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제 때 바로잡지 못하면
“조정의 정사에 득실과 언의(言議)의 시비(是非)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면할 수 없는 것인데, 만약 다름을 싫어하고 같음을 좋아하며 잘못을 감추고 단점을 보호하면서 ‘내가 보합(保合)할 수 있다’거나 ‘내가 진정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면 신은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안영(晏嬰)의 화갱(和羹)은 반드시 다섯 가지 맛의 조화가 필요하고, 위(衛)나라의 국사(國事)가 날로 잘못되어진 것은 오직 그 잘못을 감히 바로잡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으니, 지금 비록 격양하고 징계하여 한 시대의 정치를 새롭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또한 마땅히 후진을 채찍질하고 심한 것을 제거해야만 거의 뒤섞인 상태로 내버려두는 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근래 직언하는 말은 들리지 않고 아첨하여 붙좇는 습속은 점점 고질이 되어 곡직(曲直)이 분명하지 않고 흑백(黑白)이 서로 뒤섞여 사람들이 모두 눈앞의 안일만을 꾀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고 구차하게 얻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니, 이것이 신하에게는 이익이 될지언정 국가에는 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한포재 이건명 선생, 이조참판 사직 두 번째 상소에서)
[주-1] 안영(晏嬰)의 …… 필요하고 :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동(同)과 화(和)의 차이를 묻자, 안영이 화는 국을 끓이는 것과 같으니, 양념을 하여 간을 맞춘 뒤 맛을 알맞게 조절해야[화갱(和羹)] 군자(君子)가 이 국을 먹고서 그 마음을 화평하게 한다고 하면서, 군신(君臣) 사이도 이와 같이 임금이 가(可)하거나 불가(不可)하다고 해도 신하는 불가하거나 가한 점을 찾아서 임금에게 아뢰어야 정치가 화평하고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어서 백성들도 쟁탈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20年》
[주-2] 위(衛)나라의 …… 비롯되었으니 : 전국 시대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임금님의 국사(國事)는 장차 날로 그릇될 것입니다. 임금이 말을 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경(卿)과 대부(大夫)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경과 대부가 말을 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사(士)와 서인(庶人)이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卷1 周紀1 安王25年》
[주-3] 후진을 채찍질하고 : 원문의 편후(鞭後)는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말로, 위공(威公)이 전개지(田開之)에게 양생술(養生術)에 대해 묻자, 전개지가 “생(生)을 잘 기르는 것은 양을 기르는 것과 같아서 뒤처진 양을 보고 채찍질을 한다.”라고 하였다. 후진을 채찍질하거나 격려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조참판 사직 두 번째 상소[再疏〕
······················································· 한포재 이건명 선생
삼가 아룁니다. 신의 오늘날 처지는 곤궁하고 위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드러내면 따진다고 의심하고 병의 상태를 아뢰면 조금도 가엾게 여겨 헤아려 주시지 않아, 소단(疏單)을 올린 지 거의 20일이 지났는데도 승정원(承政院)의 신하들이 전부 물리치기만 하니, 다급하게 호소하는 소리가 통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사를 열라는 패초가 번번이 다시 의례적으로 내려왔으니, 신은 이미 담장을 넘어 몰래 달아나 스스로 편안할 수 없고, 또 일찍 형벌을 받아 쇠퇴한 기강을 진작시킬 수도 없어서 하루 이틀 사이에 죄만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어찌 성스러운 조정에서 염치와 의리를 장려하고 국가의 체모를 엄히 하는 뜻이겠습니까. 신이 참으로 황송하여 죽을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말을 가지고 서로 질정(質正)하는 것은 길 가는 사람도 부끄러워합니다. 신이 만약 다시 의망(擬望)하던 날에 이미 한 차례 의망 정지를 허락해 놓고, 곧바로 또다시 통망(通望)하던 때에 상소하여 논했다면, 신이 전후로 어긋날 뿐만이 아니라 정석(政席)에서 편지로 의견을 물은 일이 어째서 일어났겠습니까. 오직 의망을 내놓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신이 비로소 경시를 당했다고 스스로 논핵한 것인데, 뜻하지 않게 이미 허락했다고 신을 논박했습니다.
아, 당론(黨論)이라고 지목하는 것이 사람을 제어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어 예부터 배척하는 논의에 반드시 이것을 가지고 죄안으로 삼으니, 신은 많은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득 개탄스런 바가 있습니다. 지금 성상(聖上)께서 칙유하시는 내용과 조정 신료들이 권면하는 내용이 당론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붕비(朋比)를 타파하여 공도(公道)를 넓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물의(物議)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차례대로 등용하는 것을 제일의 진정시키는 계책으로 삼음으로써 인심이 복종하지 않고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게 되어 그런 것이 어찌 아니겠습니까.
조정의 정사에 득실과 언의(言議)의 시비(是非)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면할 수 없는 것인데, 만약 다름을 싫어하고 같음을 좋아하며 잘못을 감추고 단점을 보호하면서 ‘내가 보합(保合)할 수 있다’거나 ‘내가 진정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면 신은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안영(晏嬰)의 화갱(和羹)은 반드시 다섯 가지 맛의 조화가 필요하고, 위(衛)나라의 국사(國事)가 날로 잘못되어진 것은 오직 그 잘못을 감히 바로잡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으니, 지금 비록 격양하고 징계하여 한 시대의 정치를 새롭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또한 마땅히 후진을 채찍질하고 심한 것을 제거해야만 거의 뒤섞인 상태로 내버려두는 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근래 직언하는 말은 들리지 않고 아첨하여 붙좇는 습속은 점점 고질이 되어 곡직(曲直)이 분명하지 않고 흑백(黑白)이 서로 뒤섞여 사람들이 모두 눈앞의 안일만을 꾀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고 구차하게 얻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니, 이것이 신하에게는 이익이 될지언정 국가에는 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말과 행동이 이미 동료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여 수모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시사(時事)에 대해 크게 웃으면서 조정의 반열에서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이에 여러 번 패초가 내린 상황에서 감히 엎드려 있을 수 없어 궐 밖에 와서 간략하게 불안한 마음을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운 성상께서 굽어살펴 속히 신을 내치고 이어 신의 죄를 다스려 당론(黨論)을 일삼는 신하들을 경계하신다면, 공사(公私) 간에 크나큰 다행일 것입니다.
[주-D001] 안영(晏嬰)의 …… 필요하고 :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동(同)과 화(和)의 차이를 묻자, 안영이 화는 국을 끓이는 것과 같으니, 양념을 하여 간을 맞춘 뒤 맛을 알맞게 조절해야[和羹] 군자(君子)가 이 국을 먹고서 그 마음을 화평하게 한다고 하면서, 군신(君臣) 사이도 이와 같이 임금이 가(可)하거나 불가(不可)하다고 해도 신하는 불가하거나 가한 점을 찾아서 임금에게 아뢰어야 정치가 화평하고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어서 백성들도 쟁탈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20年》
[주-D002] 위(衛)나라의 …… 비롯되었으니 :
전국 시대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임금님의 국사(國事)는 장차 날로 그릇될 것입니다. 임금이 말을 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경(卿)과 대부(大夫)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경과 대부가 말을 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사(士)와 서인(庶人)이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卷1 周紀1 安王25年》
[주-D003] 후진을 채찍질하고 :
원문의 편후(鞭後)는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말로, 위공(威公)이 전개지(田開之)에게 양생술(養生術)에 대해 묻자, 전개지가 “생(生)을 잘 기르는 것은 양을 기르는 것과 같아서 뒤처진 양을 보고 채찍질을 한다.”라고 하였다. 후진을 채찍질하거나 격려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5권 / 소차(疏箚)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서종태 채현경 이주형 전형윤 강지혜 (공역) | 2016
辭吏曹參判疏[再疏]
伏以臣之今日情地。可謂窮且蹙矣。暴其事實則疑以較挈。陳其病狀則不少矜諒。疏單之呈。殆涉兩旬。而喉舌之臣。一倂退却。疾聲之呼。無由登徹。而開政之牌。輒復例降。臣旣不能循墻逃遁。以之自靖。又不能早伏刑章。以振頹綱。一日二日。罪戾增積。此豈聖朝所以礪廉義而嚴國體之意哉。臣誠惶隕。覔死無地。夫言語相質。路人亦恥。臣若旣許以一番停擬於改望之日。旋又疏論於復通之時。則不但臣前後錯戾。政席問簡。緣何而發哉。唯其望出而傳簡。故臣 a177_412a方以見輕自劾。而不意以旣許持臣也。噫。黨論之目。爲一制人之柄。從古排擯之論。必以此爲案。臣不欲多辨。而抑有所慨然者。方今聖上之所敕諭。朝臣之所陳勉。莫不以黨論爲憂。而未聞有打破朋比。恢張公道者。豈惟以未厭物議。次第甄收。爲第一鎭定之策。以致人心不服。世道日下而然哉。夫朝政之得失。言議之是非。有國之所不免。而苟或惡異而喜同。匿非而護短。如是而曰我能保合。我能鎭定云爾。則臣未知其可也。晏嬰之和羹。必須五味之相濟。而衛事之日。非職由於莫敢矯非。則今雖不能激揚懲癉。 a177_412b以新一代之治。亦宜鞭後去甚。庶不至於一任混淆。而竊瞷近日謇諤之言罔聞。阿比之習漸痼。枉直不分。白黑相糅。人皆以偸安爲計。苟得爲幸。此恐爲臣下之利。而非國家之福也。然臣之言行。旣未見信於同朝。而受侮至此。則何可解頤於時事。抗顔於周行哉。玆於屢牌之下。不敢偃伏。來詣闕外。略暴危悃。伏乞聖慈俯賜諒察。亟斥臣身。仍治臣罪。以爲人臣黨論者之戒。公私大幸。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5권 / 소차(疏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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