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어렴풋하게, 지금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화란, 멀리 있어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란 것을. 고향에 아직 그릴 것이 있는 사람은 평화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평화는 내 가족뿐 아니라 내 가족과 어울려 살고 있는 내 이웃들, 내 이웃이 기르는 동물들조차도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도 ‘평화’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 귀정사가, 이 쉼터가 바로 그런 곳 ‘그리운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귀정사라는 이름만 듣고도, 한번도 귀정사에 와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왠지 좋아지는 곳이 귀정사인 것 같습니다.
귀정사… 귀정사, 쉼터… 쉼터, 그 두 마디 말만 가지고도 노래를 만들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 같습니다. 귀정사… 귀정사, 쉼터… 쉼터,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좋은 것이 평화입니다. 생각하면 미소가 나오는 것이 평화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와 우리 마을을 생각하고 그랬듯이, 베트남과 네팔에서 온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이웃과 그들의 마을을 생각하며 그랬듯이 귀정사를 생각하고 미소 짓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귀정사가 귀정사에만 있지 않고 바로 이 나라가 이 나라 백성들에게 귀정사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는’ 삶입니다. 그릴 것이 없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 슬프고 여린 마음이 모인 곳이 이곳, 귀정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슬프고 여린 마음은 평화에 훨씬 가까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모인 이곳 쉼터가 그러니까 평화입니다. 평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공선옥 작가가 사회연대 쉼터 5주년을 함께 기뻐하며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며칠 전, 템플스테이 운영과 관련한 만남에서 종단 소임을 맡고 계신 분으로부터
귀정사가 사는 방식이 불교전통에서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을 들었다.
그 후로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마음속이 소용돌이치는 물처럼 그 때 그 모임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맴 돌고 있다.
가을의 끝을 알리는 비가 찬찬히 내리는 아침. 오늘은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며 무너졌던
마음을 추스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