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분을 대상으로 아주 짧게 적은 겁니다.
불교에서는 추론은 인정하지만 비약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추론이냐 비약이냐는 불법에 충실하냐 충실하지 않으냐의 문제로... 추론인가 비약인가는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추론은 반드시 공부를 통해 불법에 기초하여 행해야 합니다.
처음 공부를 하시는 분은 가급적 비약을 하지 않도록 추론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의심이 나는 부분은 지적을 하면 됩니다. 일체의 불법에 대한 견해는 의심을 제거하고 바르게 보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므로 의심이 일어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 자등명, 법등명 >이라는 말은... < 대 반열반 경 : Maha Parinibbana Sutta >에 나오는데...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기 3개월전 크게 병을 앓고 겨우 회복되셨을 때... 부처님께서 가고 없을 때 스승이 없음을 걱정하는 아난존자에게 하신 다음 말씀 중 나온다.
< ... 나는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숨기고 가르치지 않은 것이 없다... ... 스스로를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나의 가르침을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
< 스스로를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나의 가르침을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는 문장의 팔리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attadipa viharatha attasarana anannassarana dhammadipa dhammasarana anannassarana"
"나는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숨기고 가르치지 않은 것이 없다"로 보아... "dhamma : 법 : 法"은 위에서 "(참된) 가르침"이란 뜻으로 해석하는게 무난한다.
한문경전에서 < 법 : 法 >이 의미하는 바는 구체적 경우마다 잘 살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하지 않는다.
위 문장의 "attadipa"와 "dhammadipa"에서... "dipa"의 의미와 관련해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dipa는 영어의 delta와도 관련 있는 단어인데... 삼각주를 말한다. 큰 강을 건널 때 삼각주는 좋은 쉼터이다. 삼각주는... 인류 문명에서 정착지와 관련이 있어... 인류 문화에서 빛(천상)과도 관련을 지니는 개념이다.
한문경전에서는 '자등명(自燈明)'이라고 하여 '등불(빛)'로 해석되어 있고, 상좌불교에서는 '섬'으로 해석한다. 개인적으로는... '섬'으로 해석된 것을 즐겨... '인간은 각자가 하나의 섬과 같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설령 'attadipa'를 '자등명'이라고 번역하더라도... '의지처(피난처)'라는 뜻을 지닌 'sarana'가 들어 있는 문장으로 볼 때... '자등명'은 '의지처'와 관련된 뜻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야기가 나온 상황을 살펴 보면 부처님의 뜻은 아주 간명하다. 어렵거나 신비한게 없다.
그런데... 요가계열 혹은 도인 풍의 분들이... '자등명'이란 한자 표현만을 따로 떼어 가지고... '자아가 스스로의 등불이고 빛'이라고 해석하여... 스스로에게 어떠한 '빛'이라 이름할 실체인 '참 나'등이라 이름할 무엇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야기하고... 종종 '빛'으로의 산냐를 일으키며 신비하게 포장한다.
부처님의 말뜻은 단순히... <스스로가 바로 스스로의 의지처>란 뜻이다.
'의지처(피난처)'라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연기와 관련 있는 말이다. < 연기 >는 다음의 네가지 언명으로 흔히 표현된다.
<<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길 때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멸할 때 저것이 멸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
그 무엇도 홀로 있거나 생기거나 멸하거나 없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일체의 드러남은 연기에 따른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렇기에 무엇에 의지하지 않으면 수행을 할 수도 없다. 수행 역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바로 스스로의 의지처>라고 함은... 쉽게 말해...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는 뜻이다.
전혀 신비한 말이 아니다. 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있다고 바르게 수행을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다음의 말씀을 하셨다.
< 나의 가르침을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으로 하여 수행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 내가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으로 하여 수행을 하는 나도 있다 >는 말이 된다. <인(연)과>를 말씀하신 것이다.
전혀 신비한 말이 아니다. 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이... 관념의 유희를 즐기는 분에게는 '제법무아'라는 가르침에 비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다. 부처님께서 '나'를 실체로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왔다. < 스스로를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와 < 나의 가르침을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는 같은 뜻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불자는 '제법무아'라는 가르침을 알기에... <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로 삼아 의지하여 수행해야 한다 >는 해석이 된다.
불자에겐 삶이 수행이다. 삶이 수행을 떠나 있는게 아니다.
왜 그런가?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스스로를 돌보는 삶>을 말씀하셨으며... <스스로를 돌보는 삶의 가장 이상적 형태>가 바로 수행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로 삼아 의지하는 삶 >이라는 해석이 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된 가르침이며 부처님을 떠나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중생에 대한 자비로 드러나게 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 불성 >이라고 이름하게 된다.
결국 < 불성을 의지하는 삶 >을 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 불성 >은 < 세속 >은 물론 < 열반 >을 함유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 불성 >이 무언가를 아는 것이 스스로를 아는 것이 되었다.
상좌불교가 대승불교로 변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실제 위의 설명은 이해의 편의를 위해 아주 간략하게 다룬 것이다. 위에서 우리들이 일으키는 < 산냐(사유, 판단, 동일시, 간주, 이름) >를 살펴 보라.
불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불법에 의지해 수행하려고 하면 그것을 잘 지켜야 한다. 대승경전에 나오는 일체의 서술은... 일견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 외관이더라도... 바로 그것과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을 떠난 불법은 없다.
다음엔 수행과 관련하여 기초적인 것을 살펴 보도록 한다.
첫댓글 < 자등명, 법등명 > ->
<스스로를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나의 가르침을 스스로의 의지처로 하여라. > ->
< 내가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으로 하여 수행을 하는 나도 있다 >: <인(연)과>의 말씀
Although it is stated above that the following passage is commonsensical, honestly it is not commonsensical to me YET....
"<스스로가 바로 스스로의 의지처>라고 함은... 쉽게 말해...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
연기의 이치에 따를 때, 이미 무아라는 사실만이 있습니다. 그러니 소위 수행을 함에 있어서는, 무아라는 사실은 잊어도 되요. 다만 이해에 있어서는, 무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만...수행이라는 의도를 일으키는 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무아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알려지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무아를 추구해서는, 오히려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확율이 낮습니다. 무아를 추구함이 없이 행위를 다스려야 해요...
게다가 무아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알려지면, 또 어떻다는 겁니까? 그러한 사실이 알려졌든 말든, 스스로 행위함에 즉 수행함에 달라질 바는 없어요. 똑 같습니다. 별래 무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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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본글에서...<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고 적었지만, 동시에 < 무아이므로, 수행도 있다 : 내가 없을 때, 수행도 있다 >라고 적어도 그만입니다. 둘 다 옳아요... 어떻든 간에, [신심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지처로 하여 마음을 일으키려는 의도]를 스스로 일으킴에는 달라질 바가 없어요... 두가지 언명 모두, 수행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거든요...
위에서 [동시에]라는 표현으로,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와 < 무아이므로, 수행도 있다 : 내가 없을 때, 수행도 있다 >를 연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와 < 무아이므로, 수행도 있다 : 내가 없을 때, 수행도 있다 >는 함께 성립하는 거예요.
네....근데요 아직은 사고체계가 단편적... 그래서 위에서 말하는 "함께 성립하는 거예요" 가 잘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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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것은, 상식적으로다가 파악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우.........선생님!
저가 요즘 수행이 좀 됬나봐요.
"이구 진짜 왕 짜쯩나" 가 안나오네요. ㅎㅎㅎ
저 상식수준으로 좀 가끔 내려오세요.
내려오는게 올라가는 것 보다 쉽잖아요.
아니 그리고 상식적인 것은, 상식적으로다가 파악하고 잘 살면 저가 청개구리겠어요. Pink Frog 이지....
이 덧글 다시고 마음은 편하시고......요?
괜히 우리 선생님 건강이 걱정되네요.^^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는 말이, 상식적으로다가 파악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무아라는 말에 걸려서 그런 거잖아요...그래서 위의 꼬리말과 같이 설명한 거예요...
상식적으로다가...무아와 같은 말에 걸리지 않는다면,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는 말이 상식적으로 파악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적고 보니, 상식이라는 말이 무자게 나오네요...
스스로 일으키는 의도가 스스로에게 의지처이기도 한게, 뭐가 어렵습니까? 수행도, 스스로 일으키는 의도의 일종이예요... 물론 의도도 조건 발생이죠... 괴로움이 그 조건입니다. 그런즉 '나'라는 괴로움이, 의지처예요... 알아차림은, 괴로움의 알아차림이예요.
내가 진짜 혼동되는 이유는 한 문장 한 문장은 이해가 되는 듯하다가 그 한 문장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표현 될 때 입니다.
즉 한쪽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다르게 표현할 때 혼동이 생기지요.
아니 그리고 "도대체 뭡니까?" "뭐가 어렵습니까?" 라는 표현은 꼭 쓰셔야 해요.
여기에 오시는 분 들 중에서 님께서 그러시는게 괜찮으신 분들도 있으신데....저는 이러면 혼자서 오랜시간 멍 때려요.
멍 자주 때리면 질문하기도 덧글달기도 힘들잖아요.
솔직히 "뭐가 어렵습니까?" 라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저 바보예요 해요?
줄리님, 화이팅
.
멍 때리고 나면 머리가 또 맑아지는 좋은 면도 있어요.
멍 때리는게 으악 으악거리는 것 보다 저 한테는 편해요.
그리고 이런 측면도 있는 것 같읍니다.
방문객님 글에 "융과 선불교" 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조건들을 삼세히 살피는 분이라 아무 한테나 멍 때리게 하지는 안는다고 봅니다.
저 아줌마한테는 이쯤이야 뭐 하고 그러실수도 있구요. 그리고 맞습니다.
속으로 욕바가지로 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름 열심히 잘 설명해 주시니 감사하는 마음도 있잖아요.
오직 내가 이해가 됬다 안됬다 할 뿐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고분 고분하기라도 해야 하는데....ㅎㅎ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거친 말투가 좋은건 아니죠... 하지만 다음 내용까지 적어야 되는게, 솔직히 참 그렇습니다...
이해와 납득은 다른 문제예요. 이해가 되어도 납득이 되지 않을 수는 있어요. 그리고 타인이 할 수 있는 바는, 이해까지 입니다. 제 글에 책임을 지는 것은, 이해까지인 겁니다.
뭔가 걸리는데, 뭐가 걸리는지 스스로 알 수 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어려운 경우예요... 위와 같이 극히 상식적인 말인 경우, 그럴 수 엄어요.
<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고 적은 후,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고 적었는데...그래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지처라는데... ... 그 내용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 있나요?
그 내용이 상식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말장난을 하자면, 가능성이야 무엇에서든 있죠... 하지만 이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예요. 그냥 세상 살았으면, 이해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상식적인 말인데도 뭔가가 걸리는 경우, 보통은 논지 이외의 문제가 개입한 겁니다. 논지 이외의 문제로 걸리는 거예요. 예로...축적된 불만이라던가... 그런 거죠...
또한 지적은... 예로, [이러저러하기에, 이러한 부분이 틀렸다 혹은 이해가 안된다]등의 형식이어야 합니다. 물론 상식적 내용이 아닌 경우, 어려운 경우...그처럼 구체적 지적을 할 수 엄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상식적 내용인 경우에는, 그럴 수 엄을 수 엄어요...
쥴리님은 지금까지 수차례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지적한 경우가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지적하려고 노력한 경우가 있습니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엄어요... 사실상 엄는 거예요...
세상 살면서, 겁나게 갑갑한 일 많이 생깁니다. 경우에 따라, 투덜거리기만 할 수도 있고 그래요... 하지만 그런 경우, 따로 글을 적으세요... [하고 싶은 이야기]나 [동상이몽] 게시판에다가 적던지, 우짜든지...여하간 적절한 방식을 갖춰 배출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걍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든지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예요. 최후에나 가능한거지...
네....
먼저 저가 방문객님께 축적된 불만이 있을 수 없지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가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닌 것도 사실이구요.
방문객님께 예의차리는 마음에서 저가 잘하지 않는짓 지금하겠습니다.
사실 이글은 저가 굉장히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불교기초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름 저가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보통 저는 글을 읽을 때 전체 파악을 할려고 하는 스타이지요. 근데 이글에서는 한문장 한문장을 잘 이해할려고 했지요.
그래서 위에서 두번째 덧글을 달았지요.
아마 그 다음 날 다시 읽고 나에게는 아직까지 이표현을 이렇게 다시 표현하면 상식적으로 이해, 아니면 방문객님 표현대로 이해가 아니구 납득인가, 암튼 안된다 그리고 "아직" 이라는 표현을 썻구요.
<스스로가 바로 스스로의 의지처>을 더 쉽게 말하면 < 내가 있을 때 수행도 있다 >로 된다 가 상식적으로 곧 바로 이해가 될지 않았습니다.
쥴리님아, 위의 말 역시 아무 말도 적지 않은 거예요... 그게 왜 이해가 안되냐구요?
[이러저러하기에, 이러한 부분이 틀렸다 혹은 이해가 안된다]라고 지적해야 한다는 말에서..."이러저러하기에"등에 해당할 내용은, 쥴리님 스타일이 아니라...논지와 관련한 내용이어야 하는 겁니다. 쥴리님 스타일의 하소연은, 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쥴리님이 어떻게 글을 읽든, 고분고분하든 말든, 그런 것들은...제 알 바 아니예요...
쥴리님이 재차 적은 내용을 볼까요? [극히 상식적인 말이다]는 말 끝에, 단순히 [나에게는 극히 상식적이지 않다]고 적은 겁니다. 실제는 상식적 내용인데, 본글은 계속 수행과 그 의지처를 말하고 있는데...
아! 이럴 때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고 하나요.
알았습니다.
아직.....이라고 했으니 저가 저를 두고 보겠습니다.
조금은 웃기는 일이지만, 저 수준에서 할 짓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서 무엇을 하나 배우면 그냥 머리로 이해가 아니구 가슴 깊이 담아서 삶에서 반영하고 싶은 마음, 욕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무아라는 개념이 완전히 이해됬는지도 사실 장담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저는 저에게 질문합니다, "그래서 뭐?"
라면 끓일 수 있는 수준이면, 불법 이해할 수 있어요...
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라면을 어떻게 끊이는가?
미국 사람들은 라면 잘 몬 끓여요.
그래도 미국사람도 컵라면, 그냥 물만 부면 되는 라면은 되던데...
봉지에 있는 방법에 따라, 끓일 수 있으면 족하다구요...
어렵게 만드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렵기에, 불법이 어려운 겁니다.
먼저 정리를 해야죠... 이것은 이거고, 저것은 저거다... 라면봉지는 라면봉지고, 라면스프봉지는 라면스프봉지란 말이예요... 라면사리는 라면사리고, 라면스프는 라면스프예요.
이해가 안되는 건 이해가 안되는 거고, 납득이 안되는 건 납득이 안되는 거예요. 납득은 자기 일이지, 상대방 일이 아니예요... 납득이 안돼 괴로우면, 따로 본글을 적어 하소연하시던가 그러시라는 거예요. 먼저 분리할 줄부터 알아라는 거예요... 위에 다 적은 내용입니다. 분리도 몬하는데, 통합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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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시리 화가 나서 싸우다가도, 맞는 말이 나오면...그 부분은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걸로 화난 것은 이걸로 화난 거고, 맞는 저거는 맞는 저거란 말입니다. 이거가 저걸로 옮겨 붙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거가 저걸로 옮겨 붙는 것은, 이거와 저거 자체의 문제가 아니예요... 이거와 저거 사이에서는...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혹은 무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친한 친구끼리 술자리를 가질 때는, 그런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적절한 관계와 적절한 장소, 적절한 때가 있는 거예요... 그 조건이 충족 안되는데 그러면, 골 때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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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녀 평등에 입각하여, 가급적 남녀의 특성에 대해 논하지 않습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다를 분리하지 않는 경향성이 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대방이 마냥 이해해주기를 바랄 수는 엄는 거예요. 그러한 이해도...적절한 관계와 적절한 장소, 적절한 때가 있는 거예요. 그러한 조건이 충족 안되면, 어쩌다가 한두번하고 말아야 하는 거란 거예요. 그래야 상대가 기꺼이 이해한단 말입니다. 쥴리님이나 저나 똑 같은 중생입니다. 중생이 중생이지, 누가 더 딱히 낫거나 모자라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잠도 자야겠고, 들어가야겠다는... 아마 이러한 부분으로 다시 적을 일은 엄을 거라는...
상대방이 마냥 이해해주길 바랄 수는 없다.....맞는 말씀입니다.
흠....그럼 앞으로 덧글 조심스럽게 달아야겠습니다.
암튼 그래도 늦은 시간까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기님, 앞으로 분위기 썰렁하지 않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