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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許生)은 묵적골에 살고 있었다. 줄곧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터 위에 해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고, 사립문이 그 나무를 향하여 열려 있으며, 초옥 두어 칸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러나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였고, 그의 아내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셈이다. 하루는 그 아내가 몹시 주려서 훌쩍훌쩍 울며 하는 말이,
‘당신은 한 평생에 과거(科擧)도 보지 않사오니 이럴진대 글은 읽어서 무엇하시려오.’ 하였다. 허생은,
‘난 아직 글 읽기에 세련되지 못한가 보오.’ 하고 껄껄대곤 했다. 아내는,
‘그러면 공장이 노릇도 못하신단 말예요.’ 하였다. 허생은,
‘공장이 일이란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할 수 있겠소.’ 하니, 아내는,
‘그럼, 장사치 노릇이라도 하셔야죠.’한다. 허생은,
‘장사치 노릇인들 밑천이 없고서야 어떻게 할 수 있겠소.’ 하였다. 그제야 아내는 곧,
‘당신은 밤낮으로 글 읽었다는 것이 겨우 어찌할 수 있겠소 하는 것만 배웠소그려. 그래 공장이 노릇도 하기 싫고, 장사치 노릇도 하기 싫다면, 도둑질이라도 해보는 게 어떻소.’
하고는 몹시 흥분하는 어조로 대꾸했다. 이에 허생은 할 수 없이 책장을 덮어 치우고 일어서면서,
‘아아, 애석하구나. 내 애초 글을 읽을 제 십 년을 채우렸더니 이제 겨우 7년밖에 되지 않는군.’
하고는, 곧 문밖을 나섰으나, 한 사람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는 곧장 종로 네거리에 가서 저자 사람들에게 만나는 대로,‘여보시오, 서울 안에서 누가 제일 부자요.’ 하고 물었다. 때마침 변씨(卞氏.卞承業의 조부)를 일러주는 이가 있었다. 허생은 드디어 그 집을 찾았다. 허생이 변씨를 보고서 길게 읍(揖)하며,
‘내 집이 가난해서 무엇을 조금 시험해 볼 일이 있어 그대에게 만 금(萬金)을 빌리러 왔소.’ 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는, 곧 만 금을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어디론지 가 버렸다. 변씨의 자제(子弟)와 빈객(賓客)들은 허생의 꼴을 본즉, 한 비렁뱅이였다. 허리에 실띠를 둘렀으나 술이 다 뽑혀 버렸고, 가죽신을 뀄으나 뒷굽이 자빠졌으며, 다 망그러진 갓에다 검은 그을음이 흐르는 도포(道袍)를 걸쳐 입었는데, 코에서는 맑은 물이 훌쩍훌쩍 내리곤 한다.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모두들 크게 놀라며, ‘아버지, 그 손님을 잘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변씨는, ‘몰랐지.’
‘그러시다면 어찌 잠깐 사이에 이 귀중한 만 금을 평소에 면식도 없는 자에게 헛되이 던져 주시면서 그의 성명도 묻지 않음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했다. 변씨는,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엔 반드시 의지(意志)를 과장하여 신의(信義)를 나타내는 법이다. 그러고 얼굴빛은 부끄럽고도 비겁하며, 말은 거듭함이 일쑤이니라. 그런데, 이 손님은 옷과 신이 비록 떨어졌으나 말이 간단하고 눈 가짐이 오만하고 얼굴엔 부끄런 빛이 없음으로 보아서 그는 물질(物質)을 기다리기 전에 벌써 스스로 만족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아마 그의 시도하려는 방법도 적지 않거니와, 나 역시 그에게 시도함이 없지 않는 거다. 그리고 주질 않는다면 모르려니와 기왕 만 금을 줄 바에야 성명은 물어서 무엇하겠느냐.’ 하였다.
이에 허생은 이미 만 금을 얻어 갖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언뜻 생각하기를,
‘저 안성(安城)은 기(畿)ㆍ호(湖)의 접경이요, 삼남(三南)의 어귀렷다.’
하고는, 곧 이에 머물러 살았다. 그리하여 대추ㆍ밤ㆍ감ㆍ배ㆍ감자ㆍ석류ㆍ귤ㆍ유자 등의 과실을 모두 값을 배로 주고 사서 저장했다. 허생이 과실을 도고(都庫)하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지 얼마 아니 되어서 앞서 허생에게 값을 배로 받은 장사들이 도리어 십 배를 치렀다. 허생은, ‘어허, 겨우 만 금으로 온 나라의 경제(經濟)를 기울였으니 이 나라의 얕고 깊음을 짐작할 수 있구나.’ 하고는, 곧 칼ㆍ호미ㆍ베ㆍ명주ㆍ솜 등을 사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들어가서 말총을 모두 거두면서,
‘몇 해만 있으면 온 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싸지 못할 거야.’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서 망건(網巾) 값이 과연 십 배나 올랐다. 허생은 늙은 뱃사공에게, ‘영감, 혹시 해외(海外)에 사람 살 만한 빈 섬이 있는 것을 보았나.’ 하고 물었더니, 사공은,
‘있습디다 그려. 제 일찍이 바람에 휩쓸려서 줄곧 동쪽으로 간 지 사흘 낮밤 만에 어떤 빈 섬에 닿았습니다그려. 그곳은 아마 사문(沙門)ㆍ장기(長崎) 사이에 있는 듯싶은데, 모든 꽃과 잎이 저절로 피며, 온갖 과실과 오이가 저절로 성숙되고, 사슴이 떼를 이루었으며, 노니는 고기들은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더이다.’ 한다. 허생은 크게 기뻤다.
‘자네 만일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준다면 부귀(富貴)를 함께 누릴 걸세.’
했다. 사공은 그의 말을 좇았다. 이에 곧 바람 편을 타고 동남 쪽으로 그 섬에 들어갔다. 허생이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며,
‘땅이 천 리가 채 못 되니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나 토지가 기름지고 샘물이 달콤하니 다만 이곳에 부가옹(富家翁)의 노릇쯤은 하겠구나.’ 하고,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사공은,
‘섬이 터엉 비고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으니 뉘와 함께 사신단 말씀이시오.’했다. 허생은,
‘덕(德)만 있으면 사람은 저절로 찾아드는 거야. 나는 오히려 내 덕 없음이 걱정이지 사람 없음이 무슨 걱정이 될 건고.’ 했다.
이때 마침 변산(邊山)에 도적 수천 명이 떼를 지어 있었다. 주(州)ㆍ군(郡)에서 군졸을 징발하여 뒤를 쫓아 잡으려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뭇 도적 역시 잠시도 밖으로 나와서 노략질을 하지 못하여 바야흐로 주리고 곤한 판이었다. 허생이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서 그의 괴수(魁帥)를 달래기 시작했다. ‘너희들 천 명이 합쳐 돈 천 냥을 훔쳐서 서로 나누어 갖게 되면 각기 얼마나 되겠는고.’ 하고 물었다. 그는, ‘하나 몫이 한 냥밖에 더 되나유.’ 한다. 허생은 또, ‘그럼 너희들의 아내는.’ 하자, 뭇 도적은, ‘없어유.’한다. ‘그럼 너희들의 밭은 있겠지.’했더니, 이때에 뭇 도적은 웃으며,
‘밭 있구, 아내 있다면야 어찌 이다지 괴롭게 도둑질을 일삼겠수.’ 한다. 허생은,
‘정말 그렇다면 아내를 얻고 집을 세우고, 소를 사서 농사지어 살면, 도둑놈이란 더러운 이름도 없을뿐더러 살림살이엔 부부(夫婦)의 낙(樂)이 있을 것이며, 아무리 나와서 쏘다닌다 하더라도 체포당할 걱정이 없고, 길이 잘 입고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했다. 뭇 도적은, ‘그야 정말 소원이겠지만 다만 돈이 없을 뿐이어유.’ 한다. 허생은 껄걸 웃으며,
‘너희들이 도둑질 한다면서 돈이 그렇게 그립다면 내 너희들을 위해서 마련해 줄 수 있으니 내일 저 바닷가를 건너다 보면 붉은 깃발이 바람결에 펄펄 날리는 게 모두 돈 실은 배일 거야. 너희들 멋대로 가져 가려무나.’
했다. 허생은 이렇게 뭇 도적에게 약속하고는, 어디론지 가버렸다. 뭇 도적은 모두 그를 미친놈으로 알고 웃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그들은 시험삼아 바닷가에 이르렀다. 허생은 벌써 삼십만 냥을 싣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나란히 절하며, ‘이제부턴 오직 장군님 명령대로 따르겠소이다.’ 한다. 허생은, ‘이것을 힘껏 지고 가는 게 어때.’
했다. 이에 뭇 도적이 다투어 돈을 져보려 했으나 백 냥을 채우지 못했다. 허생은,
‘너희들 힘이 겨우 백 냥도 들지 못하면서 무슨 도둑질인들 변변히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너희들이 비록 평민(平民)이 되고 싶다 하더라도 이름이 도적의 명부(名簿)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지 않나. 그러니 내 이곳에서 너희들 돌아오길 기다릴 테니 각기 백 냥씩을 갖고 가서 하나의 몫에 계집 한 사람과 소 한 필씩을 데리고 오렷다.’했다. 뭇 도적은, ‘예이.’
하고, 모두들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허생은 스스로 이천 명이 일 년 동안을 먹을 식량을 장만하고 기다렸다. 뭇 도적은 과연 기일이 되자 다 돌아오되 뒤떨어진 자 없었다. 이에 모두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이렇게 도적떼를 데리고 사라지니 온 나라 안이 잠잠하였다. 이에 나무를 베어 집을 세우고, 대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질(地質)이 온전하매 온갖 곡식이 잘 자라서 묵정밭은 갈지 않고 김매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씩이나 달렸다. 삼년 먹을 식량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일본의 나가사키)에 가서 팔았다. 장기도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로서 호수(戶數)가 31만이나 되는데, 바야흐로 큰 흉년이 들었는지라 드디어 다 풀어 먹이고는 은(銀) 백만 냥을 거두었다. 허생은 탄식했다.
‘이제야 내 조금 시험해 보았구나.’ 하고는, 곧 남녀 2천 명을 모두 불러 놓고,
‘내 처음 너희들과 함께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이 문자(文字)를 만들며 옷갓을 지으려 하였는데 땅이 작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련다. 너희들은 어린애가 나서 숟가락을 잡을 만하거든 오른손으로 쥐기를 가르치고 하루를 일찍 났어도 먼저 먹게 사양하렷다.’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며,
‘가지 않으면 곧 오는 이도 없겠지.’하고, 또 돈 50만 냥을 바닷속에 던지며,
‘바다가 마를 때면 이를 얻을 자 있겠지. 백만 냥이면 이 나라엔 용납할 곳이 없으리니 하물며 이런 작은 섬일까보냐.’ 하고, 또 그 중에 글을 아는 자를 불러내어 배에 태우고, ‘이 섬나라에 화근(禍根)을 뽑아 버려야지.’하고는, 함께 떠나왔다.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마저 없는 자에게 돈을 나눠 주고도 오히려 10만 냥이 남았기에, ‘이것으로 변씨에게 빌린 것을 갚아야지.’하고는, 곧 변씨를 찾아 보고서, ‘그대, 날 기억하겠소.’ 하고 물었다. 변씨는 놀란 어조로,
‘자네, 얼굴빛이 조금도 전보다 낫지 않으니 만 냥을 잃어버린 모양이지.’ 한다. 허생은 깔깔 웃으며,
‘재물로써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그대들이나 할 일이지. 만 냥이 아무리 중한들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한단 말야.’ 하고는, 곧 돈 10만 냥을 변씨에게 주며,
‘내가 한때의 주림을 참지 못해서 글 읽기를 끝내지 못했으니, 그대의 만냥을 부끄러워할 뿐이로세.’
했다. 변씨는 크게 놀라서 일어나 절하며 사양하고는 십분의 일의 이문(利文)만을 받으려 했다. 허생은 그제야 크게 노하여,
‘그대는 어찌 날 장사치로 대우한단 말인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린다. 변씨는 하는 수 없어 가만히 그 뒤를 따라 밟았다. 그는 남산 밑으로 향하더니 한 오막살이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침 늙은 할미가 우물 곁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변씨는, ‘저 오막살이는 뉘 집인고.’ 하고 물었다. 할미는,
‘허 생원(許生員) 댁이랍니다. 그분이 가난하되 글 읽기를 좋아하더니 어느 날 아침 집을 떠나고는 안 돌아온 지 벌써 다섯 해나 된답니다. 그리고 다만 아내가 홀로 남아서 그가 집 떠나던 날에 제사를 드린답니다.’ 한다. 변씨는 그제야 그의 성(姓)이 허(許)인 줄을 알고 탄식하고 돌아왔다. 그 이튿날 자기의 은(銀)을 다 가지고 가서 그에게 바쳤다. 허생은,
‘내 일찍이 부(富)하려 했다면 100만 냥을 버리고 10만을 취하겠는가. 나는 이제부터 그대를 믿어 밥을 먹겠으니 그대가 자주 와서 나를 돌봐 주게그려. 다만 식구를 헤아려 식량을 대며 몸을 재어서 베를 마련해 준다면 일생에 그것으로 만족할지니 무슨 까닭에 재물로써 나의 마음을 괴롭히겠나.’
하고, 사양한다. 변씨는 백방(百方)으로 허생을 달래었으나 끝내 막무가내였다. 변씨는 이로부터 허생의 의식이 결핍되었을 것을 짐작되는 대로 반드시 손수 날라다 대어 주면, 허생은 역시 흔연(欣然)히 받되 혹시나 분량이 초과되면 곧 기뻐하지 않는 어조로,
‘그대가 어째서 내게 재앙을 끼쳐 주려 하누.’
했다. 그러나 술병을 차고 가면 더욱 기뻐하여 서로 권커니 마시거니 하여 취하고야 말았다. 그럭저럭 몇 해를 지나고 본즉 피차에 정이 날마다 두터워졌다. 어느 날 조용히, ‘다섯 해 동안에 어떻게 백만 금을 벌었습죠.’ 하고 물었다. 허생은,
‘이건 가장 알기 쉬운 일일세. 우리 조선(朝鮮)은 배가 외국과 통하지 못하고, 수레가 국내(國內)에 두루 다니지 못하는 까닭으로, 백물(百物)이 이 안에서 생산되어 곧 이 안에서 소비되곤 하지 않나. 대체로 천 냥이란 적은 재물이어서 물건을 마음껏 다 살 수는 없겠지만, 이를 열로 쪼갠다면 백 냥짜리가 열이 될지니 이를 가지면 아무래도 열 가지 물건이야 살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물건의 무게가 가벼우면 돌려 빼기 쉬운 까닭으로 한 가지 물건이 비록 밑졌다 하더라도 아홉 가지 물건에 이문이 남는 법이니 이는 보통 이문을 내는 길이요, 저 작은 장사치들이 장사하는 방법이지. 그리고 대체로 만 금만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건은 다 살 수 있으므로 수레에 실린 것이면 수레를 모조리 도매할 것이며, 배에 담긴 것이라면 배를 온통 살 수 있겠고, 한 고을에 가득 찬 것이라면 온 고을을 통틀어서 살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마치 그물에 코가 있어서 물건을 모조리 훑어들임과 같지 않겠나. 그리하여 뭍의 산물(産物)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그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든지, 물에서 나온 고기들의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그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든지, 의약(醫藥)의 재료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그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면, 그 한 가지의 물건은 한 곳에 갇히매 모든 장사치의 손 속이 다 마르는 법이니, 이는 백성을 못살게 하는 방법이야. 뒷세상에 나랏일을 맡은 이들이 행여 나의 이 방법을 쓰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나라를 병들게 하고 말 걸세.’
한다. 변씨는, ‘애당초 당신은 무엇으로써 내가 만 금을 내어 줄 것을 예측하고 찾아와 빌리기로 했던 거요.’ 했다. 허생은,
‘이는 반드시 자네만이 내게 줄 것이 아닐세. 만 금을 지닌 자 치고는 주지 않을 자 없겠지. 내 재주가 족히 백만 금을 벌 수는 있겠으나 다만 운명은 저 하늘에 달려 있는 만큼 내 어찌 예측할 수 있었겠나. 그러므로 나를 능히 쓰는 자는 복(福)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는 반드시 부(富)에서 더 큰 부를 누릴 테니 이는 곧 하늘이 명하는 바라, 그가 어찌 아니 줄 수 있겠나. 이미 만 금을 얻은 뒤엔 그의 복을 빙자(憑藉)해서 행한 까닭에 움직이면 문득 성공하는 것이니, 만일 내가 사사로이 혼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성패(成敗)는 역시 알 수 없었겠지.’ 한다. 변씨는,
‘지금 사대부(士大夫)들이 앞날 남한(南漢.남한산성)에서의 치욕을 씻고자 하는데, 이야말로 슬기 있는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슬기를 펼 때인 만큼 당신과 같은 재주로 어찌 괴롭게 어둠에 잠겨서 이 세상을 마치려 하시오.’ 했다. 허생은,
‘어허, 예로부터 어둠에 잠긴 자가 얼마나 많았던고. 저 조성기(趙聖期.拙修齋)는 적국(敵國)의 사신(使臣)으로 보낼 만하건마는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유형원(柳馨遠.磻溪居士)은 넉넉히 군량을 나를 만하였으나 저 해곡(海曲.전라도 부안)에서 바장이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랏일을 보살피는 자들을 가히 알 것이 아니겠는가. 나로 말한다면 장사를 잘하는 자인 만큼 내 돈이 넉넉히 아홉 나라 임금의 머리를 살 수 없음은 아니로되 아까 저 바닷속에 그걸 던지고 온 것은 아무런 쓸 곳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네.’ 한다. 변씨는 곧 “후유” 하며 긴 한숨을 내쉬고 가 버렸다.
변씨는 애초부터 정승(政丞) 이완(李浣. 조선 효종때 무신)과 친했다. 이공(李公)은 때마침 어영대장(御營大將.종2품 무관)에 취임되었다. 그는 일찍이 변씨와 이야기하다가,
‘지금 저 위항(委巷)과 여염(閭閻) 사이에 혹시 기이한 재주가 있어서 커다란 일을 같이 할 만한 자가 있더냐.’ 했다. 변씨는 그제야 허생을 소개했다. 이공은 깜짝 놀라며, ‘기특하이,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은 무어라 하던고.’ 한다. 변씨는
‘소인이 그와 상종한 지 삼년이나 되었습니다만, 아직껏 그 이름은 몰랐소이다.’
했다. 이공은 또, ‘그 이가 곧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함께 그를 찾아가 보세.’
하고는, 밤들어 이공은 수행자들을 다 물리치고 변씨만을 데리고 걸어서 허생의 집을 찾았다. 변씨는 이공을 말려 그 문밖에 세워 놓고 혼자서 먼저 들어가 허생을 보고 이공이 찾아온 사연을 갖추어 말했다. 허생은 들은 체 만 체 그저 하는 말이, ‘자네가 차고 온 술병이나 빨리 풀게.’
한다. 그리하여 서로 더불어 즐겁게 마셨다. 변씨는 이공이 오랫동안 바깥에 있음을 딱하게 여겨서 자주 말을 하였으나 허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덧 밤은 이미 깊었다. 허생은 그제야, ‘손님 좀 불러 볼까.’
한다. 이공이 들어왔다. 허생은 굳이 앉아서 일어서지 않았다. 이공은 몸둘 곳이 없을 만큼 불안했다. 황급히 국가에서 어진 이를 구하는 뜻을 진술했다. 허생은 손을 저으며,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몹시 지루하이. 도대체 지금 너의 벼슬은 무에라지.’ 한다. 이공은,
‘대장(大將)이랍니다.’ 했다. 허생은,
‘그렇다면 네 딴엔 나라의 믿음직한 신하로고. 내 곧 와룡선생(卧龍先生. 제갈량)과 같은 이를 천거할 테니 네가 임금께 여쭈어서 그의 초려(草廬)를 삼고(三顧)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이건 어렵사오니, 그 다음의 것을 얻어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허생은,
‘나는 아직껏 제이의(第二義. 첫째가 아니고 다음 것)란 배우질 못했거든.’ 한다. 이공은 굳이 물었다. 허생은, ‘명(明)의 장병(將兵)은 자기네들이 일찍이 조선에 묵은 은의(恩義)가 있다 하여 그의 자손들이 많이 동으로 오지 않았나.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떠돌이 생활에 고독한 홀아비로 고생하고 있다니, 네 능히 조정에 말씀드려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골고루 시집보내고, 김류(金瑬)와 장유(張維) 따위들의 집을 징발해서 살림살이를 차려 줄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또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그것도 어렵소이다.’ 했다. 허생은,
‘이것두 어렵구 저것두 못한다 하니 그러고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 가장 쉬운 일 하나 있으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듣고자 원하옵니다.’ 했다. 허생은,
‘대체로 대의(大義)를 온 천하에 외치고자 한다면, 첫째 천하의 호걸을 먼저 사귀어 맺어야 할 것이요, 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간첩(間諜)을 쓰지 않고서는 이룩하지 못하는 법이야. 이제 만주(滿洲. 청나라)가 갑자기 천하를 맡아서 제 아직 중국 사람과는 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판 아닌가. 그럴 즈음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솔선적(率先的)으로 항복하였은즉 저편에서는 가장 우리를 믿어 줄 만한 사정이 아닌가. 이제 곧 그들에게 청하기를, 우리 자제들을 귀국에 보내어 학문도 배우려니와 벼슬도 하여 옛날 당(唐)ㆍ원(元)의 고사(故事)를 본받고, 나아가 장사치들의 출입까지도 금하지 말아 달라 하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의 친절을 달콤하게 여겨서 환영할 테니 그제야 국내의 자제를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지식층(知識層)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세민(細民)들은 멀리 강남(江南)에 장사로 스며들어 그들의 모든 허실(虛實)을 엿보며, 그들의 호걸(豪傑)을 체결(締結)하고선 그제야 천하의 일을 꾀함직 하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지 않겠어. 그러고는 임금을 세우되 주씨(朱氏.명나라 황족)를 물색(物色)해도 나서지 않는다면 천하의 제후(諸侯)들을 거느려 사람을 하늘에 추천한다면, 우리나라는 잘되면 대국(大國)의 스승 노릇을 할 것이요, 그렇지 못할지라도 백구(伯舅. 제후중에서 가장 큰나라)의 나라는 무난할 게 아냐.’ 한다. 이공은 무연(憮然)히, ‘요즘 사대부(士大夫)들은 모두들 삼가 예법(禮法)을 지키는 판이어서 누가 과감하게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겠습니까.’ 했다. 허생은 목소리를 높여,
‘이놈, 소위 사대부란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이(彛. 夷)ㆍ맥(貊)의 땅에 태어나서 제멋대로 사대부라고 뽐내니 어찌 앙큼하지 않느냐. 바지나 저고리를 온통 희게만 하니 이는 실로 상인(喪人)의 차림이요, 머리털을 한 데 묶어서 송곳같이 찌는 것은 곧 남만(南蠻)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니, 무엇이 예법(禮法)이니 아니니 하고 뽐낼 게 있으랴. 옛날 번오기(樊於期.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장수)는 사사로운 원망을 갚기 위하여 머리 잘리기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임금)은 자기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고 호복(胡服) 입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거늘, 이제 너희들은 대명(大明)을 위해서 원수를 갚고자 하면서 오히려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끼며, 또 앞으로 장차 말달리기ㆍ칼치기ㆍ창찌르기ㆍ활 튀기기ㆍ돌팔매 던지기 등에 종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고서 제 딴은 이게 예법이라 한단 말이냐. 내가 평생 처음으로 세 가지의 꾀를 가르쳤으되, 너는 그 중 한 가지도 하지 못하면서 네 딴에 신임받는 신하라 하니, 소위 신임 받는 신하가 겨우 이렇단 말이냐. 이런 놈은 베어 버려야 하겠군.’
하고는,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공은 깜짝 놀라 일어나 뒷들창을 뛰어나와 달음박질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으나 허생은 벌써 집을 비우고 어디론지 떠나 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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