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運勢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푹푹 찌는 여름도 실상은 말복이 지나 입추가 왔는데도 무슨 영문인지 폭염은 계속되어 영육이 혼미하다. 맥을 놓고 있다가 매달 만나 밥먹고 조용한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고 오는 네명의 작가들이 모이는 모임이 며칠 전부터 최고 어르신께서 손짓해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ㅡ여보! 오늘의 운세 잘 보고 나가요! 인내가 더 필요한 날이래요.
생뚱맞아 돌아본다. 지방신문 K 조간에 나온 오늘의 운세 얘기를 비친다. 요즘 아내는 부쩍 철학박사 금선생의 17면에 제법 몸집이 커진 운세를 신봉한다. 아내 뿐만 아니다. 나 까지도, 아니 객지에 나간 두 딸까지 어느새 초현대사회에 “전 가족의 운세화”라니 웬일인가? 태어나서 단 한 번 사주팔자를 본 일이 없다고 늘 호언장담하던 내가 금선생을 언제부터 신봉하게 되었을까?
2018년이니 벌써 6년 전이다. 본의 아니게 제 14대 강원수필 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제 2의 인생에 불을 뿜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봄철 문학 연수 때였다. 대룡산 넘어 폐교를 서예실로 개조해 새로 발돋움하는 백암님께 고전강의를 들었다. 많은 회원들과 느랏재 고개를 넘어 강의를 받으러 가는 감회가 엊그제 처럼 설레인다. 편을 나누어 투호 던지기도 하고, 두메 산골 시골밥집에서 산채 비빔과 뽀글장으로 점심을 먹으며 오염되지 않은 청산을 노래했다.
식사 후 계획에도 없던 계곡으로 몰려가 발을 담그고 웃으며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상춘의 기를 흠뻑 받을 무렵, 좁은 계곡에 이끼 낀 칼돌을 밟아 아뿔싸! 그만 낙상사고를 당할 줄이야! 절룩거리며 아파트 문을 여니 아내가 크게 놀란다.
ㅡ오늘 운세 봤어요?
아내는 침대 위에 덩그러니 있던 신문을 뒤적이더니
-49년 소띠 좀 봐요. 낙상 조심! 있네-
실은 조반 먹고 집을 나갈 때 얼핏 보니 낙상이라 거리가 먼 얘기로 차치했는데 못된 것을 맞춘 셈이다.
그 후로 우리 집은 철학박사 금회장이 제공하는 이달의 운세가 하루의 이정표가 되다시피 했다. 객지에 있는 두 딸도 어느새 아침 운세를 기다린다.
네 명의 수필가들 모임이다. 이름도 회장도 없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밥을 먹는다. 칼국수, 산채 비빔, 닭볶음탕, 감자전 막국수, 뽀글장, 추어탕 그리고 끝나고 요즘 산불처럼 번지는 추세인 찻집에 들러 차 한잔에 수다 떨기는 그야말로 활기찬 일락一樂이 아닐 수 없다.
저렴한 화장품을 가방에 넣어주고, 어느 회원은 떡을, 또 누구는 옥상에서 손수 키운 방울토마토를 바리바리 내놓는다. 추어탕에서 나올 때 어느 회원은 튀긴 추어를 봉송으로 싸 주기도 했다.
이날도 훅 떠남이 아쉬워 철도 문학상 대상 작품“주안역 이야기”를 인쇄해 제 2 장소로 향했다. 월든이란 카페는 초야에 묻혀있다가 첫사랑 그녀처럼 수줍어 반긴다. 직접 낭송을 했다. 제법 분량도 단편처럼 A4 네 장 분량이다. 지은이가 주안역에서 펼쳐지는 인연과 폭풍 같은 삶에 이야기다. 지금 간이역이 된 주안역을 찾아 암에 걸려 명퇴한 자기 처지를 비교하며 추억을 찾아 생을 돌아보는 여성적인 작품이다.
대상 작품을 놓고 우리는 기탄없이 토론에 임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 작품 주안역 이야기!! 그때 후배 작가가 느낌을 토로한다. 소나기 퍼붓던 일요일, 일직을 할 때 비를 피해 찾아온 인천 청년은 결혼하고 왜 사우디로 갔을까? 직업이 변변하지 못해 그저 근로자로 간 게 분명하고, 돌아와 도박에 빠져 헤매던 모습이 혼자만의 잘못이었을까 하고 생뚱맞게 펼쳐 간다.
중학교 선생님을 했기에 부인이 더 직업이 월등하다 보니 남편에 오죽하면 도박에 빠져 결국은 이혼하고 세 아이의 여인과 새살림을 했겠냐고 아뿔싸! 생뚱맞게 주인공을 폄훼貶毁 하는 게 아닌가?
지나온 삶의 꼬투리가 된 주안역에서 펼쳐지는 인연이 갑자기 부정적으로 전개된다. 평지풍파를 당하면서도 딸을 외무고시에 합격시키고, 아들도 의료연구사로 둥지를 틀고 손주까지 봐 할머니란 닉네임을 달아주어 암이 기생하면서도 힘을 얻은 주인공에게 이렇게 마구 흔들어 대며 폄훼해도 되는 걸까?
갑자기 궁지에 몰린 주인공에 죄송해 견딜 수 없었다. 수면 아래 무의식 세계까지 파헤치는 심리적인 토론이 자행됨이 과연 바람직할까? 살아온 궤적만큼 감동 역시 다르겠지, 이공계 특유의 결기 서린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거다.
원하던 토론은 무엇인가? 독서를 통한 소통과 공감대 형성의 장을 제공함이다. 모두는 타인의 의견을 공감하는 비언어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다만 주안역이란 독서토론을 제공한 내 입장은 발언자에 대한 섣부른 가치 판단이다.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배제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견제구가 목 밑까지 차올랐다.
물론 상상은 자유이다. 작품을 읽고 긍정적으로 지은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동화되어 나가며 지나온 경험담도 가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주인공일 때 저런 삶이 가능할까? 혼자 어렵게 살아온 박토에서도 자식 둘을 성공시킨 지은이. 마음속에서부터 박수를 보내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해저물녘에 돌아온 내게 아내는 확인한다.
ㅡ오늘 인내 많이 했나요?
절기는 살아있다. 해 떨어지자 뻔뻔했던 폭염도 수그러드는 저녁, 한 통의 메일이 먼저 당도해 배시시 웃고 있다.
ㅡ오늘 점심도 맛있게 잘 먹고 커피도 감사드립니다. 멋진 수필 입상 작품 소개와 낭송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동글지 못한 저의 돌발 발언에도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선배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