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최상의 재료, 최고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머릿속엔 곧 눈앞에 놓일 맛있는 음식 생각뿐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는데 일회용 그릇에 놓인 데다, 모두 식어있는 음식들 뿐. 잔뜩 품었던 기대는 한순간 무너져 소중한 한 끼의 식사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런 경우 누구나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되기까지는 음식의 재료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아내는 용기, 온도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차도 마찬가지다. 차는 차를 우리는 물, 그릇, 물의 온도, 차와 물의 비율, 우리는 시간 등에 매우 민감하여 한잔의 기분 좋은 차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맛있는 찻물을 위한 첫 번째 단계: 좋은 물 고르기
한 잔의 맛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의 종류, 다구의 선택, 물의 온도, 차와 물의 비율, 차를 우리는 시간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찻물이라는 것은 차에 물을 부어 우러나오는 물을 말한다. 우리가 마시는 찻물은 약 99% 정도가 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1%가 차에서 용출되어 나오는 유효성분들로, 맛있는 찻물을 위해서는 좋은 차의 선택에 앞서 좋은 물의 선택이 필요하다. 옛 선인들 역시 좋은 물에 대한 깊은 조예를 보였는데, [서역기(西域記)]에서는 좋은 물을 팔공덕수(八功德水: 여덟 가지의 공덕이 갖춰진 물)라고 하여, “물은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럽고(軟), 감미롭고(美), 냄새가 없으며(不臭), 마시기 적당하고(調適) 마신 후 탈이 없어야 한다(無患).”고 말하고 있다. 현대 과학에서의 물은 기본적으로 색, 맛, 냄새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칼슘이온이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이온보다 많으면 좋은 물로 여겨지며 칼슘과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이 Mineral Balance를 잘 갖추면 맛있는 물이 된다. 증류수는 물에 이온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맛이 없고, 이 물로 차를 우릴 경우 차의 맛과 향이 떨어지므로 차를 우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당나라 시대의 다성(茶聖) 육우(陸羽, 733~804)는 [다경(茶經)]에서 “찻물은 산수(山水)가 상품이요, 강물이 중품이요, 우물물이 하품이다. 젖샘(乳泉)과 돌샘에 천천히 흐르는 물은 상품이며, 강물은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길어야 하고, 우물물은 많이 길어가는 것을 취한다.”라고 하였다.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산수를 구하기는 어렵고, 오염되지 않은 강물이나 우물물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먹는 물에 대한 수질 기준”을 통과한 생수나 정수된 물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활용방안이 될 것이다. 수돗물은 염소가 차의 향미(香味)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맛있는 찻물을 위한 두 번째 단계: 다구 선택하기
차를 우릴 때에 쓰이는 다구들. 다완, 다관, 탕관과 찻잔. 다구를 선택할 때에는 쓰기에 편리하고 내가 마시려는 차에 적합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좋은 물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차를 우리기 위한 다구(茶具)를 선택해야 한다. 다구를 선택할 때에는 먼저 차의 특성을 살펴 각각의 차에 적합한 다구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부 사람들은 차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수백만 원짜리의 비싼 다구를 즐비하게 늘어놓곤 한다. 그러나 다구는 과시용이 아닌, 차가 가지고 있는 진미(眞味)를 끌어내주는 그릇이어야 바로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오두막 편지]에서 “차의 진정한 운치는 담백하고 검소한 데 있다. 그릇이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차의 운치를 잃고, 차의 원숙한 경지는 값비싼 그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릇에 너무 집착하면 차의 진미(眞味)를 잃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다구를 선택할 때는 가격과 작가의 명성보다는 우선적으로 쓰기에 편리하고, 내가 마시려고 하는 차에 적합해야 한다. 그런 다음 다구의 예술적 가치, 소장가치 등을 고려하여 선택한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다구로는 다관(茶罐: 차를 우리는 그릇), 자사호(紫沙壺: 주로 중국차를 우려낼 때 쓰이는 차 주전자), 개완(蓋碗: 뚜껑이 있는 찻잔), 다완(茶碗: 차를 마실 때에 사용하는 사발)과 유리잔 등이 있다.
최근에는 바쁜 현대인들이 쉽게 차를 접할 수 있도록 플라스틱이나 유리,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다구들이 다수 선보이고 있다. 플라스틱 재질의 표일배(오른쪽)와 스테인리스 스트레이너(오른쪽, 출처: (cc) Think outside the box at en.wikipedia.org).
다관은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사용되며 녹차나 발효차를 우려 마실 때 쓴다. 중국에서는 녹차를 마실 때 유리잔을 많이 이용한다. 자사호의 '자사'는 자줏빛 모래라는 뜻으로, 중국 의흥(宜興)에서 나는 다구이다. 자사호는 독특한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투기성(透氣性)이 좋고, 냉온의 급격한 온도변화에 잘 적응하여 데이거나 그릇이 깨질 염려가 없어 맛있게 차를 우릴 수 있는 다구로서 매우 적합하다. 개완은 약 120~150m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종모양의 그릇 위에 뚜껑이 있다. 보통 흰색이 차를 마실 때 차탕의 색을 관찰할 수 있어 좋고, 화차(花茶)나 녹차를 우려 마실 때 많이 사용된다. 자사호는 향기를 머금는 성질이 있어 하나의 호에 한 종류의 차를 우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개완의 경우 하나의 개완에 다른 종류의 차를 우려도 서로 영향을 받지 않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다완은 흔히 찻사발이라고도 하며 가루로 된 말차를 마실 때 주로 사용한다.
좋은 차와 좋은 다구가 만났을 때 차의 진미가 마음껏 발휘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깨질 위험성이 있는 도자기는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간편하고 휴대하기 편한 플라스틱 재질의 표일배나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스트레이너를 사용하면 어디에서나 간단하게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맛있는 찻물을 위한 세 번째 단계: 물의 온도 신경쓰기
적당한 다구를 선택하고 나면 이제는 차를 우릴 시간이다. 차를 우릴 때에는 물의 온도, 차와 물의 비율, 차 우리는 시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해지면 차의 진정한 맛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최고급 차를 우리면서도 “차가 쓰고 떫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차를 우릴 때 물, 온도, 시간 등의 요소들을 잘 조절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차의 특성에 맞게 이 세 가지 조건을 잘 조절하여 차를 우려낸다면 차가 쓰고 떫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차를 우리는 물의 온도는 찻잎의 여리기에 따라 결정한다. 가늘고 어린잎의 백차ㆍ녹차는 낮은 온도에서, 이보다 거친 잎으로 만든 홍차ㆍ우롱차ㆍ보이차는 높은 온도에서 우린다. 녹차의 경우 쓴맛과 떫은맛을 가진 카페인과 폴리페놀이 높은 온도에서 잘 우러나오고, 감칠맛을 가진 아미노산은 비교적 낮은 60℃ 정도에서 잘 우러나오기 때문에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60~80℃의 온도에서 우리는 것이 적합하다. 반면 우롱차는 향기가 뛰어난 차로 95℃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우려야만 만발하는 차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보이차를 비롯해 거칠고 늙은 잎으로 만든 차는 100℃의 끓는 물에 바로 우려야 차가 잘 우러난다.
맛있는 찻물을 위한 네 번째 단계: 우리는 시간 살피기
우롱차는 특유의 향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붓고 바로 뚜껑을 닫아야 한다. 차는 우리는 시간과 횟수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차를 우리는 시간은 찻잎의 여리기, 가공방법 등에 의해 달라진다. 녹차의 경우 3분 이내에 대부분의 성분이 모두 우러나오게 된다. 하지만 폴리페놀의 경우 계속적으로 우러나오는데, 시간이 오래될수록 폴리페놀은 찻물의 맛을 쓰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찻물의 신선한 맛이 감소되면서 전체적인 차 맛을 좋지 않게 만든다. 따라서 녹차의 유효성분과 맛을 적절히 취하기 위해서는 약 2~3분 정도 우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만약 녹차의 맛을 여러 잔에 거쳐 느끼고 싶다면 처음에 약 30~60초를 우리고 둘째 잔, 셋째 잔은 시간을 30초씩 늘려가면서 마신다.
우롱차의 경우 시간이 너무 길면 향기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처음에 15초 미만으로 우리고, 다음 잔부터는 시간을 약 10초 정도씩 늘려가면서 적게는 5번에서 많게는 10번 이상까지도 차를 우려낼 수 있다. 우롱차는 뜨거운 물을 붓고 차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바로 뚜껑을 닫아야 한다. 여러 번 우려내다 향과 맛이 확연하게 떨어지면 마시지 않는다. 티백 홍차의 경우 찻잎을 잘게 자른 경우가 많아 시간을 오래 두면 차 맛이 너무 강하고 쓰며 떫어지기 때문에 잠시 담갔다 마시는 것이 좋다. 보이차 및 전차(磚茶)와 같은 긴압차는 향기보다는 깊은 맛을 즐기는 차로, 오래 우리면 맛이 매우 강해지므로 10초 이내로 우린다. 긴압차 또한 5번 이상 우려 마실 수 있다. 채소의 섭취가 적은 티벳에서는 비타민C를 공급받기 위해 전차를 장시간 끓여 버터의 일종인 수유를 첨가한 수유차를 복용하기도 한다.
맛있는 찻물을 위한 다섯 번째 단계: 차와 물의 비율 지키기
일반적으로 녹차와 물의 비율은 약 1:60으로 한번 우릴 때 사용하는 녹차의 양은 약 3g이다. 홍차를 우릴 때에는 물의 온도를 높이고 우려 마시는 횟수가 녹차보다 적기 때문에 차와 물의 비율은 1:50이 알맞다. 홍차로 밀크티를 만들 때에는 차의 농도를 더 진하게 해야 깊은 맛의 차향을 느낄 수 있다. 우롱차를 우리는 도구로는 자사호를 많이 사용한다. 철관음과 포종차 등의 구슬모양 우롱차는 자사호의 약 1/5~1/3정도로 차를 넣고, 대홍포와 봉황단총 등의 가늘고 구부러진 선 모양의 우롱차는 자사호의 약 1/2~4/5 만큼 차를 넣는다. 한번 우릴 때 사용하는 우롱차의 양은 약 7~10g이다. 보이차의 경우 압제된 긴압차는 조금 적게 넣고, 압제되지 않은 산차(散茶)는 조금 많이 넣는다. 보이차와 물의 비율은 약 1:30으로 한번 우릴 때 사용하는 보이차의 양은 약 5g이다.
한 잔의 차를 위한 황금률
아이들이 차를 우리는 모습. 맛있는 차를 만드는 법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제시한 데이터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개개인의 음용 목적과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맛있게 차 우리는 황금률>
차사(茶事)는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시고 싶은 차를 준비하는 설레임, 다구를 보면서 얻는 미적 감흥, 찻잔의 감촉과 따뜻한 차의 느낌, 향과 맛의 감미로움이 하나로 어울린 한 잔의 차는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차를 준비하는 매 순간 순간이 설레고 또 설렌다. 차와 물, 다구의 빛나는 조화, 그리고 세심한 정성으로 우려낸 차. 이 황홀감을 맛보게 되면 어찌 단 하루인들 손에서 차를 놓을 수 있을까? 마시고 또 마시니 신선이 부럽지 않고, 취하고 또 취하니 온 세상이 여일(如一)하다. 그대 차 한잔 받아들고 스르르 웃음짓길.
- 글
- 장정현
- 호칭·직책
- “차 한잔을 손에 들고 입에 머금어 두 눈을 감고 마시는 순간 나는 차가 된다.” 중국 절강대학교에서 茶學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원광대학교에서 차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차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연구 및 저술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현재 인사동에서 차품평 강의 및 차에 관한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 사진
- 오영순
- 호칭·직책
- 중국과 대만 등지의 차산을 120회 이상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차를 연구하며 인사동에서 차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생생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보이차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원광대학교 예다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