 선정,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옥탑방 안에서 은둔한다. 군복무 중인 재헌을 기다리며 만삭이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재헌에게 숨기는 선정. 아이를 앞세워서라도 꼭 재헌 집 대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재헌이 적어준 주소를 들고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하며 재헌 집을 찾아간 선정은 재헌이 실은 그 부잣집의 입주 가정교사였음을, 재헌의 집은 자기가 알고 있던 부잣집이 아닌 산꼭대기 초라한 대문 집이었음을 알고 그 길로 양수가 터져 진통을 시작하고 아기를 낳는다. 이런 세상에 나오면 안 된다고 아이를 다시 밀어 넣고 싶었지만 늦었다. 너무 늦었다. 결국 아기를 낳은 선정은 아기를 재헌의 집 앞에 버린다. 산모는 아이를 낳다 죽었다는 쪽지와 함께.
그런데 재헌 집 앞에 버린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윤진의 아이였다. 내 아이에게까지 가난과 절망을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바꿔치기했다. 윤진인 이런 일 정도는 당해도 괜찮다. 내가 당한 일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고 독하게 마음먹는 선정, 이를 악물고 몸매를 다시 만들어 <노호 가구>에 재입사한다. 내 아이의 안부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회사에 다시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현도는 기다렸다는 듯 선정 앞에 허물어지고 선정에게 손을 내민다. 섹시하고 독한 여자가 그 이면에 청순가련미를 갖고 있다면 어떤 남자가 마음일 뺏기지 않을까? 선정이 현도의 손을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마치 계획이라도 했던 것처럼 현도와 결혼하고 자신의 딸을 자기 손으로 키우게 되는 선정. 그러나 백재헌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고 현도의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선정의 시한부 행복은 점점 그 생명을 다해가는데.......
백재헌. 33세. <쿤스트 현 갤러리> 미래전략실장.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 한 번 가보지 못했지만 일류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대학등록금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주 과외를 했고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껏 아이들의 과외 선생으로, 형으로, 인생 선배로, 하숙 비슷하게 그 집에 얹혀사는 중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에 가정교육을 더 엄격하게 하셨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이유로 기가 죽어선 절대 안 된다고도 가르치셨다. 그 어머니 덕에 재헌은 예의 바르고 반듯하면서도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른으로 훌륭하게 자랐다. 눈 크게 뜨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남보다 덜 자고 더 뛰고 어떤 상황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왔다. 속 꼬인 데 없이 유쾌한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두 팔을 크게 흔들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번 돈을 형이 가져가도, 그래서 휴학을 하고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 했을 때도 절망하지 않았다. 넘어질 때도 있는 거지,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선 더 열심히 살았다.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그렇게 열심히 산 덕인지 그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여자 최선정이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그녀의 마음이 활짝 열렸고 그 순간 재헌은 세상을 다 얻었다. 아직도 9개월 남짓 남은 군복무. 휴가 마지막 날 재헌은 자신의 사랑을 선정에게 고백하고 그날 밤 선정은 재헌의 아이를 임신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백령도로 귀대한 재헌이 선정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선정에게 편지가 온다. 재헌의 아이를 임신했고 이제 만삭이 되었다고. 군복무 중인 재헌이 마음 쓸까봐 임신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고 한다. 재헌, 고아나 다름없는 선정이 만삭이 될 때까지 혼자 감당했을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하루빨리 어머니를 찾아가라고 했지만 그 후로 선정과 연락이 끊겼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보아도 아기와 선정인 잘 있다는 말만 하신다. 벅찬 가슴으로 전역한 재헌은 그러나 자신을 기다리는 비보에 절망한다. 선정이 인사 오기로 했던 날 선정은 오지 않았고 그 며칠 후 아기만 덩그러니 집 앞에 버려졌었다고. 산모는 아이를 낳다 죽었다는 쪽지 하나가 전부였다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재헌은 국내 최대 회계법인 <서울 회계법인>에 입사해 2년 넘게 재무 컨설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뚝심 있게 장미만 열심히 키우고 있다. 선정에게 향하던 마음이 온전히 장미에게로 향하면서 그의 유난하고도 가여운 딸 사랑이 시작되었고 장미라면 자던 잠도 먹던 밥도 다 팽개칠 정도로 지극한 미혼부가 되었다. 어떻게든 장미를 잘 키워내고 선정 곁으로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최근 <노호 가구> 컨설팅에 참여한 재헌은 대표이사 주명철의 눈에 들어 <노호 가구>의 새 이름인 <쿤스트 현 갤러리> 미래전략실 실장으로 파격 스카웃 된다. 판매사원으로 입사한 윤진과는 면접장에서의 해프닝과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인연으로 가까워졌다. 아이까지 뺏기고 이혼 당한 아픔을 겪은 윤진이 장미를 품안 가득 안아줄 때면 안쓰럽고 가엽다. 어떻게든 회사 안에서라도 힘이 돼 주고 싶다.
그런데 그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선정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윤진을 그렇게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 역시 선정이라는 것, 장미와 예나를 바꿔치기한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선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울분을 토하는데.
주현도. 36세. <쿤스트 현 갤러리> 디자인 연구소 소장->본사 상무.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현도가 자기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어릴 적 한때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아버지 맘에 드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공부를 해도 일류대 갈 실력은 되지 않고 아버지의 실망은 점점 커져 분노로까지 이어지자 현도는 과감히 성적표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들통이 나고야 말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당장 아버지가 무섭기도 했고 모든 게 귀찮기도 했다.
<노호 가구>를 창업해 오늘의 <쿤스트 현 갤러리> 그룹으로 키운 아버지는 현도를 가구 공장 작업장 맨 막내로 처넣고는 가구를 배우라고 했다. 팔자에도 없는 대패질에 톱질까지. 인생 허물어지는 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타고난 기질은 헐렁하고 호방한 현도, 아버지의 계획 안에 꼼짝 없이 갇혀 답답하다. 아버지 몰래 그늘이 되어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거다.
아버지에겐 눌리고 어머니에겐 떠받들려 자라다 보니 성격이 극단을 달리고 충동적이며 이기적이다. 본인은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하나 남들 눈엔 막 자란 망나니일 뿐이다. 제멋대로인 성격이 툭툭 튀어나와 자잘한 사고도 제법 친다. 결혼도 그가 친 사고 중의 하나.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경영 기획실 직원 선정에게 한눈에 반한 현도는 선정을 쫓아다니며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선정은 첫 데이트 자리에 친구 윤진을 내보내는 것으로 현도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결국 현도는 선정 보란 듯 윤진과 결혼한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의미도 컸다. 윤진과의 결혼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아버지를 꺾고 싶었다. 윤진과의 결혼은 결국 아버지에 대한 오기와 선정에 대한 복수, 딱 그것이었다.
하지만 윤진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게다가 이제 막 첫아이가 태어난 순간, 현도는 품에 안은 아기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데 그런 감상에 젖을 사이도 없이 윤진이 종합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아기는 신생아실에 혼자 누워 세상과의 첫 만남을 외롭게 체험하고 있었다. 선정이 다시 나타난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회사 홍보 책임자로 컴백한 선정은 9개월 전보다 훨씬 더 세련된 외모와 촉이 살아 있는 감각으로 회사 분위기를 끌고 나갔고 현도 마음을 다시 끌었다. 윤진 병원엔 발걸음이 점점 뜸해진 현도, 어느새 선정을 다시 잡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는데.
끝내 윤진과 이혼하고 선정에게 처녀 장가가는 현도,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스카웃 된 백재헌이 선정의 남자였고 둘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으며 선정이 그 아이를 버리고 감쪽같이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까지 알고는 경악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 딸 예나가 내 딸이 아니라니. 선정을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 선정과 결혼하기 위해 윤진을 버렸다니 내 발등을 찍고만 싶다.
<윤진 집>
전애영. 57세. 윤진의 어머니.
가진 것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지만 경우 밝고 성격 밝고 생각도 밝다. 남편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 남편의 형제 같은 친구인 선정 아버지가 없었다면 그 막막한 세월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애영을 여자로 보기 시작한 선정 아버지 때문에 불행이 시작된다. 선정 엄마가 식물인간이 된 것도 선정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즉사한 것도 모두 자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죄책감에 평생 갇혀 산 애영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다시피 한 선정을 거둬 키우는 걸로 죄 값을 치른다고 생각하며 졸지에 셋이나 된 아이들을 죽도록 키웠다.
윤진이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 식구들에게 집까지 마련해줬을 땐 그 자식이 애처로우면서도 너무 기뻐 눈물지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윤진이 자식까지 빼앗기고 이혼을 당한다. 그런데 윤진이가 이혼 당한 그 자리를 딸처럼 키운 선정이 가로챘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한 애영. 문득 죽은 선정 아버지와의 일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일일까.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누구도 모르게 깊숙이 묻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겠지. 선정은 아무것도 모를 거야,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어떻게든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요즘은 동네에서 아이 봐주는 일을 한다. 네 살짜리 백장미라는 아이. 어려도 야무져서 손 갈 일도 별로 없고 오히려 심심한 일상에 활력소가 돼주는 아이다. 꼭 어릴 적 윤진을 보는 것 같다. 내 손녀딸 예나는 만나지도 못하고 살면서 남의 아이를 봐주니 가슴 저릴 때가 한두 번 아니다. 그런데 장미가 진짜 내 손녀딸이었다니!!
한규진. 29세. 윤진의 남동생.
추진력 있고 배짱 좋고 친화력 끝이고 동작도 빠른데 판단력이 떨어진다. 크고 작은 장사에 몇 번이나 실패해 이제 엄마한테 사람 취급도 못 받지만 또 다시 새로운 장사에 뛰어들 생각뿐이다. 피자 가게를 대대적으로 들어먹고 집 나간 상태.
<현도 집>
주명철. 66세. 주현도 아버지. <쿤스트 현 갤러리> 대표이사.
현도 집에서 유일하게 바른 말하는 인물.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될 때까지 밀어붙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식구들이고 직원들이고 가만두지 않는 초특급 불도저다. 욕하면 욕먹고 때리면 맞아가며 만든 강단이다. 빈틈없고 확실하며 맨주먹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구 대리점을 하다 가구 회사를 인수하고 분당 신도시 그 허허벌판 컨테이너 사무실에 야전침대 하나 갖다 놓고 먹고 자기를 수 개월, 수만 채의 아파트에 신발장과 거실 가구 수주를 따냄으로써 일약 가구업계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태어날 때조차 두 주먹 꽉 쥐고 얼굴엔 굳은 의지를 담고 머리카락 한 올 흩트리지 않은 채 세상에 나왔을 것 같다. 도전했다 하면 실패하는 법 없고 공부도 운동도 혼자 힘으로 잘 해냈던 터라 그렇지 못한 아들 현도가 늘 성에 차지 않고 못마땅했다. 그 자신은 이 긴 인생 동안 단 하루의 게으름을 피운 적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아들이란 놈은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남부럽지 않은 배경을 갖고도 남들 다 가는 대학 하나 제대로 못 가 재수 끝에 지방대 공대에 간 거나, 고등학교 3년 내내 성적표를 조작해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한 건 두고두고 용서되지 않는다. 오늘날 회사를 그룹 수준으로 키우기까지 얼마나 힘든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아들이란 놈은 경영과 한참 거리가 멀다.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누런 떡잎이 하루아침에 파래질 리가 없다. 나아지기는커녕 결혼에 이혼에 재혼까지, 길이 길이 한심한 짓만 하는 놈이다.
크고 작은 가구회사를 인수 합병하는 가운데 능력 있는 컨설턴트 백재헌에게 꽂히는 현도. 재헌이 내 아들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재헌이 내 아들이었다면 지금쯤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런데 재헌을 <쿤스트 현 갤러리>에 영입하고 경영본부장으로 민 것이 현도와 재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의 단초를 제공할지 처음엔 몰랐다. 인생 전체가 기이하게 얽혀 있는 두 사람을 내가 붙여놓았다니. 내가 재헌을 스카웃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들은 누구도 모르게 땅 속 깊이 묻혔을까?
안수미. 62세. 주현도 어머니.
자기 뜻만 받들라고 하는 최강 왕비다. 스스로를 세상 누구보다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투가 교양 있을 뿐 말의 내용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참을성이라곤 없고 툭하면 욱하는 데다 안하무인에 왕고집이지만 남편 주명철의 말이라면 꼼짝 못한다. 아들 현도 말이라면 팥으로도 메주를 쒀낸다.
세상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남편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사이에 낀 세월이 30년을 넘었다. 데리고 들어온 자식도 아니고 부자간에 이렇게 물과 기름으로 살기도 힘들 거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붙여준다고 하는 일이 번번이 일을 더 망치기만 하고, 어떻게든 현도를 감싸고돌다 자식 인생 다 못쓰게 만들었단 핀잔만 듣기 일쑤다. 남들 눈에야 명품으로 휘감고 좋은 음식 먹고 호텔 휘트니스 클럽에 마사지까지, 세상 근심 걱정 없어 보이겠지만 속이 속이 아니다. 윤진과 이혼하고 선정과 재혼하겠다는 현도 때문에 세상 하직할 뻔했다. 살려달라는 아들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집과 회사에서 쫓아내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남편을 뜯어말릴 방법도 없었다. 남편에게 차라리 날 죽이라고 했고 목숨을 걸고서야 겨우 그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하루 이틀 겪어보니 그리 반대만 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 새 며느리 선정이 입의 혀처럼 논다. 마치 아는 말이 네!, 밖에 없는 것처럼. 게다가 전처 자식 미운 건 인지상정이거늘 미워하기는커녕 제 속으로 낳은 제 새끼보다 더 귀하게 키운다. 어디서 저런 복덩이가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그런데 갓난쟁이들을 바꿔치기해 진짜 제 새끼를 키우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제 겨우 현도를 인정하기 시작한 남편에게 이 얘길 어떻게 하나. 남편에게 쉬쉬하고 숨기며 일을 해결해보려다 일을 더 망쳐놓기만 한다. 모든 게 엉망이다. 남편과 자식 사이에 끼어 잔머리와 억지만 는 수미, 이 고비를 또 어떻게 넘길지 주목된다.
주경은. 26세. 현도의 여동생. 스페이스 디자이너.
오빠 현도와는 달리 아버지 주명철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현도가 아빠 눈밖에 날만할 짓을 하면 어김없이 고자질을 해대던 여우다. 현도의 책상 서랍과 가방을 뒤지는 건 기본, 핸드폰 비밀번호까지 뚫어 현도의 비밀을 아빠에게 운반했다. 물론 이게 다 오빨 위한 일이야, 생각했지만 아빠와 오빠는 점점 사이가 멀어졌고 경은을 향한 아빠의 사랑만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런 경은이 결혼 첫날 밤 시내 특급 호텔의 방문을 부수고 집으로 쫓아왔을 때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으나 멀쩡하게 생긴 신랑 놈 속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니!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회장 손자와의 결혼이 성사됐을 때 <노호 가구>에 드디어 제 2의 도약기가 오겠구나 생각했던 명철은 땅을 치고 후회하며 자기 발등을 찍었고 엄마는 통곡을 했지만 정작 경은은 홀가분했다. 어차피 사랑도 없이 한 결혼이었으니까.
디스플레이와 코디에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서 <쿤스트 현 갤러리>의 스페이스 디자이너로 맹활약 중인 요즘 미래전략실장 백재헌이 경은의 마음을 있는 대로 흔들고 있다.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 이 사람을 만나려고 재벌 집 손자를 버리고 맨발로 호텔을 뛰쳐나온 거다, 틀림없다. 그런데 재헌은 도통 반응이 없다. 나 좋다고 줄 선 남자들 다 차버리고 재헌 앞으로 줄을 섰는데 그는 날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뿐 아니라 예전 올케 윤진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다. 말도 안 된다. 경은의 인내심은 바로 바닥이 나고 윤진에게 전쟁을 선포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귀여운 훼방꾼이 재헌과 윤진 사이를 더 밀착시키는 건 아닐지.
<그 외>
김명자. 58세. 재헌의 어머니.
남편과 사별 후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사람들은 돈 독이 올랐다고도 하고 돈 귀신이 붙었다고도 하나 속 모르는 소리.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여자가 혼자 몸으로 자식 키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남의 집 살이, 식당 설거지, 대형 건물 청소부, 목욕탕 세신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렇게 고생만 하며 살다가 3년 전 장미가 생긴 후로는 일을 그만두고 장미만 키우며 지냈는데 최근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더니 식사 준비를 하다 장미 손을 데게 하는 사고를 치고 만다. 결국 장미 육아를 포기하고 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치매센터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잠깐씩 정신이 돌아올 땐 그저 재헌 걱정, 장미 걱정이지만 정신이 없을 땐 고향 통영으로 가겠다고 사정없이 떼를 쓴다. 선정은 그런 명자를 이용해 재헌을 서울에서 쫓아버리려 하고.
이지숙. 31세. 윤진의 중고등학교 친구. <쿤스트 현 갤러리> 판매사원.
윤진의 중고등학교 시절 절친. 동대문 제일평화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만 5년째 하고 있다가 <쿤스트 현 갤러리> 판매사원 모집에 윤진과 같이 응시해 함께 합격한다. 여자들한테 물건 파는 덴 내가 도사다, 자신감 충만한 인물. 윤진과는 어릴 때부터 찰떡궁합이었고 윤진이 항상 선정 뜻을 받아주고 선정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걸 못마땅해 해왔다. 윤진이가 뭐가 부족해서! 너무 착한 게 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진짜로 큰 탈이 날 줄은 몰랐다. 최 선정 그 여우가 끝내는 윤진이 뒤통수를 치고 윤진이 가진 걸 몽땅 털어간 것. 윤진이 현도와 어떻게 결혼하고 이혼했는지, 선정이 현도 옆에 어떻게 접근해 윤진 자리를 빼앗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윤진과 함께 분노한 영원한 윤진의 편이다.
박도준. 28세. 수미의 운전기사. 선정의 행동대장.
선정이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할 때 알고 지내던 동생. 최근 가계가 더 기운 데다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되자 선정에게 돈도 좀 빌리고 취직도 부탁했다. 선정 덕에 힘든 고비를 넘긴 도준은 선정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는 자세다.
사모님 수미를 모시고 호텔, 안티 에이징 센터, 명품관, 면세점 등을 다니다보니 부에 대한 욕망이 커진다. 그 틈을 노린 선정은 도준에게 점점 도를 넘어서는 역할을 맡기고 돈의 맛을 안 도준은 점점 과감해지는데.
정은순. 55세. 선정의 엄마.
식물인간으로 누워만 있느라 선정에겐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다.
딸 선정의 인생에 아무 보탬도 돼주지 못하고 아무 의사 표시도 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여느 엄마 못지않게 자식을 사랑하는 깊은 모정의 소유자다.
주예나. 4세. 주현도의 딸. 최선정의 친딸.
어려서부터 재벌 집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하루 스케줄을 빽빽하게 채워놓는 엄마가 좋으면서도 싫다. 차 타고 이동할 땐 아빠가 만든 건반모양 나무판자에 끊임없이 손가락을 짚으며 손끝 굳은살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만드는 게 엄마의 꿈이고 또 나의 꿈이라면서. 난 실컷 좀 놀고 싶은데.
백장미. 4세. 백재헌의 딸. 한윤진의 친딸.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었지만 아빠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밝고 씩씩하게 잘 웃는다. 아직 어리지만 이제는 제법 아빠도 챙길 줄 안다. 할머니는 아빠가 나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외롭게 산다고 하지만 그건 뭘 모르시는 말씀. 아빤 이 세상에서 날 제일 사랑한다고 했고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런데 요즘 한윤진이란 아줌마가 아빠 옆에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아빠가 그 아줌마를 보고 너무 많이 웃는다. 아빤 나를 제일 사랑하는 게 아니었나?
<인물표>
<이야기>
1-20회 (起)
윤진,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 가게 <우리 집 반찬> 앞에 배달되어 있는 양파와 대파, 각종 채소를 가게 안으로 들여놓는다. 그 많은 양파를 말갛게 까고 대파와 콩나물 시금치 등을 다듬어놓는 윤진. 부엌으로 와 새벽밥을 짓고 아침상을 차린다. 미역국과 불고기, 시금치 무침, 계란말이.
밥상을 받고서야 오늘이 예나 생일인 걸 기억하는 윤진 엄마 애영은 마음이 아프다. 제 배 아파 낳은 제 새끼 생일 밥상 한 번 못 차려주고....... 하지만 윤진, 미역국에 밥을 말아 씩씩하게 비운다. 어서 드세요. 우리가 잘 먹어야 예나가 건강하게 크지.
그 시각, 현도 집에선 예나 생일상이 식탁 가득 차려져 있고 선정, 현도, 명철, 수미, 경은까지 한 자리에 앉아 예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잠옷 바람에 고깔모자를 쓴 예나, 오늘이 제 날인 줄 알고 마냥 즐거워하며 힘차게 촛불을 끈다. 행복한 표정의 선정, 이건 엄마 선물이야, 하며 공주 옷을 내밀면 예나, 엄마 최고라며 당장 갈아입겠다고 방으로 뛰어간다. 밥부터 먹어야지, 하며 예나를 따라가는 선정.
경은, 수미에게 엄만 나한테 저렇게 해준 적 있냐고, 생모보다 더 잘하는 계모는 처음 본다며 선정이 신기하다고만 해 일순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그새 옷 갈아입혀 예나를 데리고 온 선정, 내 딸 우리 예나 정말 예쁘다며 예나를 사이에 두고 현도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누가 봐도 행복하고 완벽한 세 식구다.
현도 집 앞.
윤진이 수수팥떡과 선물을 들고 대문 안을 살피고 있다. 현도와 선정이 예나를 데리고 나오면 얼굴이 활짝 펴지는 윤진. 예나의 엄마? 하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지며 윤진을 보는 선정. 윤진이 예나 옆으로 오면 선정이 그 앞을 막아선다. 윤진, 잠깐 선물만 주고 가겠다고 하지만 선정은 영어 놀이 학교 늦었다며 현도에게 눈짓하고. 현도는 예나를 차에 태운다. 차에 타 윤진을 뒤돌아보는 예나의 얼굴 점점 멀어지고.
선정, 만나는 날도 아닌데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거 불쾌하다며 돌아가라고 한다. 윤진, 예나 옷이라며 선물과 떡을 선정 손에 쥐어주고 돌아서는데. 마침 쓰레기차가 지나가자 미화원에게 이것 좀 드시라며 떡을 건네고 손녀딸 입히라며 옷을 건네는 선정.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윤진, 두 눈을 질끈 감고.
인적 없는 넓은 골목을 걸어 나오는 윤진. 저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있던 현도의 차. 예나가 엄마!, 하며 뛰어온다. 윤진, 금방 얼굴이 환해지며 예나를 안아주고 예나 볼에 얼굴을 비빈다. 차에서 내려 그런 윤진을 보는 현도.
예나를 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윤진의 얼굴에서 화면 정지.
4년 전.
베니건스 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고 있는 윤진. 가슴에 신입사원 한윤진이란 이름표를 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이 나가 있다.
같은 시각 <노호 가구> 매장을 바쁘게 휘젓고 다니던 선정, 전화 한 통을 받고 VIP고객의 주문에 문제가 생겼는지 사무실로 뛴다. 사장님 지시로 선정이 직접 받은 주문서에서 콘솔과 거실 장이 발주되지 않은 것.
공장으로 뛰어간 선정, 죽었다 깨나도 날짜를 맞춰야 한다고 펄펄 뛰지만 공장장은 곤란하다며 발을 뺀다. 선정, 난감한데 작업복 차림의 현도가 나타나 자기가 해결해주겠다고 한다. 어떻게든 해결해줄 테니 데이트 한 번 하자고. 선정, 장난할 시간 없다고 하면 밑져야 본전이니 자기를 믿어보라는 현도. 선정, 그런 현도를 무시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주문을 넣었던 사모님에게 전화가 온다. 신기하게도 콘솔과 거실장만 주문을 취소하겠다는 것. 이유는 단순 변심. 선정은 큰 시름을 놓지만 곧바로 걸려온 현도 전화를 받고 다시 심난해진다. 공장 직원과 데이트라니. 그때 윤진이 떠오른다. 윤진이라면 그 사람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윤진에게 전화를 건다. 토요일에 시간 비워두라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와 선정 아버지 제사 준비에 바쁜 윤진.
애영은 윤진 아빠 사진도 내려놓으라고 한다. 친구 기일인데 네 아빠도 내려와서 봐야지. 윤진, 형제처럼 지내시더니 두 분 하늘나라에서 만났을까?, 하다가 문득 궁금하다. 선정이 엄만 좀 어떠신지.
아빠 돌아가신 지 14년 지났다며 식물인간 엄마에게 가는 선정. 엄마 앞에 앉으니 아빠가 윤진 엄마를 부둥켜안고 입 맞추던 장면과 계곡에서 엄마 아닌 윤진 엄마를 구해 나오던 아빠가 떠올라 미칠 것만 같다. 윤진 엄마. 엄마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꼭 살아, 꼭 깨어나 엄마.......
얘는 꼭 제 아버지 제삿날 빨리 안 들어오고 심술을 부린다며 한 마디 하는 애영.
오죽 맘이 힘들면 그러겠냐는 윤진, 선정이 딱하다.
느지막이 제사 지내는 식구들. 애영, 네 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하며 선정 아버지 얘기를 꺼내려는데 선정이 싹 자른다. 쌀쌀맞은 말투로 아버지 잊은 지 오래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남은 식구들은 씁쓸하다.
선정에게 벌써 여러 번 퇴짜를 맞았던 현도, 엄마 수미가 선정을 통해 가구 주문한 것을 알고 선정이 곤란해지자 발 빠르게 조치를 취했고 드디어 그녀를 만난다. 현도는 밤잠도 자는 둥 마는 둥 공장에서와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가는데 자신 앞에 와 선 여자는 선정이 아닌 윤진!!
어이없고 화가 나지만 윤진과의 데이트를 즐기는 현도. 자신에 대한 확실한 거절의 뜻으로 온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앉아 있는 윤진이 너무 착했고 무엇보다 웃는 모습이 예뻤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바쁘게 주문대에 서는 선정. 군복 입고 카페로 들어온 재헌이 선정 앞에 선다. 선정, 오랜만이네?, 하는 표정 스치다 얼른 모르는 척한다. 잘 지냈냐고 묻는 재헌에게 주문하겠냐고 까칠하게 구는 선정. 재헌, 이번에 상병 달고 휴가 나왔다고. 백령도는 기상이 안 좋아 휴가 날짜가 자꾸 밀린다며 선정이 궁금해 하지도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선정, 아메리카노 레귤러에 샷 추가 맞죠? 하며 말을 끊지만 재헌은 자신의 메뉴를 기억해주는 것만도 놀랍고 신기하다. 카페 구석에 앉아 선정의 얼굴을 그리고 컵홀더에 단상을 적는 재헌, 다음 휴가 날짜와 함께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선정에게 건넨다. 하지만 선정은 샌드위치 만들다 남은 식빵 테두리나 가져다 먹는 재헌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자기한테 관심을 갖는 거 자체가 질색이다.
윤진, 소개팅 첫날부터 엄청난 속도로 대시하는 현도가 싫지 않다. 성장 과정도 집안 얘기도 거의 하지 않고 성격도 거친 면이 있지만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예쁘다, 보고 싶다는 말을 툭툭 던질 땐 웃음이 저절로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다 한 번씩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을 써줄 땐 그릇도 큰 사람처럼 보인다. 윤진은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데 현도는 만날 때마다 선물 하나씩을 쥐어준다. 부담스러우면서도 행복한 윤진, 이런 만남을 주선해준 선정이 고맙다.
현도와 데이트를 하고 나서 윤진이 들고 들어오는 선물 면면이 너무 의외라 선정은 속으로 현도를 비웃는다. 가방, 액세서리, 옷....... 전부 가짜겠지. 못 배우고 없는 주제에 허세는! 난 반드시 거부의 아들을 만나서 윤진이 너희 집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내 인생을 단번에 끌어올릴 거라고 다짐한다.
현도는 일부러 선정이 아르바이트 하는 카페에서 윤진에게 프로포즈를 하며 윤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선정 앞에서 과시한다. 윤진은 현도의 과분한 사랑에 감동하고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성북동 주택가에 가구를 넣고 고객만족도를 확인한 후 퇴근하던 선정은 재헌이 으리으리한 집에서 나와 어머니에게 경례를 붙이고 귀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세단에 올라타 멀어지는 재헌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그 어머니에겐 귀티가 절절 흐른다. 집을 올려다보는 선정,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두 눈에 힘이 들어가는 선정. 그러나 활짝 펴진 얼굴이 한 순간 어두워진다. 어쩌나, 그동안 그렇게나 못되게 굴었는데.......
현도가 아버지에게 인사 가자고 한 날. 윤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노호 가구> 앞으로 가고 현도는 본사 사장실 앞까지 윤진을 데리고 간다. 의아한 얼굴의 윤진에게 내 아버지가 <노호 가구> 사장님이라고 말하는 현도. 윤진,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데.
경영기획실장과 함께 사장실에 들어가 새로운 상담 서비스 도입에 대해 브리핑하고 나오던 선정은 윤진을 데리고 사장실로 온 현도와 마주친다. 윤진을 정식으로 아버지에게 소개하려고 왔다는 현도. 깜짝 놀라기는 선정도 마찬가지다. <노호 가구> 사장이 현도 아버지라니. 이게 무슨,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지? 내가 내 발로 복을 걷어찼다니. 내가 내 손으로 윤진일 신데렐라로 만들었다니!!!
집으로 뛰어 들어와 재헌이 건넨 컵 홀더를 뒤지는 선정. 있다, 재헌의 연락처!! 그러고 보니 휴가 날짜가 가깝다.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그가 카페로 올 거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생기진 않았겠지?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재헌만 잡으면 <노호 가구>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흥분된 얼굴엔 두려움과 미소가 복잡하게 번지고.
윤진, 엄마 애영이 저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현도 아버지의 반대쯤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자기만 믿으라는 현도와 현도를 적극 지원해주는 현도 어머니가 있기에 든든하다. 현도는 고집을 꺾지 않을 게 뻔하고 남편 명철은 집안을 뒤엎을 게 뻔해 앓아누웠던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결국은 결혼 허락을 받아내 준다. 현도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 윤진을 맘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도 아버지 몰래 결혼 준비를 도와주는 시어머니. 결혼하면 정말 잘 해드리겠다고 다짐하는 윤진. 시아버지도 지금은 윤진의 형편이 못 마땅해 반대하지만 결혼 후엔 그 생각이 바뀌도록 잘 해낼 자신이 있다.
선정의 안목을 믿는 윤진은 선정과 함께 드레스를 고르고 예복을 결정한다. 선정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는지. 선정을 두고 먼저 시집가는 것도 미안한데 선정은 무심한 얼굴로 이제 독립하겠다고 한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갈 때가 왔다며.
애영은 딸 둘을 한꺼번에 시집보내는 기분이라며 선정을 말리지만 선정은 단호하다. 애영은 그런 선정에게 섭섭하지만 한편으론 시원한 마음도 있다. 힘든 형편에 이만큼 했으면 나도 내 도리는 다 한 거겠지, 스스로 위로하는 애영.
윤진은 현도 집 정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식을 보는 내내 선정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행복에 겨운 윤진의 얼굴도 윤진 엄마의 얼굴도 다 보기 싫다. 저렇게 행복해져선 안 되는 사람들인데. 현도를 윤진에게 소개했던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만 싶다. 지금이라도 이 결혼을 막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그리고 며칠 후, 상병을 단 재헌이 카페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선정 앞에 선다. 처음으로 재헌을 보고 말갛게 웃는 선정. 그날 밤 카페 문을 닫고 첫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은 가난한 연인들처럼 길거리 음식을 먹고 청계천을 걷고 새벽시장엘 간다. 재헌의 휴가기간 내내 만나는 두 사람.
선정, 보면 볼수록 재헌이 맘에 든다.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이 왜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이렇게 겸손하고 검소한 성품이 왜 눈에 차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재헌을 잡게 된 게 천운처럼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이 터져 나온다.
재헌이야말로 하늘을 날 것만 같다.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눈앞에 선정이 있어도 믿기지가 않는다. 귀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시간은 빨라지고 마음은 붕 떠 있는데.
귀대 전날, 이제 작별하면 또 몇 달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 그런 재헌을 선정이 붙잡는다. 그렇게 그 밤을 함께 보내는 두 사람.
윤진이 임신을 하자 시부모님도 조금은 윤진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현도는 마치 세상에서 혼자 아버지가 되는 사람처럼 조바심을 내고 좋아한다. 윤진, 이 기쁜 소식을 선정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데 선정은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내고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 좋은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 집안이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는데. 그 사람과 어딘가로 떠난 걸까?
재헌의 아이를 임신한 선정은 임신 사실을 재헌에게까지 숨기고 꽁꽁 숨어버린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으리으리한 집에서 걸어 나오던 재헌의 모습이 보인다. 그 집 대문을 당당하게 내 손으로 열고 들어가려면 어떻게든 뱃속의 아이를 앞세워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두 번의 휴가를 놓친 재헌마저 선정의 임신 사실을 모르는 가운데 선정은 어느덧 만삭이 된다. 이제껏 임신한 줄도 몰랐던 재헌은 선정과 전화통화를 하며 마음 아파하고 어서 어머니를 찾아가라고 한다. 따뜻하게 맞아주고 도와주실 거라고 하는데.
명품 임산부 원피스를 사 입고 고급 과일을 사들고 재헌이 입주 과외교사를 하던 그 부잣집을 찾아가는 선정. 하지만 그 집에선 여기가 재헌의 집이 아니라며 재헌 집 주소를 적어준다. 불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는 선정, 그 고개를 넘고 또 넘어 한참을 올라가서야 있는 초라한 집 대문 앞에 선다. 재헌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은 채 주소를 확인하고 문패를 확인한 윤진은 과일을 놓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재헌이 실은 그 부잣집의 입주 가정교사였음을 알게 되는 선정,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때 이른 진통을 하다 아기를 낳는다. 이런 세상에 나오면 안 된다고 다시 밀어 넣고 싶었지만 늦었다. 너무 늦었다.
같은 시각, 바로 옆 분만실에서 아기를 낳는 윤진. 난산을 겪는 도중 아기가 산도를 찢고 나와 종합병원으로 후송되어 전신 마취 후 3시간이나 수술을 받는다. 설상가상 치골이 5센티미터나 벌어져 두 달 가까이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라고 하는데 시부모님은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며 대놓고 서운해 한다. 시부모님의 구박도 서럽지만 무엇보다도 아기가 보고 싶어 눈물 적시는 윤진.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한 선정,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모유수유를 위해 아기에게 가던 중 신생아실 앞에 있는 현도를 발견, 재빨리 몸을 숨긴다. 윤진이 여기서 출산을? 신생아실로 들어가 윤진의 아기와 자기 아기를 번갈아 보는 선정.
퇴원 후, 선정은 갓 태어난 아기를 재헌의 집 앞에 버리고 자신은 아이를 낳다 죽었다는 쪽지를 남긴다. 독한 표정으로 돌아서지만 넘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선정.
제대하고 돌아온 재헌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날벼락에 머리를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서울 시내 산부인과란 산부인과는 다 쳐들어가보고 주민 센터와 구청을 샅샅이 뒤져 사망자 명단을 확인하려 하지만 어디서도 선정의 소식을 알아낼 수가 없다. 핏덩이 장미를 안고 오열하는 재헌.
윤진이 생각보다 길어진 병원 생활에 지쳐가고 아기를 곁에 두지 못해 우울해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선정은 지독한 다이어트 끝에 <노호 가구>에 재입사한다. 현도 아버지 주명철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선정을 홍보 책임자로 앉힌다.
현도는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던 선정이 나타나자 반갑다. 9개월 전보다 훨씬 더 세련된 외모와 촉이 살아 있는 감각으로 돌아온 선정은 전과 다른 태도로 현도를 대하는 건 물론이고 예나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챙겨준다. 현도의 회사 업무를 도와 아버지 눈에 들게 해주는 선정에게 자기도 모르게 바짝 다가가는 현도, 윤진에겐 마음이 멀어진다. 회복은 더디고 푸석푸석하기만 한 윤진과는 모든 게 다른 선정. 옷 입는 것에서부터 말투, 예나를 대하는 태도까지 세련되고 기품이 있다. 내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빛나게 해줄 이 여자를 잡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현도. 더 이상 가까워지는 건 안 된다는 선정을 끌어안고 키스하는데 그 때 사무실로 들어와 두 사람을 본 윤진이 비명을 지르고.
어떻게 내 남편과! 꿈에서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놀라다 못해 두려워 덜덜 떠는 윤진 앞에서 선정은 당당하기만 하다. 현도 역시 미안해하는 태도가 아니다. 선정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현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처음부터 윤진이 아니라 선정을 사랑했었던 것 같다고 하는데.
윤진을 반대하던 시아버지에게서 결혼 허락을 받아냈던 시어머니는 아들의 이혼은 절대로 안 된다는 시아버지에게서 결국 이혼 허락까지 받아낸다. 자신을 한정치산자로 몰아 예나를 현도와 선정 품에 안겨주는 시어머니. 아기만은 두고 나갈 수 없다고 울며 매달리는 윤진 눈앞에서 대문을 쾅 닫아버리는 선정. 때마침 돈 사고를 치는 친정 식구들. 완벽하게 당하고 모든 걸 빼앗기는 윤진.
21-40회 (承)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등 돌리고 있던 현도가 윤진을 찾아온다. 친정 일은 잘 해결될 수 있게 덮겠다고. 정신병원에도 가두지 않을 테니 이후 예나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에 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라고 한다. 그러면 한치산 선고 취소를 해주겠다는 현도. 결국 각서에 사인하는 윤진, 현도 앞에서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시댁 정원에서 윤진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선정이 현도와 결혼식을 올린다. 찬 바닥에서 사흘 밤낮을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윤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남편도 아이도 직장도 알뜰히 다 빼앗겼다. 뭘 잘못한 걸까. 선정인 누구인가. 흐르는 눈물.
특급호텔에 가족과 친지를 초대해 예나 돌잔치를 하는 선정과 현도. 예나를 사이에 두고 돌 사진을 찍고 있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 예나에게 주는 선물과 덕담으로 시끌벅적한 홀 저쪽 문밖에 윤진의 모습이 보인다. 들어오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예나를 보는 윤진.
윤진은 문밖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선정과 현도는 예나를 사이에 두고 돌 사진을 찍는다. 이후 예나 생일마다 두 살, 세 살, 네 살이 된 예나와 함께 찍은 세 사람의 사진들이 찰칵 찰칵 넘어가며 3년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윤진,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네 살짜리 여자 아이를 넋 놓고 보고 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이에게 꽂힌 눈길. 앞에 서 있던 재헌, 뒤돌아보며 전화 받으세요, 하는 순간 갑자기 사고로 에스컬레이터가 멈추면서 그대로 재헌 품으로 쏟아지는 윤진. 재헌,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떨어뜨리고 액정이 박살난다.
윤진, 지갑에 돈이 없어 우선 3만원을 내밀며 전화번호를 준 후 급한 일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재헌, 윤진이 하도 정신없이 돈을 주고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이렇다 저렇다 말도 못했다. 기막히고.
곧 <쿤스트 현 갤러리> 면접장에서 다시 만나는 두 사람.
대표이사에게 채용 권한을 일임 받은 재헌은 윤진과 다른 지원자들을 면접하다가 윤진의 낡은 구두를 본다. 자신의 이미지를 한눈에 보여줘야 하는 인터뷰 자리에 낡은 구두를 신고 온 것은 우리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냐며 그 이유를 묻는 재헌. 윤진은 자기가 갖고 있는 구두 중 가장 좋은 것을 정성껏 닦아 신고 왔다며 새 구두가 아니란 이유로 회사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회사라면 지원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겉만 번드르르하고 이야기나 혼은 담기지 않은 가구를 파는 회사라고밖엔 볼 수가 없다고. 엎어 놓았던 윤진의 지원 서류를 다시 돌려놓는 재헌.
함께 응시하여 동시에 합격하는 윤진과 지숙, 너무 행복하다. 윤진은 이혼 후 처음으로 정규직에 채용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그런데 합격 통지서를 받고 첫 출근을 한 윤진은 <쿤스트 현 갤러리>의 대표이사가 현도 아버지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현도 아버지 역시 이 사실을 알고는 합격 취소라며 펄쩍 뛴다. 이게 무슨 악연인가, 이 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매장 입구에서 마주치게 되는 현도와 예나....... 예나를 본 윤진은 그 순간 마음을 정한다. 여기서 일하면 예나를 우연히라도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장실로 올라간다.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직원을 해고할 수는 없다, 내 실력과 경력으로 들어왔으니 정정당당하게 일하겠다고. 왜 하필 그 곳이냐며 친정어머니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예나를 위해서라면, 종국에 예나를 내 품으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윤진이 판매사원으로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도와 선정은 물론 수미와 경은까지 현도 식구들이 하나같이 윤진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특히 선정은 자기가 가진 모든 힘과 방법을 동원해 윤진을 퍼내겠다고 한다. 한윤진인 동시에 예나 엄마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자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는 윤진. 그런데 고맙게도 재헌이 윤진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방어해준다.
직원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본사와 매장 시스템이 자리 잡은 후 대외 홍보를 위해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하는 <쿤스트 현 갤러리>. 선정은 미래의 갤러리 안주인으로서 당당히 행사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다. 갤러리의 미래전략실장으로 전격 스카웃 되어 온 사람이 다름 아닌 백재헌이었던 것!
갑자기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행사장을 빠져나온 선정, 식은땀이 나고 쓰러질 것만 같다. 재헌은 내가 죽은 줄 알고 있는데.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신을 찾아낸다면 재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자신의 턱밑까지 재헌이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이 사실을 현도가 안다면. 재헌은 물론 아기를 낳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게다가 윤진과 재헌이 각별히 가까운 것 같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설상가상 시누이 경은이 재헌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시아버지는 경은의 남자로 재헌을 적극 추천한다. 전에 없이 허둥대고 불안해하는 선정, 누워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재헌이 쳐들어올 것만 같아 숨을 쉴 수가 없다. 일이 커지기 전에 윤진도 재헌도 수습해야 한다. 선정은 시어머니와 시누이 경은을 앞세워 윤진을 물류팀으로 끌어내리고 물류 팀장까지 동원해 윤진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윤진을 괴롭힐수록 재헌과 윤진이 가까워지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걸 모른 채.
그 무렵 재헌 책상에서 선정의 초상화를 보는 윤진은 재헌이 선정의 남자였으며 선정이 재헌의 딸 장미를 낳아 버리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41회-60회 (轉)
회사 앞에서 선정을 본 것 같다며 혼이 나간 재헌. 그럴 리 없겠지만 자신이 본 사람은 분명 선정이라고 한다. 아무런 단서도 정보도 없이 미친 사람처럼 선정을 찾아 헤매는 재헌을 보다 못한 윤진은 재헌과 선정을 만나게 해준다.
재헌, 눈앞에 나타난 선정을 믿을 수가 없는데 선정은 마치 더러운 버러지 보듯 재헌을 피해 달아난다. 죽은 줄 알았던 선정이 살아 있었던 것도, 선정이 자신을 밀치고 도망간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도무지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 재헌은 현도 집 앞으로 가 선정을 만나려 하지만 선정은 만나주지 않는다.
선정을 찾아가 따져 묻는 윤진. 너에게 남자가 있었다는 걸 안다며 네가 사라졌던 9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도와 시댁 어른들 앞에서 자초지종을 말하겠다고 하지만 선정은 만약 이 사실을 현도까지 알게 하는 날엔 예나를 평생 못 보게 해주겠다고 역으로 협박한다. 네가 감히 백재헌과 나를 만나게 했으니 그 대가는 어떤 식으로든 치러야할 거라고 한다.
예나 얘기가 나오면 한없이 무력해지는 윤진.
죽기 살기로 선정을 끌어내는 재헌. 결국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재헌은 선정을 달랠 셈이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할 참이었다. 하지만 선정은 재헌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고도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자기 역시 피해자라며 죽은 셈 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남편 현도를 본사로 끌어올려 어떻게든 재헌을 회사에서 밀어내려 한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 재헌. 정말 내가 가난한 게 이유였냐고 묻는 재헌. 선정을 그리워하며 장미와 함께 산 3년을 생각하며 울분을 터뜨린다. 내가 장미를 껴안고 어떻게 살아왔는데....... 자기도 자기지만 윤진은 선정에게 남편과 아이까지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윤진이 나서서 자신과 재헌을 만나게 했다는 데 분노한 선정, 윤진 엄마를 찾아가 돈 봉투를 던지며 윤진을 당장 자기 회사에서 끌어내라고 한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윤진이 예나를 만나는 날, 예나를 내보내지 않는 것으로 잔인하게 복수한다.
윤진, 그런 선정을 참을 수가 없다. 한 달에 한 번 예나를 만나기 위해 나머지 날들을 얼마나 괴롭게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 예나를 보겠다고 하지만 선정은 태연하게 윤진을 몰아붙인다. 재헌이 나타났다는 이유로 자신을 협박하거나 예나를 되찾을 계획이었다면 생각 바꾸라고. 우리 시댁에서 네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러니 예나를 보고 싶다면, 조용히 입 다물고 살라고 한다. 윤진은 하소연할 길 없는 마음을 재헌에게 털어놓고 기댄다. 선정도 자식을 낳아봤으면서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니.......
현도, 선정이 준 것이라며 윤진이 봉투를 들고 온 날부터 하나하나 쌓이기 시작하는 선정에 대한 의심의 꼬리를 끊을 수가 없다. 뭔가 속이고 불안해하며 비밀이 많아지는 느낌.
현도가 뭔가를 눈치 채고 자신을 조여 온다고 느낀 선정, 산부인과에 가 묶었던 나팔관을 도로 푸는 수술을 한다. 예나 말고 진짜 현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선정, 이전보다 더 깔깔거리고 애교를 부리고 살갑게 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선 현도가 불안해 견딜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현도는 선정이 몰래 받는 전화에서 장미라는 석연치 않은 이름을 듣게 되고 의심의 촉을 높이 세운다. 특히 백재헌이란 자의 이름만 나와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아내가 좀 많이 이상하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모든 게 수상하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뭘 감추는 걸까?
현도가 재헌을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하자 선정이 화들짝 놀란다. 온갖 핑계를 대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선정이 그럴수록 더 오기가 나는 현도, 기어이 재헌을 초대하고. 자기 집에서 재헌과 마주 선 선정은 곧 쓰러질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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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는 선정을 주의 깊게 살핀다. 역시 선정의 눈빛도 행동도 정상이 아니다. 자신의 짐작이 맞을까봐 오히려 불안한 현도. 결국 창고에서 선정의 홍보실 시절 박스를 보게 되는데 그 안엔 재헌의 깨알 같은 마음이 담긴 컵 홀더 수십 장이 있다. 4년 전, 선정을 향한 재헌의 사랑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활자 속에서 숨을 쉰다. 설마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한 현도는 자기를 감쪽같이 속이고 쇼를 했던 선정을 용서할 수 없다. 선정은 재헌이 일방적으로 자길 좋아했을 뿐 아무 감정 없었다고, 남녀 관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현도 마음엔 오히려 의혹만 짙어지고.
선정은 현도에게 바짝 매달리고 이전보다 더 오버해서 현도를 챙기지만 현도는 모든 게 귀찮고 허탈하다.
윤진, 자신을 찾아와 왜 선정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느냐며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는 현도가 어이없으면서도 딱하다. 내 말이라면 한 마디도 믿지 않던 사람이 이제 와서 이러면 어쩌라는 말인지. 선정의 과거를 알게 된 것도 큰일이지만 사실은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현도는 중심이 전혀 서 있지 않다. 아마도 다 귀찮고 다 짜증나는 그 병이 도로 도질 테지.
선정, 재헌과의 과거를 알고 급격히 윤진에게로 기우는 남편 현도가 불안해 미칠 지경이다. 회사 게시판과 직원들을 교묘히 이용해 윤진을 전남편 가정 깨뜨리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보지만 화살은 항상 윤진을 비껴가 엉뚱한 데 꽂혀 선정을 더 곤란하게 한다. 생각다 못한 선정, 현도 건강을 핑계로 1년 쯤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고 하는데 시어머니 수미는 그 당장 건강검진을 예약한다. 선정, 불안은 증폭되고 모든 게 엉망이다.
윤진, 지숙을 통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한 재헌이 저녁 식사를 초대하자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같이 퇴근하는 두 사람 앞을 현도가 가로막고 선다. 생일 축하한다며 호텔 식당을 예약했다고. 윤진, 선약이 있다며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순간 예나도 함께 갈 거라고 하는 현도. 걸음을 멈추고 현도를 돌아보는 윤진. 현도를 무시하고 재헌과 같이 나가려고 했지만 예나라는 말에 마음을 바꾼다. 재헌에겐 미안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예나보다 중요한 건 없다.
생일날 식사 초대를 펑크 낸 것도 미안하고, 회사에서 늘 자기편이 돼주는 재헌이 고맙기도 해 윤진은 놀이동산에 같이 가자는 재헌의 청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곳에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현도, 선정, 예나를 만나고 그들은 어색하고 위태로운 시간을 같이 한다. 현도는 마치 선정이 괴로워하는 걸 즐기는 사람처럼 상황을 만들어가고 선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상황을 견디느라 안간힘을 쓴다. 윤진은 그런 자리에서 엄마를 처음 만나는 장미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고 재헌은 장미를 대하는 선정의 태도 때문에 최악의 상처를 입는다. 현도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윤진도 이렇게 피가 마르는데 선정은 대체 무슨 힘으로 버티는 건지.
현도, 건강검진 결과를 상담하던 중 선정에게 출산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녀인 척 날 속여? 장미란 애를 제 속으로 낳아 놓고 백재헌 혼자 자기를 일방적으로 좋아했다며 억울한 척 연기를 하다니, 현도는 참을 수가 없다. 게다가 장미를 잃어버렸던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버렸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선정에게 질려버린다.
그때부터 선정에게 막 대하고 싸늘하게 굴고 선정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현도.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자신에게 접근해 목표를 이룬 여자라고 생각하니 징그럽고 끔찍하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한심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진심이라곤 없었던 이런 여자 때문에 윤진에게 상처 주고 예나까지 엄마와 헤어지게 했다니. 취하지 않고는 이 시간을 견딜 수가 없다. 취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윤진을 찾아가고 쫓겨 오고 다시 찾아가고. 집도 회사도 엉망이다. 다 끝이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주명철은 또 다시 현도에게 실망한다. 아버지의 실망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현도는 한없이 추락하는데.
그런데 선정과 더는 같이 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 즈음 예나가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다.
윤진, 예나를 집으로 데리고 와 식사를 하고 함께 놀이터에 나가 놀던 중 그만 정글짐에서 예나를 놓친다. 이마가 찢어져 피 흐르는 예나를 구급차에 싣고 응급실로 오는 윤진. 선정은 윤진을 죽일 듯 덤벼들고 현도는 그런 선정을 뜯어말리면서도 예나를 보고는 괴로운 얼굴이다. 애를 이렇게 다치게 했으니 이제 예나 얼굴 볼 생각은 아예 말라는 선정. 윤진은 처참하다.
그런데 찢어진 이마를 꿰매고 붕대를 감아주던 외과의사가 정밀검사를 권한다. 원망스런 눈으로 윤진을 보는 선정과 현도.
내 잘못이야....... 윤진의 마음은 무너지고.
검사 결과, 뇌종양.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 윤진. 그런데 선정은 기절을 하고 만다. 예나가 뇌종양이라니!
81회-100회 (轉)
서둘러 입원하고 수술 날짜를 잡는 등 예나의 치료 계획이 세워지는 가운데 아이를 둘러싼 네 사람의 심정은 처참하다.
수술실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윤진과 선정은 이 웃지 못 할 운명 앞에서 기가 막히다. 윤진도 선정도 수술만 잘 된다면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는 생각이다.
수술이 잘 끝나고, 너무 어린 예나가 버텨내기엔 힘겨운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윤진도 선정도 애간장이 끊어지긴 마찬가지다. 현도도 선정에 대한 배신감을 접고 예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그 무렵 현도가 윤진을 찾아온다. 예나가 정말 우리 딸 맞겠지?
윤진, 이 마당에 그런 말이나 하는 현도를 경멸한다. 내가 어디 가서 다른 남자 아이라도 임신해왔다는 얘기인지, 날이 갈수록 한심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그런데 현도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정은 엄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현도의 뜬금없는 말 때문만이 아니라 혹시 예나가 선정의 친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꾸 든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예나 앞에서 기절까지 했던 선정이 떠오르고.
3년 전을 돌이켜보는 윤진, 선정이 아무리 순간적으로 아이를 버렸고 찾을 생각이 없었다 해도 내 자식을 그렇게 쉽게 단념할 수 있는 엄만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백 번 양보해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장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렇게 남 보듯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사람이 평생 흘릴 눈물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선정은 그 눈물을 예나를 위해 다 흘렸다. 선정의 엄마가 식물인간이 됐을 때도 선정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도 선정은 그렇게 울지 않았다. 게다가 예나에게만 집중하느라 씻지도 먹지도 않았다. 며칠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장미 생일에 초대받은 윤진은 머핀을 직접 구워 장미의 사진을 오려 깃발처럼 꽂아온다. 장미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 자는 얼굴 등. 재헌, 감동하고 점점 윤진을 향해 가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장미와 함께 식사를 하고 선물로 가져간 머리핀과 머리 끈으로 장미 머리를 만져주던 윤진, 정수리 아래쪽으로 난 머리 상처를 보고 놀란다. 분만 후 윤진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자 당황한 간호사가 아기를 침대로 옮기다 실수한 자국. 예나 머리를 봐도 상처가 없어 그저 잘 아물었다고만 생각했는데. 혹시....... 장미 머리를 빗기다 갑자기 뛰어나가는 윤진을 의아하게 보는 재헌.
예나를 낳았던 산부인과로 달려가 자신이 예나를 낳았을 즈음 최선정이란 산모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윤진. 과연 선정은 그날 응급환자로 들어와 딸을 낳았고 이틀 만에 퇴원했다. 그럼 내가 종합병원으로 후송된 사이에 아이들을 바꿨단 말인가??
선정을 만난 윤진, 장미도 예나처럼 머리에 상처 입은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 당황한 선정, 그런 일 없다고 하면서도 혹시 장미를 재헌 집 앞에 두고 올 때 생긴 상처일 수 있겠다고 한다. 동이 트기 전이라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고 맨 바닥이라 상처가 생겼을지 모르겠다고. 윤진, 분노가 솟구쳐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 어린 생명을 추운 날 시멘트 바닥에 버리고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니....... 마음을 다잡는 윤진, 이젠 내 차례다. 예나가 진짜 선정의 딸이고 그래서 저토록 목숨을 거는 거라면 이젠 내가 너한테서 예나를 빼앗아줄게. 네 입으로 예나가 내 딸이라고 실토할 때까지 어디 한 번 가보자.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진다.
수술이 끝나고 한시도 선정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예나 때문에 선정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도. 예나가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선정의 일을 덮어두고 있는데 또 다시 고개를 드는 의혹. 예나의 성화에 집으로 놀러 온 장미를 쓱 밀어내던 선정이 마음에 걸린다. 예나를 향한 과도한 사랑도 장미와 닿기만 하면 불에 덴 듯 놀라는 것도 다 정상이 아니다. 뭘까.
한 번 무너진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며 윤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현도에게 윤진은 양육권부터 돌려달라고 한다. 양육권을 주면 당신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겠다고. 현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다.
예나의 양육권이 윤진에게 오고, 현도가 윤진과 재결합한다면 선정이 어떻게 나올까. 윤진, 재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알아야겠다. 선정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짓까지 했던 건지 꼭 알아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선정에게서 윤진과 재헌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 듣고 온 재헌은 결심을 굳히고 윤진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윤진은 예나를 위해 현도를 선택하겠다고 하는데.......
윤진과 현도의 재결합이 구체화되고 눈 뜨고 예나를 빼앗길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선정은 예나를 데리고 사라진다. 현도 집은 난리가 나고 윤진은 올 것이 왔다는 듯 선정이 갈 만한 곳을 수소문한다. 연락이 두절됐던 선정이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탈진한 채 발견된다. 그 사이 현도가 진행하던 친자확인 결과가 나오고 현도는 선정 앞에 두 장의 확인서를 흔든다. 현도와는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선정과 친자가 성립하는 예나!
101회-120회 (結)
선정은 두 눈을 꾹 감으며 이대로 죽게 해달라고 하는데, 선정을 진찰한 의사는 임신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런 순간에 현도 아이를 임신 중이라니 현도도 윤진도, 선정 자신도 크게 당황한다.
선정의 터무니없는 욕망 때문에 아이들이 뒤바뀌고 모두의 인생이 꼬여버린 걸 알게 된 현도, 윤진에게 예나는 물론 재헌이 키워준 진짜 우리 딸 장미까지 둘 다 우리가 키우자고 한다.
재헌은 목숨보다 아끼던 딸 장미가 친딸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지만 그렇다고 장미를 현도에게 내줄 수는 없다. 장미는 내 딸이라고. 그리고 윤진의 딸이라고 한다. 우리 딸 장미를 같이 키우자는 재헌.
윤진, 재헌에게 고맙다. 마음 같아선 앞뒤 재지 않고 재헌의 손을 잡고 싶지만 사방으로 단단히 얽힌 매듭을 풀 자신이 없다. 내 딸을 이렇게 잘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에게 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다.
현도 어머니는 윤진을 찾아와 어떻게든 재헌을 설득해 장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내 며느리와 내 손녀딸을 되찾겠다고. 그렇게 모진 말을 서슴지 않던 시어머니가 날더러 내 며느리란다. 재헌에게 장미가 어떤 딸인데, 그 아일 데리고 오란다. 이제 너희들은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하지만 재헌에게 그런 짓을 할 순 없다.
장미와 함께 눈썰매장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윤진. 내가 낳은 내 딸인데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없는 아이로 3년을 살게 했다. 이제라도 다 갚아주고 싶은 윤진.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 모두 다. 그런데 그 순간 윤진의 머리를 때리는 예나의 얼굴. 내가 장미를 선택한다면 나를 친엄마로 알고 있는 우리 예나는.......
추운 날 눈썰매를 타며 얼었던 볼을 녹이러 장미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는 세 사람. 그런데 화장실 다녀온다는 재헌은 그 길로 돌아오지 않는다. 윤진, 재헌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 장미는 아빠를 찾으며 울다 잠들고.
임신이라는 큰 떡을 손에 쥔 선정은 의기양양하게 돌아오지만 현도도 현도 부모님도 자기들을 기만하고 아이를 바꿔치기한 선정을 용서하지 않는다. 맘만 먹으면 구속을 시킬 수도 있다며 예나와 함께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하지만 선정은 예나가 현도 집에서 나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자기와 뱃속의 아이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현도와 예나 그리고 뱃속의 아이까지 우린 이제 깨질 수 없는 한 가족이 되었으니 이쯤에서 포기하라고.
뱃속의 아기를 딛고 새롭게 일어서는 선정. 그런데 당당하게 산부인과로 걸어 들어가 검사를 받던 중 아무래도 자궁 외 임신인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정밀 검사 후 자궁 외 임신이 확실해지자 의사를 붙들고 절대 안 된다며 오열하는 선정. 그러나 곧 수술 날짜가 잡히고 선정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수술대 위에 누워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니 아기를 낳던 포기하던 선정 맘대로 하라던 현도의 얼굴이 보인다. 엄마는 선정이 편이야, 하는 엄마의 얼굴도 보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기 얼굴이 어렴풋해지며 깊은 잠으로 떨어지는 선정.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나왔지만 갈 데가 없다. 그런데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 엄마가 위독하다고! 결국 선정과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선정의 엄마. 목메어 우는 선정. 윤진은 장례 마지막 절차까지 선정 곁을 지키고.
외로운 장례식장에서 내키지 않지만 상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현도. 영정 속 사진은 내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현도는 그 뜻을 받아드릴 수가 없다.
뱃속의 아기가 꿈틀대고 있을 때도 현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식물인간이지만 엄마의 생존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사람이 위로의 말 한 마디 없이 의례적인 태도로만 일관했다. 아기도 잃고 엄마도 잃은 날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자기를 받아주지도 않는 윤진에게만 목숨을 걸고 있다. 윤진, 윤진!!!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그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참이다. 아이도 바꿔치기한 내가 못할 짓은 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 선정은 차에 올라 윤진을 향해 돌진했고, 마지막 순간 눈을 감으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될 처지에, 부러진 다리는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철심을 박은 다리가 기절할 듯 아팠으나 다리보다 더 산산이 부서진 인생이 선정의 심장을 다 찢는 것 같았다. 이젠 정말 끝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병실에 윤진이 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병원으로 찾아간 윤진 앞에서 펑펑 우는 선정. 서울을 떠난다는 윤진, 선정에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꼭 살아내라고 한다. 예나의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한다. 나쁜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말라고. 꾸역꾸역 살라고.
땀 흘리며 재활 훈련하는 선정.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니 복도 끝에 현도와 예나가 서 있다. 선정에게 손을 내미는 예나.
엄마 같이 걷자, 내 손 잡고 같이 걷자, 고 한다.
양쪽에서 선정에게 손을 내미는 예나와 현도.
그 큰 눈 가득 눈물이 고이는 선정. 예나와 현도 손을 잡고 한 걸음 크게 내딛는다.
장미 곁으로 돌아온 재헌.
장미 없인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장미, 내 딸.......
윤진, <쿤스트 현 갤러리>를 나와 <해비타트> 춘천 지회로 가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집짓기 봉사에 나선다. 예나의 엄마로도 장미의 엄마로도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헌에게서 장미를 데려올 수도, 예나에게 이제 나는 너의 엄마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시간이 어서 흘렀으면 좋겠다. 일흔 넘은 할머니가 된다면 이 상처가 좀 옅어지게 될까.......
어느 날 봉사를 마치고 지회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백장미가 화병 가득 꽂혀 있다. 너무 예쁘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를 스치는 재헌과 장미.
뒤를 돌아보면 재헌이 장미와 함께 환하게 웃고 서 있다.
두 사람을 보며 더 활짝 웃는 윤진.
<끝>
첫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