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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2000년 3월3일 토요일. 퇴근을 하여 집에서 티브이를 보는데 왼쪽 입술의 감각이 약간 둔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다가 말겠지. 조금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지는 것 같지를 않아서 이상하다? 응 왜 그러지? 하면서 찬물로 문질러보기도 하고 손으로 맛사지를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이 서너 시간을 보내고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단지 내 약국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 하고 약을 지으려고 했더니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여 가까운 호계 4거리에 있는 한성병원으로 차를 몰고 갔더니 설명을 듣더니 의사 선생님이 약 한 알을 입술 밑에 넣어주면서 얼른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손수 차를 몰고 바로 평촌에서는 제일 크고 또 유일한 대학병원인 한림대 성심병원으로 가니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저물어 가는 저녁 시간. 서둘러 응급실로 가니 우선 채혈을 하고 몇 가지 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검사를 하고 기다려 밤 12시경에 병실로 올라가서 정식으로 입원하여 진료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5인실에 입원을 하였는데 칸막이도 없고 옆에 있는 환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다 보게 되며 의사가 진료를 하는 동안만 잠깐 커텐을 가리고 하는 상황이지만 바로 옆 침대에서 하는 모든 동작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때로는 보기 싫거나 민망한 경우도 있었고 환자의 상태를 다 지켜보니 마음이 불편한 것은 물론 별별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옛날 생각을 하고 2인실 입원을 원했지만 빈 방이 없다며 5인실에 입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좁은 공간, 많은 사람들 속에서 며칠간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옆에 있는 2인실이나 똑 같은 구조에 침대가 두 개냐 아니면 다섯 개냐가 문제지 다른 것이 전혀 없고 지내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어 다행이었다. 입원비는 절반도 안 되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11월12일(맑음) 전날 저녁을 먹은 후 금식을 하고 안식구는 간단하게 요기할 것을 준비하여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 빠른 12시가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을 하여 탈의실에서 옷을 모두 벗어 가방에 넣은 다음 수속을 밟고 기다리다가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1시경에 수술 준비실로 들어가서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준비실 침대에 누우니 간호사가 하루 종일 굶어 배고픈 것을 대비하여 링거를 꽂아 주었다. 그렇게 주사를 맞으며 기다리는데 앞에 수술하고 있는 환자가 예정보다 시간이 걸린다며 두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 3시가 넘어서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역시 준비하는 과정이 간단하지 않았다. 하반신 마취를 하는데 먼저 마취주사를 맞은 다음 마취상태를 점검하느라고 가슴과 배, 수술부위 근처를 수없이 꼬집으며 아픈 상태를 확인하고 또 알콜을 부드러운 천에 묻혀서 가슴과 배, 수술 부위 근처에 대면서 차가운 정도를 수십 번 확인을 하고 한편으로는 아랫도리를 홀랑 벗은 채 누웠는데 다리를 움직여 보라고 하고 항문에 힘을 줘보라고 하는데 전혀 움직이거나 힘들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안전하게 마취상태를 확인 한 다음 수면 상태로 조치를 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잠이 들어 기억은 못하지만 4시경에 수술을 시작하여 꼭 1시간40분이 걸려서 수술이 끝났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수술이 끝나니까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서 정신이 드니 말이다. 수술을 하고 나니 성기에는 호수가 꽂혀서 연신 피가 섞인 소변이 흘러나오고 다른 한 줄은 수액을 주입하여 방광에 고이는 피와 소변을 배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손목에는 링거 주사 줄이, 배에는 강력 테프를 붙혀 소변 뽑는 줄과 수액 주입하는 줄이 연결되어 내 몸에는 세 가닥의 하얀 호수가 연결되어 거동도 불편하고 잠깐 사이에 완전히 환자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 것이다. 6시가 다 되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입원실로 갔다.
7층 72병동 12호실. 5인실 창가 참대에 누워서 보니 바로 앞에 산이 보이고 파란 가을하늘이 보이는 것이 정경도 좋고 21년 전 기억과는 달리 침대마다 커텐이 쳐져서 1인실이나 2인실과 같은 분위기에 지내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첫 날은 몇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늦은 시간에 수술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7시경에 들어오는 저녁을 먹었다. 꼬박 24시간을 굶은 후에 먹는 밥이라 병원 밥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전날 저녁 6시30분경에 저녁을 먹은 후 하루 종일 물 한 모금도 먹지를 못했는데도 배가 고프지를 않았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안식구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24시간 같이 있어야 하며 간이침대에서 쉬면서 비닐봉지에 흘러드는 피가 묻어 나오는 소변을 비워야 하며 나의 힘들게 일어나고 눕는 것을 보살피며 저녁을 보내는데 갑자기 수술 부위에 피가 세어서 옷을 적시는 바람에 간호사에게 연락을 했더니 급히 와서 호수 점검을 하고 닦아 주며 간단하게 처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간호사들도 3D 업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아랫도리를 만지고 닦고 하는 것은 물론 교대근무를 하지만 24시간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계속 각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니 더욱 실감이 나는 것이다. 침대에서 몇 시간을 지내다 보니 힘들고 지루하지만 10시경에 저절로 잠이 들어서 병원에서의 첫 밤을 무사히 보냈다.
11월13일(토) 맑음. 수액을 계속 넣어주고 물을 많이 먹으라고 하여 간간이 물을 먹으며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으면 저절로 소변이 흘러나오고 일어날 필요도 없이 침대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며 하루 온 종일을 보내니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먹은 것이 없고 소변은 저절로 나오니 화장실 갈 일도 없는 것이 한편으로는 편한 것도 같았다. 다만 소변이 호수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세어 나와서 환자복과 시트를 버리게 되어 수시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는 데 그 수고는 고스란히 안식구의 몫이었다. 소변 통을 비우는 것과 환자복을 교체하는 일에 쓰레기통을 비우며 불편한 환자를 돌보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사람은 혼자 살 수가 없고 옆에 든든하게 지켜주는 아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절실히 깨달으며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간병하는 안식구가 제일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자다가도 소변 통을 비우는 것이다. 그러니 자면서도 신경을 써야 하고 수시로 살피지 않으면 가득 찰 수가 있으니 깊이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 제일 힘든 일이라 할 수 있다. 안식구는 잠을 잘 자는 성격에 혹시 깊이 잠들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나도 자다가 수시로 소변 주머니를 살펴보며 잠은 자는데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조금은 찝찝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한다는 것이 답답하고 13년간 쉬지 않고 하던 월요일 정기 산행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도 할 겸 우산회 회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병실 창 앞에 보이는 가을 하늘과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을 사진을 찍어서 우산회 카톡방에 올리며 길고 긴 하루를 보냈다.
10시경에 잠이 들어 단잠을 자다가 눈을 뜨고 소변 주머니를 보니 가득 차서 안식구를 깨워야 하는데 너무 달게 자고 있는 모습에 얼른 깨우지를 못하고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어서 다리를 건드려 깨우니 잠결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소변 주머니를 비우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며 역시 사람은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배우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며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11월14일(주일) 맑음. 그렇게 밤새 몇 번은 깨어야 하고 저절로 깨기도 하며 둘째 밤을 보냈다. 주일지만 교회는 갈 수가 없어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는데 티브이 체널이 몇 개 밖에 없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그냥 기도하고 장로 선출을 위한 두 번째 선거를 하는 날이라 궁금한 마음을 달래며 하루를 보내다. 오후에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임*순, 강*식, 추*오, 한*태가 당선되었다고 하는데 온갖 편법이 동원되어 듣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교회 출석을 안 했다고 투표권을 박탈하거나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시 투표권을 주지 않으며 징계을 받은 전과로 투표권을 주지 않아서 항의와 큰소리가 나고 공동의회에서 발언권을 얻어서 발언을 하려고 하는데 원하지 않는 사람의 발언이라 발언권을 제대로 주지를 않고 발언을 하려고 하니 마이크를 꺼버리는 만행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소식을 듣는 것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15(월) 맑음.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설렌다. 불과 4일밖에 안 됐는데 집에 간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건가? 이 나이에도 그러니 어린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잠깐 가져보았다. 그런데 새벽에 잠이 깨면서 소변이 마려워 참기가 힘들어서 화장실에 갔더니 소변이 마구 흐르는 것이다. 호수도 소용없다. 간호사에게 연락을 했더니 호수가 막힌 것 같다고 하며 물을 넣어서 소변을 빼내니 핏덩어리가 나오는 것이다. 간호사가 손을 보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 일이 없었으면 7시에 호수를 뽑을 예정이었는데 의사에게 보고해서 점검을 해보고 호수를 뽑을 거니까 7시에 뽑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여 조금 걱정이 되며 설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별 걱정을 하지 않고 기대를 하며 아침을 먹고 서서히 짐을 챙기며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의사가 오더니 상태를 살펴보고 소변 색깔도 괜찮다며 어떠냐고 하여 좋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예정대로 7시에 소변 호수를 뽑아도 되겠다고 하여 다시 안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에 젊은 의사가 와서 호수를 뽑고 간단하게 조치를 취하고 간 다음 다시 한참을 기다리니 간호사실로 오라고 하여 갔더니 계산 내역서를 보여주며 1천3백 몇 십만 원이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보니 1백3십4만 몇 천원인데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다. 수납창구로 가서 수납을 하고 퇴원 후에 지켜야 할 주의 사항을 간호사가 유인물을 주며 자세하게 알려 주어 먹을 약을 받고 주의 사항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 다음 짐을 모두 챙겨 1층으로 내려와서 밖으로 나오니 불과 4일간이지만 좁은 공간, 작은 침대 하나에 몸을 누이고 지내면서 답답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확 터지며 시원하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찬란한 햇살이 그리운 순간이다.
사람이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기본 인권이요 최대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정류장에 줄어 서서 기다리는 것 중에 제일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보니 밴 같이 생기고 좋아보여서 값이 비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다음 것을 타려고 했는데 안식구가 먼저 타는 바람에 따라서 탔더니 걱정도 팔자라고 전혀 일반 택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실내가 넓고 깨끗하며 기사의 매너도 좋아서 돌아오는 길은 기분이 아주 상쾌하였다.
청계산을 넘어오니 고속도로비도 절약하고 시간도 덜 걸리는 것 같고 요금도 갈 때보다 2,000원 정도 덜 나오는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하시는 것 같다며 자청하여 집 앞까지 와서 내려 주니 고맙기도 하고 갈 때와 마찬가지로 팁5,000원을 얹어 주니 아주 좋아하며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4일 만에 집에 오니 대문 앞에 신문이 쓸쓸하게 주인을 반겨주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먼 나라에나 갔다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며 한 낮에 응접실로 들어온 화창한 햇살이 한결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지며 복음자리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이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안식구가 서둘러 점심을 해서 먹고 한가롭게 오후를 보내는데 소변이 계속 세어서 마침 집에 있던 기저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소변이 세는데다가 아직은 붉은 색깔이 나니 앞으로 얼마나 더 갈는지 모르지만 물을 많이 먹어서 속에 있는 피를 씻어내고 나도 모르게 흐르는 소변도 마려울 때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 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추운 겨울이 되면 불편함을 더해지고 먼 여행을 할 때면 신경이 많이 쓰여서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것은 물론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야 하는 불편한 진실. 오랫동안 벼르고 준비하였던 수술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으니 우선 하나님께 감사하며 빨리 완쾌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