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97년 1월15일,정유년(선조 30년) 왜의 재침(가등청정과 휘하군대)이 있은지 8일 후인 1월23일에 선조와 조정은
곧바로 화급의 어전회의를 연다.이때의 회의 내용을 선조실록에서 찾아보면,
*,선조: 한산도 장수(이순신)는 편안히 있으면서(왜침이 있는데도)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두수(판중추부사): 그는 왜적을 겁내는 것이 아니고,실제는 나가 싸우는 것을 꺼리는 것 입니다.
*,김응남(좌의정): 녹도만호 정운(鄭運)이 말하기를,이순신은 겁이 많은 사람이다.싸움도 어쩔수 없이 억지로 싸웠다.
지난 전투에서 이긴것도 실제는 정운이 독려해서 이루워 진것이이며,도체찰사 정언신은 늘 정운의
사람 됨됨이를 좋게 말했다.
*,선조: 이제 어떻게 이순신이 가등청정의 머리를 가져올 것인가를 기대 할것인가? 그는 전함만 거느리고 위세를 자랑하려
'강(江) 기슭을 돌아 다니고만' 있을 뿐이다(싸우지 않고).도대체 왜적의 토벌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선조가 한숨과 함께 긴 탄식을 하다)(어찌하면 좋을 꼬...등등의 탄식)
란 기사가 쓰여진다.이때 선조가 어전회의에서 의견을 교환한 인물들은 모두 서인(西人)들이었다.이들은 모두 이순신의
'직무유기와 명령불복종'을 언급했고 선조도 동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한편으로 동인들은 여전히 이순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다.그런데 곧 후원자들의 변호에도 한계가 왔다.
2, 1월23일 어전회의가 있은후 가등청정의 군대가 다시 도성으로 향한다는 급보를 받은 조정은 4일후인 1월27일에 다시
어전회의를 연다.이때 선조가 이순신의 지지,후원 세력들인 동인들과의 대화 내용을 선조실록에서 찾아보면,
*,유성룡(영의정): 거제로 진격하여 방어를 하면 영등(永登)과 김해에 있는 왜적들은 감히 겁을 낼것입니다.그런데 이순신은
한산도에서만 오랫동안 진을치고 별로 하는일이 없을뿐만 아니라, 이번의 왜적침공(정유재침)에도 나가
나가 싸우지 않고 있으니 어찌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선조: 이순신을 도저히 용서 할수가 없다.일개 무관이 조정(왕)을 업신 여기는 행위는 벌주지 않을수 없다.
*,이정형(병조판서): 이순신이 거제로 진격하여 왜적을 방어하는 것이 좋은 계책으로 압니다만,이순신이 방어하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듣지 않습니다.
란 회의 대화 기록이 있다. 같은 날 (1월 27일) 어전회의에서 선조가 서인 대신들과 대담한 내용들을 기록에서 찾아보면,
*,선조: 왜선이 200척이나 되어 참으로 많은 것은 맞다.
*,윤두수: 이순신은 조정의 명령을 어기고 받들지 않으며 싸움도 꺼려해 한산도만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때문에 이번의 큰
작전을 실시 할수 없었던 것에(이순신의 비협조) 대해서 누군들 통탄하지 않겟습니까?
*,정탁(지중추부사): 이순신은 정말 죄가 있습니다.....
로 선조 실록은 쓰고 있다.즉 왜의 정유재란 이후(1597년 1월 중순이후) 이순신은 3도수군통제사든 전라좌수사든 그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고(직무유기), 조정의 명(왕명)도 받들지 않았다고 동인과 서인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순신은 마침내 어전회의 한달후인 정유년 2월 26일 파면되어 동년 3월4일 한성의 의금부에 하옥되는 것이다.도저히
살아 돌아 갈수가 없는 대역 죄질의 이순신이었다.
3, 앞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이순신은 왜적에 의해 죽지 않았어도 전쟁이 끝나면 조선조정에 의해 대역죄로 다스려질 죽을
목숨이었다.단지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나름대로 천수를 누렸다고 보아도 된다.이순신의 오만방자 함과 불평불만의
핑게는 선조실록과 난중일기에 고스란히 실려있다.한국의 학계나 시중에 나와있는 어떤 서체의 난중일기든 그것을 쓴사람이
실제로 역사의 이순신이라면 그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용감한 사람도 아니였다.성격도 많이 모가 나있고 상비약을 늘 지니고
다닐 정도의 약골이자 병약자 였다.충무공이란 시호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이런 인물이 어떻게 조선의 영웅도 모자라
성웅으로 가공 포장될수 있었는지는 한국의 현대사에 물어보면 안다.다.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권력에 의한 무신의 영웅
이데오르기를 국가주의와 결합시킨 겻으로 보면된다.이런 것들을 보면 역시 권력이 좋기는 하다란 생각을 한다.그러나 이제는
이순신 때문에 희생양이자 타자화된 원균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그는 적군과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통제사 원균임
을 사실대로 해설해 놔야 한다.그래야 역사인물 서술의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다.
4, 자신의 후원 세력들로 부터도 왕명을 거역한 신하라는 낙인이 찍힌 이순신은 자력으로 살아 날 길은 없었다.그가 잠시의
감옥생활(한달정도)을 마치고 백의종군(도원수 권율 휘하에서)을 하다가 원균과 이억기,최호의 전사로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는 것(7월 23일)도 시대적 운명이며 전시라는 어쩔수 없는 조정의 선택이었던 것이다.이때 이순신 역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 가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그 심정으로 어짜피 전투능력을 상실한 패전군의 지휘 직무를 맡아 1년 4개
월을 버티다가 1598년(무술년) 11월 19일 스스로 전사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역사는 전한다.다시 말해 전시라는 상황 때문에
천수를 누린 이순신으로 봐도 된다.이순신은 원균이나 이억기,최호 처럼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기 보다는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봐도 된다.명군에 의해 쫓기고 죽은 풍신수길의 유언에 따라 철수하는 왜군들을 필요없이
추적하다 맥없이 죽었다는 것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또 당시 전선의 조선수군 지휘총사령관은 이순신이 아니였으며 명나라
장군들이었다.
5, 선조실록에서 선조가 말했듯이 이순신은 자기 휘하의 함선을 이끌고 '강과 강기슭을 다니면서 위세를 떨치고 싸우지는
않았다'고 하는 기사 에서도 알수 있듯이,조선의 수군들과 이순신은 한반도의 남해 바다의 섬사이에서 왜적들과 해전을
치룬것이 아닌 강과 하천을 오르 내리면서 강의 수군(水軍)으로 수전을 치룬 장군이라는 것을 새롭게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는 수전을 치루면서 등장하는 지명으로 등장하는 '명량,노량,견내량,칠천량' 등등으로 표기되는 양(梁)은 바다(海)의
섬사이에 형성되는 급류나 조류가 강한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큰 강하천에서 강폭이 좁아져 여울(급류지역)지는 협곡
수역을 말하는 것이다.바다에서의 섬과 섬사이 급류의 조류지역은 어디서든 해협(海峽)이라고 부른다.
6, 또 한가지 주지해야 할 사안은 조선의 3대왕인 태종때의 태종실록을 보면, 임진강에서 조선수군의 거북선들이 왜선들과
싸우는 것을 왕과 조정대신들과 직접 보았다(관전)는 기사를 감안해서 이순신의 거북선 최초 발명이나 최초의 등장을 거론
해야 할것이다.왜적이 침입할때 항상 선봉장과 선봉부대 역할을 담당했던 가등청정과 그부대는 수군이나 해군이 아닌 육지의
지상군의 장군이자 부대였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임진전쟁과 이순신,그리고 조선을 도운 명나라 군대 구성을 새롭게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세부적으로 많은 사안들이 있으나 그것들은 워낙 많은 문헌들과 원문들을 등장시켜야 하기에 이것으로 끝)
첫댓글 가히 놀라운 얘기군요! 참으로 잘 보았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습니다...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5부에 걸쳐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역사가 바로 서면 선조황제와 지도자들을 우스운 지도자로 여기게 만드는 목적으로 이순신이 영웅화되는 일들도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교과서 자체를 아예 없애고 원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수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 합니다.앞으로 희망이 있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원전을 볼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면 한자를 알아야 하는데 동북아시아 3국중에서 한자기피하는 나라는 한국이라는게 개탄스럽습니다... 글로벌시대라 영어도 중요하지만 자기나라의 참역사와 근본부터 먼저 배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 합니다.한자도 한자지만 암기교육으로 인한 '비판의식 소멸'이 큰 문젭니다.문학인들을 비롯해 상당수의 예술인들 조차 '자기 생각,관념,견해,주장'이 없으며 개성도 없습니다.오직 사이비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상선거사 공감 하는 바입니다
@상선거사 상선거사님의 말씀의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한국교육도 그렇겠지만 여기 미국도...그렇답니다..저도 학생이니까 알지만....생각,관념,견해,주장,개성 그런것이 모자랍니다....비판의식이 저녀없어요....그런대 이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런것들이 필요하죠....
배트남에서 한자 않읽어요...저도 배트남 친구가 많은대...개내들은 한자 하나도 못읽습니다...한자 읽는다고 하는 아이들은....자기 부모가 어느 정도 중국말을 집에서 하는 애들인대요....배트남애들 중에서 상당수가 중국 배트남 혼열아인대...사실상 개내들은 혼열아라기 보다....남중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왜냐면 상당수가 중국이 공산당으로 넘어 갔을때 광동성이나 복건성에서 대거 이민을 가거든요.....그리고 배트남에서 그렇게 한자에 신경 않쓴답니다...개내들은 QHU NHOM..이란 알파뱃으로 글을 쓰죠.....
@Corea the Great 그걸 베트남 말로 '쮸놈문자'라고 하는 것 같은데....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상선거사 예....쮸놈 맞습니다....저는 주위에 배트나계 중국인이나 배트남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대 배트남에서도 한자는 않읽죠...고전문학이나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는사람이라면 말입니다....어때튼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1부 부터 읽어야 할것같습니다....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를 조금 보긴봤는대 말이죠....전부보기가 엄두가 않납니다...
잘 보았습니다.
부풀려진 이순신 정도로 알았었는데...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1부는 어디에서 읽을수있나요? 생소한 아이기내요...
이글은 처음부터 1~5부에 걸쳐 실었습니다...
성산거사님!
이순신을 싫어하시는걸보니 일본분이시거나 원균장군님의 후손 아니면 선조대왕님의 후손이신게 확실하내요ㆍ성산배씨 배설의후손? 맞다
저는 세나라(일본,중국,한국)원전을 통해 역사를 개관적으로 볼려는 사람이지 누구 누구의 후손은 아닙니다.특히 일본인은 더욱 아니지요.이순신이나 풍신수길,원균,선조는 기록의 산물이지 실존성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창조적 역사 연구자가 가질 자세 입니다.
일본 장수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패했다는것은 사실이지요!
후세 일본 장수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순신장군에 비하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할정도라고 극찬을 합니다!
즉 적이 적국의 장수에게 그런말하는것이 사실인거지요!
이순신 장군은 세계최고의 장수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습니다.이순신 시대의 역사 일본은 지금의 열도가 아니고 지금의 중국의 남방에 있었다는 사실들을 원전 기록에서 확인 하시면 모든게 풀립니다.지금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퇴색한 만큼 아전인수 방식의 역사 연구방식도 힘을 받지 못합니다.
임진왜란은 역사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것 같습니다.대조선역사에서 왜구의 실체를 알고 싶습니다.이순신장군이 중요한게 아니라 왜란의 배경과 실제의 장소가 어디일까요?
현중국의 남경을 중심으로 그 동남부 지역의 해안가 상당이 왜의 거점지 였지요.왜란이란 말이 증명하듯 조선국내의 왜로 불리는 세력들이 소외 받음을 항의하기 위해 힘을 함쳐 조선의 중앙정부와 잘지내 보자고(도움을 받고자) 외세의 힘(포루투갈)을 빌려 일으킨 반란이지요.그래서 왜란 이지요.그렇지 않고 국가간 전쟁이었다면 왜란이 아니고 전쟁이 되어야 하겠지요.
한폭의 파노라마를 보듯 눈앞에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