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와 벙어리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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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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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버드를 기다린다. 앞뜰의 인동초 꽃이 몸을 열었기 때문이다. 둘은 그런 찰떡궁합이 따로 없다. 인동초 꽃은
꽃대롱의 열린 크기나 깊이가 허밍버드의 부리 사이즈에 꼭 맞는 맞춤형이다. 꿀샘은 부리 끝이 닿을만한 곳에 있다. 벌이나
나비로선 그 깊숙한 꿀샘을 건드릴 수 없다. 관찰이 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동초는 영어로
하니서클(Honeysuckle). 꿀을 먹인다는 뜻이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인동초 넝쿨이 울타리를 이룬 집이 있다. 뿜어내는
향기가 발길을 붙들 정도니 꿀의 양이 약소하지 않다는 얘기다. 꿀이 많다는 건 하니서클이 곧 '사랑의 꽃'이라는 말도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니(Honey)'라고 부르는 이곳 관습을 유추해 봐도 그렇다.
인동초(忍冬草)는 굳이
'겨울'과는 무관한 꽃이다.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늦게까지 피어 중국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작년 앞뜰의 인동초도
초겨울까지 꽃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서양에선 '사랑'에 방점이 찍혔다. 하니서클은 중세의 유명한 연가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중세의 캄캄한 암흑시대에 사랑의 불꽃이 보이기 시작한 건 12세기부터.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다 보니 미디어는 악기를 퉁기며
연가를 부르는 음유시인들이 맡았다. 주제는 연애였다. 흔히 갑옷 입고 장창을 든 기사와 공주 아니면 귀부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음유시인들은 현실이 아닌 공상의 세계로 순진한 청중들을 끌고 갔고 주인공들의 짜릿한 '사랑'과 '낭만'을 대리체험케
했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마리(Marie)라는 음유시인은 '하니서클'이라는 제목의 연가를 지었다. 소재는
영국의 한 지방 전설을 따온 것.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영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트리스탄은 영국의
기사, 이졸데는 아일랜드의 공주였고, 두 나라는 원수지간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여러 버전이 있다. 19세기 후반
바그너가 오페라로 작곡했고 2006년 케빈 레이놀즈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트리스탄은
'원탁의 기사'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하니 얘긴즉슨 까마득한 6세기경의 전설로 역류한다. 그땐 아일랜드가 더 셌다. 영국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아일랜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영국의 한 부족 왕 마크는 반전을 위한 통합을 도모했다. 트리스탄은 마크 왕
부하가 전사하며 남긴 아들. 그는 자기를 양육한 마크를 위해 전투에 나섰다가 치명상을 입고 당시 영국의 풍속대로
장선(葬船·Funeral Boat)에 실려 바다에 띄워진다. 그걸 발견한 게 아일랜드 해변에 나와 있던 이졸데 공주. 그녀는
열심히 간호하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비극의 운명. 트리스탄은 마크 왕을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목숨을
잃고 이졸데는 정처 없이 떠난다.
8월18일 모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1984년 그가 미국에 망명
중이었을 땐 여행의 자유가 제한된 바람에 캐나다를 방문할 수 없었다. 지지자들은 여러 대의 스쿨버스를 대절해서 버펄로의 어느
대학 강당에서 열렸던 강연회에 참석했다. 그의 인고는 끝이 없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얘기들을 새삼 되풀이할 필요야
없다. 한국 현대사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인동초'에 비유한다. 그 '인동초'는 혹독한 겨울의 시련을 견뎌내고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꽃망울을 맺게 했다. 현재 반대세력은 그 꽃망울을 짓뭉개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인동초'가 아니라 '하니서클'의 관점에서도 가능하다. 그와 이희호 여사와의 사랑은 범상을 뛰어넘는다. 그녀가
1962년 결혼하려 했을 때 아는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 그는 정치활동을 제한받은 무직자. 어머니와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는
셋방살이의 가장. 어린 아들이 둘이나 있는 홀아비에게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여성이 시집간다는 건 상식 밖의 일.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으로 가겠다는 게 그녀의 결심이었다. 김대중님은 감옥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봉함엽서 한 장에 1만8천 자까지
12시간 이상 걸려 여사에게 사랑의 편지를 썼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처럼 치열함이 느껴진다. 임종을 앞두고
여사께서 벙어리장갑을 짜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병상에 있는 남편의 찬 손을 데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오랜 옥바라지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 땅속도 이승의 감옥처럼 손이 시릴까 봐 염려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애오라지 사랑은 나이와 시대에
상관없이 '하니서클'의 연가를 다시 들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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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 2009년 0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