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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길면 길다고 할 수 있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현지에서의 관광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여행 중에서 이례적으로 길게 나흘간이나 이용했던 식당 입구의 새 모양의 조형물도 오늘 따라 새롭게 보였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 27탑 광장은 비가 내리기 전이나 똑같다. 신호가 바뀌자 우비를 걸친 오토바이들이 차량보다 먼저 움직인다. 중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질서 속의 질서랄까... 중국의 인민들은 우리가 오기 전에도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삶은 계속 될 것이다. 출발이 특별히 더 이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제보다 출발이 늦어진데다가 체크아웃 하느라 시간이 더 늦어졌지만 비가 내려 어둑해진 날씨 때문에 바깥의 호텔 간판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마지막 모습이다. 오늘의 첫 코스인 황하박물관. 휴관일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공산당 간부들이 이곳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에게 공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것은 정말 세계적으로 중국에서만 가능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에 중국에 갔을 때는 공산당 간부가 휴가 간다고 고속도로의 화물차를 모조리 나가게 하더니... 비내리는 차창으로 차창 관광. 이곳에는 거의 사진 자료밖에 없고 공산당이 황하를 다스린 치적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다음 일정은 황하유람선 타기였다. 배는 20명쯤 탈 수 있는 수륙양용정이었는데 007영화 <어나더데이Die anotherday>에 나왔던 것 같은 호버 크래프트였다. 황하의 모래톱에 내려주고 5분 정도의 자유시간을 줬는데 비가 와서 그 짧은 시간이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보이는 다리는 황하도화욕대교라고 하는데 길이가 장장 7km라고 한다. 여기서 잠시 헤어졌던 두 팀이 만나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얘기도 하고...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배에 오른 일행들. 우리가 출발은 늦었지만 돌아가는 것은 더 빨랐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먼저 출발한 일행들 그리고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상이 있었다. 바로 염황이제상이다. 배를 타는 곳의 철로 위에서 본 염황이제상. 높이가 좌대까지 치면 102m인가 그렇다. 2제상의 아래쪽에 가보니 거대한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좌우로는 석각군이 있었다. 재작년에 가보았던 사마천사당의 광장과 흡사했다. 비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염황이제상.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중국인들이 역사시대를 얼마나 앞으로 당기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을 통째로 깎아서 단군상을 만든다면... 거대한 편종 모양. 그리고 더 거대한 염황이제상. 점심을 먹은 곳은 이슬람식 식당이었다. 그러나 우리 식탁에 올라온 것은 돼지고기였다고 한다. 다음에 들른 곳은 상대박도(亳都)도성유지였다. 박도는 상나라 때의 옛도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정주를 억지로 8대고도의 하나로 친다고 한다. 왼쪽의 단면이 마름모꼴인 성벽은 상대의 성벽을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길 때문에 끊어진 상대 도성벽의 유지 일행들이 갑론을박을 벌인 갑골 상형문자. 돌 회(回)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지킬 위(衛)자라고 알려주었다. 마침 스마트폰에 이미지로 읽는 한자2의 PDF 파일이 있어서 찾아서 보여주었다. 그래도 끝까지 '나는 돌 회자로 생각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서 한 군데 더 들르기로 했는데 정주에 있는 공묘였다. 상성유지에서도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쳤다. 공묘의 대성전. 단장인 이동민 선생께서 내게 공자에 대해 설명을 좀 해달라고 청하여서 대성전에서 잠시 공자에 대하여 아는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예기치 않은 훼방꾼이 나타나는 바람에 설명은 중단되었다. 훼방꾼은 다름아닌 언제까지나 홍위병(紅小兵)인 사람이었다. 홍위병 때의 복장인 듯한 옷을 입고 깃발과 모택동 메달, 호루라기, 완장까지 차고 따라다니며 얼마나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맛이 간' 사람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우리가 버스에 오를 때까지 '호위'를 했다. 내 생각에 이 사람은 아마 문화대혁명의 희생자인 것 같다. 완장을 차고 구령에 맞추어 전국을 누빌 때 두려울 것이 없었던 홍위병. 지금까지도 그때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우리가 배척한 공자를 왜 숭배하느냐며 공묘를 찾는 사람에게 일갈호령하는... 공식적인 마지막 코스는 성황묘였다. 말하지면 이곳은 우리네로 치면 토속신앙이 행해지는 곳이다. 조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공봉성황야존신지위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뒤편으로 가니 여자는 앉아 있고 남자는 누워 있는 것을 표현한 방이 하나 있었다. 설명문 같은 것이 없어서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서원과 공묘처럼 동서로 긴 회랑이 있었는데 이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바깥에서 그냥 이렇게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용케 들어가서 찍어온 사람의 사진에 보면 눈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손 중간에 눈이 있는 형상이 있었다. 이곳에 아마 제일 신령한 영역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남아 대형 마트인 까르푸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은 상무주점. 정식으로 먹는 마지막 현지식.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어두워졌다. 식사를 마치고나서는 북경으로 갈 기차를 타기 위하여 다시 정주동역으로 갔다. 정주 동역에서 개찰을 기다리는 일행 이곳은 말이 역이지 시설이 거의 공항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어림짐작으로도 우리가 떠나온 대구 공항의 10배는 족히 됨직한 규모였다. 우리를 북경으로 실어나를 허씨에(和諧)호가 들어오고 있다. 몇년 사이에 중국은 정말 교통면에서 놀랄만한 발전을 한 것 같다. 올 때와는 달리 일행이 네 개의 객실에 분산되었다. 우리가 탄 3호차와 바로 옆칸에 가장 많은 일행이 타고 있었다. 이 기차는 멀리 장사남역에서 출발한 것이며 종점은 우리가 내리는 북경서역이었다. 우리가 왔던 코스 그대로 되돌아가는데 최고 시속은 303km를 유지하였다. 북경서역에 내린 일행이 무사히 다 왔는지 인원점검을 하고 있다. 북경은 올 때와는 달리 아주 쾌청한 날씨였다. 추운 것이야 정주에 있을 때부터 추워졌으니... 북경서역 청사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묵은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호텔. 이곳은 정주의 호텔에 비해 급수는 조금 떨어지지만 시설은 더 좋았다. 수도와 성도의 차이랄까... 호텔 체크인 수속을 하는 가이드. 그러나 이곳에서 머물 시간은 들어가서 바로 잔다고 하여도 6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의 천정은 거울로 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무한 갔을 때 어떤 호텔처럼 객실 키를 꽂아야 작동이 되었다. 새벽 북경 수도 공항. 6시 반도 안 된 새벽인데 들어가는 차선이나 나오는 차선이나 모두 이렇게 꽉 밀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저 멀리 동녘이 희뿌염하니 밝아오고 있었다. 수하물 탁송. 우리말을 징그럽게 잘하는 가이드 홍영철과도 이곳에서 안녕이었다. 출국수속 북경의 화장실은 모던한 디자인. 우리가 들어갈 개찰구 우리가 탈 비행기 인천에 도착 짐을 찾는 중. 그간 수고한 내 캐리어는 이곳에서 일생을 마감. 바퀴와 손잡이가 동시에 망가졌다. 그래도 여행을 마치고 나서 생을 마감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드디어 바깥으로... 아직까지 대구 갈 일이 남았지만 서울로 갈 일행과 점촌, 예천으로 갈 일행 5명이 여기서 헤어지게 되어 단장님이 일단 공식적인 해단 선언을 했다. 그동안 수고하신 단장님께 고마움을... 청명한 한국의 햇살 아래 인천대교를 지나... 점심은 룸메이트인 울산서 온 김태환 선생이 쾌척한 금일봉으로 해결. 지자체에 과분한 예산을 내려 소비하느라 애쓴 듯한 모습이 되었다. 식사를 하고도 돈이 남이 간식과 커피까지...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입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고... 벌써부터 내년 여행에 꼭 참가하겠노라고 참가여부는 묻지 말고 날짜만 알려달라는 일행도 있었고 우회적으로 몸만들기를 충실히 해서 오겠노라고 한 일행도.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입니다만 우리들 가슴 속에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
첫댓글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머리나쁜 저도 걱정없이 정리를 하겠습니다. ㅎㅎ 이제 또 사진 나누어주기 작업을 하시겠군요. 삼발이 들어드리고 맛있는 거 사달라는 주문은 취소입니다. ㅎㅎ
권사장님은 여행 내내각 담당이었는데 '맛'자도 안 꺼내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