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 주님 수난 성금요일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셔서 밤새 고난을 받으시고 기진한 상태에서 두 번의 재판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서 사형으로 당신과 당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희생제물로 바치신 날입니다. 아버지와 인류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인간들 사이의 죄악의 관계를 형제자매의 관계로 회복시키신 날입니다. 당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용서를 청하는 모든 사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날입니다. 오늘은 인류 역사의 모든 날들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날입니다. 부활대축일을 우리는 더욱 중요하게 여기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날이 오늘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찾으려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을 알려주는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가 살면서 늘 그렇게 살아야 하는 날이고, 부활의 날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만들어서 선사해주시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이 바로 우리 인생에서 제일 닮아가면서 살아야 하는 날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즉 아버지께 대한 신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것을 알려주는 날입니다.
우리는 쉽게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동참합니까? 고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고수난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겪으신 것으로 끝나는, 우리에게 무한한 선물을 가져다주는 “그분의 일”이라고 우리는 쉽게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주님의 수난에 함께 하면서 그분과 함께 인간의 죄를 보속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대속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저는 우리 본당에 상이 나 있다는 것을 다시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던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서 늘 아름다운 향기였던 한 자매가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받고 있음도 말씀드립니다. 그 가족들은 생명의 종결을 어떤 방식으로 언제 해야 하는가를 놓고 그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미 그런 고통을 체험한 적이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닥치기도 할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기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절대적인 고통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듯이 이런 고통도 함께 참아 받으라고 그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실제로 참으로 어렵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고통의 정체 앞에서 무력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모두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전통적으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부르는 말씀들입니다. 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만 한 번 더 정리해 봅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2.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4.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마태 27,46)
5. “목마르다.”(요한 19,28)
6.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4-46)
7. “다 이루어졌다.”(요한 19,29-30)
그리고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큰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셨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마르 15,37)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통 앞에서 인간으로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극단적인 절망을 겪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낱 인간인 우리는 고통 앞에서 아무렇게나 말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인생의 지혜가 알려주는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진정으로 고통의 신비를 꿰뚫는 말은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신자분들이 침묵과 겸손으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통 앞에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께 침묵과 겸손의 봉헌을 하신 예수님과 함께 마음을 깊이있고 조용히 하며 경건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의 거룩함을 찾아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침묵과 겸손으로 살아계십니다. 특별히 오늘은 그렇습니다.
“나다.”(요한 18,5)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