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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인사를 통해 스리랑카 여행기를 올린다고 했습니다만, 스리랑카 이후 일정이었던 인도네시아 이야기부터 먼저 올리게 됐네요. 스리랑카 이야기는 정리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6살박이 띠안의 '어떤 귀향'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식으로 자란 인도네시아 아이 띠안. 이제는 아빠의 고향인 인도네시아의 롬복섬에서 살고 있다. 마치 <나의 라임 오랜지 나무>의 제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이는 무척 사랑스럽다.
'아빠! 있잖아. 밤하늘엔 별이 너무 예쁘게 반짝거리잖아. 근데 아침이 되면 왜 안보이는지 알아?' 인도네시아 발리섬 동쪽 바로 옆에 있는 롬복섬의 해변. 이 곳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31살의 아버지 데니와 6살박이 아들 띠안이다. 인도네시아인임에 틀림없는데, 이들의 대화는 엉뚱하게도 한국어다. '어. 아빠는 왜그러는지 모르는데, 띠안은 알아?' 아이는 별 박사라도 된 듯 자신있게 대답한다. '아빠... 그건말야. 해가 뜨면 별은 바닷 속으로 들어간대. 그리고 별은 불가사리가 된대. 그래서 낮에는 별이 바다 속에 있기 때문에 안보이는거래'
6살박이 띠안과 31살 데니. 이 두 사람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지 이제 열흘 밖에 안됐다. 데니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23살이 되던 해, 8남매의 장남으로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노동자가 아닌 산업연수생의 위치는 그에겐 가혹했다. 30만원도 채 못 미치는 월급. 그리고 일상처럼 날아오는 욕설과 폭력. 결국 그는 공장을 이탈했고 불법체류자로 작은 공장을 다니며, 지난 11월 15일까지 한국에서 지냈다. 그렇게 불안한 신분으로 살던 데니는 어느 날 한국 여성을 만났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이가 바로 띠안이다. 그렇게 데니는 한국에서 9년의 세월을 보냈다.
데니는 한국에서 9년을 지냈지만 많은 돈은 벌지 못했다.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때 그가 지녔던 돈은 미화 1,800달러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띠안이가 한국에서 벌어온 돈 이상이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내가 이들 父子를 만난 것은 2000년 12월의 어느 날 안산의 원곡동에서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이른바 '국경없는 마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제작팀은 안산의 원곡동에서 석 달 동안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살며 촬영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띠안의 옆에는 엄마가 있었다. 띠안의 가정을 촬영하던 어느 날 띠안의 한국인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녀는 한국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 그녀로서도 짊어지기에 너무도 많은 고통들이 늘 가슴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정사의 사생활 문제도 있기에 그녀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기에 완성된 방송에선 띠안 엄마의 가출을 제외시켰다.
나는 방송이 나간 이후에도, 안산의 원곡동에서 '時失里-잃어버린 시간의 마을'이란 이름의 쪽방을 마련해 놓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2년 동안 살았다. 그리고 띠안은 나의 특별한 조카가 됐다.
띠안의 아버지는 원곡동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술만 먹었다 하면 꼭 말썽을 일으키곤 해서 늘 골치덩이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밉지 않았다. '아빠는 또라이야. 맨날 술만 마셔.' 띠안은 자신의 아빠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빠가 사고 치는 날이면 방안에서 꼼짝도 안한 채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사고뭉치고... 그러다 보니 아이는 늘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랐다. 갓난아기일 때도 아이의 엄마는 가출을 했었다. 그래서 이웃에 있던 파키스탄 부부가 도맡아서 아이를 키웠다. 이후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를 보살폈다. 때론 안산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보호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인도네시아 말을 단 한마디도 못한다. 아빠와 아이의 의사소통 언어는 늘 한국어였다.
그런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아이였지만, 귀여움이 넘쳐 원곡동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2001년 9월의 어느 날이다. 당시 나는 인도에서 진행하던 촬영을 실패하고 난 뒤 안산의 시실리로 돌아와 단 한번의 여의도 외출만 했을 뿐, 쪽방에 칩거하며 집밖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친 끝에 비디오를 빌려 볼 작정으로 거리에 나갔다. 'PD삼촌!' 당시 네 살이었던 띠안을 거리에서 만났다. 원곡동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나를 부를 때 통상 'PD형'이라고 부른다. 그런 연유로 띠안도 나를 'PD삼촌'이라고 부른다. '삼촌 내 생일인 것 몰랐어? 내 생일인데 삼촌 없더라.' 9월 17일이 띠안의 생일이라고 수첩에 적어놨는데, 깜박한 것이다. '에고... 삼촌이 미안해서 어쩌지.. 띠안의 생일도 몰랐으니... 삼촌이 생일선물 사줄까? 자전거?' 그 해 봄, 자전거를 타던 동네 한국 아이들을 부러워하던 띠안의 모습이 순간 기억났기에 자전거를 띠안에게 생일 선물로 제안한 것이다. '응... 자전거는 이미 두대나 있어요. 큰것 하나 작은 것 하나...' '아빠가 사준거야?' '아니 삼촌들이...' 다른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사준 모양이었다.
그러던 참에 띠안의 아빠 데니가 보였다. '데니야.. 띠안 생일이었다는데, 내가 그만 깜박했다. 아이한테 뭘 선물하면 좋을까?' '글쎄요...' 띠안의 아빠는 자신의 아이에게 적합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형... 띠안이 옷 사줘요..마땅한 잠바가 없거든요.' '지난 봄에 내가 잠바하나 사줬잖아.. 다른 것 없어?' '그건 그거고.. 잠바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내 신발도 좀 사줘요.' 이미 받는 것에 익숙해진 데니는 너무도 태연하게 자신의 선물을 내게 요구했다. '글쎄.. 그건 안되겠는데... 생일은 띠안이지.. 넌 아니잖아...' '아니죠.. 난 띠안이 아빠잖아요...' 데니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에게 선물을 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지난 네팔 촬영때 신었던 등산화 생각이 났다. '그냥 내신발 신어라...' 데니는 내가 신던 등산화를 준다는 말에 약간 볼맨 불평을 했지만 결국 그는 내가 내 등산화를 선물로 받았다.
시내에 나가서 띠안의 옷을 사들고 그들의 쪽방에 갔지만, 아이는 어딘가로 놀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데니에게 툭 던지며... '띠안이 입혀라.. 나중에 다시오마..' 그날 저녁 띠안은 내가 선물로 준 옷을 입고선 쪽방 시실리에 놀러왔다.
'PD삼촌!'이라고 부르며 내 품에서 재롱을 떠는 아이... 난 그 아이에게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제제를 떠올리곤 했다. 아빠가 인도네시아 사람이지만 인도네시아 말은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아이. 어느덧 그 아이의 정체감은 한국인으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띠안은 무국적자였다. 인도네시아 한국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았기에 그렇다. 띠안은 방에 들어서자 마자 내 볼에 뽀뽀를 했다. '삼촌 사랑해..' 안산의 내 이웃들이 슬픈 군상으로 내게 각인되어지던 때였다.
적도 바로 아래 열대우림지역인 인도네시아의 롬복섬은 하루에 한 차례씩 비가 온다. 이른바 스콜이다. 스콜이 있기에 적도의 태양으로 달구어진 대지는 시원하게 식혀진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비가 오면 모두 거리로 나가 비를 맞으면 논다. 그러나 띠안으로선 한국에서 비를 맞으면 안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이제 띠안은 비가 오면 아이들과 함게 거리로 나간다. 이제 비를 맞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덧 아이는 인도네시아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2003년 11월 5일 띠안은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돌아오는 길, 여의도에서 아이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인도네시아로 가요. 랄랄라... 비행기타고 가요. 삼촌도 올거지요? 비행기 타고 와요. 띠안은 인도네시아로 가요. 랄랄라. 삼촌은 인도네시이로 띠안을 만나러 온답니다. 약속해요. 약속해요.' 즉석에서 붙인 노랫말과 선율. 비록 노래는 엉망이었지만, 그 또래 아이들의 신명나는 노래였다.
아내와 나는 지난 11월 25일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거쳐 롬복섬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정착하게될 띠안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자라난 아이였기에 인도네시아 말은 단 한마디도 못한다.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할 띠안을 걱정하면서 간 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노파심에 불과했다. 아이는 벌써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어울렸고 짧게나마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며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로 삭막한 도시환경에서 자랐던 한국의 환경과는 달리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고 있었다.
'삼촌!' 띠안은 나를 발견하자 마자 와락 품에 안겼다. 그러더니 '어 누나도 왔네.' 띠안이 말하는 누나란 내 아내다. 사실 촬영을 위해 간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촬영을 접고 4일 동안 아이와 함께 놀았다. 남은 이틀동안에 필요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될 아내는 띠안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그만큼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얼마나 두 사람이 잘 어울렸던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띠안 엄마가 한국에서 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아내와 내가 인도네시아를 떠나던 날, 띠안은 자고 있었다. 가족들은 깨우려고 했지만, 만류했다. 자칫하면 띠안과 우리는 서로 붙잡고 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1년에 한번정도는 띠안을 만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갈 계획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1년에 한번씩 방학을 이용해 한국으로 초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띠안의 이야기는 <어떤 귀향>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2004년 1월 21일(설날) KBS 1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에는 띠안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때 스리랑카의 스포츠 스타였지만 지금은 안산의 쪽방에서 살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야무나 여인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된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테레사 수녀님이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 안산 분원 바로 옆에 살고 있다. '사랑의 선교회'는 지난 9월에 방송이 나갔던 <캘커타에서 만난 천사들>에서 인도 본원이 소개된바 있다. 야무나의 이야기는 지난 8월 10일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내년 1월 초, 모든 촬영이 마쳐진다. 스리랑카 여인 야무나 그리고 인도네시아 아이 띠안.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절대로 한국말을 잊지 않게끔 가르칠 겁니다. 그리고 대학 만큼은 반드시 한국으로 보낼 거고요. 아이의 절반은 어찌됐든 한국인이니까요. 그리고 나처럼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대접받는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차별받지 않게끔 키울겁니다.'
띠안의 아버지 데니는 한국에 대해 할말이 많은 사람이다. 사실 데니는 앞서 언급했듯이 안산의 원곡동에서 문제아였다. 술에 취하면 거리에서 행패를 부리곤 했다. 그만큼 응어리가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데니를 달래기 위해 나는 거리로 뛰어나가곤 했다. 한번은 술에 취한 데니를 말리다 못해 방법이 없어 심하게 두들겨 팬 적도 있다. 데니가 한국에 대해 지닌 응어리를 여기서 다 설명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니는 하루에 한 시간씩 띠안에게 동화책을 읽힌다.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나와 아내 그리고 띠안
'PD 삼촌, 왜 내가 잘 때 갔어? 난 슬프단 말야. 삼촌한테 뽀뽀도 못했는데..' 며칠 전 국제 전화를 통해서 6살 박이 띠안이 내게 한말이다. 우리가 떠나는 것을 못본 것에 대한 원망을 전화로 띠안은 늘어놨다. '근데 여기선 말야. 별이 너무 잘보여. 그래서 내 별도 하나 만들었어'
별이 잘보이는 곳에서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는 아이. 어느덧 우리는 그 아이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3년 12월 13일 대구 시실리에서
첫댓글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는 아이, 띠안의 이야기가 가슴 뭉쿨해지게 하는군요.
가슴이 찡하게 울리며 이 아침 좋은 글을 읽을수 있어서 행복 함니다.
띠안이 올곧고 바르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똥방님 좋은글 가슴뭉클함을 느끼며 잘읽었습니다. 대구 사시네요~~주소가 대구^^ 저도 앞산밑에 삽니덩```^^
저는 정확히 대명여중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대구에 산지는 이제 일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똠방님 방갑습니다. 저는 남대구등기소 맞은편 바로 길건너에 살고 있습니다. ^^ 근데 대구 시실리? 어떤 사회단체 이름인가요? 좋은하루 되세요^^
똠방님 이른 새벽에 눈이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글과 사진을 읽으려니 온몸에 소름이 느껴옵니다. 왠지 그분들이 한국에 계실떼 더 잘 대해줄걸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오늘은 행복이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